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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혼자. 여행]은 혼자 여행하는 여성뿐 아니라 모든 여성의 여행법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담고자 합니다. 모든 여성이 당당하고 안전하게 여행을 지속할 수 있는 세상을 꿈꿉니다. - 기자 말

분노로 시작했던 첫 여행

첫 여행은 분노였다. 당시 24살이었고, 한 방송 프로그램의 막내작가였다. 동네 강아지도 무시할 법한 사회초년생 시절, 하필이면 악명 높은 방송 시스템의 맨 아래 계층이었던 것이다.

꿈에 그리던 방송일을 시작했지만 현실은 참담했다. 최저임금도 못 받으며 회사에서 먹고 자며 솔거노비로 사는 것도 서러운데, 심지어 만만한 나를 계속 괴롭히던 AD (assistant director)선배까지 있었다. 지금 같으면 그 선배의 머리채라도 낚아챘겠지만(여자였다), 안타깝게도 그런 고급 기술은 나이가 꽤 들고 나서 생겼다. (가끔 인생이란 못 만든 게임 같다는 생각이 든다. 꼭 필요할 때 필살기를 익힐 수 없는 구조인 걸 보면... )

어쨌든 현실에 절망한 솔거노비(24세, 여)는 처음으로 일요일 껴서 4일간의 여름휴가를 받았다. 주 5일제가 없던 옛날 옛적 이야기다. 첫 휴가는 받았지만 돈도 없고 어디로 가야할지도 몰랐다. 휴가 첫날, 방 안에서 배낭을 끌어안고 한참을 망설이다 결국 해남의 땅끝마을로 향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땅끝"이라니까. 당시로는 갈 수 있는 가장 먼 곳이었다.

출발은 했는데 문제는 어디서 잠을 자야 할지 몰랐다. 지금이야 게스트하우스를 갔겠지만 당시에는 그런 시설도 없었고, 숙박할 수 있는 곳은 호텔이나 모텔 정도밖에 없었다. 24살 숫기 없던 사회 초년생은 도저히 숙박업소에 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결국 고민 끝에 절에 찾아가 하룻밤 묵고 갈 수 있길 청했다. 해남 미황사였다. 다행히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흔쾌히 묵어가라고 해주셨다.

방에 짐을 풀고 절을 탐색했다. 여름학교 기간이어서 대웅전 안에는 초등학생들이 청개구리처럼 천자문을 외우고 있었다. 조용한 곳을 찾고 싶어서 절에서 조금 걸어나가 봤다. 이쪽으로 가면 부도밭이 있다고 했다. 난생 처음 혼자 걸어 보는 숲길은 기분 좋기보다는 두려움에 심장이 밖으로 튀어나올 정도였다. 워낙 겁이 많은 성격이고 특히 뱀을 두려워했다. 수풀 사이나 쌓여진 돌무더기에서 뱀이 튀어나올까 살피느라 식은땀이 줄줄 났다. 부도밭을 답사하고 돌아오자 어려운 임무를 완수한 것처럼 온몸에 아드레날린이 퍼졌다.

타지키스탄의 알라우딘 호수 (해발 3,300m) 뱀을 두려워하던 초보여행자는 10년 후, 해발 3,000미터는 별 고민없이 오르는 트래커로 성장합니다.
▲ 타지키스탄의 알라우딘 호수 (해발 3,300m) 뱀을 두려워하던 초보여행자는 10년 후, 해발 3,000미터는 별 고민없이 오르는 트래커로 성장합니다.
ⓒ 정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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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아침, 방안에서 웅크리고 누워 비 오는 소리를 들었다. 창문을 열어 보니 병풍처럼 서 있는 달마산이 보였다. 서울에선 전화벨 소리만 들리면 눈물부터 날 정도로 불안정했지만, 이곳에서는 눈물 흘릴 일이 없었다. 어제 서울을 벗어난 후로 쭉 혼자였고, 버스기사님이나 절에 계신 분들과 꼭 필요한 대화만 나누었을 뿐이었다.

