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 뮤직비디오 촬영 중인 소프라노 르네 플레밍의 모습.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 뮤직비디오 촬영 중인 소프라노 르네 플레밍의 모습. ⓒ Renee Fleming 페이스북


지난 5일(한국 시각) 제90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예상대로 거장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이 작품상, 감독상 등 총 4개 부문을 휩쓰는 영광의 주인공이 되었다. 특히 이 작품의 음악을 맡은 알렉상드르 데스플라는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 이어 생애 두 번째 아카데미 음악상을 수상하는 감격을 만끽했다.

서정적인 선율로 가득 찬 <셰이프 오브 워터> 사운드 트랙에선 특히 다양한 변주로 꾸며진 재즈 고전 'You'll Never Know'가 관객들에게 진한 울림을 선사, 새로운 영화 음악 명곡으로 대접받고 있다.

이 곡을 멋지게 소화한 인물은 바로 세계적인 리릭 소프라노(부드럽고 서정적이며 밝은 음색을 지닌 청아한 목소리의 소프라노를 일컫는다. - 기자 말) 르네 플레밍(Renee Fleming, 1959~)이다.

미국 클래식계의 국민 디바, 재즈부터 록 음악까지 도전

 지난 2010년 발매된 르네 플레밍의 크로스오버 음반 < Dark Hope >. 표지 사진부터 수록곡까지 최근 유행하는 트렌디한 록 음악 형식으로 꾸며 발매 당시 화제를 모았다.

지난 2010년 발매된 르네 플레밍의 크로스오버 음반 < Dark Hope >. 표지 사진부터 수록곡까지 최근 유행하는 트렌디한 록 음악 형식으로 꾸며 발매 당시 화제를 모았다. ⓒ 유니버설뮤직코리아


르네 플레밍은 만 29살이던 1988년 열린 미국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오디션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본격적인 메이저 무대에 데뷔했다. 이후 게오르그 솔티 경과 앙드레 프레빈 등 세계적인 지휘자들의 찬사 속에 승승장구 했으며 이제는 명실상부한 미국 클래식 음악계의 대표적인 '디바'로 사랑받고 있다.

기품 있는 외모와 목소리 덕분에 세계 유수의 명품 브랜드 모델이나 패션 잡지의 표지를 장식하는 등 '셀러브리티'로도 주목 받았다. 그는 여타 성악가처럼 클래식 음악 외에도 다양한 장르와의 크로스오버 협업을 시도한 바 있다.

성악가들의 음악적 '외도'라고 하면 '팝페라' 혹은 스탠다드 팝 같이 듣기 편안한 장르의 음반을 발표하거나 대중 가수와 협업하는 것이 가장 흔한 사례다. 플라시도 도밍고, 루치아노 파바로티, 조수미 등 여러 성악가들이 크로스오버 음반을 낸 것과 같이 대부분 이러한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 게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르네 플레밍은 조금 달랐다.

가령 지난 2010년 발매한 앨범 < Dark Hope >는 이례적으로 뮤즈, 아케이드 파이어 등 최근의 인기 록 그룹 곡을 리메이크하는 과감한 시도로 꾸몄다. 명 프로듀서 데이빗 칸(라나 델 레이, 뉴 오더, 슈거 레이 등 담당)의 진두 지휘로 기존 클래식 크로스오버 음악의 형태가 아닌, 트렌디한 팝-록 음악 형식의 반주와 창법을 도입하는 파격을 선보였다. 특히 피터 가브리엘의 명곡 'In Your Eyes', 수많은 음악인이 리메이크했던 레너드 코헨의 'Hallelujah' 등은 원곡 못잖은 묵직한 감동을 선사했다. 르네 플레닝은 이 앨범을 통해 성악가가 아닌 '록 보컬리스트'로서의 모습까지 드러낸다.

지난 2014년에는 재즈 피아니스트 빌리 차일즈(Billy Childs)의 주도로 제작된 여성 싱어송라이터 로라 니로 헌정 음반 < Map To The Treasure : Reimagining Laura Nyro >의 객원 보컬리스트로 참여했다. 첫곡 'New York Tendaberry'(이듬해 그래미 시상식 최우수 보컬 및 연주 편곡 부문 수상)를 원곡과는 사못 다른 중후하면서 장엄한 분위기로 재해석하기도 했다.

