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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작품 한 점을 독자와 함께 감상하며 그림 속 숨어있는 이야기와 작가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보려고 합니다. 미술전문가의 입장보다는 관람객 입장에서 그림이 어떻게 느껴지는지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편집자말]
아들과 함께 인상파 화가들의 전시에 갔다.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유명 작가들의 작품이 많았다. 아들이 묻는다.

"인상주의가 뭐야?"
"음... 예를 들면, 녹색이 진한 나뭇잎도 강한 햇빛 아래에서는 투명한 흰색으로 보이기도 하고 핑크로 보이기도 하고 어떤 곳은 연두색으로 보이기도 하잖아. 빛에 따라 색채가 변하는 걸 보며 '순간적으로 느껴지는 인상'을 포착해서 그린 그림을 인상주의 그림이라고 해. 사진처럼 똑같이 그리거나 추상적으로 그리는 그림이 아니고."

인상파의 대표주자인 세잔, 모네, 드가, 시슬레, 피사로, 르노아르 등 세기의 거장들 작품이 많았지만 내 눈을 사로잡는 건 베르트 모리조의 '접시꽃과 어린아이'라는 작품이다. 남자 화가들 사이 유일한 여자 화가. 그래서인지 색감이 다르다.

한눈에 반하고야 마는 그림 속의 사랑스러운 아이는 그녀의 딸이다. 자식을 키워보면 알겠지만 요만할 때가 말도 배워서 쫑알쫑알 종달새처럼 재잘거리고 혼자서도 잘 뛰어다니고 세상 사랑스러울 때다. 돌이켜보면 이때의 존재만으로 평생의 효도를 다 하는 시기인 것 같다.

사랑은 힘이 세다

 마네가 그린 '베르트 모리조'(<제비꽃 다발을 든 베르트 모리조>)
 마네가 그린 '베르트 모리조'(<제비꽃 다발을 든 베르트 모리조>)
ⓒ 파리 오르세 미술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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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두아르 마네의 뮤즈이자 제자이고 연인이었던 베르트 모리조. 이미 결혼한 마네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가슴앓이를 하다가 엉뚱하게도 마네의 동생인 외젠 마네와 결혼한 여자.

사랑하는 여인을 동생에게 보내야 하는 마네. 그렇게 마네의 가족이 되어 그의 옆에서 그의 아내를 질투하며 라도 그 옆에 있고 싶은  베르트 모리조. 서로를 향한 뜨거운 눈빛을 모를 리 없었던 동생 외젠 마네.

이들은 평생 어떤 심정으로 살았을까. 아슬아슬 막장 드라마 같은 얘기지만 영화보다 더 극적인 인생이 어디 한둘이랴. 드라마나 영화도 현실을 떠나서 나오지 않는 법. 

그렇게 외젠 마네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딸 쥴리 마네. 마네와 베르트 모리조 사이에는 무수한 소문이 떠돌았지만 사랑은 사랑한 당사자들만 아는 이야기. 그들의 러브스토리는 너무나 많이 알려진데 반해 동생과 결혼 생활에 대한 얘기는 찾기 힘들다.

대신 그녀는 남편과 딸 '쥴리 마네'를 모델로 다수의 작품을 남겼다. 금수저 집안에 태어나 그 시절에도 미술교육을 받아 화가가 되었고, 사람들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을 만큼 뛰어난 외모와 예술적 재능을 가진 그녀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알 수 없다. 사랑은 어떤 선택도 가능케 할 만큼 힘이 세다.

남성 화가들로만 즐비했던 시절, 유일하게 인상파 전시에 작품을 낸 여자 화가. 그것도 인상파 전시 총 8회 중 7번을 참가했다. 단 한 번 불참 이유도 아이 출산 때문인 걸 보면 얼마나 작품 활동을 왕성히 했는지, 얼마나 그림에 대한 열정이 대단했는지 가늠이 된다. 나중에 인상파 화가들이 다른 화풍을 추구해서 떠날 때도 그녀는 자신의 화풍을 유지했으며 그녀만의 색채는 더욱더 발전했다.

착해지고 순수해지고 싶다

 베르트 모리조의 '접시꽃과 어린아이"
 베르트 모리조의 '접시꽃과 어린아이"
ⓒ 독일 쾰른 발라츠-리하르츠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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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이 그림은 어린 시절 장미넝쿨이 우거졌던 우리 집과 닮아있다. 작은 시골집 대문 위로 장미 넝쿨이 우거지고 그 아래 이름 모를 야생화들이 피어있었던 우리 집. 언니, 오빠가 학교에 가고 나면 나 혼자 남아 그 넝쿨 아래서 땅을 파기도 하고 온갖 벌레들을 구경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다 잊고 있었는데 이 그림을 마주하자 그 옛날 집이 떠올랐다. 뭔가 가슴이 뭉클해지는 느낌. 어린 내게 무슨 구구절절한 사연이 있는 집도 아니었는데. 추억이란 이런 건가. 어린 시절의 기억을 소환하기만 해도 맘이 그림 속 빛처럼 일렁인다.

눈부신 햇살 아래 아이의 볼이 환하다. 아이를 둘러싼 색색의 아름다운 꽃들도 아이를 빛나게 한다. 열려있는 대문 밖에서 시원한 바람 한 자락이 불어와 뜨거운 볕을 식혀줄 것 같다.

낮은 담장 사이로 보이는 시골 마을, 그 평화로워 보이는 풍경이 뜬금없이 눈물겹다. 눈을 뗄 수가 없다. 장미넝쿨 대문 아래에서 놀고 있던 나를 바라보는 우리 엄마의 시선도 이처럼 따뜻했겠지. 이제 그 때의 엄마보다 훨씬 늙어버린 딸이 그 때의 어린 나를 바라본다.

그림으로 힐링한다는 게 이런 건가 보다. 내 몸 속의 지치고 오염된 마음이 순간 정화된 듯하다. 막 착해지고 순수해지고 싶다. 나를 현실로 돌아오게 하는 아들의 한 마디.

"인상파의 아버지 마네가 인상파라고 이름을 정한 거야?"
"아니, 프랑스 신문기자 루이 르루아(Louis Leroy)라는 사람이 낙선전에 출품한 모네의 그림 '해 뜨는 인상'을 보고 비꼬아서 그들을 인상파라고 기사에 썼는데 그게 이름이 되었대."

낙선전은 파리의 유명한 국선미술대회인 '살롱전'에 떨어진 화가들이 그 옆에서 전시를 열었는데 그게 낙선한 사람들의 전시라 '낙선전'이라고 불렀다는 이야기, 그 전시가 인상파 화가들의 첫 번째 전시였다는 이야기. 사진기 발명이 화풍의 변화를 불러왔다는 이런 저런 얘기를 했다.

전시를 보고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식당에 갔다. 18살이 되어 이미 덩치는 나보다 훨씬 큰  아이의 모습에서 '접시꽃과 어린아이' 모습이 보인다. 식당 유리창에 햇빛이 가득 들어오고 아이는 눈이 부셔 하며 메뉴판을 보고 있다.

덩달아 눈이 부신 나는 '꽃밭의 어린 소녀'와 '메뉴판을 든 아들'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 베르트 모리조가 바라봤던 시선처럼 나도 내 아이를 그렇게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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