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요즘 봇물터진 듯 각계 각층에서 미투(Me Too) 바람이 불고 있다. 서지현 검사로부터 다시 불붙은 미투(Me too)의 역사는 일상 속에서 늘 이어지고 있었다. 생활속에서 폭력과 성차별이 일상화되어 있었고 권력과 힘의 위계질서에 의해 그 목소리가 제대로 드러나지 못했을 뿐이다.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차별받고 폭력에 무방비 상태로 팽개쳐진 여성들의 끊임없는 저항의 목소리에 이제라도 사회가 귀 기울이고 있으니 다행이다.

"머리카락 다 자랄 때까지 내 앞에 나타나지 마!"

긴 머리를 커트하고 오자 남편이 내게 했던 말이다. 결혼 후 수 년 간 나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긴 머리 스타일을 고수했다. 머리카락을 짧게 자르지 못하게 하는 남편 때문이기도 했고, 짧은 머리는 정기적으로 미용실에 드나들며 다듬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이기도 했다.

나는 미용실을 드나드는 것이 생리에 맞지 않았다. 지금까지 파마를 한 횟수가 열 손가락 안에 들 정도다. 어느 무더운 여름날 목덜미에 땀띠가 생겼다. 긴 머리에 땀을 많이 흘린 탓이었다. 시어머니께 머리를 짧게 자르기 위해 도움을 요청했다. 시어머니는 흔쾌히 도움에 응해 주셨다.

"아니 애미야, 목에 이 땀띠 좀 봐라. 머리가 길어 그렇구나. 땀띠 안 낫는다. 당장 미용실에 가서 머리 좀 짧게 잘라라. 더운데 그게 뭐냐?"

나는 얼른 가서 긴 머리를 싹둑 잘라 시원한 커트머리를 하고 왔다.

 "그거 봐라 얼마나 시원하고 좋으냐. 잘했다"

시어머니와 달리  내 머리를 본 남편은 노발대발하며 말했다.

"야! 머리가 그게 뭐냐? 꼭 바가지 씌워 놓은 것 같네. 그 머리 보기 싫으니까 머리카락 다시 자랄 때까지 내 앞에 나타나지 마."

나는 화가 나서 맞받아쳤다.

"내 머리 가지고 내 맘대로 하는데 무슨 상관이야? 땀띠 나서 힘든 건 난데 내 머리를 내 맘대로도 못하냐고."
"네 맘대로 했으니 나도 내 맘대로 한다. 일 안 할테니 상관하지 마."

남편은 실제로 하기 싫어하던 일을 그만 두었고 우리는 두 달 정도 말을 안 하고 지냈다. 단지 남자라는 이유, 힘이 좀 세다는 것으로 일상의 폭력을 서슴지 않고 행할 수 있던 이유는 가부장 사회가 견고하게 만들어 놓은 성차별과  잘못된 인식 탓일 것이다. 그 싸움을 통해 나는 비로소 내 머리를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유를 얻었다.

교양 있는 남자들의 우아한 여성 혐오의 역사
▲ 여자라는 문제 교양 있는 남자들의 우아한 여성 혐오의 역사
ⓒ 책세상

관련사진보기

<여자라는 문제>(The Trouble with Women, 책세상)는 교양으로 포장한 남자들의 여성혐오 역사를 짚어준다. 저자는 남성들이 주도권을 쥐고 써 온 역사에 여성들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실제로 고대 사회에서 여성과 아이들은 사람으로 셈하지 않았고 아버지나 남편의 소유물이거나 재산의 일부로 치부됐다. 여성을 강간했을 때 아버지에게 은 50세겔을 주고 결혼을 하게 한다거나, 여성의 아버지에게 처녀값을 지불하는 것으로 면죄부를 얻기도 했다.

여성은 글을 배워서도 안 되었고, 그림을 그리거나 과학이나 수학에 관심을 가져서도 안 되었다. 여성은 길쌈을 하고 바느질을 하고 요리를 하고 자식을 낳아 기르고 바닥을 문질러 닦거나 빨래를 하거나 석탄을 캐는 일을 해야만 했다.

가정은 여성들의 보이지 않는 감옥이었고 여성의 삶은 노예와 다를 바 없었다. 가정을 박차고 나온 용감한 여성들은 '타락한 여자'라는 오명을 써야 했다.

"감히 가정을 박차고 밖으로 나가려 했던 여성들을 가리켜 '타락한 여자 Fallen Women'라고 했다지 총 6772명의 여자가 있었네. 타락하는 데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었는데, 남자들처럼 옆 가르마를 타는 것. 감히 자신의 생각을 갖는 것, 그 생각을 숨기지 않고 큰소리로 말하는 것, 출산을 한 다음 처녀로 남아 있지 않는 것 등이 있었다더군. 오직 여성들만이 타락할 수 있었지." - 23쪽

성차별주의자였던 장 자크 루소는 '소녀들의 기를 어린 나이에 꺾어놓아야만 남자를 기쁘게 해주기 위한 자신들의 본분을 담담하게 받아들인다'고 했다고 한다. 그는 기를 꺾으려고 자기 자식들을 고아원에 보냈다고 알려져 있다.

