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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꽃 / 이름 없는 풀도 / 열매를 맺는다 / 목숨 가득 / 자신의 꽃을 피워보자
- 아이다 미츠오

일본 독서계의 영원한 베스트셀러 책으로 자리 잡고 있는 시인이자 서예가인 아이다 미츠오(相田光男, 1924~1991, 필명은 相田みつを) 선생의 시다. 그의 시는 군더더기 없는 짧고 쉬우면서도 마음의 무한한 울림을 주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아이다 미츠오 아이다 미츠오는 글자 하나를 쓰기 위해 수십, 수백, 수천장을 연습했다고 한다.
▲ 아이다 미츠오 아이다 미츠오는 글자 하나를 쓰기 위해 수십, 수백, 수천장을 연습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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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이다 미츠오 선생의 시를 알게 된 것은 한 20여년 쯤 된다. 그 무렵 나는 대학에서 일본어 강독을 강의하고 있었는데 수업이 지루할 때마다 아이다 미츠오의 '짧고도 울림이 큰 시' 한 편 씩을 소개했다. 일본어 지식이 많지 않아도 그의 시는 쉽게 읽을 수 있기에 초급반 학생들이라도 어렵지 않았다.    

"한 때의 만남이 / 인생을 뿌리로부터 / 바꿔놓을 수 있다 / 좋은 만남을!"
"좋은 일은 / 덕분에 / 나쁜 일은 / 나로부터 나온 것!"
"가장 잘 알 것 같지만 / 가장 알 수 없는 것이 / 내 자신!"
"지금 / 여기 밖에 없는 나의 목숨 / 당신의 목숨!"

흰 종이에 까만 먹으로 써내려간 아이다 미츠오만의 서체(書體)는 매우 독특하다. 일본인이라면 누가 봐도 금방 '아이다 미츠오'의 글씨임을 안다. 무명의 서예가에서 자신만의 독특한 서체로 입지를 굳히기까지 걸린 시간은 40년을 훌쩍 넘는다.

"아이다 미츠오 선생은 67살에 숨졌지만 그의 명성은 60살이 되어서부터입니다. 명성을 얻기까지 그의 생은 끼니를 걱정해야 할 정도로 어려웠지요."

아이다 미츠오 미술관의 기획담당인 나리타 노부카츠(成田信勝)씨의 말이다. 지난 2월 20일(수) 낮에 도쿄 치요다쿠(東京都 千代田区 丸の内 3-5-1)에 있는 아이다 미츠오 미술관에 들렀다. 이틀 전인 2월 18일(일) 도쿄 릿쿄대학에서 '2018 윤동주 추도회' 시낭송에 참여하고 평소 아이다 미츠오 미술관을 눈여겨보았다가 들른 것이었다.

아이다 미츠오  작품1 독특한 서체로 쓴 시가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꽃은 그냥 핀다, 그냥, 오직"
▲ 아이다 미츠오 작품1 독특한 서체로 쓴 시가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꽃은 그냥 핀다, 그냥, 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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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을 관람할 때는 원래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있지만 특별히 '아이다 미츠오' 선생을 한국에 소개하겠다고 신문사 명함을 내미니, 나이가 지긋한 나리타 노부카츠(成田信勝)씨가 일부러 나를 위해 미술관을 안내하는 성의를 보였다. 덕분에 나는 천천히 아이다 미츠오 선생의 평생 작품을 직접 보고, 사진도 찍어 올 수 있었다. 

내가 미술관에 들른 날은 마침 제69회 아이다 미츠오의 겨울시대(相田みつを, 冬の時代) 전이 열리고 있었다(2017년 12월 12일부터 2018년 3월 11일까지). 미술관의 5개 전시실에서 모두 77점을 선보이고 있는 작품들은 선생의 혼이 깃든 글씨로 빛나고 있었다. 

"패전(1945년) 후 일본 경제는 매우 어려웠습니다. 그 무렵 지방 출신들은 너도 나도 도쿄 로 진출하던 시절이지요. 막노동꾼 경우에도 도쿄가 일자리가 많았고 서예가나 문학인도 도쿄 쪽이 훨씬 자신의 입지를 키울 여건이 컸지요. 그러나 아이다 미츠오 선생은 자신의 고향을 고집했습니다. 선생은 서예의 최고봉이라는 마이니치서도전(毎日書道展)에 도전하여 1954년부터 7년 연속 입선하는 등 승승장구 하던 길이었기에 도쿄로 진출하면 서예가로의 탄탄한 길도 보장 받을 수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그 모든 가능성의 길을 접고 자신만의 독특한 필체로 입지전적인 예술가로 남은 것입니다. 하지만 40여 년간 무명으로 지내면서 겪어야 했던 그 가시밭길은 고스란히 작가의 몫이었지요."

작품을 안내한 나리타 노부카츠(成田信勝)씨는 아이다 미츠오를 그렇게 말했다.

