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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누구라도 '간첩'이라는 말을 무덤덤하게 받아넘길 사람은 없을 겁니다. 그러함에도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한층 더 민감하게 받아들여질 말이 '간첩' 아닐까 생각됩니다. 조작으로 '간첩죄'를 뒤집어썼던 사람들에겐 살점이 떨릴 만큼 무섭고, 어떤 이유로라도 '간첩'과 관련한 일로 시달림을 받았던 사람이라면 경기를 일으킬 만큼 공포감을 주는 단어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간첩은 '간'과 '첩'의 합성어로 '간'은 '작은 비밀 활동'을 '첩'은 '큰 비밀 활동'을 나타내는 말이라고 합니다. 분단된 우리나라, 남한과 북한 사이에서만 존재할 것 같은 게 간첩이지만 간첩의 역사는 동서양 모두 약 4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만큼 길고 깁니다. 

"<손자병법>은 "간첩을 이용하는 방법에는 다섯 가지가 있다. 곧 향간鄕間, 내간內間, 반간反間, 사간死間, 생간生間이 그것이다. 이 다섯 가지를 동시에 사용하면 적을 꼼짝 못하게 만들 수 있는 신출귀몰한 방법이 된다"고 했다." - <간서> 112쪽


4000년 간첩 역사 꿴 <간서>

<간서> / 편저자 김영수 / 펴낸곳 ㈜위즈덤하우스 / 2018년 1월 10일 / 값 16,000원
 <간서> / 편저자 김영수 / 펴낸곳 ㈜위즈덤하우스 / 2018년 1월 10일 / 값 16,000원
ⓒ ㈜위즈덤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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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서>(편저자 김영수, 펴낸곳 ㈜위즈덤하우스)는 <손자병법> <용간편>과 함께 간첩 이론의 교과서라 할 수 있는 <간서>를 '사기' 꾼이라 불릴 만큼 사마천과 <사기>(史記)를 공부해온 저자가 새롭게 체계를 잡아 이해하기 쉽도록 현대인의 눈높이로 정리한 책입니다.

<간서>는 청나라 말기인 19세기 중엽 때 사람인 주봉갑(朱逢甲)이 쓴 책으로 중국 최초의 간첩연구에 관한 유일 전문서인 동시에 세계 최초의 간첩에 관한 전문 연구서이기도 합니다.

<간서>에서는 전설적인 중국 최고(最古)의 왕조 하나라부터 청나라에 이르기까지 약 4000년에 걸친 간첩 활동과 관련한 사료들을 모아 고대 간첩사를 체계적으로 논술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우리나라 최고 정보기관의 전직 수장이었던 사람이 실형을 선고받아 법정구속 돼 감옥살이를 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에게 적용된 죄목은 '국정원법 위반'과 '공직선거법 위반'입니다. 하지만 이 사람이 정보기관의 수장으로서 저지른 가장 큰 원죄는 우리나라 정보기관을 스스로 수갑 채워 위축시킨 범죄라 생각됩니다.

"<간서>는 역사상 최초의 간첩으로 <좌전>에 보이는 기록을 근거로 여애에게 주목했다. 여애는 하나라 대신이라는 설을 비롯하여 장군이라는 설이 있고, 어떤 사람은 여성으로 보기도 한다. 그렇다면 여애는 최초의 여간첩이라는 타이틀까지 달게 된다. 중국 역사는 물론 세계 역사상 최초의 여간첩인 셈이다. 실제로 <36계>에서는 여애를 여간첩으로 보아 '미인계'의 사례로 들었다." - <간서> 59쪽


예나 지금이나 정보활동에 있어 빠지지 않는 것이 돈입니다. 적으로부터 꼭 필요한 정보를 얻으려면 간첩이 돼 줄 사람이 필요합니다. 간첩이 되는 동기는 네 가지 돈, 이념, 절충, 자아입니다.

정보기관 기본 흔든 역적죄

정보기관의 수장으로서 실정법을 위반한 사실 자체만으로도 처벌 받아 마땅하지만 정보활동, 간첩을 운용하는데 첫 번째 동기로 꼽히는 '돈(특별활동비)'을 제한적으로나마 삭감되는 계기를 가져온 행위야말로 정보기관의 주춧돌을 흔들어 버린 일이라 생각됩니다.

쓰지 않아도 될 돈, 남아도는 돈이라면 당연히 삭감되고 사용 또한 마땅히 통제 받아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돈이 삭감됨으로써 앞으로 능력 있는 간첩을 운용(활용)하는데 어떠한 형태로든 장애를 가져온다면 그가 저지른 진짜 원죄는 우리나라의 최고 정보기관을 원천적으로 무력화 시키며 쇠퇴시킨 반역죄에 해당할 것입니다. 

"한왕 유방劉邦은 진평陳平을 보내 항우項羽와 그 책사 범증范增 및 그 부하들의 관계를 이간하기 위해 황금 만 근을 내어 진평에게 마음껏 사용하게 한다. 요컨대 풍부한 자금 없이는 간첩 활동을 진행할 수 없다는 말이다. (중략) 간첩 활동과 활용에서 핵심은 비밀과 충분한 자금이라 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주봉갑 역시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가며 두 가지 원칙을 끌어낸다. 곧 절대 비밀을 유지하고 거금으로 간첩을 매수하라고 강조한다." - <간서>, 124쪽


작금, 간첩이 활동하는 범위는 '정치'나 '군사'라는 범위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산업스파이'라는 말이 횡횡하는 데서 알 수 있듯 분야와 규모, 방법과 내용에는 차이가 있지만 사회 전반에 실뿌리처럼 뻗어 말초신경처럼 유·무형으로 작동되고 있는 실생활 속 정보활동 또한 또다른 형태의 간첩활동이라 생각됩니다. 

4000년 동안 적과의 싸움은 물론 정치 현안과 문제해결에 향간, 내간, 반간, 사간, 그리고 생간을 활용한 교묘한 간술(사례)들은 지략과 지혜를 넘어 인간의 본성을 희롱하는 원초적 처세술이자 승승장구를 가리키는 유능한 키워드입니다.

<간서>를 통해 간첩이 무엇인지를 새기고 나면 현재 감옥살이를 하고 있는 우리나라 전직 최고 정보기관장이 저지른 죄는가 얼마나 심각한 행위인지 십분 알게 될 거라 기대됩니다.

덧붙이는 글 | <간서> / 편저자 김영수 / 펴낸곳 ㈜위즈덤하우스 / 2018년 1월 10일 / 값 16,000원



간서 - 가장 오래된 첩자 이야기

김영수 지음, 위즈덤하우스(2018)


태그:#간서, #김영수, #㈜위즈덤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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