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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현 검사의 외침에서 시작된 #미투 운동이 한국 사회 전반으로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성폭력은 이름만 대면 알만한 유명인사들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결코 사소하지 않은 성희롱, 성추행은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성폭력에 자신만의 방식으로 분투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3.8 여성의 날을 맞아 '사소하지 않은 저항기'를 싣습니다. 당신의 저항기를 기다립니다. [편집자말]
미투 운동을 바라보는 내 맘은 착잡하다. 내게도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지만 너무 오래 지난 데다 권력자들의 성폭력을 용기 있게 폭로하는 것과는 거리가 있는, 뭔가 결이 다른 이야기인 것 같아 망설여진다.

하지만 이런 생각이 어디에서 왔나 생각해보면, 이것 역시 '쉬쉬 하는 문화' 즉 억압에서 기원한 것이다. 너무 사소해서 꺼내고 싶지 않다는 저항감을 무릅쓰고 나도 18년 전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대학교 4학년이 된 봄이었다. 모든 학년이 참가하는 연합 엠티에 가게 되었다. 나는 4학년인 데다가 여학생은 전체 과를 통틀어 열 명도 되지 않아 2박3일 일정이 부담스러웠다. 빠지고 싶었지만 마침 제대를 하고 동기들이 복학해 그들과 마지막 추억(?)을 만든다는 생각으로 엠티에 참가했다.

경기도인지 강원도인지 장소는 떠오르지 않는다. 엠티에 대한 기억은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가 전부다.

문제의 '미스○○ 선발대회'

 SBS 예능프로그램 '스타킹'에서 여장을 한 붐과 이천수
 SBS 예능프로그램 '스타킹'에서 여장을 한 붐과 이천수
ⓒ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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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밤 단체 행사로 '미스○○ 선발대회'를 했다. 요란한 함성과 함께 방문이 열리자 신입생 남자 아이들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여장을 하고 나타났다. 파마머리 가발, 빨간 립스틱, 붉은 볼터치, 검은 망사스타킹, 짧은 치마, 가슴엔 풍선 두 개.

방안은 박수소리와 웃음소리, 함성으로 가득했다. 나는 기분이 묘했다. 주위 사람들처럼 나도 환호하며 웃고 싶었지만 미묘한 감정이 일어 웃을 수가 없었다. '여장 정도야 개그 프로에서도 흔하게 하는 것이니 너무 예민하게 생각하지 말자'며 나를 다독였다.

잠시 후 여장한 남자들이 사회자의 요구에 따라 이상한 행동을 했다. 혀를 내밀고 윙크를 하고, 매니큐어를 바른 손톱이 보이도록 손목을 꺾고, 손으로 가슴을 받치고, 입술과 다리를 벌리며 괴상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세상 어느 곳에서도 저런 옷차림과 행동을 하는 여자를 본 적이 없다. 저것이 남자들이 생각하는 미스코리아인가? 남성들 머릿속에 자리 잡은 여성상이 저런 건가? 불쾌함에 가슴이 불안하게 뛰었다.

사회자가 여장한 남자들을 차례로 소개했다. 여장한 남자들은 사회자의 요구에 따라 몸을 꼬고 치마를 올리며 최대한 자신의 '여성스러움'을 부각시켰다. 자리에 앉은 학생들을 향해 눈을 감고 입술을 내밀고 엉덩이를 내밀어 흔들었다.

성행위를 하는 듯한 포즈를 취할 때, 나는 참을 수 없었다. 뒤쪽에 앉아있던 나는 옆자리 동기에게 "이게 재밌어?"라고 말했다. 주위 몇 명이 나를 잠시 쳐다보더니 다시 고개를 무대로 돌렸다. 동기는 웃음을 멈추고 아무 말을 안 했다. 나는 계속 중얼거렸다.

"이게 뭐하는 짓이지? 이상해. 기분 나빠."

한 동기가 내게 잠자코 있으라는 신호를 했다. 나는 자리에 있을 수 없어 일어나 옆방으로 왔다. 동기 몇 명이 따라 나왔다. 그들에게 불쾌한 속내를 몇 마디 했지만, 사실 나도 왜 기분이 나쁜지 알 수 없었다. 2000년의 나는 성희롱이란 말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어떤 것이 성희롱인지 알지 못했다.

"이 일을 이화여대 게시판에 올릴 거예요"

일단 방을 나왔으니 불쾌한 기분을 없애고 싶었다. 동기들과 술을 마셨다. 얼마 후 주위가 시끄러워졌다. 단체 행사는 끝났고 이제 본격적으로 노는 일만 남았다. 나는 누군가 가져온 통기타를 잡았다. 두꺼운 노래책을 넘기며 기타를 쳤다. 동기, 후배들과 큰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내 주위엔 사람들이 더 많아졌다.

술기운 때문인지, 모여든 사람들 때문인지 기분이 좋아졌다. 나는 손가락이 부러져라 기타를 쳤다. 다들 벌게진 얼굴로 고래고래 악을 쓰며 노래를 했다. 분위기는 정말 최고였다.

