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스트레이트> 방송 중 공개된 문자 내용. "그동안 삼성의 눈으로 세상을 보아왔습니다"라고 적혀 있다.

MBC <스트레이트> 방송 중 공개된 문자 내용. "그동안 삼성의 눈으로 세상을 보아왔습니다"라고 적혀 있다. ⓒ MBC


"대한민국 언론이 삼성 입안의 혀처럼 굴고 있군요."

MBC 탐사기획 프로그램 <스트레이트> 진행자인 배우 김의성이 4일 방송에서 한 말이다. 이날 <스트레이트>는 각 언론사 간부들이 장충기 삼성 미래전략실 사장(차장)에게 보낸 문자를 공개했다.

이 문자 속엔 삼성이 언론을 어떻게 주무르는지, 그리고 언론이 삼성의 눈에 들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는지 그 실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었다. 김의성 진행자의 탄식대로 정말 언론은 '삼성 입안의 혀'나 다름없었다.

'경악스러운' 삼성의 정보력, 언론과 연락 주고받은 정황 드러나

우선 삼성의 치밀한 정보력은 놀라운 수준이었다. 2014년 12월 제일모직이 상장되고, 삼성 이재용·이부진·이서현 삼 남매는 5조 8천억 원에 이르는 시세 차익을 챙긴다. 투자금 81억의 730배에 달하는 엄청난 액수다. 제일모직 상장으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아버지 이건희 회장에 이어 재계 2위의 주식부자로 등극한다. 더욱 중요한 건 제일모직 상장이 삼성그룹 승계를 위한 사전 정지 작업 성격이 강했다는 점이다. 따라서 제일모직 상장은 한국 경제와 사회에 심각한 파장을 미칠 중요한 '뉴스'였다.

그러나 KBS·MBC·SBS 등 공중파 3사 보도에서 관련 소식은 찾아볼 수 없었다. 당시 이인용 삼성전자 커뮤니케이션팀장(사장)은 장충기 사장에게 이런 문자를 보냈다.

"사장님, 방송은 K·M·S 모두 다루지 않겠다고 합니다."

이 문자는 이인용 팀장이 각 방송사의 내부 사정을 사전에 파악하고 있음을 강력히 시사한다. 결국 방송사 누군가가 고급 정보를 이 팀장에게 흘렸고, 이 정보가 최종적으로 장 사장에게 전달된 셈이다. 속된 말로 삼성이 언론사 고위층에 '빨대'를 꽂아 놓았다고 의심하기에 충분한 정황이다.

이뿐만 아니다. 언론사 간부가 삼성에 노골적으로 충성을 맹세한 정황도 드러났다. <스트레이트> 방송에 따르면, 국기기간 통신사인 <연합뉴스>의 이아무개 편집국장은 장 사장 앞으로 이런 문자를 보냈다고 한다.

 MBC 탐사기획 <스트레이트>는 4일 삼성과 언론의 유착을 폭로했다.

MBC 탐사기획 <스트레이트>는 4일 삼성과 언론의 유착을 폭로했다. ⓒ MBC


"사장님 연합뉴스 이OO입니다. 국민의 생각에 영향을 미치는 사람으로서 대 삼성그룹의 대외업무 책임자인 사장님과 최소한 통화 한 번은 해야 한다고 봅니다."

"선배님 주소가 변경돼 알려드립니다. 국가 현안 삼성 현안 나라 경제에 대한 선배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평소에 들어 놓아야 기사에 반영할 수 있습니다."

이 편집국장이 장 사장에게 문자를 보낸 시점은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이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던 시점이었다. 이 시점에 국가기간 통신사의 보도 책임자가 삼성의 의중을 미리 챙기겠다는 식의 문자를 보낸 것이다. 이어 <스트레이트>에서 공개한 <문화일보> 광고국장의 문자 메시지는 그야말로 '목불인견'이다.

"문화일보, 그동안 삼성의 눈으로 세상을 보아왔습니다. 앞으로도 물론이고요. 도와주십시오. 저희는 혈맹입니다."

언론의 '삼성 띄워주기', 이재용 기소 직후 '정점' 찍다 

언론의 '삼성 편들기'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뇌물공여 혐의로 기소되는 시점을 전후해 정점에 이른다. 일단 일부 매체에서 관련 취재 담당이 법조팀이 아닌 산업팀으로 교체됐다. MBC는 4일자 뉴스에서도 "이재용 부회장이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에 연루돼 재판을 받게 됐을 때는 상당수 언론사 법조팀 기자들이 삼성 출입기자들로 교체됐고, 삼성에 유리한 기사를 쓰게 했다는 현직 기자들의 증언도 나왔"다고 보도했다.

