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지난 2일, 해남군 삼산면 상가마을에서 대보름 행사가 열렸다.
 지난 2일, 해남군 삼산면 상가마을에서 대보름 행사가 열렸다.
ⓒ 김성훈

관련사진보기


지난 2일 정오 무렵,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봄의 하늘 아래로 마을의 어르신들이 제복을 정제했다. 전봇대의 전신주를 닿을락 말락한 '상가 마을 대보름 행사'라고 쓰인 기가 바람에 너풀너풀 흔들렸다.

상가리는 전남 해남군 삼산면 소재지로, 해남의 동북쪽에 위치하고 있다. 덤벙산에 기대인 마을은 뒷산 지형이 소 멍에 모양이라고 하여 '가치(駕峙)'라 부르다가 일제 강점기 행정구역 개편 때 마을이 가재 위쪽에 있다하여 '웃가재' 한자로는 '상가(上駕)'라고 고쳐 불렸다.

주 농업으로 콩, 고추, 깨, 고구마를 재배하는 상가 마을은 음력 정월 보름에 마을 중간에 있는 팽나무에 음식을 차리고 자손들의 무사안녕과 평안을 기원하는 당제를 지낸다. 마을 사람들은 당제를 지내는 나무라고 해서 당산 나무라 부른다. 300여년의 세월을 견디며 나무 둘레는 4미터 가량이 된다. 1982년에 정자의 가치를 인정받아 보호수로 지정되었다. 

"오늘 고기는 누가 내는 거여?"
"딸이 초등핵교 임용고시 합격 해갖고 첫 발령 받은 아무개가 두 상은 내야제."

껄껄 웃는 마을 사람들 사이로 징과 북의 쾌활한 반주가 시작되었다. 마을 아저씨들이 느릿느릿하게 모이는 것 같더니 어느새 종대가 되어 마을 회관 입구에서부터 공동 우물까지 행진을 시작했다.

마을 공동 우물에서 절을 하는 마을 어르신들
 마을 공동 우물에서 절을 하는 마을 어르신들
ⓒ 김성훈

관련사진보기


명태포를 샘터에 올렸다. 단지에는 샘에서 이제 막 길은 물이 단아하게 담겼다.

"여러번 하지 말고 딱 두 번만 해."

마을 사람들에게는 익숙하지만 늘 이런 유머는 삶의 활력인 듯 했다. 형식은 전통제례라고 하지만 이걸 통해 마을 사람들은 옆집의 복된 소식도 듣고, 기쁨을 나눈다. 그래서 '무릎 관절이 시큰하니까 찰푸닥 하지 말어야'라는 말은 어른들의 만담이자 일상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설핏 들었다.

배를 드러내며 활짝 펴진 '상가마음 대보름 행사' 기
 배를 드러내며 활짝 펴진 '상가마음 대보름 행사' 기
ⓒ 김성훈

관련사진보기


마을의 공동 우물에 복된 기운을 빌려 달라 기원하는 마을 사람들의 성심에 응답이라도 하는 것일까. 기가 앞 배를 내밀며 사진의 한 프레임에 담겼다.

만원을 들고 나오는 할머니
 만원을 들고 나오는 할머니
ⓒ 김성훈

관련사진보기


새로 길은 물을 담은 단지를 든 마을 어른이 선두에 서서 조심히 걸어가고 그 뒤로 마을 사람들이 북과 징을 치며 따라갔다. 당산 나무가 있는 마을 중간으로 돌아가려는 길목에 허리 굽은 할머니 한분이 돈 만 원을 들고 그들 행렬에 끼었다. 꼬깃꼬깃 접힌 만 원이었다. 그 돈은 단순한 화폐가 아니었다. 할머니의 소원이 깃든 편지이기도 했다.

지금은 상하수도, 세탁기 등의 편의가 발달되어 예전처럼 마을 주민들이 많이 공동 우물을 이용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어르신들의 삶에서 공동 우물은 가족의 안녕 기원 이전에 시집살이의 고됨, 농사일의 힘듦을 나눌 수 있는 유일한 커뮤니케이션 장소이기도 했다. 그 애련한 장소에서 올리는 제이기에, 예전보다 날쌔지는 못하지만 헐거운 걸음을 허청허청 옮겨 할머니는 오신 것이었다.

