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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죽어버려, 외국인 꺼져"

심장이 쿵 했다. 초등학교 5학년인 딸 입에서 그 소리를 들었을 때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 초등학교에 다니는 딸 아이는 친구들에게 "죽어버려"라는 혐오발언을 들었다. (자료사진)
 일본 초등학교에 다니는 딸 아이는 친구들에게 "죽어버려"라는 혐오발언을 들었다. (자료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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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캉코쿠진 시네, 가이코쿠진 키에로(한국인 죽어버려, 외국인 꺼져)!"

같은 반 친구들에게서 딸이 들은 혐오 발언이었다. 일본에서는 '헤드스피치'라고 표현하는 혐오 발언을 들었을 때 '내 나라 아닌 남의 땅에 살고 있구나'라는 실감이 들었다. 처음에는 아이들끼리 싸우다 보면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또 이 발언을 처음 들었을 때는 북한의 핵 실험과 미사일 발사로 인해 일본 열도가 시끄러울 때였다. 급기야 내가 살고 있는 후쿠오카시에서는 미사일 공격에 대응하기 위한 훈련을 한다며 난리법석을 떨 때였다.

미사일 대비 훈련을 한다는 안내 현수막이 지하철역이나 버스 등에 걸렸고, 시내 곳곳에 관련한 안내가 붙어 있을 때였다. 그러니 철모르는 초등학생들이 멋모르고 한두 번 그런 발언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상황을 조금 지켜보기로 했다. 그런데 이후에도 두 녀석이 반복적이고 지속적으로 같은 발언을 하는 것을 확인했다.

한국인 혐오 발언을 대하는 총영사관의 태도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고민에 빠졌다. 그냥 학교 담임한테 말해 '주의'를 준다고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런 발언을 하는 것은 인권의식이 결여된 문제라고 생각했고, 직접 발언을 한 당사자만 주의를 주기 보다 학교 차원에서 인권 교육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먼저 이럴 경우 부모들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메뉴얼 같은 것이 있는지 후쿠오카 총영사관에 문의했다. 전혀 없었다. 없었을 뿐 아니라 담당 관계자는 대수롭지 않은 듯이 "그냥 연락장 통해 학교에 이야기하면 되지 않느냐?"며 시쿤둥한 반응을 보였다. 자기 나라 국민이 외국에서 차별적 언어의 대상이 되었는데도 대한민국 총영사관의 담당 관계자의 반응이 그랬다.

다음으로 후쿠오카시 교육위원회에 문의했다. 교육위원회에서는 "위원회가 만든 '누쿠모리(온기라는 뜻)란 인권 관련 교육 자료를 모든 일선 학교에 배포하여 비치하고 있으므로 그 교재를 활용하여 특별 교육 프로그램을 실시할 수도 있고, 필요시 인권 교육 전문가를 파견할 수도 있다"고 알려주었다. 또 인권개발상담센터를 통해 피해자의 상담을 연결할 수도 있음을 알려 주었다.

피해자 입장을 충분히 헤아린 학교 측의 대응

총영사관과 교육위원회에 문의한 뒤 아이의 담임에게 상담을 했다. 우리 아이는 현재 경계성 발달 장애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국어나 산수 같은 과목은 장애 지원학급에서, 사회나 자연 같은 과목은 일반 학급에서 공부하고 있다. 이번 외국인 차별 발언을 한 아이들은 모두 일반 학급 아이들이었다. 담임과 상담하면서 내가 주장한 바는 간단했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있는 문제가 발생했을 때는 먼저 진상을 파악한 후 피해자에 대하여 진정한 사죄를 할 것, 둘째 가해자에 대한 적절한 처벌이 필요하고, 셋째 피해자에 대한 상응하는 피해 보상을 하여야 하며, 넷째 재발방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원칙이었다.

그러나 초등학교 5학년 아이들끼리의 문제이므로 사죄와, 처벌, 그리고 보상은 원치 않는다고 설명했다. 다만 진상을 파악하고 재발방지를 위한 학교 측의 프로그램 마련이 필요하다고 요구했다. 이런 나의 주장에 대하여 학교 측이 보인 반응은 놀라웠다.

먼저 그런 사실이 있는지 피해 아동과 가해 아동을 분리해 확인했다. 확인 결과 2-3달간 반복적으로 그런 발언을 한 사실이 있음을 확인하고, 가해 아동의 부모를 학교로 불러 문제를 지적했다. 가해 아이들에게 피해자인 딸에게 사죄를 하라고 했고 실제 두 아이가 딸에게 사죄를 했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학교에서는 이후 재발 방지를 위해 다음 사항을 실시하기로 결정하였다.
1. 먼저 다른 아동들에게도 비슷한 사례가 있는지 전교생을 대상으로 피해 설문조사를 실시 예정.
2. 가해 아동이 속한 5학년을 대상으로 국제 이해 인권 교육 실시 예정.
3. 내년도 인권 교육 내용에 장애 인권 및 국제 이해 인권을 전교생을 대상으로 실시하도록 인권 교육 프로그램을 수정 확대할 예정.
그리고 3월 7일 가해자 부모의 요청으로 우리 부부와 가해자 아동, 그리고 부모가 만났다. 이 자리에서 두 아이는 눈물을 글썽이며 딸과 우리 부부에게 사죄를 했고 일반학급 담임, 아동들의 부모들로부터도 사죄를 받았다. 우리가 굳이 사죄까지 필요없다고 교장한테 이야기 했음에도 "자신들이 저지른 일이 얼마나 큰일인지 아이들이 깨닫게 하는 것도 교육의 일환이라고 생각해 이 자리를 마련했다"는 교장 선생님의 말에 기쁜 마음으로 사죄를 받아 들였다.

내겐 국가는 없었다

'문제 해결 시스템 마련 필요'

이번 일을 겪으면서 들었던 생각이다. 먼저 총영사관에 문의했을 때 난 적어도 최소한의 대응 방안에 대하여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왜냐하면 일본에서 한국인 차별이 있던 게 어제 오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모든 개별 사건에 대하여 메뉴얼을 만들 수는 없어도 적어도 비슷한 사례에 대한 대응 방안 정도는 준비되어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렇지 않으면 나 말고도 다른 많은 부모들이 같은 문제를 가지고 같은 시행착오를 하며 이 문제를 대응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국민이 힘들 때 곁에서 힘이 되어주는 게 국가의 역할 아닐까? 이번 학교에서의 작은 차별에 대하여 적어도 내게 국가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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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1급 시각장애인으로 이 땅에서 소외된 삶을 살아가는 장애인의 삶과 그 삶에 맞서 분투하는 장애인, 그리고 장애인을 둘러싼 환경을 기사화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