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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8일은 세계여성의 날이다. 1975년 UN 공식기념일로 지정되어, 세계 170개국에서 이날을 축하한다. 작년부터 나 역시 지인들에게 생일 대신 이날에 장미꽃을 달라고 했다. 최근 몇 년 '페미니즘 리부트' 시대를 떠들썩하게 통과하며, 새삼 '지금-여기' 여성으로서의 삶을 서로 격려하는 날이 필요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여성의 날은 세계적으로 110주년이 되었고, 한국에서도 1985년부터 한국여성대회가 개최되어 올해 제34회를 맞이한다. 민족 · 민주 · 민중, 민주화, 평화, 성평등 등 해마다 시의적절한 이슈를 제기하며, 연인원 천 명이 넘게 참석하는 대규모 행사로 자리매김했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일상의 차원에서 이날의 의미를 되짚는 데까지는 나아가지 못했다. 어버이날에 맘먹고 카네이션을 사고 안부전화를 하며, 밸런타인데이에 장난스레 초콜릿을 건네는 정도만큼의 실천이 없는 것이다.

반면 한반도의 또 다른 한쪽에서 '국제부녀절'은 공휴일이다. 하루 종일 관련 행사가 떠들썩하게 중계되며, 작업장에 따라 반나절의 휴식도 보장된다. 북한에서 이날은 1946년 남녀평등법 제정 이후 기념하기 시작해, 이번 2018년에 108주년을 맞는다. 이러한 차이는 세계여성의 날과 국제부녀절이 각기 다른 연원을 지목하기 때문인 듯하다. 한국은 1908년 미국의 '루트거스 광장'에서 여성들이 생존권과 참정권을 요구했던 대대적인 시위를 이날의 유래로 꼽는다. 한편 북한은 1910년 사회주의 제2인터내셔널에서 여성혁명가 클라라 제트킨 등이 제안한 국제 여성의 날(International Women's Day)을 그 시초로 보는 것이다.

이러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남과 북의 3월 8일은 모두는 동등한 선거권과 노동권을 요구하는 여성들의 목소리로 전해졌다. 그리고 1917년 러시아혁명이 시발점이 된 3월 8일 여성들의 페트로그라드 거리 시위 이후, 이제 '3 · 8'은 하층계급과 여성, 나아가 피억압 민족의 해방까지를 아우르는 상징이 되었다. 그리하여 식민지 조선에서 '국제부인데이'나 '무산(無産)부인의 날'의 어떤 기념행사도 금지되고 관련 기사도 검열되기 일쑤였다.

근대성에 도전한 집단적 여성들의 '국제부인데이'

그렇기에 1946년 해방 후 첫 '국제부인데이'는 좌우할 것 없이 여성단체들이 공통으로 기념했다. 단 하루가 아니라 3월 1일부터 8일까지 일주일간 부녀해방투쟁기념주간으로 선포됐다. 민족해방에 이어 "우리(여성)는 완전한 해방을 위하여 한 번 더 돌진하자"는 다짐이 강조됐기 때문이었다. 강조컨대 여성의 날은 자본주의와 제국주의를 핵심으로 하는 근대성 자체에 도전하는 집단적 존재로서 여성을 주장한다. 이 과정에서 전 세계 피압박 민족과 하층계급 노동자를 비롯한 소수자들과의 연대가 시야에 들어왔던 것이다.

그러나 식민과 전쟁, 그리고 분단과 냉전체제 하 한국에서 이 맥락은 희미해졌다. 반공아시아 초남성적 개발독재 정권에서 아예 사회주의적 근 기원을 가진 여성의 날은 삭제됐다. 대신에 5월 8일 어머니의 날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애초 전쟁으로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어머니들이 서로의 슬픔을 위로하기 위해 이날에 만났다고 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1956년부터 전통적인 효 사상을 강조하며 지정되어, 1973년에는 아예 노인공경을 아우르는 효행의 미덕을 강조하는 어버이날로 확대됐던 것이다. 그리하여 현재 한국에서 어머니의 날은 없고, 다시 세계여성의 날이 있다.

이제, 다시 서로에게 장미꽃을 건네야 할 때

그리하여 이제 우리는 어떠한 '3 · 8'을 맞을 수 있을까. 전 세계적인 신자유주의 전개를 배경으로, 배타적인 혐오와 차별이 더해지고 있다. 이러한 때에 다시 세계여성의 날이 주목되는데, 이는 작년 SNS 페이스북에서 최다 언급된 화제이기도 했다. 같은 맥락에서 혼인평등을 비롯한 성소수자들의 인권도 소리 높여 주장되는데, 작년 한국은 다른 풍경에 맞닥트렸다. 헌정 사상 최초로 '여성대통령'이 탄핵되고,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장미대선에 승리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동성애가 '종북(縱北)' 대신으로 종주먹을 대며 반대해야 하거나, '나중에' 다뤄야할 이슈가 된 것이다.

이제 2018년, 페미니즘을 향한 백래시(backlash)가 감지되고, 종종 여성들 사이에서도 다른 소수자를 향한 혐오발화가 전략적으로 주장되기도 한다. 그렇기에 올해 '3 · 8'은 더욱 모든 억압과 차별에 반대하는 존재로서 여성을 주장했던 의미를 되새기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마지막으로 지난 수년간 세계여성의 날 기념 한국여성대회를 주관해온 여성단체연합의 최근 성명을 인용하자면, 민주주의는 성평등 없이 완성되지 않는다. 그리고 "사회적 소수자의 인권 없이는 성평등도 없다". 다시 또, '3 · 8'을 맞이하여, 우리 서로에게 장미꽃을 건네자.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류진희님은 성균관대 강사 입니다. 동아시아학과에서 한국문학을 전공했습니다. 탈/식민 서사, 장르, 매체를 횡단하는 여성들의 목소리와 매체/장르/언어를 횡단하는 여성들의 목소리에 관심 있습니다. 『양성평등에 반대한다』, 『소녀들』, 『그런 남자는 없다』를 같이 썼습니다. 이 글은 월간<참여사회>3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태그:#여성의날, #미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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