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 외야수 이치로 스즈키는 한국 선수들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질긴 인연이다.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이하 WBC)에서 "30년 동안 일본을 이기지 못하게 하겠다." "굴욕적이다." "이길 팀이 이겼다." 등 자극적으로 도발했으며, 당시 한일전 타선의 선봉장으로 나서기도 했다. 또 2009년 대한민국과의 WBC 결승전 연장 승부에서 임창용(현 KIA 타이거즈)을 상대로 결승타를 치면서 일본의 WBC 2회 우승에도 큰 공을 세우는 등 한일 야구 역사에서 숱한 흔적을 남겼다.

국가 대항전 대회가 아니더라도 메이저리그에서도 한국인 선수들과 인연이 질겼다. 8일(아래 한국 시각) 이치로는 메이저리그 데뷔 팀이었던 시애틀 매리너스로 돌아왔다. 1년 75만 달러 기본 연봉이 보장되며 인센티브를 합하면 최대 200만 달러까지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이치로가 매리너스에서 뛰는 동안에도 한국인 메이저리그 선수들과는 많은 인연을 맺고 있었다.

이치로와 한국인 선수와의 인연, 박찬호부터 시작

오릭스 블루웨이브(현 오릭스 버팔로스)에서 뛰었던 이치로는 2001년 메이저리그에 진출하며 매리너스와 계약했고, 그 해에 아메리칸리그 신인상과 MVP를 휩쓸었다. 그리고 다음 해 코리안 특급 박찬호가 당시 텍사스 레인저스와 5년 6500만 달러 계약을 맺고 같은 아메리칸리그 서부지구에서 맞대결을 펼치게 됐다.

그러나 이치로와 박찬호는 같은 지역에서 만났음에도 그렇게 자주 맞대결을 펼치진 못했다. 박찬호가 2002년부터 2005년 7월까지 이어진 레인저스 커리어 중 거의 대부분을 부상자 명단에 올랐기 때문에 맞대결 기회가 많이 없었다.

그나마 박찬호가 레인저스에서 꾸준히 선발 기회를 얻었던 것은 매리너스와의 상대 전적 때문이었다. 박찬호의 통산 매리너스 상대 전적 중 패전은 모두 내셔널리그 팀에서 뛸 때 당했던 패전(5.1이닝 10자책 포함)이었으며, 레인저스에 있을 때는 매리너스에게 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통산 100번째 선발승을 달성했던 경기도 매리너스와의 원정 경기였다.

박찬호는 또 다른 일본인 선수 히데키 마쓰이를 상대하면서 단 1피안타를 허용(홈런)할 정도로 압도했으나, 이치로와의 상대 전적은 그렇지 않았다. 이치로는 박찬호를 상대로 35타수 12안타로 타율 0.387의 높은 상대 타율을 기록했다.

다만 박찬호가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로 이적한 뒤 WBC에서 이치로를 만났을 때는 달랐다. 1라운드 일본과의 경기에서 9회 마무리투수로 등판했던 박찬호는 2사 상황에서 만난 이치로를 공 3개 만에 내야 뜬공으로 잡으며 대한민국의 조 1위를 확정지었다. 선발로 등판했던 2라운드에서는 아예 이치로를 삼진으로 잡아내기까지 했다.

수비 포지션 중복으로 함께 뛰지 못했던 이치로와 추신수

이치로가 메이저리그에서 뛰기 시작했던 2001년, 당시 추신수는 부산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 매리너스와 계약하면서 마이너리그부터 단계를 밟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이치로와 추신수는 포지션이 겹치는 바람에 함께 뛸 수 없었다. 이치로는 우투좌타, 추신수는 좌투좌타로 똑같은 왼손 타자인데다가 수비 자리도 우익수로 겹쳤다.

이 때문에 2005년 40인 로스터에 포함되어 메이저리그 신분이 된 추신수는 우익수가 아닌 중견수로 경기에 출전해야 했다. 수비 범위가 훨씬 넓은 이치로에게 매리너스가 중견수 역할을 권유했지만 이치로는 이를 거절했다.

이치로가 우익수 포지션을 고집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나중에 매리너스의 팀 사정으로 인해 이치로가 한 시즌 중견수를 맡은 적이 있었는데, 사실 이치로의 수비 범위는 우익수 치고는 넓었지만 중견수 치고는 넓지 않았으며 그나마 강력한 어깨를 이용한 송구 능력으로 부족한 부분을 메우는 정도였다.

결국 풀 타임 중견수로 적응하지 못한 추신수는 2006년 클리블랜드 인디언스로 트레이드되었는데, 팀을 옮기자마자 친정 팀 매리너스를 상대로 홈 경기에 선발 출전하게 됐다. 그 경기에서 추신수는 매리너스의 에이스 펠릭스 에르난데스를 상대로 결승 홈런을 날리며 자신을 내보낸 매리너스에게 확실하게 복수했다.

