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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겨울 내내 흐리거나, 추웠다.

올겨울의 흐림은 미세먼지의 작용이니 사회적 현상이라 할 것이고, 춥다는 것은 자연적 현상이다. 그러나 아무 상관없는 두 가지가 미치는 영향은 같다. 사람들은 집에 갇히고 활동의 제한을 받으며 건강을 해친다. 살기 힘든 환경이라는 점에서 두 가지에 근본적인 차이는 없다.

그리고 그 겨울의 끝에 나는 시집 한 권을 받아들었다. 천은영 시인의 첫 시집 <먼지는 언제 잠드는가>. 그 시집을 세 번째 읽고 있다.

돌이켜보면 내가 언제 시집을 손에 잡았는지 까마득하다. 좋아하는 시인을 물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떠올리는 이름들도 이미 수십 년을 격한 시인들일 것이다. 가장 최근에 읽은 시집이 뭐냐고 하면 선뜻 대답하기 어려울 만큼 시가 우리의 일상에서 멀어진 지 오래다. 여전히 시집은 쏟아져 나오고 누군가는 시인이란 이름을 달고 계속 시를 쓰는데, 시가 그들만의 리그처럼 느껴지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명색이 국어교사인데도 말이다.

책 표지
▲ 먼지는 언제 잠드는가 책 표지
ⓒ 이미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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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아주 흐린 날, 나는 한 권의 시집을 손에 들었다. 표제작 '먼지는 언제 잠드는가'는 이렇게 시작한다.

"오늘 미세먼지는 나쁨입니다/ 노약자는 가급적 외출을 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런 날이었다"
그런 날 시인은 이렇게 말한다.

"그런 날에는 일찌감치/ 자리에 누웠다/ 관 속에 다리를 뻗고/ 흙먼지들이 모두 가라앉을 때까지/ 내 영혼은 헛되이 떠돌다/ 먼저 지쳐서 돌아오곤 했다"
잠들지 않는 먼지 속에서, 이 삭막하고 메마른 터전에서 나의 지친 영혼은 시집 속 서정의 세계로 다리를 뻗었다. 시인의 관(棺)이 독자에게는 영혼을 적셔 주는 우물이 된 셈이다.

천은영 시인이란 이름은 낯설다. 그의 약력에는 1993년 월간 현대시 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고 되어 있다. 첫 시집을 내기까지 25년의 시간이 필요했다면, 지나친 과작(寡作)의 소유자거나 밑천이 얄팍한 재능으로 시인이란 허명(虛名)을 끌고 온 것이 아닐까.

그러나 시집을 채운 56편의 시들의 깊이는 그런 우려를 단박에 불식시킨다. 깊고도 넓은 갈망의 바다가 펼쳐져 있고, 시집에 수록된 56편이 그 일부에 지나지 않으리라는 것이 느껴져 온다. 아마도 고르고 골랐으리라. 그가 건너 온 흐린 날들의 시간 속에서 후둑후둑 떨군 시들을 그러안고 살아오다가 조심스럽게 갈무리한 것이 아닐지.

흔히 '시가 깊이가 있다'고 할 때의 '깊이'란 시의 함축적 의미가 풍부하다는 것이고, 이는 시의 상징성과 직결되며, 시의 상징성은 곧잘 난해성으로 연결되기 쉽다. 시집이 두께는 얄팍하지만 소설처럼 쉽게 페이지를 넘기기 어려운 이유는 그 때문이다.

그러나 이 시집은 쉽게, 빨리 읽힌다. 시행 사이에서 많은 머뭇거림이 필요하지 않다. '바람같이 쉬운 시'를 지향하는 시인은 "비 오면 아프다고/ 바람 불면 쓸쓸하다고/ 지금까지 함께 걸어온 낡은 신발 벗어버리고/ 맨발로 걷고 싶다고/ 해 지는 창가에 앉아" 시를 썼다.

일상의 익숙한 언어와 우리가 사는 세계의 정상적 논리 구조를 벗어나지 않는 문법으로 시공을 뛰어넘는 인류 보편의 감정 '사랑'을 노래하고 있다. 그것도 '낡은 신발을 벗어버리'듯 새로운 감수성으로 인간의 근본적인 갈망에 천착하고 있다.

그런 깊이에도 불구하고, 이 시집에 수록된 시들은 대개 길지 않다. 가장 짧은 시는 4행에 불과하다. 길이가 깊이를 대변하는 것이 아니며, 시가 생략과 압축의 문학으로 감정의 긴 여운을 만들어내는 것임을 천은영의 시는 잘 보여주고 있다.

'사랑시'의 절창

서정시가 서정(抒情)으로 교감하지 못하는 '현대시'의 홍수 속에서 교과서적인 시의 개념을 나는 천은영의 시에서 발견했다. 감히 '서정시의 복원'이라고 이야기한다면 과한 찬사가 될까. 나 역시 시를 씁네 하는 사람으로서 부러운 능력이 아닐 수 없다.