끼니 거리가 없는 것은 물론이요, 분신 같은 작품을 쓸 종이 조차 살 수 없었던 상황에서도 아이다 미츠오는 '작품'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의 살아온 삶을 이해하고 작품을 대하니 더 가슴이 뭉클하다.

아이다 미츠오 작품2 그의 작품이 걸린 전시실, 가운데 걸린 작품은 유명한 '인간이니까'이다. 세상의 모든 희로애락애오욕이 일어나는 것은 '인간이니까'라는 뜻일까?
▲ 아이다 미츠오 작품2 그의 작품이 걸린 전시실, 가운데 걸린 작품은 유명한 '인간이니까'이다. 세상의 모든 희로애락애오욕이 일어나는 것은 '인간이니까'라는 뜻일까?
ⓒ 이윤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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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역시 돈이 되지 않는 '시'를 쓰다 보니 시인이자 서예가였던 아이다 미츠오의 작품들이 남의 이야기 같지 않았다. 그의 무명 시절 40년에 견주면 나는 아직도 20년을 더 써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렇다고 아이다 미츠오 같은 대작가가 되는 것도 아니다.  

요는 그처럼 모든 것을 버리고 '철저히 자기 자신과 생명에의 존엄성을 외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는 자신의 나약함과 의존심을 정직하게 드러낼 줄' 아는 시인이다.

아이다 미츠오 작품3 "색즉시공,공즉시색,꽃은 붉고, 버들은 푸르다, 보시는 많이 하는 게 좋고, 궁핍하고 보니 돈이 제일 고맙다"라는 내용으로 자신의 솔직한 입장을 표현하고 있다.
▲ 아이다 미츠오 작품3 "색즉시공,공즉시색,꽃은 붉고, 버들은 푸르다, 보시는 많이 하는 게 좋고, 궁핍하고 보니 돈이 제일 고맙다"라는 내용으로 자신의 솔직한 입장을 표현하고 있다.
ⓒ 이윤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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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에게 어떻게 하라는 것이 아니다. 그의 언어는 모두 자기 자신을 향해 있다. 그래서 더욱 '공감의 폭'이 깊다. 자신의 주제도 파악 못한 채 남을 향해 지껄이고 있는 천편일률적인 '시인들'과 달리 그가 돋보이는 점은 바로 그 점이다. 

또 한 가지, 그의 시는 어려운 문자를 일부러 피하고 쉽게 썼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그럼에도 철학적이며 사색적 사유는 어디서 온 것일까? 나는 그의 전시관을 둘러보면서 한권의 낡은 문고판 책을 발견했다. 그가 평생 아끼며 곁에 두고 읽던 책, <정법안장>(正法眼藏)이다.

정법안장 그가 늘 곁에 두고 읽었던 "정법안장"이란 선관련 책에 밑줄이 그어져있다
▲ 정법안장 그가 늘 곁에 두고 읽었던 "정법안장"이란 선관련 책에 밑줄이 그어져있다
ⓒ 이윤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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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법안장>은 13세기 가마쿠라 시대의 선승(禪僧)인 도겐(道元, 1200~1253)의 저서이다. 아이다 미츠오 선생은 자신의 작품에 대해 "나는 단지 서예라는 형식을 빌어서 인간으로서 갖추어야할 본래의 모습, 진정한 삶의 방식을 들어내고 있을 따름이다"라고 했다. 그가 추구하고자 했던 세계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말이다. 예술가이기 전에 그는 '인간으로 갖추어야 할 본래 모습, 진정한 삶의 방식'을 찾기 위해 몸부림쳤다.  

"길은 한 길
단순하고 똑바른 길이 좋다
무언가를 욕심내면
욕심 낸 쪽으로 휘어진다
길은 한길
똑바른 길이 좋다"


그 똑바른 길은 외길이요, 욕심내지 않는 길이다. 욕심을 내지 않으니 마음의 번잡함은 덜었을 것이다. 하지만 가장인 자신이 '생활고'에 시달리면서도 붓을 놓지 않고 부여잡아야 했던 '그 시린 삶'의 뒤안길은 세상 그 누구도 알지 못할 것이다. 

내가 미술관에 갔던 2월 20일은 수요일로 평일이었지만 전시관에는 제법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아이다 미츠오 선생의 작품을 감상하고 있었다.  

관람객 평일인데도 미술관의 5개 전시실 마다 제법 관람객이 많았다.
▲ 관람객 평일인데도 미술관의 5개 전시실 마다 제법 관람객이 많았다.
ⓒ 이윤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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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인근의 요코하마에서 친구와 미술관을 찾았다는 나카타 유키코(中田由紀子, 65살)씨는 "저는 아이다 미츠오의 작품을 아주 좋아합니다. 가끔 도쿄에 나오면 친구들과 미술관에 들러 그의 작품을 감상하지만 특히 정초에는 반드시 찾아와 그의 시가 적힌 벽걸이 달력과 탁상용 달력 등을 사다가 아들딸과 친구들에게 선물합니다. 그의 시는 거실에도, 부엌에도 걸려있고 심지어는 화장실에도 걸어두고 있지요. 어느 구절을 읽어도 마음의 위안을 얻습니다"라고 했다. 