책에 따르면, 여성들은 자기주장을 펼쳐서도 자기 선택으로 성과 결혼을 선택해서도 안 되었다. 그저 남성 중심 사회가 만들어 놓은 틀에 맞춰 세뇌되고 길들여졌다. 시몬느 드 보봐르에 의하면 '여성은 여성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여성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남성 중심 사회에서 제 2의 성인 여성으로 재탄생 되는 셈이다.

근대 올림픽의 창시자로 알려진 쿠베르탱 남작도 전형적인 여성 차별주의자에 여성 혐오자였다.

"그는 여자들이 공을 던지는 모습은 차마 눈으로 보기조차 괴로우며 뭐니 뭐니 해도 여자들이 가장 아름다울 때는 박수를 칠 때라고 했다더군. 한편 미국에서는 애니 오클리라는 여자가 남편의 입에 물린 담배를 명중시켜 담뱃재만 떨어뜨리는 기적 같은 사격 실력을 선보였는데 그건 올림픽 경기도 그 무엇도 아니었어. 오히려 그녀의 앙증맞은 발과 신발이 더 유명했다는군." - 40쪽
 
여자는 남성들과 같이 교육을 받을 기회가 없었다. 그림을 그릴 자격도 작품을 출품할 자격도 주어지지 않았다.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여성들의 작품은 제대로 평가 받지 못하고 역사의 쓰레기통에 담겨 익명으로 사라졌다고 저자는 말한다.

"몇몇 여성 예술가의 작품은 우연히, 아니 실수로 위대하다는 평을 받기도 했지만 그런 평은 즉시 역사의 쓰레기통에 담겼고 그렇게 실수는 바로잡혔어. 여자들은 수천 년동안 역사의 쓰레기통에서 서로를 끌어내 구해주고 있다네. 하지만 여자들은 여자 피카소까지는 배출해내지 못했는데, 피카소의 뮤즈들이 얼마나 많이 자살했는지를 고려하면 차라리 다행인 일이지. 피카소가 말하길 여자들은 고통받기 위해 태어난 존재라고 했네." - 72쪽


여성은 꽃, 열매, 남성에게 위로와 쾌락을 선사하는 그 무엇이어야 했다. 여성은 남성 중심 사회에서 동등한 사람이 아닌 물상이나 실체가 없는 그림자 같은 존재였던 셈이다.

"오직 남자들만 역사 결정권자로 진화했기에 남자들만 무엇을 결정할지를 결정해야 했고, 그것 또한 그들끼리 투표로 결정했다지. 1875년, 그들은 '성관계 허용 연령'을 12세에서 13세로 올리기로 결정했다는군." -117쪽
 
이처럼 남성우월주의와 남성중심 사회가 만든 그릇된 인식으로 성차별과 성폭력은 일상 속에 내재화 되었다. 그런 침묵의 벽을 깨트린 용기 있는 여성들의 미투 외침에 이제 모두가 힘을 모아야 하는 이유다.

여성이 생물학적으로 정신적으로 더 진화된 존재라는 것이 과학적으로 증명되고 있다. 여성의 존재가 아니었다면 인류의 멸망은 더 빨라졌을 것이라고 한다. 인류의 지속가능한 삶을 위해서라도 이제 사회는 달라져야 한다. 어릴 때부터 양성평등 교육을 받아 서로를 진심으로 배려하고 존중하는 평등사회를 만들어가야 한다.

"다윈은 위대한 남자들의 목록을 적고 그 옆에 위대한 여자들의 목록을 적으면 남자들이 거의 모든 면에서 우월하다는 사실이 명확해진다고 했다네. 세기의 천재가 도출했다기에는 어딘가 수상쩍은 결론이긴 하지, 유효한 증거와 자연 선택으로 그가 좀 더 가지고 있다는 객관성 140그램에 따른다면 말이야. 그래도 그가 맞겠지. 왜냐하면 그는 덩치 큰 원숭이니까." - 123쪽


다윈은 '여성은 생물학적으로 열등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다윈이 틀렸다. 여성이 더 진화된 존재이며 여성은 남성과 달리 양뇌를 사용한다. 게다가 인간에게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 신비한 제 3의 뇌가 있다고 한다.

정신분석 학자들은 그 뇌를 영혼의 뇌, 고도의 정신영역의 뇌라고 말한다. 인간은 이제  원숭이의 뇌가 아닌 제 3의 뇌를 사용하는 정신적인 존재로 진화를 거듭해 나가야만 한다. 다윈의 시대는 갔다.

덧붙이는 글 | 여자라는 문제/재키 플레밍 그리고 씀. 노지양 옮김/ 책세상/ 12,000



여자라는 문제 - 교양 있는 남자들의 우아한 여성 혐오의 역사

재키 플레밍 지음, 노지양 옮김, 책세상(2017)


태그:#여성 혐오, #성차별, #양성평등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