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 포스터.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 포스터. ⓒ AUD


*주의! 이 글에는 작품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의 제목은 미국 플로리다 주를 꿈과 환상의 공간으로 만들려는 월트 디즈니의 숙원사업 '플로리다 프로젝트'와 일치한다. 역설적이게도 이 영화에선 디즈니월드와 달리 꿈과 희망을 찾기는 어렵다.

21세기 초 미국을 흔들었던 경제대공황은 수많은 사람들의 집을 빼앗고 그들을 거리로 내몰았다. 많은 이들은 낡은 모텔을 전전하며 생존했다. 이 영화는 환상적인 꿈나라의 그늘에서 뿌리 내리고 살아가는, 쫓겨난 사람들의 삶을 어린 아이의 시선으로 그린다. 그 시선엔 그 어떤 폭력도 무례함도 없다.

션 베이커는 자신이 숨쉬고 있는 사회에 관심이 많은 감독이다. 전작 <스타렛> <탠저린>은 그가 세상의 관심을 받지 못하는 소수자들에게 마음을 쏟고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언뜻 보면 작은 사회의 소동극을 동화처럼 그려내는 것처럼 보이지만, 극중 인물이 머물고 있는 세상을 굉장히 사실적으로 표현한다. 어쭙잖은 연민이나 동정의 시선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저 사려깊은 눈길로 그들을 스크린에 담아낸다.

험한 세상 속 유일한 안식처, 매직 캐슬

 <플로리다 프로젝트> 스틸컷. 모텔 '매직 캐슬'을 지키는 매니저 바비.

<플로리다 프로젝트> 스틸컷. 모텔 '매직 캐슬'을 지키는 매니저 바비. ⓒ AUD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집 없는 사람들이 플로리다의 '매직 캐슬'이라는 모텔에서 월세를 내며 살아가는 모습을 비춘다. 디즈니월드의 건너편에 자리 잡은 모텔 '매직 캐슬'은 사연 많은 이들이 모여 사는 피난처다. 삶을 겨우 이어갈 수 있는 공간이자, 밑바닥에서 가라앉는 이들의 최후의 안식처다. 영화 속 주인공인 핼리와 무니 모녀는 다른 사람들처럼 이 마법의 성에 산다.

카메라는 플로리다 주에 위치한 모텔을 거니는 아이들을 담는 데 주력한다. 매직 캐슬의 주변엔 어떤 건물들이 있는지 관객들이 다 알아차릴 정도로 집요하게 담아낸다. 관객은 무니와 같은 공간을 공유하면서 같은 공간에 존재한다. 다채로운 색감으로 가득 찬 공간은 실제로 디즈니월드처럼 아름답고 벅차기까지 하다. 꿈의 동산에 갈 여력이 없는 무니와 친구들은 자신들만의 디즈니월드에서 시간을 보낸다.

 <플로리다 프로젝트> 스틸컷. 어둑한 현실을 영악하게 견뎌내는 아이 무니.

<플로리다 프로젝트> 스틸컷. 어둑한 현실을 영악하게 견뎌내는 아이 무니. ⓒ AUD


학교에도 가지 않고 무한한 자유를 누리는 무니와 아이들은 디즈니월드를 찾는 관광객들에게 잔돈을 얻어 아이스크림을 사먹기도 하고, 처음 모텔을 방문한 차에 침을 뱉기도 한다. 현실의 어둠은 무니의 영악함으로 조금이나마 밝고 명랑해진다. 어쩌면 무니의 영악함은 자신이 처한 현실에서 살아남기 위한 유일한 생존방식인지도 모른다.

매직 캐슬의 매니저인 바비도 주목할 만하다. 그는 모텔의 매니저이지만, 이미 모텔은 빈민촌으로 변했다. 결국 바비는 기숙사 사감처럼 그들을 관리한다. 투숙객들은 업무 영역에도 없는 일을 척척 해내는 바비에게 전적으로 의지한다. 그렇다고 바비가 작은 권력을 휘두르는 남성으로 묘사되진 않는다. 바비의 시선은 어쩌면 관객의 시선과 일치한다.

