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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뒤로 문을 나서기 전에 인사를 건네고 외출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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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다녀올게요. 내일모레 봐요."

얼마 전, 나는 2박 3일로 출장을 가게 되었다. 아내에게 아쉬운 인사를 건네고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탔다. 그런데 잠시 뒤에 아내에게서 문자가 왔다.

"여보, 다음에는 아파트 복도에서 그런 말 하지 말아줘요."
"응? 어떤 말이요?"

나는 내가 어떤 말실수를 했는지 몰라서 물었다.

"내일모레 보자는 말이요. 혹시 누가 들을까봐요."

아차 싶었다. 아내의 입장에서는 잠시나마 무서운 순간이었다. 2박 3일 동안 내가 없는 집에 혼자 있는 게 주변에 알려지는 순간이었다. 나는 곧 미안하다고 문자를 보냈다. 그리고 다음에는 아파트 복도에서 그렇게 말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그 뒤로는 문을 나서기 전에 인사를 건네고 외출한다.

우리는 신혼이다. 아내는 재택근무라 주로 집에 있고 나는 출퇴근한다. 결혼 생활 1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지만 이런 경험으로 정해진 몇 가지 규칙들이 있다. 만일 아내 혼자 집에 있다면, 택배를 아파트 경비실에 맡겨달라고 남자 기사에게 부탁드린다. 여자 기사가 배달을 올 때만 아내가 받는다. 특히 신혼 초에 가구나 가전제품을 설치할 때도 고민이었다. 만일 남자 설치기사분이 오실 수 있는 시간대가 많다면, 내가 있는 시간에 와주시길 부탁드렸다. 여자 혼자 있는 집에 낯선 남자 2~3명이 있는 건 생각보다 무서운 것이었다. 물론 설치 기사분들이 나빠서가 아니다.

아내는 택시를 타면 택시의 번호를 나에게 보내주는 편이다. 이건 내가 부탁하지 않았지만 아내가 먼저 시작했다. 덕분에 나도 안심이 되었다.

그리고 밤에는 가급적이면 아내가 쓰레기 분리수거를 하지 않는다. 꼭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내가 하거나 같이 간다. 무엇이 우리를 이런 패턴으로 살게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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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언하건대, 많은 사람들이 일상적 공포를 안고 살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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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적 공포, 완전히 다른 세상의 이야기, 그러나 알아야 할 이야기

누군가는 과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특별히 예민한 사람이라서 그렇다고 결론 내릴 수 있다. 그러나 나는 단언하건대 정도만 다를 뿐, 많은 사람들이 이런 일상적 공포를 안고 살 것이다.

나는 몰랐다. 나의 다정한 인사도 때로는 장소를 생각해서 해야 한다는 걸. 택배를 받을 때는 긴장하고 있다는 걸. 밤에 쓰레기를 버리러 가거나 가게를 갈 때는 더 큰 결심이 필요하다는 것을.

누군가는 택시를 탈 때 조수석은 꿈도 못 꾼다는 것을.

이것은 나의 인생과 경험만으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것이었다. 다른 세상의 이야기, 완전히 다른 풍경을 보고 있는 사람의 이야기였다. 그러나 분명 알아야 할 이야기다. 그래서 앞으로도 아내와 함께 대화하고 질문하면서 배워갈 생각이다. 내가 보고 있는 풍경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 더불어 우리 부부가 사는 세상이 일상적 공포를 내려놓고 살 수 있는 세상이 되기를 바란다.



태그:#일상적공포, #다른풍경,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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