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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탄핵과 조기대선 후 처음 치러지는 지방선거. 새판을 짤 수 있을까요? 다양한 배경과 정당에서 6.13 지방선거에 도전하는 청년 정치인들의 삶과 포부를 들어봤습니다. [편집자말]
10대 시절을 HOT에 빠져 보냈고, 직장생활하면서는 서태지에 빠졌던 김소희. 지금은 정치에 빠져 정당의 공동대표까지 올랐다. 지금은 우리미래 공동대변인.
▲ 우리미래 공동대변인 김소희 10대 시절을 HOT에 빠져 보냈고, 직장생활하면서는 서태지에 빠졌던 김소희. 지금은 정치에 빠져 정당의 공동대표까지 올랐다. 지금은 우리미래 공동대변인.
ⓒ 손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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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까지 우릴 자신들의 틀에 맞춰야만 직성이 풀리는지
하루 이틀 날이 갈수록 우린 지쳐 쓰러질 것 같아
난 내 세상은 내가 스스로 만들 거야
똑같은 삶을 강요하지마
내 안에서 꿈틀대는 새로운 세계 난 키워가겠어
we are the future!

HOT의 'We are the Future' 중에서-

전형적인 '경상도 사나이'였던 소녀의 아버지는 자식과의 대화에 서툴렀다. 중3이 된 딸과 대화하다 막히면 자기도 모르게 "여자가 어디서", "어른이 말하는데"가 튀어나왔다. 소녀는 이해할 수 없었다. 아버지와 한바탕 말싸움을 하고 화가 나서 찾아간 친구는 방송국 앞에서 HOT의 공연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날로 소녀는 'HOT'의 광팬이 됐다.

10대 시절 모든 것을 지배했던 '오빠들'이 어느 날 갑작스레 해체를 선언하자, 상실감이 너무 컸다. 그래도 그들이 남긴 노랫말은 힘들 때 다시 일어설 힘이 되어 주었다. 그리고 30대 중반에 접어든 지금, 하얀색 우비와 풍선을 들고 '오빠들'을 밤새워 기다리던 소녀는 떼창으로 따라 불렀던 노랫말처럼 '이 세상을 스스로 만들기 위해' 정당을 만들었다.

얼마 전 언론에서 크게 다뤘던, 기초의원 한명 없는 생 초짜 정당이 원내 3당과 맞서 이긴 일명 '미래당 배틀'의 주역, 우리미래 공동대변인 김소희(34세. 전 공동대표)씨 이야기다.


"'곗돈' 사기... 최악의 위기에서 발견한 터닝 포인트"

대학 졸업과 함께 건축사무소에서 도시설계하는 일을 했던 김소희씨는 애초 학생운동이나 정치와 거리가 먼 평범한 사회 초년생이었다. 우연히 들은 서태지의 '컴백홈' 리믹스에 빠져 이번엔 서태지 덕후가 됐다. 전국 순회 콘서트가 열릴 때면 서너 번씩 공연을 쫓아 다니고 앨범과 기념품을 사기 바빴다. 한번 연예인에 빠지면 엄청나게 몰입하던 그녀가 왜 이번에는 정치에 빠져들게 되었을까?

"28살이 되면서 인생의 큰 위기가 찾아왔어요. 그동안 직장생활 하면서 모은 돈으로 세계일주를 해볼까 고민하고 있을 때죠. 그런데 제가 돈을 좀 불려 보려고 들었던 계의 계주가 사기를 치고 도망을 갔어요. 부모님이 벌어두신 돈도 같이 넣었는데 하루아침에 날아갔죠.. 정신없이 수습하고 있는데 이번엔 다니던 회사가 법정관리에 들어간다는 거예요. 당시 건설 쪽 경기가 너무 안 좋을 때였거든요."


엎친 데 덮쳤다. 감당하기가 쉽지 않았다. 김소희는 그때 사람이 자살을 할 때 꼭 크게 결심을 하고 하는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온몸을 휘감은 무기력은 자연스럽게 죽음을 떠올리게 했다. 살아야 하는데 월급이 나오지 않으니 빚이 늘어 갔다. 그녀를 부여잡았던 것은 혹시 부모님이 잘못된 선택을 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었다. 부모님이 조금씩 안정이 되자 이번엔 자신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가만히 있으면 미칠 것 같고 위험한 선택을 할 것 같았어요. 그래서 무조건 나가서 뛰었어요. 강변을 따라서 뛰고 또 뛰는 생활을 매일 반복한 것 같아요. 그러다가 문득 '이왕 뛸 거면 대회에 나가서 도심 한가운데에서도 뛰어보자'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주말마다 마라톤 대회에 신청하고 나갔는데, 유명 브랜드가 주최하는 마라톤 행사에도 참여했어요. 추첨해서 4명을 미국에서 진행되는 마라톤 행사에 보내주는 이벤트를 하더라고요."