반면 지난 2000년 기타리스트 리 릿나워 + 영화음악가 겸 피아니스트 데이브 그루신의 재즈 크로스오버 음반 < Two Worlds >에선 고전 민요 'The Water Is Wide/Shanandoah'의 접속곡을 정통 클래식 창법으로 소화하는가 하면 2005년엔 첫 재즈 음반 < Haunted Heart >를 내놓는 등 장르를 넘나드는 다채로운 활동을 펼쳤다.

영화 OST에도 참여, '감동 한 스푼' 더한 목소리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쓰리 빌보드> 사운드트랙. 두 영화 모두 르네 플레밍의 노래가 수록되어 관심을 모았다.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쓰리 빌보드> 사운드트랙. 두 영화 모두 르네 플레밍의 노래가 수록되어 관심을 모았다. ⓒ 유니버설뮤직코리아


지난 2003년 영화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 OST에 참여하며 영화 음악과 인연을 맺은 르네는 최근 몇 년 사이 다양한 작품 속에서 빛났다. 2012년 드림웍스의 판타지 애니메이션 영화 <가디언즈>(2012)에선 메인 테마곡 'Still Dream'을 특유의 긴 호흡을 바탕으로 우아함과 고풍스러운 멋을 담아 노래한다.

공교롭게도 <셰이프 오브 워터>와 더불어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 주요 부문(여우주연상, 남우조연상) 수상으로 화제를 모은 영화 <쓰리 빌보드>(오는 15일 국내 개봉)에서도 르네 플레밍의 노래를 만날 수 있다. 오페라 <마르타>의 주요 곡 중 하나인 'Last Rose Of Summer'는 원래 1998년 음반 < The Beautiful Voice >에 수록된 곡으로 제목처럼 아름답고 청아한 20년 전 그녀의 목소리를 접할 수 있다.

반면 <셰이프 오브 워터> OST에 수록된 'You'll Never Know'는 전형적인 스탠다드 재즈의 분위기를 잘 드러내는 고전 중 하나다. 프랭크 시내트라, 냇 킹 콜부터 리사 오노, 마이클 부블까지 재즈 보컬이면 누구나 한 번쯤 거쳐가는 '기본곡'이다. 그러나 르네 플레밍은 '그의 재발견'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그 어느 때 보다 틀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이 곡을 소화했다.

워낙 편안하게 소화해 준 덕분에 정통 성악가의 가창곡이라는 걸 미처 인식하지 못한 관객들이 많았다. 이 곡에서 르네는 '재즈 보컬리스트' 못지 않은 실력을 뽐내며 장르를 뛰어넘는 역량을 입증했다.


<셰이프 오브 워터> 사운드트랙엔 4분 38초짜리 오케스트라 협연 버전과 6분 49초짜리 얼터네이트 버전 등 총 2개가 수록되었는데, 후자가 좀 더 진한 색깔을 담고 있다. 특히 곡 중간 등장하는 콘트라베이스 솔로 연주 역시 굵직한 무게감을 선사한다.

비록 영화를 위해 재해석한 리메이크 곡이지만 'You'll Never Know'는 영화 및 음반 표지를 장식한 괴생명체와 엘라이자(샐리 호킨스 분)의 포옹처럼 알렉상드르 데스플라가 만든 빼어난 연주곡들과 마치 한몸 같은 조화를 이뤄낸다. 만약 다른 가수였다면 이만한 감동을 선사해줄 수 있었을까 의문이 들 만큼 르네의 목소리는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어떤 의미에선 <셰이프 오브 워터>의 숨은 주역 중 하나로 그녀의 이름을 언급해도 좋을 듯하다. 르네 플레밍은 목소리 하나로 영화에 '감동 한 스푼'을 더 얹어 준 셈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김상화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blog.naver.com/jazzkid)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기사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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