이 시집의 성격은 한 마디로 연가(戀歌)라고 할 수 있다. 이 시집은 연가집이다. '사랑시'라고 하면 대개 떠오르는 시인은 누구일까? 나는 소월이 떠오른다. 떠나가는 사람에 대한 정한을 노래한 대표작 <진달래꽃> 외에도, 잊을 수 없는 사랑에 대한 미련을 다룬 "못 잊어 생각이 나겠지요/ 그런대로 한 세상 지내시구려/ 사노라면 잊힐 날 있으리다// 못 잊어 생각이 나겠지요/ 그런대로 세월만 가라시구려/ 못 잊어도 더러는 잊히오리다// 그러나 또 한긋 이렇지요/그리워 살뜰히 못 잊는데/어쩌면 생각이 떠지나요?"(김소월, <못 잊어>)나, "먼 훗날 당신이 찾으시면/그 때에 내 말이 잊었노라/당신이 속으로 나무라시면 무척 그리다가 잊었노라/그래도 당신이 나무라시면 믿기지 않아서 잊었노라/오늘도 어제도 아니 잊고/먼 훗날 그 때에 잊었노라"(김소월, <먼 후일>) 같은 시들에 담긴 애절한 비련(悲戀)은 사랑시의 절창(絶唱)이라 아니할 수 없다.

천 시인의 시집은 "일탈을 꿈꾸는 선풍기/ 대체 저놈은 어디를 가고 싶은 것이냐"며 쳇바퀴 같은 일상의 부조리를 지적한 <선풍기에 대하여>나, 김치냉장고 속에 묵혀둔 채소들이 상한 것을 보고 "허리를 구부려 냉장고 속을 닦으며/ 네 속도 많이도 썩었구나/ 행주질을 하고 또 했다"처럼 인고의 시간들로 이루어진 삶의 아픔을 다룬 <김치냉장고를 닦으며>와 같이 시인의 일상에서 길어 올린 삶의 애환을 다루기도 하고, '밥보다 약을 더 많이 먹었던'(<대학 시절>) 아픈 시대, '미친 여자의 미칠 것 같은 욕설'(<미친 여자>)처럼 폭력적이었던 시대 상황을 그리기도 하지만, 그의 시의 본체는 '사랑'에 있다.

"내가 너를 만나기 전부터/ 나는 네게로 던져졌다"는 충격적인 고백으로 시작하는 시 <피투성(被投性)>, "지친 내 발길이 어느 날/ 네 문 앞에 멈췄을 때,/ 그때, 알았다// 그 길이 네게로 기울고 있다는 걸/ 기울어진 모든 길은/ 네게로/ 향한다는 걸"이라며 사랑이야말로 생의 궁극(窮極)임을 노래한 <기울어진 길> 같은 작품들 앞에 나는 요동치는 감정의 환류(還流)를 느꼈다.

인간의 보편적 감정이자 원초적 갈망에 대하여 이토록 직설적으로, 이토록 격렬하게 토로한 경우는 흔치 않다. '고질병'처럼 끈질기고 뽑히지 않는 '티눈'처럼 악착같은 그리움과 완강한 미련에 사로잡힌 사랑의 열병은 시집 표지의 색처럼 붉다. 사랑을 갈망하는 이의 허기진 마음을 노래하는 시인으로 소월 아랫자리에 천은영의 사랑시를 올려도 무방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조차 든다.

과학적으로는 '10마이크로미터 이하의 아주 작은 크기를 가진 입자상 물질'로 정의되는 '미세먼지'는, 문학적으로 표현하면 '번거롭고 속된 세상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인 '홍진(紅塵)'이 될 것이다.

홍진 가득한 세상에서 빛을 구하듯 사랑을 갈구하며 채워지지 않는 그리움을 노래하는 천은영의 시는 슬프고 아름답다. 쉽게 읽혀 금세 공감할 수 있으면서도 의미가 깊고 표현이 독특하여 곱씹어보게 되는 시가 좋은 시라면, 천은영의 시는 드물게 만나는 좋은 시이다. 감히 '소월 대신 은영'을 운위하기야 어렵겠지만, 소월처럼 쉽게 읽히고 마음을 파고들며 어떤 구절들은 수첩에 적어 놓고 싶게 만드는 시라는 점은 분명하다.

미세먼지로 마음조차 흐려 사막같이 숨이 막히는 날, 천은영 시인이 펼쳐놓은 피투성이 그리움의 세계에 잠겨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도대체 먼지는 언제 잠드는가/ 언제 잠들 것인가"(<먼지는 언제 잠드는가> 중에서).


먼지는 언제 잠드는가

천은영 지음, 현대시(2018)


태그:#천은영, #먼지는 언제 잠드는가, #연가, #사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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