아침 공양 후, 설거지를 좀 돕고 하산을 알렸다. 절에서 일하는 보살님은 삶은 감자를 비닐봉지에 싸서 내 손에 들려 주었다. 비닐봉지에 송송 맺힌 온기에 몸둘 바를 모르고 있는데 옆에 있던 중학생 여자아이가 내게 이렇게 말했다. 

"나도 언니 나이가 되면 혼자 여행해야지."

혼자 어디서 자야 할지도 모르는 초보 여행자였지만, 14살 아이 눈에는 24살의 내가 사뭇 대단해 보였나 보다. 나는 '언니 나이'라는 말을 곱씹었다. 24살이 될 때까지 스스로 한 번도 어른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 말을 듣고 나니 나는 '그래도 어른'인 것 같았다. 나에 대한 책임과 권리는 온전히 내게 있었다. 마치 어제의 내가 아무에게도 물어보지 않고 혼자 서울을 떠난 것처럼. 어쩐지 섭섭하기도 했고 또 한편으론 안도감이 들기도 했다.

그렇게 첫 여행은 시작되었다. 어리버리하던 초보 여행자에게 흔쾌히 잠자리를 허락해 주었던 미황사분들 덕분이었다. 물론 그때 며칠 혼자 여행 했다고 많은 것이 변하진 않았다. 우리는 언제나 인생의 강력한 한방을 원하지만, 사실 한 번의 여행으로 어디 삶이 쉽게 변하겠는가.

하지만 뱀이 나올까 살피며 걷던 그날의 산책이, 아침 안개가 자욱하던 달마산이, 가만히 울리던 풍경소리가, 방금 쪄내서 따뜻하던 감자 세 개의 온기가... 이 모든 것들이 스크래치가 잔뜩 나 있던 직장초년생의 마음을 달래 준 것만은 분명했다. 그리고 그 경험들이 가슴 속 크고 작은 상처들을 메우며 내 삶의 결을 형성하는 것도. 그땐 몰랐지만 돌이켜보니 그랬다.

혼자 놀기의 진수  아일랜드 더블린의 메리온 스퀘어에서 혼자 놀면서 찍은 사진.
▲ 혼자 놀기의 진수 아일랜드 더블린의 메리온 스퀘어에서 혼자 놀면서 찍은 사진.
ⓒ 정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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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혼자 떠나지 않는가

그렇게 분노의 첫 여행을 시작한 후, 많은 나라를 홀로 여행했다. 물론 부모님이나 친구, 연인과 여행을 할 때도 있지만 그 경우는 4~5박을 넘지 않는 짧은 여행이었다. 보통 짧게는 하루부터 길게는 6개월까지 대부분의 여행은 혼자 하는 것을 선호한다. 그러다 보니 '왜 혼자 떠나냐?'는 질문을 많이 듣는다.

물론 혼자 떠나는 여행에는 많은 단점이 있다. 가장 불편했던 기억을 더듬어 보면, 국내의 경우에는 맛집에서 1인상을 안 차려줄 때다. 식당에 쩌렁쩌렁 울리게 "혼자 오셨어요?" 라고 물어보며 테이블에 세팅되어 있던 식기를 도로 수거하는 건 어쩔 수 없다고 쳐도, 1인상은 아예 안 차려준다며 문전박대 당하는 경험은 정말 서럽다. 성탄절의 성냥팔이 소녀처럼 배고픔을 참으며 창 너머로 김이 폴폴 솟아오르는 식탁과 행복한 사람들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해외에서 가장 곤란했던 기억은 인도의 한 지저분한 기차역 화장실에 가야할 때였다. 이 커다란 배낭을 그대로 등에 메고 저 화장실에 쪼그려 앉았다가 자칫 중심이라도 잃으면... 내 인생은 저기서 마무리 지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생면부지의 인도 사람들에게 과연 내 배낭을 맡길 수 있을 것인가라는 갈등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안 그래도 외국인이 나 하나여서 저 갈색 얼굴에 하얀 눈동자의 사람들이 다 나만 보고 있는 상황이었다.

