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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죽이가 됩시다!"
"합...죽..."
"통일이 안 되네요. 자, 선생님이 합죽이가 되자고 하면 여러분들은 '합'이라고 하고 조용히 하는 겁니다. 다시 해보겠습니다. 합죽이가 됩시다!"
"합!"
"누나, 아직도 '합죽이가 됩시다!' 이런 걸 해? 예나 지금이나 똑같네."
"뭐 그렇지~ 별다른 게 있을까 봐?"

지난 3월 2일 금요일, 조카의 초등학교 입학식에 다녀왔습니다. 조카는 직접 고른 예쁜 옷을 입고 새로 산 책가방과 신발주머니를 챙기고, 행여나 늦을까 봐 발걸음을 재촉했습니다.

입학식이 열린 체육관에는 이미 많은 아이와 학부모들이 와있었습니다. 사전에 받은 공지사항에 따라 아이들은 배정받은 반 번호가 적힌 표지판 앞에 앉아서 입학식 예행연습을 하며 기다렸습니다. 학부모들은 조금 떨어져서 아이들을 지켜봤습니다.

삼촌인 저도 긴장되는데, 난생처음 본 환경과 낯선 친구들을 만난 아이들, 그리고 그런 아이들을 지켜보는 학부모들은 얼마나 떨렸을까요. 학부모들은 까치발을 들고 아이들을 찾았고, 아이와 눈이 마주치면 손을 흔들며 안심시켰습니다.

아이들의 입을 다물게 한 한 마디

 입학식에서 서 있는 아이들
 입학식에서 서 있는 아이들
ⓒ 김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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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10분 정도 지나자, 드디어 입학식이 시작되었습니다.

"지금 조금 시끄러운데요. 자, 합죽이가 됩시다!"
"합!"
"네, 좋아요. 전체 일어 서! 자, 지금부터 ㅇㅇ초등학교 입학식을 시작하겠습니다. 국기에 대하여 경례!"

선생님의 목소리가 마이크와 스피커를 통해 쩌렁쩌렁 흘러나왔습니다. 그 소리에 웅성웅성하던 아이들, 딴짓하던 아이들도 모두 입을 다문 채 제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앞에 걸린 태극기를 바라보고 오른쪽 손을 왼쪽 가슴 위에 올렸습니다. 이어 애국가 제창,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이 이어졌습니다. 아이들은 두리번두리번하다 고개를 숙였습니다.

"바로! 다음은 내빈 소개입니다. 오늘 입학하는 여러분들을 축하해주기 위해 찾아온 내빈들이 있습니다. 모두 큰 박수 바랍니다."

아이들의 입학을 위해 축하하러 온 내빈은 총 4명. 이들의 소개와 인사가 이어졌습니다. 아이들은 어른들을 따라 박수를 보냈습니다. 이어서 1학년 1반 1번 학생이 대표로 입학 허가증을 받았습니다. 다음은 교장 선생님의 환영사 순서였습니다.

"자, 모두 조용히 하세요. 합죽이가 됩시다!"
"합!"
"교장 선생님의 환영사입니다."
"네, 안녕하세요. 교장 ㅇㅇㅇ 입니다. ㅇㅇ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된 여러분들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저는 오늘 이 자리에 계신 학부모님들과 학생들에게 한 가지 당부의 말을 전하겠습니다..."

꼭 서서 교장 선생님을 바라봐야 하나요?

저는 다리가 아파서 의자에 앉았습니다. 학부모들을 위해 준비된 의자의 수는 턱없이 모자랐지만 대부분의 학부모들이 자녀를 보기 위해 서 있었기 때문에 저는 앉을 수 있었습니다.

서 있는 학부모들 사이로 가방을 메고, 손에 신발주머니를 들고 앞을 보고 아무 말 없이 서 있는 아이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시계를 보니 오후 2시 25분. 아이들이 조용히 서 있은 지 10분이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왜 아이들이 입을 다문 채 제자리에 서서 교장 선생님의 연설을 들어야 하는지, 교장 선생님은 높은 단상에서 아이들을 내려다보며 이야기를 해야 하는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자리에 앉아서 모두 편하게, 아니면 아이들이라도 자리에 앉아서 이야기를 듣게 하거나, 교장 선생님이 아이들과 동등한 높이에서 눈을 맞추며 이야기하는 건 안 되는 일일까요?

"다음은 선생님들 소개 시간입니다. 큰 박수로 환영해주시길 바랍니다. 호명된 선생님은 손을 들어 주시길 바랍니다. 1학년 1반 담임 ㅇㅇㅇ선생님..."
(중략)
"이것으로 입학식을 마치겠습니다. 모두 제자리에 앉아!"

1학년에서 6학년 담임 선생님과 담당 선생님들까지, 총 30여 명이 넘는 선생님들의 소개가 끝나고 나서야 아이들은 앉을 수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아무 말 없이 서 있던 시간은 20여 분. 아이들에게 이날의 입학식은 어떤 기억으로 남았을까요?

'합죽이'의 뜻을 아시나요?

 자라나는 새싹들에게 '합죽이'가 되라고 하다니... 저는 다시는 이 말을 아이들에게 사용하지 않을 것입니다.
 자라나는 새싹들에게 '합죽이'가 되라고 하다니... 저는 다시는 이 말을 아이들에게 사용하지 않을 것입니다.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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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학식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이날 여러 차례 들었던 '합죽이'의 뜻이 궁금해 포털 사이트에서 뜻을 찾아보았습니다.

"이가 빠져서 입과 볼이 움푹 들어간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

문제가 있는 말이었습니다. 자라나는 새싹들에게 '합죽이'가 되라고 하다니... 저는 다시는 이 말을 아이들에게 사용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 단어를 사용하는 것에 대한 다른 분들의 생각을 알아보기 인터넷 카페 등을 찾아봤습니다.

'아이들이 너무 떠들면 수업을 진행하지 못하니 어쩔 수 없이 쓸 수밖에 없다.'
'예전부터 아이들을 조용히 시키기 위해 써 온 말이니까 괜찮다.'
'합죽이의 부정적인 뜻을 알고 나서 선생님께 쓰지 말자고 건의할까 하다가 내가 예민한 것 같아서 말하지 않았다.'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떠신지요? 우리 아이들은 앞으로 얼마나 더 '합죽이가 돼라'는 소리를 들을까요? 물론 장소와 상황에 따라 행동을 달리해야 한다는 등의 예절 교육을 받아야겠지만, 명령과 강요가 아닌, 외모를 혐오하는 표현이 아닌 방식으로 배웠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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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통해 생각을 표현하고 소통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사람 냄새나는 글을 쓰겠습니다. http://blog.naver.com/doctor29

라이프+ 여행·문화 담당 기자.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기 위해선 이야기의 힘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