얼마나 놀았을까. 뒤쪽 방문이 열리더니 찬바람이 휑하게 불었다.

"야~~! 심혜진 이 씨XX아, 너 아까 뭐라고 했어. 내가 그 말 못 들은 줄 알아?"

사회를 보던 선배였다. 등 뒤로 험한 욕설이 쏟아졌다. 나는 뒤돌아보지 않고 여전히 기타를 잡은 채 말했다.

"그게 뭐하는 짓이에요. 창피하지도 않아요?"

그의 고함과 욕설은 더 심해졌다. 나도 지지 않고 따박따박 말대답을 했다. 갑자기 그가 빽 고함을 질렀다. "형 왜 그러세요!"라는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고 "퍽"하는 소리가 났다. 그와 동시에 내 옆에 있던 동기가 나를 번쩍 들어올렸다. 나는 순식간에 다른 방으로 옮겨졌다.

복잡한 감정에 눈물이 쏟아졌다. 왜 우는 줄도 모른 채 하염없이 울었다. 내게 욕설을 퍼부은 선배는 방 바깥에서 여전히 악을 썼다. 잠시 후 학회장이 방으로 들어와 내 앞에 앉았다. 으레 하는 행사란다. 해마다 해 온 것을 별 의미 없이 올해도 했을 뿐이란다.

사회자가 내게 욕을 한 건 잘못이지만 행사 분위기를 망친 내게도 책임이 있단다. 가만히 있었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어이가 없었다. 그때 내 입에서 생각지도 않은 말이 나왔다.

"행사도, 사회자도, 학회장도, 아무 잘못이 없다는 거죠? 알겠어요. 이 일을 이화여대 게시판에 올릴 거예요."

이화여대 여성학과 교수들이 텔레비전에 나와 여성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던지며 대중들에게 알려지던 시절이었다. 사실 나는 이화여대 홈페이지에 들어가 본 일도 없었고 게시판에 어떤 이야기가 오가는지도 알지 못했다. 사회를 잘 모르고 시야가 좁았던 내게는, 내 상황을 이해하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이 이화여대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가 무릎을 꿇은 것이다. 한 치의 머뭇거림도 없었다
 그가 무릎을 꿇은 것이다. 한 치의 머뭇거림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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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말이 끝나자마자 학회장이 손으로 땅을 짚었다. 화가 나서 방을 나가려나 보다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가 무릎을 꿇은 것이다. 한 치의 머뭇거림도 없었다.

"다 내가 잘못했다. 내가 책임지고 미스○○ 없앨게. 앞으로 우리 과에 미스○○는 없어. 대신, 학교 밖으로 이야기를 흘리진 말아줘. 정말 부탁한다."

나는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잠시 후 사회자도 방으로 들어왔다.

"그래 내가 잘못했다, 내가 죽일 놈이다, 이렇게 무릎 꿇을게, 됐냐? 씨X."

그는 또다시 악을 쓰며 울었다. 그를 향해 고개를 돌리지 않아 그가 정말 무릎을 꿇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음 날 새벽 나는 몇몇 사람들과 첫차를 타러 나왔다. 2박3일 일정이었지만 더 있을 수가 없었다. 우리를 따라 나온 남자 동기 중 한 명이 나를 뒤로 잡아끌었다.

"미안하다. 어제 네 편 못 들어줘서. 이해해라."

고마운 한편 어쩐지 비굴하기도 한 것 같았다.

집에 돌아와 이화여대 게시판에 들어가 봤다. 이화여대 학생이 아닌 사람은 글을 올릴 수가 없었다. 할 수도 없는 일을 하겠다며 협박을 한 셈이다. 어디 다른 곳에라도 올릴까 싶었지만, 미스○○의 어떤 부분이 문제인 건지 나조차 알 수가 없었다.

내겐 불쾌함을 시원하게 설명할 논리와 언어가 없었다. 내가 정말 예민한 건지도 몰랐다. 답답했다. 그래도 다행히 학회장이 미스○○를 없앤다고 했으니 이렇게 넘어가는 것도 괜찮겠다 싶었다.

이후 과에선 그럭저럭 생활했다. 예비역 선배들의 시선이 뜨악해진 건 분명했다. 다른 사람의 관심이나 시선에 무심했던 성격 덕에 나는 별 탈 없이 학교에 다녔다. 친했던 과 친구들과도 그날 일에 대해선 서로 말을 꺼내지 않았다.

이후 사회를 봤던 선배와 어떻게 생활했는지, 인사를 나눴는지 아니면 서로 무시했는지, 기억에 없는 걸 보면 내가 그를 두려워하거나 크게 신경 쓰지는 않은 듯하다. 내 마음이 크게 불편하지 않았던 건, 어쩌면 그날 내가 뒤돌아 있었던 덕에, 그가 한 모든 행동과 표정을 보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졸업 후, 그 자리에 함께 있었던 친구가 당시 상황을 들려줬다. 내 등 뒤에서 욕설을 퍼붓던 그가 내게 달려들었고, 그걸 문 옆에 서 있던 한 동기가 몸으로 막아섰다고 했다. 그 동기가 사회자에게 폭행을 당했던 것이다.

