메뉴 건너뛰기

close

노동자들이 파견노동으로 삼성과 엘지의 재하청 회사에서 일을 하다가 독성화학물질인 메틸알코올(메탄올) 중독으로 실명을 당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럼 삼성과 엘지의 책임인가, 파견업체와 사용업체의 책임인가. 제대로 된 감독을 않은 국가의 책임인가.

책 <실명의 이유>는 <오마이뉴스> 선대식 기자가 2016년 메탄올에 노출돼 실명이라는 산업재해를 당한 여섯 명의 노동자(이현순, 방동근, 이진희, 양호남, 전정훈, 김영신)를 직접 만나서 기록한 가슴 아픈 이야기이다.

<실명의 이유>(저자 선대식) 표지.
 <실명의 이유>(저자 선대식) 표지.
ⓒ 북콤마

관련사진보기


무엇보다 기자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피해자들을 직접 만나 진솔한 얘기를 담기 위해 노력했고, 또한 이 재해 사건이 어떻게 발생했는지, 그리고 법원에서 어떻게 판단되었는지를 끈질긴 추적으로 정리하고 있다. 아마 산재 노동자들의 피해 사례를 이렇게 심도 깊게 기록한 책은 처음인 듯하다.

2016년 2월 1일 나 역시 이대목동병원에서 두 명의 피해자와 가족을 처음 만났다. 김현주 직업환경의학과 교수님이 내게 산업재해보상보험(산재보험) 신청을 도와달라고 했을 때, 사안 자체도 너무 놀라웠지만, 굳이 대리인이 없어도 산재승인은 쉽게 될 거라면서 거절했었다.

아무튼 교수님의 청으로 병원으로 가서 이현순, 방동근을 면담했다. 그때의 아찔함과 답답함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그냥 알코올을 사용했다고 했고, 어떤 보호구도 없었고, 어떤 안전교육도 받지 못했던 두 명의 20대 노동자들이 내 앞에 앉아 있었다. 무엇보다 실명이 된 두 명을 앞에 둔 그 막막함 때문에 질문하기 매우 조심스러웠다. 당시 양호남도 이미 세상에 알려졌지만, 두 명의 산재 신청만 도와드렸던 것이 내내 아쉬웠다.

이 책은 시간 순으로 4부로 나눠지지만, 모두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된다. 1부에서는 2015년 말과 2016년 초 그들이 쓰러지게 되면서 세상에 알려지는 내용이 정리되어 있다. 2부에서는 저자의 '위장취업보고서'라고 할 수 있다. 즉 저자 스스로 2016년 신분을 속이고 안산의 파견업체를 통해 메탄올을 사용하는 업체에 취업하면서 겪었던 고민과 이야기가 기술되어 있다.

저자가 위장 취업 당시 '실명의 위기'에 놓였던 이야기가 생생히 전해지면서, 피해 노동자들이 왜 실명될 수밖에 없는 노동조건이었는지, 파견노동의 실태와 문제점이 무엇인지 잘 알 수 있게 된다. 그리고 3부에서는 6명의 실명 피해 노동자 각각의 삶과 절박한 말, 그리고 그들의 모습과 마주친다.

산재로 아버지를 잃고 본인 또한 실명이라는 산재를 겪은 전정훈, 대학교 학비를 벌기 위해 파견업체에서 일을 하고 나흘 만에 실명을 당한 이진희, 사고로 어린 딸을 볼 수 없는 이현순, 2016년도 봄 상견례를 앞두고 시력을 잃어버린 방동근, 친구들과 지내기 위해 부천으로 와서 일한 지 일주일 만에 쓰러진 양호남,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인권이사회에서 기업과 국가의 책임을 말해준 김영신. 마지막 4부에서는 2014년 3월 이미 메탄올 중독사고가 있었다는 사실과 이에 대한 기자회견 등의 이야기가 나온다.

다시금 돌아가서 실명의 이유는 무엇인가. 2014년 3월 중국 동포의 메탄올 중독사고가 발생했을 때, 고용노동부에서 인천이나 경기도 안산·시흥·부천 등에 있는 사업장에 대한 전수조사와 감독을 했다면 노동자 6명이 실명하는 일이 발생했을까. 매년 반월·시화공단이 있는 안산·시흥은 불법파견에 대한 노동청의 집중 감독을 받는다고 하지만, 노동부 스스로도 인정하듯이 상황은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

이 사건으로 파견사업주들은 벌금 200만 원에서 최대 징역 6월, 집행유예 1년의 판결을 받았다. 사용사업주들 또한 최대 징역 1년 6월, 집행유예 3년의 판결을 받았다.

이 책에서 인천지방검찰청 공안부 부장검사가 얘기하듯이 산업재해 사건에서는 사람 셋은 죽어야 구속이 된다. 장애 1급 재해의 피해노동자들이 나온 막중한 사건에서 아무도 구속되거나 책임지지 않는다. 기존 노동부의 수사도 그랬고, 사실 검찰 공안부의 시각도 그랬다. 저자가 끈질기게 추적해서 보여주었듯이 법원의 안일한 인식도 문제다.

수조, 수십조 원의 막대한 영업이익을 올리면서, 비용과 책임전가는 모두 하청과 재하청 등에게 넘기는 삼성과 엘지의 책임은 없는가. 1원이라도 이윤을 더 얻기 위해 인간을 물건 취급하여 착취하는 파견사업주와 사용사업주는 그 책임이 없는가. 그리고 파견노동을 합법화하여 그 범위를 넓혀왔던 국가의 책임은 무엇인가.

그러나 무엇보다 실명의 이유는 바로 '나와 우리의 책임'이 아닐까. 이진희씨가 울면서 얘기한 마지막 말이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길 바라며, 비정규직이나 알바생들에게도 많은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실명의 이유는 바로 나의 탓이었고, 우리의 문제였다. 언제 국가와 자본, 그리고 법원과 검사가 노동자의 인권과 안전에 대해 책임을 진 적이 있는가.

메탄올 실명 피해자 이진희씨가 지난 2017년 4월 15일 간병인의 손을 꼭 잡고 근로복지공단 창원병원 복도를 걷고 있다.
 메탄올 실명 피해자 이진희씨가 지난 2017년 4월 15일 간병인의 손을 꼭 잡고 근로복지공단 창원병원 복도를 걷고 있다.
ⓒ 민석기

관련사진보기


이 책은 피해자들의 이야기보다 피해자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보여준다.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너무나 미안했다. 관심이 부족했던 나의 모습이 부끄러웠고, 어쩌면 기성세대로서 안전한 노동현장을 만들지 못했던 죄책감도 많이 들었다.

그래도 여섯 명의 피해자들이 살아줘서 고맙고 버텨줘서 너무나 감사했다. 그리고 항상 피해자들이 살아갈 수 있도록 그들 곁에서 함께 울고 울어준 박혜영(노동건강연대 활동가)에게 너무나 고마울 뿐이다.

덧붙이는 글 | - 글쓴이 권동희는 노무사(법률사무소 새날)입니다.



실명의 이유 - 휴대폰 만들다 눈먼 청년들 이야기

선대식 지음, 북콤마(2018)


태그:#실명의 이유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5,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모든 시민은 기자다!" 오마이뉴스 편집부의 뉴스 아이디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