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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Too부터 #WithYou까지, 간명한 해시태그가 한국 사회를 뒤흔들고 있습니다. 곳곳에서 '나도 말한다'는 증언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사실 뜨거운 주목을 받는 것이 새로울 뿐, 낯선 풍경은 아닙니다. 여성들은 이전부터 온라인 공간에서 해시태그를 앞세우고 사회 곳곳에 숨겨져있던 성차별, 성폭력 문제에 대해 말해온 바 있습니다. #OO계_내_성폭력 해시태그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파편화됐던 여성의 목소리는 작은 태그 아래 모여 힘을 얻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3.8 여성의 날을 맞아 <우리의 해시태그> 기획을 마련했습니다. 그간 터져나온 여성들의 소중한 선언을 조명하고, 앞으로 전하고 싶은 목소리를 한 문장의 해시태그로 정리합니다. 해시태그는 프로그래밍 도구에서 '가장 먼저 처리해야 할 명령어' 앞에 사용하던 기호입니다. 우선, 이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시작'입니다. 군대 내 성폭력에 관한 방혜린 군인권센터 여군인권담당관의 글을 전합니다. 이 글은 '전쟁없는세상' 홈페이지에도 소개된 바 있습니다. 당사자의 동의를 얻어 <오마이뉴스> 독자들에게도 소개합니다. [편집자말]
최근 한국 사회에서 큰 이슈인 미투 운동과 군대, 그리고 군사주의에 대해서 방혜린 군인권센터 간사님이 군대에서 직접 겪은 일들과 그에 대한 생각을 보내주셨습니다. 방혜린 간사님의 이야기가 더 궁금하신 분들은 스토리펀딩에 실린 '해군사관학교 나온 여군 대위, 군에 맞서다'를 읽어보시길 추천합니다. - 전쟁없는세상 주

2017년 열린 제67주년 여군 창설 기념식에서 표창 수여자들이 경례를 하고 있다. 사진에 등장하는 이들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2017년 열린 제67주년 여군 창설 기념식에서 표창 수여자들이 경례를 하고 있다. 사진에 등장하는 이들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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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현 검사의 '검찰 내 성폭력' 폭로 이후 사회 전역으로 미투(#MeToo)운동이 확산되면서 연일 성폭력, 성희롱 고발글로 세상이 시끄럽다. 진즉 이야기 됐어야할 문제가 지금에 이르러서야 밝혀지는 것이 한편 다행이면서도 '왜 이제야 이야기 할 수 있게 된 걸까'하는 생각에 마음이 답답해지기도 한다.

또 미투 운동이 자신과는 전혀 관계없는 듯 여기는 사람들과 미투 운동을 불편하게 생각하는 사람들, 심지어는 '미투 운동에는 정치적인 의도가 숨어있다'라는 음모론을 염불처럼 외는 사람들을 마주할 때마다, 이내 서글퍼지기도 한다. 여전히 이 폭로를 달가워하지 않는 이들이 이렇게나 많은 건가.

내가 겪은 군대 내 성희롱

내가 여군으로서 처음 조직 내 성희롱 문제를 '신고'한 것은 2015년의 일이었다. 2015년에 근무하고 있던 부서는 규모에 비해 여군의 수가 제법 되는 편이었고, 중간관리자도 여군 선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심찮게 음담패설과 성적인 농담이 부서원들 사이에서 오갔다. 남군 부서원들이 여군부서원들에게 하는 몸매 품평도 끊이질 않았다.

심지어 남군들끼리 따로 '단톡방'을 개설해서 야동을 공유하기도 했는데, 중간관리자였던 여군 선배도 이 문화에 함께 동참했다. 그렇지만 이것만 제외한다면 부서의 분위기는 대단히 화목하고 결속력이 있었다. 나는 불편함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괜찮은 부서를 만나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군 생활 내내 나를 괴롭혔던 북한도, 철조망도, 경계 작전도, 당직도 없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라면 음담패설 정도는 눈 감아 줄 수 있는 부분이라고 자위하고 지냈던 것 같다.

