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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사건 때 벌어진 민간인 집단 학살극은 차마 말과 글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잔인하고 참혹했다. 당시 군·경 토벌대는 적법한 재판 절차도 없이 제주도민을 살해했다. 특히 1948년 11월경부터 약 4개월 간 벌어진 '초토화작전' 때는 60~70대 노인부터 젖먹이 어린아기까지 군·경에 의해 무차별 학살당했다.

오랫동안 정부는 진상규명과 사과는커녕 사건 발생 40여 년 간 '공산폭동론'만을 주장하며 4·3을 입에 담지도 못하게 했다. 살아남은 제주도민들은 '연좌제'의 피해와 '레드 콤플렉스'에 시달리는 등 온갖 치욕과 분노, 좌절과 체념을 겪어야 했다.

하지만 제주도민들은 고난과 박해 속에서도 진상을 규명하고 피해의식에서 벗어나기 위해 50여 년 간 외롭게 몸부림쳤다. 또 끈질긴 생명력과 높아진 민주의식을 바탕으로 4·3진상규명운동을 줄기차게 벌였다. 그 결과 국회는 1999년 12월 16일 여야 합의로 「제주4·3사건 진상규명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을 통과시켰고, 이에 대해 김대중 대통령이 서명함으로써 2000년 1월 12일 마침내 4·3특별법이 제정됐다.

4·3특별법에 따라 정부 차원의 진상규명 작업이 시작되어 2003년 10월 15일 「제주 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가 확정됐다. 노무현 대통령은 보고서가 채택된 지 보름만인 2003년 10월 31일 제주4·3사건을 '국가 공권력에 의한 인권유린'으로 규정한 보고서 내용을 근거로 유족과 제주도민들에게 머리 숙여 공식 사과했다. 이처럼 제주4·3 문제는 21세기 들어 괄목할만한 큰 진전이 있었다.

그러나 피해의 후유증은 오래도록 이어지고 있다. 실제로 트라우마에 시달리다 자살하는 경우도 많았다. 필자가 취재한 것을 예로 들자면, 경찰에게 고문치사를 당해 아들을 잃은 90대 할머니의 가슴은 시커멓게 멍이 들어 있었고, 목에는 아기 주먹만한 혹이 나 있었다. 평생을 울면서 가슴을 치고 목으로 피를 토하는 바람에 그리됐다고 했다. 남편과 아들을 잃고 홀로 살아온 한 할머니는 생계를 위해 아흔이 넘은 연세에도 무더위 속에서 보리를 베고 있었다. 이처럼 피해가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음에도 희생자 및 유족에 대한 피해 배상은 이 뤄지지 않고 있다.

국민이 국가 공권력에 의해 피해를 입었다면, 설령 그것이 고의가 아닌 합법적인 공권력 행사로 인한 것일지라도 '보상'을 해야 한다. 만일 불법적인 공권력 행사로 인한 피해라면 마땅히 '배상'을 해야만 한다. 국가가 국민에게 일부러 피해를 준 것이 아니더라도, 관리 소홀이나 또는 업무를 태만히 한 결과로써 국민에게 피해를 입혔다면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는 것이 사법부의 판단인 것이다. 하물며 국가가 계획적·체계적이며 불법적으로 국민을 학살한 것에 대해 국가가 피해자 및 유족들에게 배상해야 하는 것은 너무나도 마땅한 일이다.

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해 제정된 「5·18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 등에 관한 법률」(광주 5·18법)은 피해자 및 유족에게 '보상'을 하기 위한 법이다. 이에 반해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제주4·3특별법)은 법률 명칭에 나타나 있듯이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법이다.

두 법률 모두 국가 공권력의 잘못에 의해 벌어진 인명피해와 인권유린에 대한 반성으로써 제정된 것이지만, 광주5·18법은 '보상' 에 그치고 있고, 제주4·3특별법은 '진상규명'에 머물고 있는 것이다. 진정한 과거사 청산을 위해서는 '보상'과 '진상규명'은 따로따로 떨어져 있을 게 아니라 함께 해야 한다.

그런데 이미 진상규명과 보상을 한꺼번에 처리하기 위한 법률이 제정돼 시행 중이다. 2013년 6월 4일 제정된 「부마민주항쟁 관련자의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약칭 부마항쟁보상법, 법률 제11851호, 시행 2013. 12. 5)이 그것이다.

진상규명·명예회복이 빠진 배상도 부적절한 것이지만, 배상이 없는 진상규명·명예회복도 반쪽짜리 과거사 청산이다. 제주4·3특별법도 부마항쟁보상법처럼 개정돼 희생자 및 유족들에게 배상을 하는 것이 마땅하다. 피해자가 많지 않은 부마항쟁에 대해서는 배상을 하면서 무려 2만 5천~3만명이 희생된 제주4·3사건에 대해 배상을 하지 않는다면, 이는 정의가 아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김종민 제주4·3 70주년 기념사업위원회 상임대표(전 4·3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위원회 전문위원) 입니다. 이 글은 제주4.3제70주년 범국민위원회에서 발행한 <4370신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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