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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밤, 아니 이른 새벽. 센티멘털한 감성에 젖어들기 쉬운 오전 세 시에 친구로부터 문자가 왔다.

"근처에 24시간 하는 치킨집이 없어. 속상해."

이런. 새벽의 감성은 개뿔. 알 수 없는 감상에 젖어 흐느적거리던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다이어트를 하느라 굶주려 잠 못 이루고 있는 그녀의 고통 앞에서 웃어버리다니, 조금은 미안한 마음이 든다. 아서라, 여태 참은 것이 아깝지 않냐며 먹을 생각 말고 얼른 자라 했더니, 그녀가 오히려 내게 핀잔을 준다.

"내가 미쳤냐, 이 시간에 먹게. 새벽 6시에 일어나서 시켜먹고 출근하려 그러지."

주린 배를 생수로 달래며 자려고 했건만, 도저히 잠이 오지 않아 이 생각 저 생각 끝에 내린 결론이란다. 몇 시간째 배달 전문 업체들이 뿌린 광고 전단지를 보며 허기를 달래고 있다고. 식욕을 자극하기 위해 만들어진 전단지가 식욕을 억제하기 위해 이용되고 있는 것 또한 아이러니다.

사는 게 모순투성이다. 나의 진지한 고민이 친구들을 웃게 할 때, 내 고민도 작아지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내가 웃고 넘긴 일에 심각해지는 친구들을 보며, 나 역시 심호흡을 하고 상황을 다시 들여다보기도 한다. 세상에 넘쳐나는 모순들은 살아가는 재미이기도 하고, 우리의 영감을 자극하는 동력이 되기도 할 테다.

아무리 그러할지라도, 죽음마저 유쾌하게 다루는 것은 너무 잔인한 일은 아닐까. 그러나 에두아르 로네의 <완벽한 죽음의 나쁜 예>를 보며 한 번도 웃지 않기란 힘들 것 같다. 부제는 '법의학이 밝혀낸 엉뚱하고 기막힌 살인과 자살'이다.

<완벽한 죽음의 나쁜 예> 책표지
 <완벽한 죽음의 나쁜 예> 책표지
ⓒ 궁리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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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샴페인 과학'이라는 개념을 설명한다. 이는 상식에서 지나치게 벗어난 나머지 웃음을 자아내는 연구 결과를 가리키는 말이라고 한다. 바로 이 책에 가득한 연구 결과들이다.

책에 실린 사례를 보다보면, 사냥개의 총에 맞아 죽은 사냥꾼의 이야기는 비교적 엉뚱하지 않은 정도다. 혹시 쓱 넘겨 읽은 독자를 위해 다시 말한다면, 사냥꾼이 아닌, 사냥개의 우발적 총기 발사다. 모든 이야기들은 저자만의 독특한 유머와 함께 어우러진다. 웃을 수도, 울 수도 없게 만드는 블랙 코미디는 이런 식이다.

"요즘 너도나도 창문으로 뛰어내린다. 그러다가 행인이라도 다치면 큰일이다." (p20)
"머리에 못을 박아 자살하려는 건 완전히 바보 같은 짓이다. 보통 다시 살아나기 때문이다." (p66)
"머리에 구멍을 내는 데 총알만 한 건 없다. 하지만 아귀힘에 자신이 있다면 드라이버도 괜찮을 것이다." (p114)


행여 불쾌감을 느끼실 분들이 있을까 우려되어 난이도(?)가 무척 높은 이야기는 옮기지 않았다는 것을 밝힌다.

기상천외한 죽음에 관한 이야기들이 펼쳐지는 가운데, 저자는 단지 이 죽음들로부터 재미를 얻는 것만이 아니라, "진정 감탄스러운 과학자의 관점을 배울 수 있"(p13)다고 설명하고 있다.

"증오도, 열정도 없이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 이르러 차가운 돌과 같은 객관성을 담아 죽음의 세계를 설명해낼 수 있는 것은 법의학이 유일하다." (p14)


가령 이런 식이다. 같은 곳에서 한 연인이 며칠의 간격을 두고 창문에서 뛰어내렸다면, 우리는 어떤 의문을 가질까. 무엇이든, 다음의 질문들은 아닐 것이다. 법의학 전문가들은 이런 질문을 던졌다고 한다.

"남자와 여자는 자살할 때 같은 높이에서 뛰어내릴까?"
"호텔에서 일어나는 자살은 남다른 특징이 있을까?"(p21)


책을 읽으며 삶의 아이러니에 멈칫하게 되는 순간도 많다. 35년 동안 7번이나 번개를 맞았지만 매번 살아남은 행운의 사나이가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 행운의 사나이는 1983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바로, 사랑의 상처 때문에. 그의 블랙코미디는 계속 되고, 책을 읽는 나는 웃다가도 짐짓 심각해진다.

"25세 미만 여성이 자살에 성공할 확률은 160분의 1에 불과하다. 그러나 65세가 넘어가면 성공률은 3분의 1로 수직 상승한다. 남성 노인은 1.2분의 1로 성공률이 훨씬 높다." (p56)


전문가들은 청년보다 노인의 자살행위가 더 극단적이기 때문에 실패 확률이 낮다고 설명한다. 인생의 연륜일까, 간절함일까. 그들이 더 극단적인 방법을 택해야 했던 상황을 상상하면 마음이 아려온다.

책에 인용된 바에 의하면, 우도 그라스호프라는 의학사를 연구하는 사학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자살은 명예도 아니고 불명예도 아니다. 그것은 해마다 수천 번씩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p75)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 앞에서 명예, 불명예를 따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으랴. 남은 자들이 해야 할 것은 그 죽음의 의미를 짚어보고, 다시는 슬픈 죽음이 발생하지 않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일일 것이다.

저자의 말마따나 죽음을 대하는 과학자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관점을 엿보는 것은 매우 흥미로웠다. 덕분에, 조금은 명랑하게 죽음을 생각할 수 있었다. 때로는 엄숙함이 반드시 필요하겠지만, 죽음을 대하는 발랄한 자세 또한 가끔은 필요하지 않을는지. 이것은 마냥 도피할 수 없는 '인간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책의 서문을 인용하며 글을 마친다.

"이 책은 조지프 콘래드가 말한 '어둠의 심연'으로 여러분을 안내할 것이다. 50여 차례(꼭지)에 걸쳐 강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콘래드의 소설 속 주인공 커츠가 들려주는 삶과 죽음 그리고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될 것이다." (pp14-15)


완벽한 죽음의 나쁜 예 - 법의학이 밝혀낸 엉뚱하고 기막힌 살인과 자살

에두아르 로네 지음, 권지현 옮김, 궁리(2010)


태그:#완벽한 죽음의 나쁜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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