가벼운 농담은 절대 가볍지 않다. 대놓고 상대를 놀리는 것, 그것도 성적으로 놀리는 것은 사실 농담의 대상이 '권리를 침해해도 괜찮을 정도로 쉬운 상대'가 되었을 때나 가능한 일이다. 특히 군대와 같이 계급에 따른 위계가 이미 강하게 형성되어 있는 공간에서 남군 하급 간부가 여군 상급 간부에게 그런 농담을 쉽게 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다는 것은, 이미 계급 위계가 무너지고 성별에 의한 위계가 다시 세워졌음을 의미한다. 나는 분위기를 해치고 싶지 않아서 '괜찮아. 그 정도는 뭐'라고 말했을지 몰라도, 하급자인 상대 남군은 정말로 '나를 우습게 알아도 괜찮아'라고 해석했을지도 모른다.

처음에는 신고를 하기 전에 중간관리자였던 여군 선배에게 먼저 SOS를 보냈다. 하지만 여군 선배는 참 당황스럽게도 "우리 다 같이 동참했잖아, 이제 와서 불편하다고 말하면 어떡해?"라고 반문하며 나의 입을 닫게 만들었다. 그래서 이번엔 부서장에게 신고를 하자, 부서장은 나와 면담한 직후 바로 나를 포함한 부서원 전체를 모아 부서 내의 성 군기(軍氣) 문란에 대해 일장 연설을 늘어놓으며 조심하라고 일침을 두고 갔다.

이미 전 날 부서의 음란한 '단톡방'에 대해 부서 내에서 문제제기를 한 뒤였고, 그날 오전 자리를 비운 내가 부서장과 면담한 것은 충분히 추론이 가능한 일이었기에 졸지에 나는 부서의 분위기를 한 순간에 망쳐버린 내부고발자 신세가 되었다. 신고도 먹히지 않으니 이제 더 이상 부서원들은 나의 기분은 물론 부서 내 서열 3위인 내 계급 따위를 신경 쓸 리가 없었다.

대구 출신인 나에게 여군 부서원이 대구의 관광코스를 묻자 그걸 옆에서 듣고 있던 부서원이 나에게 들으라는 듯 "맛집은 무슨 맛집이냐, 자갈마당에 가서 조개나 구워먹어라.1)"라고 비웃으며 지나갔다. 나는 그로부터 일주일 후, 도망치듯 짐을 싸 전출을 가버렸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고작 전출 전 날 페이스북에 '함께해서 더러웠고 다시는 함께하지 말자'와 같은 글을 쓰는 게 다였다.

피해자가 마주하는 군대 내 성벽

법으로써 규정할 수 있는 성폭력에 미치지 못하는 행위는 누구에 의해서 '장난'이 되고 '친근함의 표시'가 되고 '농담'이 될 수 있는가? 우리는 아주 쉽게 피해자가 성적 수치심을 느끼는 순간 성폭력에 해당될 수 있다 말을 하지만, 그 선은 어떻게 그어질 수 있는가? 결국 이 선을 정해서 행동하는 것은 오롯이 가해자의 판단이다.

"그렇게 느낄 수 있는지 몰랐다. 나는 모르고 한 행동이다", "술김에 친근함을 표시한다는 것이 그랬다" 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상대의 선을 멋대로 규정하고 넘나들 수 있는 권력과 권위가 있기 때문이다. 남군들에게 그런 권력과 권위를 가져다 준 것은 단순히 계급으로만 이야기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군대는 불과 정말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상대의 가슴이나 엉덩이 등을 직접적으로 만지는 것이 아니라면 그 이외의 접촉은 '다 똑같은 군인'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전우애의 표현 방식이라고 여기는 것이 당연한 곳이었다. 그 문화는 대다수를 차지하는 남성들에 의해 오랜 기간에 걸쳐 쌓아온 성벽과 같은 것이었고, 성벽 안에서 조직의 룰에 수긍하고 감내해야하는 쪽은 항상 당하는 쪽이다.