인도를 여행하다보면 흔히 생기는 일  어째서인지 카메라를 들고 있으면 처음보는 가족들이 사진을 찍어달라며 일렬로 포즈를 취한다.
▲ 인도를 여행하다보면 흔히 생기는 일 어째서인지 카메라를 들고 있으면 처음보는 가족들이 사진을 찍어달라며 일렬로 포즈를 취한다.
ⓒ 정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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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여행 내공이 쌓이면서는 이런 문제들은 가볍게 처리하게 되었다. 맛집에서 1인상을 안 차려준다고 하면 호기롭게 "그냥 2인분 주세요"라고 말한다. 이제 그 정도 호사는 부릴 수 있는 경비가 있고, 2인분쯤은 대수롭지 않게 먹을 수 있는 피하지방이 생겼다. 그리고 낯선 역에서 화장실을 가야 할 때는 인상 좋아 보이는 가족에게 옷가지와 침낭이 들어 있는 큰 배낭을 맡기고 여권, 지갑, 스마트폰 등 중요 물건이 들어 있는 작은 배낭만 들고 화장실에 다녀 온다.

하지만 여행 내공으로도 커버가 안 되는 나홀로 여행의  난점이 있다. 바로 혼자 있을 때 느끼는 어색함이다. 특히 여행 초반에는 어쩐지 사람들이 다 나를 쳐다보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된다. 사람에 따라 이 기분을 외로움이라고 인식하기도 하지만, 엄밀하게 이 기분은 '저 여자는 얼마나 인간관계가 안 좋으면 혼자 여길 다 와?'라는 외부의 시선에 주눅 드는 기분이다.

뿐만 아니라 목적지에 혼자 도착했을 때의 공허함, 치안에 대한 두려움, 혼자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감, 그리고 함께 기억을 나눌 사람이 없다는 외로움 등 혼자 떠나는 행위는 우리에게 이제껏 느껴보지 못했던 낯선 불편함을 제공한다.

외로워라 이 내몸은 뉘랑 함께 돌아갈꼬 키르기스스탄 나린에서 혼자 설산을 바라보는 아기양이 당시 내 심경과 비슷했다.
▲ 외로워라 이 내몸은 뉘랑 함께 돌아갈꼬 키르기스스탄 나린에서 혼자 설산을 바라보는 아기양이 당시 내 심경과 비슷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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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혼자 떠나는 이유

그럼에도 혼자 떠나는 여행은 앞에 열거한 단점을 쇄신시키는 매력이 있다. 가장 큰 장점은 동행을 기다리지 않고 내가 원할 때 여행할 수 있는 것이다. 사실 완벽한 동행을 만나는 길은 얼마나 험난한가.

동행 찾기의 가장 큰 난관은 여행 시기와 기간에 있다. 이 바쁜 현대사회에 내가 여행을 할 수 있을 때 같은 기간 동안 여행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또한 가고 싶은 여행지역이 일치해야 하고, 여행 목적도 비슷해야 한다. 박물관과 백화점을 즐겨 찾는 여행자가 대자연 속에서 트래킹을 사랑하는 동행자를 만나면 둘 다 불행해지고 만다.

여행스타일뿐 아니라 선호하는 숙소나 이동수단, 식성, 체력 수준도 고려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예산이 일치해야 한다. 각자 쓸 수 있는 금액이 다른 경우 양쪽 모두에게 불편한 상황이 연출된다. 동행을 배려한다는 이유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포기하거나, 아니면 상대가 배려할까봐 이쪽에서 먼저 눈치를 보는 사태까지 벌어진다.