물론 기대는 없었다. 그런데 두 명이 뽑힌 후에 세 번째 추첨자가 나오지 않았다. 일찌감치 포기하고 집에 간 사람들 덕분에 몇 번이고 다시 뽑았다. 그러다 결국 나온 그녀의 번호. 

"제 번호가 딱 불리는 순간 '아 죽으라는 법은 없구나. 사기 당해 외국 여행도 못가나 싶었는데 이렇게 가보는구나' 싶더라고요. 이때가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된 것 같아요."

뭔가 바닥을 친 느낌이었다. 이후 삶의 태도가 달라졌다. 막연한 내일을 위해 오늘의 행복을 미루지 말고, 바로 오늘을 행복하게 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랬더니 이번엔 자신을 둘러싼 세상이 보였다. 국정원의 대선개입과 밀양송전탑, 4대강, 세월호 사건이 어지럽게 등장하던 시절이었다.

HOT와 서태지에 빠졌던 그때처럼, 김소희는 이제 세상일에 빠졌다. 각종 북콘서트와 인문학 강좌를 찾아다녔다. 당시 유행했던 팟캐스트 '나꼼수'도 빼놓지 않고 들었다. 세월호, 4대강, 밀양 송전탑에도 찾아갔다. 태도가 달라지니 세상을 보는 눈도 조금씩 달라졌다.

"가끔 사기 친 계주가 은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우리 부모님 세대는 집사는 게 인생의 목표였잖아요? 그런데 아파트 보증금까지 한 순간에 날아가는 걸 경험해 보니까 돈이나 집이 인생의 목표가 되면 안 되겠더라고요. 그것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을 찾고 싶고, 그러다보니까 청년문제, 사회문제, 통일문제에 관심이 갔어요."

미래당 배틀... 긴박했던 24시간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이 합당하며 추진했던 미래당이라는 이름은 단순히 정당이름에 불과하지 않았다. 100시간 철야 1인시위를 계획했지만 24시간만에 이겼다.
▲ 미래당 배틀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이 합당하며 추진했던 미래당이라는 이름은 단순히 정당이름에 불과하지 않았다. 100시간 철야 1인시위를 계획했지만 24시간만에 이겼다.
ⓒ 우리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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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가치 있는 것'을 향한 욕구는 청년정당을 표방하는 '우리미래'의 창당으로 이어졌다. 2017년 3월 20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정국을 강타하던 그때다. 왜 하필 정당이었을까?

"원래 꼭 정당을 만들 생각은 아니었는데... 2016년 6월 즈음에 몇몇 친구들이 모여서 '청년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청년들이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것에 뜻을 모았어요. 뭘 할지는 안 정했고. 그런데 박근혜 게이트가 터지니까 사람들의 생각이 정치활동으로 확 쏠리는 거예요.(웃음) 그때 2012년에 '청년당'을 해본 친구들이 '정당을 만들자'고 하니까 좋다고 했죠. 처음에는 정당이 별로 어렵지도 않고 재미있을 것 같았거든요. 이럴 줄 알았다면...(웃음)"

'이럴 줄 알았다면' 창당을 하지 않았을까? 한국의 정당법은 정당을 만들라는 법이 아니라 만들지 말라는 법에 가까웠다. 그래도 촛불정국은 발기인 1천명과 창당에 필요한 5천명을 순식간에 채워 주었다. 탄핵촛불의 열기 속에 청년정당을 표방하는 '우리미래'가 창당됐다. 창당도 어려웠지만 창당 이후는 더 어려웠다. 1년도 안 되어서 바로 위기가 왔다.

"2월 2일에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의 통합신당이 당명을 '미래당'으로 한다는 기사가 떴어요. '아, 이거 눈 뜨고 이름 뺏기겠구나' 싶어서 바로 약칭 등록 절차에 들어갔어요. 상임위원회, 임시전국운영위원회, 당규개정 절차를 정신없이 밟고 났더니 정신차려보니까 월요일 오후 5시 30분이더라고요. 택시 타고 선관위에 가니까 6시 2분이었는데, 5분 뒤에 국민의당 약칭 변경서류를 바른정당 원내대표 보좌관이 가지고 왔어요."

