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김상경.

배우 김상경이 스릴러 영화 <사라진 밤>으로 관객과 만난다. 극중 그는 형사 우중 역을 맡아 미궁에 빠진 사건을 추리해 간다. ⓒ 국엔터테인먼트


"4주후 다시 봅시다"라는 말이 현실이 됐다. 지난 1월 영화 < 1급기밀>로 인터뷰 한 이후 3월 개봉이 예정된 <사라진 밤>을 떠올리며 김상경이 한 말이었다. 다작은 절대 안 하는 배우가 공교롭게 2개월 차이를 두고 작품으로 관객과 만나게 됐다.

두 작품의 공통점이 있다면 주요 투자배급사가 거액을 들인 '텐트폴 영화'가 아닌 기획력으로 승부한 중저예산 영화라는 점. 전자가 방산 비리를 묵직하게 다룬 드라마라면, 후자는 한동안 한국영화에선 뜸했던 스릴러 장르로, 한정된 공간에서 살인범의 정체를 파헤친다는 이야기다.

심수봉의 노래

<살인의 추억> <몽타주> <살인의뢰>에 이어 네 번째로 형사 역을 맡았다. 직업은 같아 보이지만 역할과 성격이 기존 캐릭터와 많이 다르다. 극중 중식은 매번 숙취에 시달리고, 많이 허술해 보이지만 동시에 날카로운 관찰력이 있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단서를 하나씩 찾아가며 아내 설희(김희애)를 죽인 걸로 의심받는 대학교수이자 제약회사 임원인 진한(김강우)을 압박한다.

"오랜만에 짜임새 있는 스릴러를 만났다. 헐렁한 중식이가 관객들을 아마 방심하게 할 것이다. 그와 함께 관객들은 범인의 행방을 쫒을 것이다. 이 영화의 원작(스페인 영화 <더 바디>)은 일부러 보진 않았는데 거기 형사는 진지하고 조용한 캐릭터라고 하더라. 여기서는 나름 밝고 허술해 보이는 면을 더한 거지. 

김희애 선배와 김강우씨를 캐스팅 한 것도 신의 한 수라고 생각한다. 캐릭터가 도도해 보이기도 하고, 나이 차가 좀 있는 부부니까. 영화적 구조에 잘 맞는 캐스팅이었다. 두 분 입장에서 선뜻 한다고 결정하기 어려운 면이 있었을 텐데 하신다고 하더라. 두 배우 덕에 영화의 색깔이 확 살았다고 본다."

심수봉의 노래 '젊은 태양'이 깔리며 영화는 시작한다. 김상경은 "그 노래를 들으며 시나리오를 읽었는데 딱 상상이 되더라. 감독이 참 감각있다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아내의 시체가 사라진 국립과학수사연구소를 중심 장소로 우중과 진한의 심리 싸움, 그리고 그 아내와 진한의 관계를 잘 드러내는 노래라고 생각한 것.

"사실 국과수에서 하룻밤에 벌어지는 이야기? 어지간한 자신감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작품이다. 콘티도 잘 짜야 하고 감독의 연출력이 굉장히 중요해지거든. 시나리오를 보는데 중간부터는 설희가 진짜 죽은 건지 살아있는지 궁금해지고, 뒷부분 반전에 깜짝 놀라 다시 시나리오 처음부터 봤다. 그간 제게 들어온 여러 스릴러 시나리오가 있었는데 <사라진 밤>은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간다. 나까지 속인 작품이 거의 없었거든."

 영화 <사라진 밤>의 한 장면.

영화 <사라진 밤>의 한 장면. ⓒ 씨네그루(주)키다리이엔티


네 번째 형사

김상경이 맡은 형사 이야기를 해보기로 했다. 앞서 언급한 대로 직업만 놓고 보면 네 번째로 같은 직군을 연기했다. 실제 알고 지내는 형사들을 참고했을 법도 한데 김상경은 "단언컨대 특정한 실제 모델은 없었다"고 선을 그었다.