마을 회관 앞에서 박수를 치며 마을 사람을 맞는 할머니
 마을 회관 앞에서 박수를 치며 마을 사람을 맞는 할머니
ⓒ 김성훈

관련사진보기


미처 행렬에 끼지 못한 나이든 어르신들은 공동우물터에서 내려오는 마을 사람들을 보자 박수를 치며 환영한다. 늘 보는 얼굴이지만 오늘은 더 반갑단다.

당산 나무 앞에 마련된 제상
 당산 나무 앞에 마련된 제상
ⓒ 김성훈

관련사진보기


소원을 적은 당산 나무 뒤로 제상이 차려졌다. 전통 제례 문화에 익숙하지 않는 내가 보기에도 제상은 참 맛깔스럽게 차려졌다. 특히 지난해 고슬고슬하게 말린 붉은 빛깔의 대추와 잘 깎여진 하얀 빛깔의 밤이 눈에 띄었다.

한상일 이장이 내빈을 소개할 때마다 마을 사람들은 더 신나게 징을 두들겼다. 지역주민을 포함하여 30여 명이 모인 자리였다. 그리고 이어지는 참례가 있었다. 참례는 달의 변화나 명절 등 특별한 날에 조상에게 예를 드리는 의식이다. 계절에 따른 음식을 바치고 인사를 드리는 우리의 전통 의례였다.

초에 불을 붙이자 제문을 카랑카랑하게 낭독하는 소리가 들렸다. 참신을 하는 절차가 시작된 것이다. 참신은 신을 뵙는 제례절차를 뜻한다.

국민민속박물관에서 발행한 '한국일생의례사전'에 따르면, 참신의 역사는 다음과 같이 서술하였다.
"주자가례, 상례비요 모두 출주 뒤에 참신 재배하고 강신한다고 하였다. 신주는 그 자체가 신체이므로 조상으로 여겨 참신을 먼저 한다. 사계 김장생은 '신위를 마련하여 신주가 없으면 먼저 강신하고 뒤에 참신한다'. 묘제 역시 그러한데 주자가례에는 '우선 참신하고 나중에 강신한다'라고 하니 그 뜻을 알지 못하겠다. 격몽요결에는 '묘제에는 먼저 강신한다'라고 하니, 아마 옳을 듯하다'라고 하였다. 가례를 비롯한 예서에서 기일이나 사시의 합동 제사에 참신을 먼저 하게 한 것은 과거에 제사를 올릴 때에는 반드시 당사자의 신주를 내어 모셨기 때문인 듯하다. 신주는 평소에 조상의 영혼이 깃든 표상이기 때문이다. 신주를 의자에 모시면 조상이 좌정하신 것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곧장 참신을 할 수 있는 것이다." (620쪽)
절을 하는 마을 사람들
 절을 하는 마을 사람들
ⓒ 김성훈

관련사진보기


지금은 약소화 되어 상가리 마을에서는 희망자에 한해 참신 재배하는 것으로 이날의 대보름 행사는 끝을 맺었다.

마을 사람들은 마을 회관에 모여, 음복을 하며 덕담 속에 행복을 오고갔다.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해 생각했다. 절차가 까다롭고 복잡하다는 생각에 잊혀져간 전통이 마을 어른들의 노력으로 다시 부활했다. 그 과정에는 마을 사람들의 협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자칫 모르고 지나칠 수 있었던 것들, 역사의 한 구절로만 적혀 있던 것을 생생하게 목격 할 수 있었던 기회였다.   


태그:#대보름 행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1984년생. 전남대학교 일반대학원 문화재협동학 박사과정 목포대학교 교육대학원 국어교육학석사. 명지대 문예창작학과졸업. 융합예술교육강사 로컬문화콘텐츠기획기업, 문화마실<이야기>대표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