공교롭게 추신수가 매리너스를 떠난 이후, 매리너스의 다른 외야수 자원들이 모두 중견수에 적응하지 못하면서 어쩔 수 없이 이치로가 1년 동안 중견수를 맡았다. 다른 중견수 자원이 영입된 뒤에야 이치로는 다시 우익수로 복귀했다. 나중에 뉴욕 양키스와 마이애미 말린스에서는 주로 백업으로 뛰었기 때문에 좌익수로 뛰었던 경기도 있었다.

추신수는 인디언스로 팀을 옮긴 직후 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토미존' 서저리)이라는 시련을 맞이했다. 그러나 이후 추신수는 전성기를 달리기 시작했다. 3번의 20홈런-20도루 동시 달성 시즌을 만들었으며, 그 중 2번은 타율도 3할이었다. 추신수 역시 FA를 앞두고 신시내티 레즈로 트레이드되었을 때 레즈의 팀 사정을 감안하여 빌리 해밀턴이 콜업되기 전 1년 동안 한시적 중견수를 맡은 적도 있었다.

엇갈렸던 인연, 드디어 같은 지역에서 만난 이치로와 추신수의 뒤바뀐 처지

추신수가 팀을 떠나는 상황에서도 매리너스 외야 한 자리를 지켰던 이치로는 2012년 7월 팀의 리빌딩 협조 차원에서 스스로 트레이드를 자처했고 양키스로 이적했다. 양키스 리드 오프로는 주장이었던 데릭 지터(현 마이애미 말린스 구단주 겸 사장)가 있었기 때문에 하위 타선이라는 익숙하지 않은 역할을 받아들였다.

이치로가 서부지구를 떠난 뒤, 추신수는 레인저스와 FA 계약을 체결(7년 1억 3000만 달러)하면서 서부지구로 돌아왔다. 2014년부터 레인저스에서 뛴 추신수는 올해로 레인저스에서 5번째 시즌을 맞이하게 됐다. 그 동안 이치로는 양키스와 한 차례 재계약이 만료된 뒤 말린스로 이적하여 선수 생활을 이어갔고, 메이저리그 3000안타 달성과 함께 커리어 통합 기록(일본 기록 포함)에서 피트 로즈의 4256안타도 넘겼다.

2017년이 끝난 뒤 말린스는 이치로와의 옵션을 실행하지 않았고, 이치로는 FA 시장에서 스프링 캠프가 시작된 이후에도 팀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박찬호와 동갑인 1973년 생(만 44세)의 나이가 새로운 팀을 찾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친정 팀 매리너스가 이치로를 영입하게 된 것이다.

함께 매리너스에 있었던 2006년 전반기와 비교했을 때 이치로와 추신수의 입장은 반대가 됐다. 추신수는 레인저스 이적 후 잦은 부상 후유증으로 인해 수비 범위가 줄어들었고, 지명타자 출전 비중이 많아졌다. 그러나 추신수는 아직 레인저스 타선의 주전 라인업으로 자리잡고 있다. 반면 이치로는 대타 요원 치고는 많이 나왔지만 출전 타석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이치로가 트레이드를 자처했던 이유는 매리너스의 리빌딩 때문이었는데, 이제는 이치로가 그 리빌딩 진행 중인 친정 팀에 돌아왔다. 일단 <엠엘비닷컴>에 의하면 매리너스는 좌익수 1순위로 이치로를 올려놓았다. 그러나 양키스 이적 후 백업 외야수로 뛰었고 말린스에서는 사실상 대타 요원이었던 40대 중반의 이치로가 갑자기 다시 풀 타임으로 외야 수비를 담당할 가능성은 그리 크진 않다.

추신수가 중견수로서 풀 타임에 적응했거나, 이치로가 중견수로 포지션을 성공적으로 옮겼더라면 두 선수는 같은 팀에서 주전으로 뛰었을 수도 있었던 인연이었다. 하지만 운명은 그들이 한 팀에서 풀 시즌을 치르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고, 이제 같은 지구에서 서로의 팀을 위해 냉정한 승부에 나서야 한다.

올 시즌 매리너스와 레인저스는 총 19경기의 맞대결이 편성되어 있다. 물론 세월이 흘러 다시 만난 이치로와 추신수가 이 19경기를 모두 출전한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치로와 추신수는 둘 다 팀의 승리를 위해 전력을 다할 것이고, 둘의 인연이 올 시즌 매리너스와 레인저스의 맞대결 전적에 영향을 미칠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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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LB 메이저리그야구 스프링캠프 이치로시애틀복귀 추신수와이치로의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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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널 브랜더/서양사학자/기자/작가/강사/1987.07.24, O/DKU/가톨릭 청년성서모임/지리/교통/야구분석(MLB,KBO)/산업 여러분야/각종 토론회, 전시회/글쓰기/당류/블로거/커피 1잔의 여유를 아는 품격있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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