나홀로 여행의 점심 러시아 바이칼 호수물에 발 담그고 혼자 도시락 라면을 먹었다.
▲ 나홀로 여행의 점심 러시아 바이칼 호수물에 발 담그고 혼자 도시락 라면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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뿐만 아니라 동행과의 여행은 그만큼 위험부담이 있다. 수많은 신혼부부가 여행 후 각자 돌아온다는 이야기는 단순한 우연만은 아닐 것이다. 안전하고 익숙한 터전을 벗어난 우리들의 약한 멘탈은 낯선 곳에서 예기치 못한 상황에 닥치면, 그만 숨겨 왔던 인성을 대방출해 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혼자 여행을 할 경우 동행의 주머니 사정을 고려할 필요도, 예기치 못한 상황 앞에서 낯빛을 가다듬을 필요도 없다. 나만 행복하면 된다! 숙소의 하얀 침대보가 마음에 드는 날이면 침대보를 둘둘 감고 해바라기를 하며 오전시간을 보낼 수도 있고, 이상하게 피곤한 날이면 3보 1카페 (3걸음 걷고 카페가기)를 할 수도 있다. 길을 좀 헤매도 괜찮고, 아까 찍은 사진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시 가서 마음에 들 때까지 찍으면 된다. 혼자 여행을 한다는 것은 이렇게 내가 가고 싶은 곳, 내가 먹고 싶은 것,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내 속도에 맞춰서 할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나 홀로 여행의 또 다른 장점은 후회하는 시간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정확히 후회를 안 하는 건 아니지만, 길게 후회하지 않는다. 만약 동행과 함께 여행하다 문제가 생기면 동행의 탓을 하거나, 동행을 힘들게 한 스스로를 자책할 것이다. 그러나 혼자 여행을 할 때는 남의 탓을 할 필요도, 자책을 할 필요도 없다. 이 모든 것은 나의 선택이며, 나의 책임이기 때문이다. 속은 쓰리지만 내 탓인데 어쩌리오. 그저 웃고 빨리 잊는 수밖에. 원래 인간은 스스로에게 관대한 법이다.

실수로 주문한 2인분의 스테이크 키르기스스탄 비슈케크에서 실수로 스테이크 2인분을 주문했다. 어찌하겠는가. 내 잘못인데. 그냥 혼자 다 먹었다.
▲ 실수로 주문한 2인분의 스테이크 키르기스스탄 비슈케크에서 실수로 스테이크 2인분을 주문했다. 어찌하겠는가. 내 잘못인데. 그냥 혼자 다 먹었다.
ⓒ 정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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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가끔씩 물밀듯이 엄습해 오는 외로움이 성가시긴 하지만 사실 이 외로움은 내가 얻은 자유의 부산물이기도 하다. 외로운 기분이 들 때면 차라리 만끽해 보는 방법도 있다. 석양을 보며 아스라이 이어질 뻔했던 옛 썸을 생각하며 갖은 청승을 다 떨어보는 것이다. 그리고 동행과 여행할 때보다 혼자 여행을 할 때 새로운 사람을 만나 친분을 쌓을 기회가 높아진다. 옆자리가 빈 만큼 여행지의 풍경이나 사람, 정취를 끌어 담을 여유가 생기는 것이다. 이렇듯 혼자 하는 여행은 다양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이름이 없는 곳에서 자유롭게 숨쉬기

혼자 하는 여행은 혼자 책임지고 꾸려나가는 작은 삶이기도 하다. 단지 여행지의 삶이 현실의 삶과 차이가 있다면 그 곳의 삶은 한국에서 내가 지녀 왔던 역할에서 자유롭다는 것이었다. 여행지에서 나는 누군가의 착한 딸도 아니고, 말 잘 듣는 후배도 아니고, 성격 좋은 친구나 포용력 있는 연인도 아닌 '그냥 나'로 있을 수 있다.

사실 우리는 관계 속에서 서로의 존재를 인정받고 안정감을 느끼고자 한다. 때문에 무시 받거나 따돌림 당하는 경험이 큰 상처로 남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나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주변에 없다는 것은 불안한 경험이기도 하다.