그는 투숙객들의 안위를 걱정하면서도 자신이 할 수 없는 일엔 나서지 않는다. 아동성애자로 보이는 남자를 모텔에서 쫓아내기도 하고, 무니 모녀의 생계를 걱정하긴 하지만 그 이상 모녀를 돕지는 못한다. 그는 그저 타인의 고난을 걱정하는 평범한 남자다. 매직 캐슬이라는 자신의 허름한 성으로 도망쳐 온 사람들을 지키려 애쓰는, 마법의 성의 최후의 마법사처럼.

하지만 그는 진짜 마법사가 아니다. 영화는 그를 영웅처럼 묘사하지도 않는다. 어쩌면 바비의 시선은 션 베이커 감독의 시선처럼 보이기도 한다. 전작부터 유지해 온 그의 태도는 <플로리다 프로젝트>에도 여전하다. 위태로운 이들을 함부로 동정하지 않고, 현실의 부조리에 결코 분노하지 않는다. 션 베이커는 무니 모녀의 일상을 지켜보는 관객들을 높은 위치에서 자리잡게 하지 않고 무니 모녀의 옆에 앉힌다. 그들과 같은 위치에서, 그들을 지켜봐 달라는 감독의 무언의 부탁이자 배려다.

마지막 장면, 이 영화의 유일한 판타지

 <플로리다 프로젝트> 스틸컷. 디즈니월드의 폭죽을 구경하는 핼리와 아이들

<플로리다 프로젝트> 스틸컷. 디즈니월드의 폭죽을 구경하는 핼리와 아이들 ⓒ AUD


<플로리다 프로젝트> 속 인물들은 절대적 선도, 악도 없다. 핼리는 물론 좋은 엄마가 아니다. 아이를 양육할 환경을 제대로 조성하지 못할 뿐더러 무니에게 제대로 된 식사를 챙겨주지도 않는다. 무니의 행실도 마찬가지다. 폐허가 된 건물에서 불장난을 하다 화재를 일으킨다거나 관광객에게 잔돈을 요구하는 행위는 이 아이를 더욱 위태로워 보이게 만든다. 이런 두 모녀의 관계는 분명 보편적이지 않지만 가장 친한 친구처럼 보인다. 

같이 놀던 친구와 뜻하지 않게 헤어져도 금세 다른 친구를 만들어내던 이 씩씩한 아이는, 자신의 유일무이한 친구를 상실할 순간에 직면하자 처음으로 위기감을 느낀다. 이후 펼쳐지는 장면을 지켜보면 차마 감탄의 소리조차도 낼 수 없을 것이다. 지금껏 현실을 도망치지 않고 묵묵히 관조했던 영화가 유일하게 현실을 벗어난 순간이다.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지금껏 현실에서 벗어나지 못한 아이들을 위해, 오직 영화만이 해 줄 수 있는 최상의 위무다. 어떻게 해도 그늘에서 살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향한 선물이다.

그들의 빈곤과 아픔을 결코 동정으로 소비하지 않는 션 베이커의 뭉클한 눈길은 감동적이다. 이 영화를 보면, 사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현실을 결코 외면하지 않으려는 그 단호한 의지가 관객을 붙잡고 또 관객을 울린다.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사랑했으면 좋겠다. 이런 시선을 가진 영화는 만나기 힘들 테니 말이다.

 <플로리다 프로젝트> 스틸컷. 영화 속 무니, 그리고 세상의 또다른 무니들에게 동틀녘이 찾아오기를.

<플로리다 프로젝트> 스틸컷. 영화 속 무니, 그리고 세상의 또다른 무니들에게 동틀녘이 찾아오기를. ⓒ AUD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건의 시민기자의 개인 브런치에도 게재됐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영화 플로리다프로젝트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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