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더 포스트>(2017) 한 장면

영화 <더 포스트>(2017) 한 장면 ⓒ CJ엔터테인먼트


남편의 자살 이후 집안의 가업인, 신문사 '워싱턴포스트(The Washington Post)' 운영을 맡게된 캐서린(메릴 스트립 분)은 직함만 발행인일 뿐, 그녀 혼자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거의 없다.

언론사 사주라고 해도 회사의 중요한 안건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독단적으로 결정할 수는 없겠지만, 캐서린 같은 경우 여자라는 이유로 경영자의 자질까지 의심받는다. 어찌되었든 자신을 대놓고 무시하는 남자 이사진들의 도움으로 워싱턴포스트를 주식 시장에 상장 하는데 성공한 캐서린은 뉴욕타임스의 '펜타곤 페이퍼 특종 보도'라는 암초를 만나게 된다.

뉴욕타임스가 트루먼, 아이젠하워, 케네디, 존슨에 이르는 네 명의 대통령이 30년간 감춰온 베트남 전쟁의 비밀을 폭로하는 특종을 내놓자, 닉슨 정부는 관련 보도를 금지시키고 법원에 뉴욕타임스를 기소한다.

이때 워싱턴포스트 편집장인 벤(톰 행크스 분)은 펜타곤 페이퍼 후속 보도에 사활을 걸고, 끝내 베트남 전쟁의 진실이 담긴 정부기밀문서 '펜타곤 페이퍼'를 입수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뉴욕타임스가 당한 것처럼, 워싱턴포스트에 가해질 정부의 보복이 만만치 않아 보인다. 편집장 벤과 기자들의 펜타곤 페이퍼 보도 의지가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한 가운데, 워싱턴포스트 발행인 캐서린은 회사와 자신의 운명을 건 엄청난 결정을 내려야만 한다.

 영화 <더 포스트>(2017) 한 장면

영화 <더 포스트>(2017) 한 장면 ⓒ CJ 엔터테인먼트


스티븐 스필버그의 <더 포스트>(The Post, 2017)는 1971년 '펜타곤 페이퍼' 문건 입수 보도 이후 일개 지역 중소지에서 미국 3대 일간지로 급성장한 '워싱턴포스트'를 배경으로 한다. 베트남 전쟁의 진실을 감추고자 했던 정부의 부조리를 폭로하는 언론의 사명을 다룬 <더 포스트>에서 가장 중심에 선 인물은 워싱턴포스트의 발행인 캐서린이다.

그는 선친과 남편이 연이어 이끌어온 워싱턴포스트를 누구보다 사랑하고, 언론사를 경영하는데 있어서도 탁월한 안목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그의 능력은 여자라는 이유로 종종 폄하받는다. <더 포스트>의 시대적 배경인 1970년대만 해도 여성의 인권이 지금보다 훨씬 낮았고, 캐서린 또한 '집안의 가업을 지키고 싶을 뿐'이라면서, 자신이 가진 능력을 스스로 평가절하한다. 자살로 생을 마감한 남편만 아니었다면, 평생 직업을 가질 일 또한 없었다는 캐서린은 주변 남자들의 도움에 전적으로 의지하고자 한다.

그랬던 캐서린이 난생 처음 남자들의 도움을 받지 않고 회사와 자신의 운명이 걸린 위험한 선택을 스스로 결정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대통령 일가족의 신변 잡기에만 집중한다는 평을 받았던 워싱턴포스트는 베트남 전쟁과 관련한 정부의 기밀문서를 보도한 이후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언론사로 인정받았고, 캐서린의 경영 능력 또한 제대로 평가받는다.

언론의 책무 못지않게 중요하게 다뤄지는 여성의 변화 

펜타곤 페이퍼 보도를 두고 캐서린과 벤 사이의 갈등을 주요하게 다루는 <더 포스트>는 벤으로 대표되는 언론의 자유, 사명 못지않게 '펜타곤 페이퍼' 보도 결정 이후 미국을 대표하는 언론사 사주로 우뚝 선 캐서린의 변화를 극적으로 보여주고자 한다.

펜타곤 페이퍼 보도 결정 이전만 해도 남자들의 뒤에 서있는 것에 익숙해 하던 캐서린은 어느 순간 자신이 내린 결정에 반대하는 남자들 앞에서 당당히 의견을 관철시킨다. 당시 대부분의 여자들이 그렇게 생각했듯이, 캐서린 또한 정치는 남성의 영역이며 여자가 끼어드는 것이 아니라는 인식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베트남전 파병 반대 시위에 나서는 젊은 여성들이 나날이 늘어나고, 시대 또한 그에 걸맞은 변화를 요구했다. 보수적인 성역할 관념에 오랫동안 갇혀있던 캐서린은 정부의 부적절한 언론 탄압에 맞서는 과정을 통해 스스로에게 친 장벽을 서서히 거두기 시작한다.

 영화 <더 포스트>(2017) 한 장면

영화 <더 포스트>(2017) 한 장면 ⓒ CJ 엔터테인먼트


개인적으로 <더 포스트>에서 가장 인상깊게 다가온 장면은 이러했다. '워싱턴포스트', '뉴욕 타임스'의 펜타곤 페이퍼 보도에 대한 대법원 심리 이후 대부분 기자들의 시선은 뉴욕타임스에게 향해 있었다. 뉴욕타임스에게만 집중된 취재 양상에서 조용히 빗겨난 캐서린과 워싱턴포스트 기자들은 대신 베트남전 파병을 반대하는 여성들의 암묵적인 응원과 지지를 한몸에 받는다.

여성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려면 많은 용기가 필요했던 시절, 베트남전의 부당함을 느끼고 거리에 나선 여성들은 미국 최초, 유일 여성 신문 발행인이자 베트남전의 진실을 세상에 알리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캐서린과 연대감을 갖는다. 캐서린 또한 자신의 결정을 지지하는 여성 독자들 덕분에 언론인으로서 더 큰 책무와 사명감을 느끼게 된다.

페미니즘(여성주의)은 남성 중심적 사회에 대한 문제점을 인식하고 이를 개선하고자 하는 여성 혹은 이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연대에서 시작된다. 남성 또한 남성 중심적인 사고방식의 문제점을 인지하고 바꾸려고 한다면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다. 어느덧 70대에 접어든 거장 스필버그는 여성 캐릭터를 주축으로, 여성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영화 한편을 뚝딱 완성하였다. 남성 감독 또한 페미니즘에 기반을 둔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좋은 예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권진경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neodol.tistory.com), 미디어스에 게재되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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