선관위는 둘 다 오후 6시가 넘었으니 다음날 동시 등록하겠다고 했다. 우리미래는 다음날 바로 기자회견을 하고 국민의당 당사 앞에서 100시간 철야 1인 시위를 시작했다. 대구, 부산, 광주... 전국에서 당원들이 올라왔다. 

"국민의당 당사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는데 (국민의당) 당직자들이 내려와서 그러더라고요. '정말 100시간 할거에요? 어차피 아무도 안 보는데 대충 하세요', '미래당을 쓰고 싶으면 우리랑 합당하면 되겠네.' 너무 화가 나더라고요. '그래? 그동안 당신들은 보여주기 식으로 해왔단 말이지?', '합당이 그렇게 쉬워? 우리는 당원가입서 한명 받으려고 그렇게 고생했는데... 이건 그냥 당명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미래'를 누구 손에 맡길 것인지의 문제에요. 기성세대가 아니라 청년 스스로 우리가 꿈꾸는 진짜 미래를 만들어야죠."

1인시위를 언론이 주목하자 선관위는 24시간 만에 우리미래의 손을 들어줬다. 기초의원 하나 없는 신생 청년정당이 원내 3당을 상대로 한 값진 승리다. 결과적으로 국민의당이 '우리미래'의 일등 홍보대사가 된 셈이다.

"통일, 머리에 쇠사슬 대신 날개 다는 일"

우리는 여전히 분단의 쇠사슬을 달고 살고 있다. 통일이 된다면 우리 머리에 쇠사슬대신 날개가 달릴 것이다. 2017년 12월 23일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만인의 바람, 평화를 합창하다. 2017 한반도 평화대회'에 참석한 김소희씨.
▲ 머리속의 사슬을 끊고 우리는 여전히 분단의 쇠사슬을 달고 살고 있다. 통일이 된다면 우리 머리에 쇠사슬대신 날개가 달릴 것이다. 2017년 12월 23일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만인의 바람, 평화를 합창하다. 2017 한반도 평화대회'에 참석한 김소희씨.
ⓒ 우리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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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미래 공동대표를 그만두고 이제 '공동대변인'이 된 김소희는 올해 지방선거를 앞두고 새로운 도전을 준비 중이다. 그가 살고 있는 도봉구에서 구의원으로 출마한다. 정치경력이 매우 짧은 청년 여성 정치인이 거대정당과의 정면승부에 승산이 있을까?

"구의원에 출마한다니까 친구들이 '와~ 너 출마해? 대박! 그런데 구의원이 뭐야?' 이래요.(웃음) 사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저도 그랬어요. 정치인이 뭘 하는지 관심도 없고 아는 것조차 피곤하고... 그런데 제가 해보니까 정치가 어렵거나 피곤한 것이 아니라 우리 삶을 치유해 줄 수 있는 것이더라고요. 사람들에게도 이걸 느끼게 해주고 싶었어요. 비싼 차타고 다니시는 분들보다 매일 지하철 타고 출퇴근 했던 제가 하면 다르지 않을까요?"

한번 빠지면 끝까지 몰입하게 된다는 '도봉구 금사빠(금방 사랑에 빠지는 사람)' 김소희. HOT나 서태지에 몰입했던 그 때처럼 지금은 지역과 정치에 빠졌다. 예전 같으면 지옥철을 타면서 힘들다는 생각만 했겠지만 지금은 지방분권과 '사람이 있는' 개발을 떠올리게 된다는 그녀. 과연 정치를 통해 그가 만들고 싶은 세상은 어떤 것일까?

"사실 정말 하고 싶은 건 청년들이 통일의 주역이 되는 거에요. 전에 독일에 갔을 때, '통일된 나라에서 살면 어때?'하고 물어보니까, 그 친구들은 어리둥절해 하더라고요. 청년들은 이미 통일된 나라에서 태어났으니까. 그러더니 '우리는 통일된 독일은 모르겠고 유럽을 생각해'하더라고요. 아, 우리도 통일되면 다음 세대는 통일된 한국이 아니라 '동북아'를 꿈꾸면서 살겠구나... 통일이 되면 복지나 임금인상을 말해도 빨갱이라고 하는 것처럼 머리에 쇠사슬을 채우는 게 아니라 날개가 달리지 않을까요?"

청년의 머리에 쇠사슬 대신 날개가 달린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우리미래와 도봉청년 김소희의 도전에서 그 실마리가 보일 지도 모른다.


태그:#김소희, #우리미래, #청년, #지방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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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보다는 공통점을 발견하는 생활속 진보를 꿈꾸는 소시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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