하지만 막상 온전히 혼자 있어 보니 '그냥 이런 나'여도 괜찮았다.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이 없어도, 나를 불러 주는 사람이 없어도 얼마든지 혼자 삶을 꾸려나갈 수 있었다. 가족이나 동료, 친구에게 인정받기 위해 애쓰지 않아도 됐다. 한국에서 딸로 태어나 여자아이로 자라나며 당연하다고 여긴 것들에 대해 다시 살펴보고 스스로 생각해 보게 되었다.

무엇보다 결혼, 직업, 수입, 인간관계 등 내가 타인으로부터 차별과 무시를 받고 싶지 않아서 끙끙 앓던 것들이 국경을 넘는 순간 그 가치를 잃었다. 마치 마법이 풀린 것 같았다. 타인을 의식하는 자신에서 벗어나자 좀 더 자신과 주변이 예민하게 다가왔다. 혼자 되었을 때 비로소 '이것이 나구나'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스리랑카 닐람베 명상원에서  호칭이 사라진 세계는 좀 더 자신과 주변을 예민하게 느낄 수 있게 만든다.
▲ 스리랑카 닐람베 명상원에서 호칭이 사라진 세계는 좀 더 자신과 주변을 예민하게 느낄 수 있게 만든다.
ⓒ 정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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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여행을 한다는 건 그런 것들이었다. 익숙한 세계에서 벗어나 온전한 나 자신을 느껴 보는 것, 타인의 시선에 연연해 하지 않는 것, 누구의 딸도 지인도 아닌 상태가 되어 보는 것, 당연하게 여겨온 것에 새로운 시선을 가지는 것, 모든 것을 혼자 해낸다는 성취감을 느끼는 것, 누구도 배려하지 않고 지금 내가 가장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보는 것... 이런 순간들이 차곡차곡 쌓여 여행의 결을 형성하고, 그것이 삶의 결을 이루었다. 그래서 계속 혼자 여행해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24살의 첫 여행에서 시간이 꽤 흐른 지금, 가끔 미황사의 그 아이 생각을 한다. 14살 여자아이는 24살이 되었을 때, 혼자 여행할 수 있었을까? 부모의 반대는 어떻게 풀어냈을까? 여행을 시작하기 전, 수많은 걱정과 자기 부정을 떨쳐낼 수 있었을까? 기꺼이 낯선 곳으로 떠나 산을 오르고 바다를 탐험하던 이야기 속 영웅처럼 스스로를 시험해 볼 수 있었을까?

지금 다시 그 아이를 만난다면 하고 싶은 말이 많다. 혼자 여행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고. 네가 가고자 하는 지점에 원하는 방식으로 도착하면 되는 거라고. 그리고 여행하는 동안은 그냥 너만 생각하면 된다고, 그렇게도 한 번 살아보라고... 그렇게 이야기해 주고 싶다. 사실은 여자 혼자 여행하는 것 따위 아무 것도 아니라고.

p.s 아참, 위에서 미처 언급하지 못한 나 홀로 여행의 단점이 있다. 여자가 혼자 여행한다고 무슨 사연이라도 있는지 넌지시 물어보는 사람들이다. 뭐, 파란만장한 실연사라도 읊어드려 그 기대에 부응하면 좋겠지만, 이쪽도 요즘은 아예 사연이 안 생겨서 고민인지라... 여자 혼자 여행한다고 별 사연 있는 게 아니니, 제발 그만 좀 물어보셨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인생은 실전, 여행도 실전.
여행에 대한 막연한 환상보다 안전하고 당당한 여성의 여행법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다음 연재는 '여자 혼자 여행하기 좋은 나라 & 나쁜 나라'에 대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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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작가, 여행작가. 저서 <당신에게 실크로드>, <남자찾아 산티아고>, 사진집 <다큐멘터리 新 실크로드 Ⅰ,Ⅱ> "달라도 괜찮아요. 서로의 마음만 이해할 수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