"작품마다 새 인물을 만드는 게 제 목표이기에 다 비운 상태로 들어간다. 그리고 그 인물의 자서전을 만들어 나간다. 이번 영화에서 중식은 일종의 괴짜다. 일본 영화 같은 걸 보면 종종 나오잖나. 소시민처럼 보이는데 남들에게 없는 능력을 갖고 있는 인물들. 셜록 홈즈도 이를 테면 그런 인물이다. 괴짜이면서도 날카로운 인물이 관객들의 사랑을 받아온 것 같다. 그만큼 이 인물에 몰입하기도 쉽고. 

요즘 잘 나오지 않던 스릴러 장르라고 걱정하진 않았다. 장르는 상관없다. 시나리오 완성도가 높으면 되니까. 최근 영화계가 쏠림 현상이 심하고 다양성이 그만큼 사라지지 않았나. 거대 예산에 멀티 캐스팅으로 개봉 일주일, 이주일 만에 수익을 뽑으려는 작품들이 주였다. 이런 때에 <사라진 밤> 같은 작품이 잘 되면 한국영화의 다양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좋은 것 같다."

"이런 영화야 말로 정면 승부"라고 김상경은 다시 강조했다. 소재와 기획 면에서 그는 나름의 자신감을 갖고 있었다.

"신인 감독(이창희)이 이런 영화를 한다는 건 진짜 자신이 있다는 뜻이다. 현장 편집본이 1시간 46분이었나? 편집을 단 8분 만 했다더라. 정말 찍을 장면만 찍은 거지. 이런저런 구도에서 다 찍어 보는 다른 작품과 달리 철저하게 계획했고 계산했다는 말이 된다. 감독은 배우와 끝까지 토론하곤 했다. 자신의 주장만 하는 것도 아니었다. 논리적으로 틀렸다고 판단하면 깔끔하게 배우의 말을 듣는다. 근데 또 어떤 장면에선 자신의 생각을 명확하게 밀고 간다. 제 개인적으론 좋은 연출자의 덕목을 고루 갖추고 있다고 생각한다."

 배우 김상경.

ⓒ 국엔터테인먼트



작품의 힘 아닌 배급의 힘

1998년 데뷔한 이후 그는 "스스로 납득이 잘 안가는 작품을 억지로 하기보단 스스로 인정할 수 있는 작품을 해왔다"고 자부했다. 그 결과는? 많은 작품이 흥행했고, 20년 째 연기자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그다. 중복 출연이나 다작을 하지 않고, 일정 시간을 쉬다 보면 지칠 새가 없다는 게 그의 논리였다.

하지만 최근 그가 참여한 작품이 상영관 확보에서부터 어려움을 겪는 현상 등을 겪으며 고민이 많아졌다. "배우 입장에선 작품의 힘만 믿고 가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요즘 영화계는 작품의 승리라기보단 배급의 승리인 것 같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기 때문이다. 승자 독식, 대형 영화 중심으로 짜인 국내 영화 산업의 배급 구조에 대한 비판적 입장이 있었다.

"연기를 오래 했다고 지칠 일은 없다. 몇 개월만 쉬면 금방 연기가 고파지거든. 혹시 고기 좋아하시나? 저 역시 아침에 삼겹살을 구울 정도로 좋아하는데 한동안 안 먹는다면 얼마나 고프겠나. 연기의 맛을 이미 아니까 조금만 안 해도 고파지는 것이지. 그렇게 이해해 달라(웃음). 아무튼 제가 택한 작품에 대한 믿음이 있고, 그 선택으로 실패한 영화는 없었다고 나름 생각하는데 < 1급 기밀>을 하면서 시장 구조가 너무 변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이상 영화가 감독의 예술이 아닌 '배급의 예술'이 됐다랄까.  

최근 일본 여행을 하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했다. 1년에 하나씩 좋은 작품을 내놓으면 그걸로 보람 있고 떳떳하고 그랬는데, 정당하게 노력하면 어느 정도 보상은 받는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의 배급 구조는 배우 입장에선 반칙처럼 보이는 것이지. 높은 벽이 앞에 놓인 느낌이랄까."

이런 점을 알리기 위해서라도 그는 "좋은 영화 프로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동시에 본인이 프로에 참여할 생각이 있음을 밝혔다. "구체적인 내용은 아직 밝히긴 어렵지만, 여러 가지를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말에 깃든 그의 깊은 고민이 느껴졌다.

 배우 김상경.

ⓒ 국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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