법조 관련 취재는 법리는 물론, 검찰·법원의 조직구성과 생리, 각 구성원의 성향에 대한 이해가 필수다. 상당 기간 동안 훈련을 거쳐야 한다는 뜻이다. 더구나 산업과 법조는 서로 다른 분야다. 그러다 보니 취재 기자들은 삼성 홍보팀과 접촉해 이들의 정보에 의존해 기사를 썼다는 정황이 드러났다. 이런 식이니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우호적일 수밖엔 없다. 삼성으로선 이런 상황이 반가웠을 법하다. 삼성 출입기자들을 통해 우호적인 여론을 조성해 이 부회장을 '빼내야' 했으니 말이다.

 MBC 탐사기획 <스트레이트>는 4일 삼성과 언론의 유착을 폭로했다.

MBC 탐사기획 <스트레이트>는 4일 삼성과 언론의 유착을 폭로했다. ⓒ MBC


이렇게 삼성이 언론을 '쥐락펴락' 할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힘은 바로 광고다. 삼성이 광고시장의 큰 손으로 군림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언론사의 지위는 어느 면에서는 이율배반적이다.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켜야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매출을 올려 수익을 내야 하기 때문이다.

경영진 입장에서 삼성이 주는 광고는 뿌리치기 어렵다. 더구나 매체 환경이 갈수록 열악해지고 있기에, 많은 언론사들은 존립을 위해서라도 삼성 광고에 사활을 걸 수밖엔 없다. '국내 일등신문'이라는 <조선일보>도 예외가 아니다. 삼성은 이런 처지를 이용해 언론을 주무르는 것이다. 방송에서 <스트레이트> 취재진과 접촉한 법조 출입기자 A는 이렇게 말했다.

"조선일보에서 삼성 광고가 빠지면 조선일보가 버틸지 궁금해요. 저는 (조선일보도) 못 버틸 것 같거든요."

'자리'의 유혹도 빼놓을 수 없다. 방송에서 주진우 기자는 이렇게 지적했다.

"정치부도, 경제부도 그렇고 편집국장이나 보도국장 같이 중요한 자리는 삼성의 눈에 들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특별히 검찰, 법원도 삼성과 관계있는 사람들이 승진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편집국장 보도국장 중에 삼성과 관계가 원만치 않아서 바로 날아가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실제 사례입니다."

언론이 삼성을 '띄워주기'에 급급한 사이,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불치병에 걸린 노동자들의 사연은 대중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또 국민연금은 3000억의 손실이 날 것을 예상하고서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승인했다.

'삼성-언론 유착' 공개한 <스트레이트>, 다음 방송도 기대된다

 법원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징역 5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25일 서울중앙지방법원 대법정에서 열린 이재용 부회장과 최지성, 장충기, 박상진, 황성수 전 임원 등 5명에 대한 1심 선고공판에서 법원은 이같이 밝혔다. 사진은 이날 서울 삼성그룹 서초사옥의 모습.

서울 삼성그룹 서초사옥의 모습. ⓒ 연합뉴스


누가 뭐라 해도 삼성은 국내 제1의 대기업이다. 이런 삼성이 휘청이면 한국 경제 역시 타격을 받을 것이다. 이는 삼성이 정도를 걸어야 하고, 시민들 역시 삼성을 예의주시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삼성 경영진들의 생각은 다른 것 같다. 이제껏 삼성은 이건희·이재용·이부진 등 총수 일가의 이익 극대화에만 급급했던 모습을 자주 드러냈다. 특히 제일모직 상장과 이에 따른 오너 일가의 시세차익,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등은 이 회장 일가의 이해와 직결된 문제였다. <스트레이트> 방송에 의하면 삼성은 이에 대해 '언론 통제'를 시도했고, 언론은 적극적으로 반응했다. 그리고 삼성과 언론의 유착에 따른 궁극적 피해는 결국 국민들의 몫으로 돌아가게 됐다.

사실 '삼성이 언론을 주무른다'는 건 공공연하게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그 실태가 이토록 적나라할 줄은 몰랐다. <스트레이트>의 폭로는 이 지점에서 진가가 드러난다. 취재 마디마디마다 김의성 MC의 '찰진' 멘트는 자칫 딱딱해지기 쉬운 흐름에 윤활유 같은 역할을 한다. 또 주진우 기자 특유의 섬세함도 흥미를 더해준다. 비슷한 포맷의 JTBC <썰전>이나 SBS <김어준의 블랙하우스>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대목이다.

<스트레이트> 취재진은 후속 취재를 예고했다. 이번 폭로도 가히 충격적이었는데, 후속 취재는 또 얼마나 경악스러울까. <스트레이트>의 다음번 회차가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스트레이트 김의성 삼성 장충기 미래전략실 주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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