성벽이 오랜 기간 공고할 수 있었던 것은 군대만이 가지는 특수한 조건들 때문이다. 군 내부에서도 성폭력 문제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실제로 적지 않은 수의 피해자가 신고를 한다. 하지만 늘 문제가 곪다 못해서 밖으로 터져 나오고, 급기야 자살에 이르는 케이스가 발생하는 것은 결국 신고를 해도 군 내부에서 처리 되는 시스템 때문이다.

상급 지휘관의 지휘를 여군 고충상담관이 상담을 받고, 지휘 아래에 놓여있는 헌병이 나와서 조사를 하고, 일이 잘 되어 재판을 간다 한들 군 검사부터 판사 심지어 국선변호인까지 모조리 군인이다. 다시 2심을 가도 여전히 국방부의 테두리 내에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이 진행되는 그 기간 내내 피해자는 여전히 '군대' 에서 근무를 해야만 한다. 피해사실이 어떻든, 직업적 커리어를 쌓는 건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진급도 해야 하고 승진도 해야 하고 장기복무자에 선발도 되어야 한다.

그러나 규모가 작고 폐쇄적이면 폐쇄적일수록 도는 소문의 속도와 내용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마련이라, 결국 사건이 모두 잘 풀려 좋은 결말을 맞았다 하더라도 피해자와 피해사실에 대한 이야기는 군 생활 내내 따라다닌다. 살아남은 피해자도 전우지만, 넓은 의미에서 신고를 당해 처벌을 받고 사라진 가해자도 전우였기 때문이다. 이런 연유로 대부분의 군대 내 피해자들은 일단 침묵을 선택한다. 그리고 침묵을 견뎌내는 과정에서 대부분의 피해자는 상대를 미워하기보다 자신을 미워한다.

내가 조금이라도 싫은 티를 냈더라면, 내가 그렇게 옷을 입지 않았더라면, 내가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더라면, 내가 회식 자리에 무턱대고 따라가지 않았더라면, 술을 덜 마셨더라면. 그 기나긴 침묵을 느끼면서 일부 피해자는 자기가 참고 견딘 것이 종국에는 나 자신을 보호하고 조직을 보위하기 위한 선택이었다고 판단해버리기도 한다. 때로는 다른 피해자들을 탓하기도 하면서.

‘국가위인권위원회가 국방부로부터 권고한 내용. 성폭력사건에 대한 엄정한 처벌과 공정한 재판을 위해서는 군사법원의 폐지가 절실하지만, 국방부는 1심 재판이라도 군 내에서 이루어질 수 있도록 보통 군사법원만을 존치하는 방안을 검토중에 있다. 결국 사람을 잃어도, 지키고 싶은 것은 끝내 내놓지 않는 것이다.
 ‘국가위인권위원회가 국방부로부터 권고한 내용. 성폭력사건에 대한 엄정한 처벌과 공정한 재판을 위해서는 군사법원의 폐지가 절실하지만, 국방부는 1심 재판이라도 군 내에서 이루어질 수 있도록 보통 군사법원만을 존치하는 방안을 검토중에 있다. 결국 사람을 잃어도, 지키고 싶은 것은 끝내 내놓지 않는 것이다.
ⓒ 국가인권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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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내에서 미투 운동이 활발해지려면

"군대에서도 미투가 진행 중인가요? 미투와 관련된 신고나 고발내용이 없을까요?"

근래에 가장 많이 받으면서도 명확하게 답을 주기가 어려운 질문이다. 모르기 때문에 답을 할 수 없는 질문이 아니라, 답을 잘 알기 때문에 뭐라 말을 할 수 없다. 군대에서도 미투(#MeToo) 운동이 활발하게 진행되기 위해선, 고발하면 다수의 인원들이 (늦었지만) 함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과 기대가 피해자에게 생겨야 한다. 하지만 군대 내 피해자들에게는 오랜 기간 목격하며 학습된 어떤 '모습'이 있다.