내게 물리적 폭력을 행사하려 했다니, 아찔했다. 폭력을 막아서 준 동기에게도, 나를 그 자리에서 벗어나게 해 준 동기에게도 뒤늦게나마 미안하고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동안 아찔함과 안도감을 여러 번 반복해서 되새겨야 했다.

요즘도 남자들이 여자를 심하게 폭행하고 살인까지 한 사건을 접할 때마다 가슴이 두근대면서 이 일이 떠오른다. 나는 그날 성폭력과 언어폭력에 더해 물리적 폭력까지 당했을지 모른다.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

'다행히' 그 자리엔 내게 달려드는 그를 막아선 남자 동기가 있었다. 그가 없었다면 나는 난생 처음 경찰서에서 피해자 진술을 해야 했을지 모른다. 내게 폭력을 휘두른 그는 술에 취했다며 선처를 바랄지도, 혹은 기억나지 않는다며 딱 잡아뗐을 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과 사람들의 진술은 어땠을까. 이런저런 생각이 앞서지만, 어쨌든 최악의 상황을 면할 수 있었던 건 정말 행운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 상황을 그저 '행운'이라 안도하기엔 뭔가 찜찜하다. 폭력에 노출된 사람이 스스로 더 큰 폭력이 일어나지 않은 걸 행운으로 여기는 건 불합리하다. 나는 그들의 도움이나 보호를 바란 것이 아니다. 당시 그 자리에서 필요했던 건 나도 불편했다고 함께 말해줄, 이건 폭력이니 멈추라고 외쳐줄, 그 누군가였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나는 운이 나빴다. 사회자에게 몸을 날린 남자 동기가 그 자리에 있었던 건 행운이 아니라 우연이었다. 나는 '우연히' 그날 그 자리에서 '살아남았다'.

미스○○는 사라졌지만

 4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2018 3.8 세계여성의 날 기념 제34회 한국여성대회'에서 참가자들이 '#Me Too #With You' 구호가 적힌 손팻말을 들고 있다.
 4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2018 3.8 세계여성의 날 기념 제34회 한국여성대회'에서 참가자들이 '#Me Too #With You' 구호가 적힌 손팻말을 들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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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후, 한 행사장에서 우리 과 학생을 만났다. 그에게 들은 이야기론, '미스○○ 선발대회'는 '어떤 사건' 때문에 사라졌다고 한다. 나는 그 사건의 주인공이 나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나는 환하게 웃었고, 억울하고 찜찜했던 무언가가 사라진 듯 후련했다.

이 사건이 내게 남긴 건 이런 것이다. 우선 매스컴이 남자들의 이미지를 심하게 왜곡했다는 것. 그들은 드라마 주인공처럼 용기나 결단력이 있지도, 정의롭지도 않았다. 두 번째로 남성들이 여성주의를 두려워한다는 것도 의외였다. 이화여대 게시판이라는, 어찌 보면 황당한 말 한 마디에 잘못한 것 없다던 학회장이 단번에 무릎을 꿇은 걸 생각하면 통쾌한 한편으론 씁쓸하다. 뭔가 문제가 될 거란 걸 알았던 모양이다.

세 번째, 폭력은 생각보다 훨씬 가까이에 있다는 것이다. 평소 친근한 인사와 농담을 주고받던 사람에게서 그렇게 험한 욕설을 듣게 될 줄은 몰랐다. 게다가 달려들기까지 하다니, 정말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마지막으로 이건 가장 큰 깨달음인데, 부당하고 불편한 것을 마주했다면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든 표현해야 한다는 점이다. 변화는 '나'라는, 정말 작은 것에서 시작한다는 걸 그땐 몰랐다. 증거를 모으고 정식으로 나를 보호할 수 있는 안전한 대응 방법을 찾거나 학교 대자보를 통해 공식 사과와 재발방지의 다짐을 받았다면 더 좋았을 텐데, 아쉽다.

어쨌든 미스○○는 없어졌다. 내겐 작은 성공의 메달 같은 것이다. 그나마 대학이라는 테두리가 있었고 그와 내가 권력을 사이에 둔 상하관계가 아니었기에 내 상처도 크지 않았을 것이다.

너무 사소해서 차마 꺼내지 못했던 나의 #미투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대한민국에서 이건 정말 먼지만 한 이야기일 것이다. 미투 운동이 계속 이어져서 서로의 가슴속에 쌓인 크고 작은 먼지들을 밖으로 꺼내놓을 수 있다면 좋겠다. 당신의 가슴에 쌓인 모든 이야기들에 뜨거운 지지와 연대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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