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세월호 참사로 인한 피해자의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참사 현장에 누구보다 가까이 다가갔고 국가의 역할을 대신했던 민간 잠수사들은 4년이 지났지만, 신체적 부상과 정신적 트라우마에 여전히 시달리고 있다. 진도의 어민과 상인들은 삶을 일구던 바다의 오염으로 생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참사 당시 단원고 교사들과 학생들 역시 동료와 친구들을 잃은 충격을 쉽사리 극복하지 못한다. 그러나 '세월호 피해지원법'은 이들을 외면했다. 지원법의 피해자 규정은 오직 세월호에 승선했던 사람들과 그 가족들만을 대상으로 규정되었다. 사고로 인한 피해를 배상받을 자격은 해당 사고로 인한 직접적인 피해자에 한정된다는 것이 '손해배상의 일반 원칙'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세월호 피해지원법 개정안, 김관홍법

세월호 침몰이 참사인 이유는 기본적인 국가기능만 작동했어도 얼마든지 구조될 수 있었던 상황에서 수많은 생명이 희생되었기 때문이다. 마치 국가가 사라진 것만 같았다. 국가의 무능함은 온 국민의 마음에 씻기 힘든 상처를 남겼다. 이 같은 전대미문의 참사로 인한 피해를 위로하고, 피해자들의 생활 및 심리안정을 도모할 필요에 따라 만들어진 것이 '세월호 피해지원법'(4.16세월호참사 피해구제 및 지원 특별법)이다.

그렇다면 피해자의 범위를 해당 참사로 인한 '직접적인 피해자'에 한정해야 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국가의 부존재를 대신해 참사 현장에서 헌신했던 이들은 반드시 피해지원의 대상에 포함되어야 한다. 그것이 특별히 제정하는 법률의 취지에 부합한다. 이에 4.16연대는, 특별법에서조차 호명되지 못한 이들을 피해자로서 자리매김하고 이들의 회복을 지원하기 위한 특별법 개정안을 마련해 입법을 추진해왔다.

이 개정안을 준비하는 회의에 고 김관홍 잠수사가 생전에 함께 했다. 민간 잠수사들은 국가를 대신하여 희생자들을 품에 안아 수습했다. 그들의 몸과 마음에는 참혹한 상처와 고통이 새겨졌다. 그러나 국가는 이들의 피해를 보듬기는커녕, 동료 잠수사의 사고에 대한 책임을 묻겠다며 민간잠수사를 업무상과실치사죄의 피고인으로 법정에 세웠다. 세월이 지날수록 국가로부터 버림받았다는 울분과 회한이 쌓였다. 그러나 김관홍 잠수사는 희생자와 유가족들 앞에서 어찌 자신의 힘겨움을 말할 수 있겠냐느며 고통을 삭였다. 그가 떠나고, '김관홍법'이라는 이름으로 세월호 피해지원법 개정안이 발의되었다.

그런데 발의 이후 이 개정법은 막연한 계류상태에 머물러왔다. 정부는 '일반원칙과 선례에 반한다'는 이유로 피해자 범위 확대에 난색을 보였고, 국회는 정부의 태도를 받아들여 별다른 논의조차 하지 않았다.

처음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한 피해자들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제1차 청문회' 사흘째인 16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 YWCA에서 열린 청문회에 세월호 실종자 수색에 참여한 김관홍(오른쪽), 전광근 잠수사가 참고인으로 출석해 선체 수색작업에서 일어난 각종 혼선과 무리수를 증언하고 있다.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제1차 청문회' 사흘째인 16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 YWCA에서 열린 청문회에 세월호 실종자 수색에 참여한 김관홍(오른쪽), 전광근 잠수사가 참고인으로 출석해 선체 수색작업에서 일어난 각종 혼선과 무리수를 증언하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지난 2월 2일, 임시국회를 앞두고 개정법이 처한 답보 상태를 타개하기 위해 뜻있는 의원들이 공동주최하는 '세월호 피해지원 특별법 개정을 위한 정책간담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 함께한 진도의 어민들과 생존자 가족들, 그리고 민간 잠수사들은 그동안 차마 말하지 못했던 아픔을 토로했다.