군대가 요구하는 정상성인 '남성성'을 갖지 못한 이들을 약자 취급하며 쉽게 범해왔던 사람들, 이를 보고도 못 본 척 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가부장적인 문화와 권력 구조에서 지내기를 원한다. 그 속에서는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거나, 조직의 문화를 고치기 위해 많은 노력을 들이지 않아도 자신은 안온하게 지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피해자 외의 모든 이들은 사건이 터져도 내부에서 조용히 마무리되기를 원한다.

2017년 12월 21일 국가인권위원회의 <군대 내 성폭력 사건 근절을 위한 정책·제도개선 권고>를 보면, 군사법원에서 다룬 전체 성폭력 사건 중 피해자가 여군인 사건의 1심 선고유예 비율이 10.34%로, 일반 법원의 1.86%에 비해 현저하게 높은 비율을 보이고 있다. 또한 성폭력 가해자의 경우 형사절차와 별도로 징계절차를 반드시 진행하도록 <군인사법>에서 명시하고 있는데, 최근 3년간 성폭력 관련 징계처분 273건 중 배제징계(파면, 해임)에 해당하는 징계는 20건에 불과하다.

통계에서 볼 수 있듯 군 내 성폭력 사건은 매끄럽게 해결이 되지 못하는 건이 대부분인데, 결국 잘 갈무리되지 않은 사건의 책임은 '제대로 피해를 입증할 수 없는데도 사건을 크게 만들어 조직을 시끄럽게 하는' 피해자에게 돌아간다. 그러니 모두 '침묵'하는 것이다.2)

결국 미투(#MeToo)가 군에서 활발히 일어나기 위해서는 군 내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들에게 말할 수 있는 어떤 기회나 창구를 주는 것보다,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이야기해도 보호받으면서 끝까지 군에서의 생활을 해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주는 데 답이 있다.

어쩌면 피해자는 이미 말을 할 준비가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조직, 이제까지 충성하고 몸담아 왔던 조직이 나의 고백을 통해서 더 나은 방향으로 바뀔 수 있고, 그 과정에서 피해자가 보호받을 것이라는 믿음만 충족될 수 있다면 이야기는 충분히 쏟아질 수 있다.

이 과정을 거쳐 온 피해자이며, 미투 운동을 지지하는 한 사람으로서 내가 군대에 기대하는 단 한 가지가 있다면, 앞으로 어떻게 터져 나올지 모르는 목소리들을 정면으로 마주하였으면 하는 점이다. 외면하고 감추는 것만이 답이 아니다. 군대에 관한 미투 고발이 나오지 않는다고 하여 우리 조직은 건강할 것이라는 믿음 또한 제발 버리길 바란다.

※ 군인권센터는 군 내부에서 쉽게 신고할 수 없는 군 내 성폭력 피해자를 위한 '미투' 신고센터를 운영하려고 준비 중에 있습니다. 군 내 성폭력 피해와 관련된 신고 및 상담이 필요하시면 아미콜 상담전화 (02-7337-119, 월~금 10:00 ~ 21:00)으로 전화 바랍니다.

1) 자갈마당은 대구 중구 도원동에 위치한 성매매 집결지를 의미한다. 조개는 여성의 성기를 빗대어 한 말이다.

2) 국가인권위가 국방부 및 육, 해, 공군 소속 여군 17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군대 내 성폭력이 심각하다고 생각하는 비율은 전체응답자 중 47.6%로 절반에 가까운 비율을 차지하였으나, 군대 내 성폭력이 발생했을 때 사건이 공정하고 신속하게 이루어질 것으로 생각하는지에 대해서는 비슷한 비율로 '별로 그렇지 않다(42.4%)'고 답변하였다. 성폭력 피해 당시 대응과 관련하여 응답한 42명 중 26명은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라고 답변하였다. (2017. 6. 15 ~ 7. 21. 설문조사)


태그:#군대, #미투, #성폭력, #군인권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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