아이다 미츠오 붓과 벼루  아이다 미츠오 선생이 쓰던 붓과 벼루
▲ 아이다 미츠오 붓과 벼루 아이다 미츠오 선생이 쓰던 붓과 벼루
ⓒ 이윤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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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간여에 이르는 동안 쫓기지 않고 천천히 작품 감상을 마치자, 나를 안내한 나리타씨는 어디론가 전화를 걸더니 아이다 가즈히토(相田一人) 관장과의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관장은 아이다 미츠오 선생의 장남으로 그는 한국에서 온 기자에게 차 한 잔을 대접하면서 아버지의 미술관을 찾아준 것에 대해 고마움을 표했다. 대화를 마치고 미술관을 나오려고 하니 일부러 미술관 입구까지 나와 공손히 인사를 건네는 모습에서 겸손함이 느껴졌다.

알고 보니 미술관장은 1달에 3번, 전시관에 직접 나와 작품해설을 하면서 관객들과 호흡을 함께 하고 있었다. 아버지를 보는 듯, 관장인 아드님의 해설을 직접 듣는 관객들의 감동은 배로 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참고로, 아이다 미츠오 작품은 2003년에 <덕분에>(오경순 옮김, 리수출판사)라는 이름으로 번역본이 1권 나와 있다.

아이다 가즈히토  한국에서 온 기자를 위해 아이다 가즈히토 미술관장은 바쁜 틈을 내어 함께 사진을 찍어주었다.
▲ 아이다 가즈히토 한국에서 온 기자를 위해 아이다 가즈히토 미술관장은 바쁜 틈을 내어 함께 사진을 찍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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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안에는 작품 전시실을 비롯하여 카페도 있을 뿐 아니라 아이다 미츠오 선생이 쓴 필생의 작품을 디자인한 상품들을 파는 기념품점도 자리하고 있다. 달력, 크고 작은 크기의 책자, 머그컵, 손수건 등등 하나같이 사고 싶은 물건들로 가득찬 곳에서 탁상용 달력이라도 살까 싶어 기념품점에 들어서니 작품 해설을 해준 나리타 노부카츠(成田信勝)씨가 미리 준비한 달력과 소책자 등을 고맙게도 선물이라며 건네주었다.

선물로 받은 책상용 달력을 책상 위에 두고 이 글을 쓴다. 3월달의 시는 "꿈은 크게, 뿌리는 깊게(夢はでっかく、根はふかく)"였다.     

- 시인이자 서예가,아이다 미츠오는 누구?

아이다 미츠오 선생은 1924년 토치기현 아시카가시(栃木県足利市)에서 태어났다. 그가 서예와 단가(短歌)에 관심을 둔 것은 중학교 무렵부터. 선생은 전통 서예에서 두각을 나타내었지만 그 길을 버리고 자신의 언어를 자신만의 필체로 그려내는 독창적인 예술 경지에 이르러 수많은 작품을 남겼다.

1984년에 <인간이니까>(にんげんだもの)를 출간하기 시작하면서 작품이 조금씩 알려졌으며 50권 가까이의 저서가 있다. 12년 전 자료지만 마이니치신문(毎日新聞, 2006, 9, 17)에 따르면 이미 그 무렵 아이다 미츠오의 책은 누계(累計) 1000만부에 이를 정도로 두꺼운 독자층을 갖고 있다. 슬하에 1남 1녀를 두었으며 장남인 아이다 가즈히토(相田一人)(63세) 씨는 현재 아이다 미츠오 미술관(相田みつを美術館) 관장이다. 

* 아이다미츠오 미술관 : 도쿄도 치요다쿠 마루노우치(東京都千代田区丸の内3-5-1) 도쿄국제포럼지하1층(東京国際フォーラム 地下1階),  전화 03-6212-3200, 입장료 800엔

덧붙이는 글 | 신한국문화신문에도 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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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박사. 시인.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장, 한국외대 외국어연수평가원 교수, 일본 와세다대학 객원연구원, 국립국어원 국어순화위원, 민족문제연구소 운영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냄 저서 《사쿠라 훈민정음》, 《오염된국어사전》, 시집《사쿠라 불나방》, 여성독립운동가를 기리는 시집《서간도에 들꽃 피다 》전 8권, 《신 일본 속의 한국문화답사기 》외 다수

오마이뉴스 에디터.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다다와 함께 읽은 그림책'을 연재하며,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를 펴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