민간 잠수사들은 수색·구조 당시의 일기와 영상기록을 처음으로 세상에 내놓았다. 검푸른 진도 앞바다가 화면에 비치는 순간, 잠수사들은 흐느낌을 참지 못했고 저마다의 눈에서 굵은 눈물을 쏟아냈다. 참사 당시의 고통에 여전히 옥죄여있음을 억누른 울음으로 증언하는 순간이었다.

세월호에서 입은 부상 때문에 산업 잠수 현장에서 일을 얻지 못했던 날들, 생계가 막막한 하루를 위태롭게 연명해온 이들의 눈물에 간담회장에는 무거운 침묵과 안타까운 탄식이 흘렀다. 침통한 간담회가 끝나갈 무렵, 국회의원들은 입법 의지를 밝히며 정부의 전향적인 태도 변화를 촉구했다. 해수부 역시 개정법에 대한 그간의 부정적 의견을 다시 검토하겠다는 답변을 내놓았다.

개정법 대안 의결과 남겨진 과제

지난 2월 정책간담회에 앞서, 2017년 11월 10일 세월호참사 피해자 증언대회가 국회에서 개최됐다. (오른쪽부터) 황병주 민간잠수사, 소명영 진도어민, 김덕영 단원고 교사가 참석하여 증언하고 있다.
 지난 2월 정책간담회에 앞서, 2017년 11월 10일 세월호참사 피해자 증언대회가 국회에서 개최됐다. (오른쪽부터) 황병주 민간잠수사, 소명영 진도어민, 김덕영 단원고 교사가 참석하여 증언하고 있다.
ⓒ 4.16연대

관련사진보기


2월 27일, 국회 농해수위는 '김관홍법'을 대안 의결하였다. 세월호 참사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특별법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던 민간 잠수사들이 비로소 피해보상의 대상으로 명시되었다. 하지만 변화는 여기에서 멈췄다. 최초 발의된 개정법에서 포괄적으로 정의했던 피해자 범위 확대 규정은 대폭 삭제되었고, 오직 민간 잠수사들에 대한 보상 근거를 마련하는 정도에 그치고 말았다.

외국 사례와 비교해보면 아쉬움이 더욱 크다. 일본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 피해자가 사고조사위원회에 위원으로 참여하는 방향으로 피해지원법을 마련했다. 미국 911테러의 경우, 테러 피해보상 신청에 있어 피해의 인과관계를 판단하는 과학기술자문위원회를 구성하는데 전문가 외에 피해자와 구조자들이 포함되도록 했다. 모두 피해자가 피해 회복 과정의 주체로 참여할 수 있도록 마련된 규정들이다.

진정한 의미의 피해회복이란 보상액의 액수로 결정될 수 없다. 피해자의 관점에서 회복과 치유를 지원하고 피해자들의 권리가 존중될 때 진정한 피해보상이 가능하다.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진정한 의미의 피해보상은 진상규명이었듯, 세월호의 또 다른 피해자들 역시 피해보상의 과정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고, 보상에 관한 결정에 참여할 수 있을 때 실질적인 회복과 치유가 가능해진다.

민간 잠수사들의 경우에도 실질적 피해보상이 이뤄지려면 보상심사위원회의 구성 및 심사과정에서 잠수사들의 참여가 보장되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세월호 참사의 피해 회복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개정안 의결 과정에 누락되었던 피해자들의 목소리는 이제 곧 출범하는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 활동 속에 담아내야 한다. 위원회 구성과 활동에 관해 피해자들과 긴밀히 소통하고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구체적 방안이 마련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번 개정법 대안 의결이 단초가 되어, 피해자들의 권리를 전면화하는 특별조사위원회 활동이 펼쳐지기를 바란다. 그러할 때 비로소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반영되는 실질적인 회복과 진정한 의미에서의 치유가 완성될 수 있다.

[관련 기사]
세월호에서 제천까지... '사람'이 없는 국가재난매뉴얼
세월호 참사, 숨죽인 생존자의 아픔
세월호참사 유가족, "우리가 아픈 이유는..."

덧붙이는 글 | 위 글은 세월호 민간잠수사 법률대리인 김수영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가 작성하였습니다.



태그:#세월호, #민간잠수사, #세월호피해지원법, #세월호 피해자
댓글

4월16일의약속국민연대(약칭 4.16연대)는 세월호참사의 진실을 밝히고 생명이 존중받는 안전사회 건설을 위해 세월호 피해자와 시민들이 함께 만든 단체입니다. 홈페이지 : https://416act.net

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