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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를 위한 의미있는 '무엇'이 필요한가요? 계간지 <딴짓>의 발행인인 프로딴짓러가 소소하고 쓸데없는 딴짓의 세계를 보여드립니다. "쫄지 말고 딴짓해!" 밥벌이에 지친 당신을 응원합니다. [편집자말]
지난 주말 대청소를 하다 오래된 노트를 발견했다. 노트엔 나의 버킷리스트가 적혀있었다. 8년 전, 첫 회사에 입사할 때 연수원에서 진행하던 '버킷리스트 작성' 수업에서 썼던 모양이었다.

타인의 일기장을 훔쳐보듯 슬쩍 읽어보았다. 밑줄을 긋지 못한 문장이  많았다. 배로 태평양 건너기, 자막 없이 스페인 영화 보기, 내 손으로 집 짓기, 외국에서 장사하기, 바다낚시 같은 것들.

 버킷리스트 작성
 버킷리스트 작성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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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의외의 사실을 발견하기도 했다. 생각보다 많은 항목에 밑줄을 그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100일의 남미 여행, 전국 도보여행, 승마 배우기, 연극하기, 기타 배우기, 출판, 강연으로 돈 벌기 등에 밑줄을 그을 수 있었다. 하나 더 재미있는 점은 밑줄 그은 항목 중 대부분은 지난 3년간 한 일이라는 것이었다.

퇴사 후의 3년 말이다.

연봉은 높아져 가는데 자존감은 바닥을 쳤다

 고민
 고민
ⓒ free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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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나는 회사생활 6년 차의 대기업 대리였다. 퇴사하고 싶다는 충동과 안정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강박 사이에서 휘청거리는. 인생은 한 번뿐이라는 흔한 충고에 설레었다가도, 회사 밖은 전쟁터라는 선배의 한 마디에 지레 겁을 먹곤 했다.

당시 회사를 그만두고 세계여행을 떠난 사람들의 에세이를 탐독하는 내게 친한 선배는 '369 증후군'이라는 병명을 붙였다. 회사생활 3년 차, 6년 차, 9년 차엔 누구나 겪는 슬럼프란다. 슬럼프에 대한 해결책도 간단했다.

"오래 버티는 놈이 이기는 거다."

그러나 버티기가 만만치 않아서일까. 퇴사에 대한 결정은 하루에도 몇 번씩 바뀌었다. 출근할 땐 정신차리고 승진 준비나 해야지 싶다가도 저녁 무렵엔 내가 왜 아직도 사표를 내지 않고 있나 의아해하곤 했다. 마음은 '남기'와 '떠나기' 사이에서 쉼 없이 진자운동을 했다. 나중엔 수저질 한 번 하는 동안에도 결심이 바뀌곤 했다.

이러다간 내가 미치지라는 생각이 든 건 퇴근길에서 소리를 지르고 있는 나를 발견했을 때였다. 쌩쌩 달리는 차 소리를 방패 삼아 내가 스스로에게 내지른 소리는 이것이었다.

"생각하지 말고 살자!"

당시 나는 회사에서 걸어서 30분 거리의 사택에서 지내고 있었는데 상념에 잠기는 그 30분의 퇴근길이 그렇게 괴로울 수가 없었다. 결정을 못 내리는 내가 한없이 비겁한 것 같았고 때로는 철이 없는 것도 같았다. 연봉은 높아져 가는데 자존감은 바닥을 쳤다.

결국 나는 남은 체력단련 휴가와 연차를 끌어모아 한 달의 휴가를 만들었다. 반차도 눈치 보며 쓰던 분위기에서 한 달의 휴가는 그만두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곤 내가 원래 관심 있던 분야의 사람들을 한 명씩 만나러 다녔다.

출판. 언론. 문화기획. NGO에서 일하는 사람들, 프리랜서들. 궁금했다. 그곳은 어떤지. 선배 말대로 그곳은 전쟁터인지, 굶어 죽기 딱 좋은 곳인지, 혹은 내가 들어가기엔 이미 너무 늦은 곳인지.

지인의 지인을 탈탈 털어 그들의 직업을 '자체 인터뷰'하던 중에 지금 독립잡지를 같이 만들고 있는 시스터즈 2호를 만났다. 2호는 선망의 직업이라는 PD를 그만두고 초보편집자로 분투하고 있었다.

그 후에 만난 3호 역시 회사를 막 그만두려던 참이었다. 우리는 만난 자리에서 의기투합, 그럴듯하게 말해 도원결의를 했다. 세상에 할 말이 있었고, 그것을 책이라는 형태로 만들고 싶었다.

<딴짓>이라는 좋은 명분

 딴짓 창간파티 현장
 딴짓 창간파티 현장
ⓒ 박초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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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의 '세상 구경'을 마치고 회사로 돌아온 몇 개월 후에 사표를 냈다.

그리고 자체 인터뷰 중 만난 두 친구와 함께 <딴짓>이라는 독립잡지를 만들었다. 출판사도 차리고 나름의 창간파티도 했다.

<딴짓>은 밥벌이의 고단함에도 스스로를 위한 무언가가 필요한 이들을 위한 잡지다. 세상 사람들은 어떤 딴짓을 하고 사는지, 딴짓을 하기 위한 좋은 장소는 어디인지, 해볼 만한 딴짓은 무엇이 있는지 소개한다.

선생님이면서 가수인 남자, 댄서 수준의 탱고 실력을 갖춘 일러스트레이터가 인터뷰 대상이다. 길거리에서 장사해보기나 집구석영화제 등을 해볼 만한 딴짓으로 소개한다.

돌아보면 내가 <딴짓>을 통해 세상에 외치고 싶었던 것은 사실 세상이 내게 말해주었으면 하는 말이었다. 좋아하는 딴짓 좀 하고 살아도 괜찮다고. 너무 밥벌이에만 매몰되지 말자고.

회사를 그만두며 생긴 넉넉한 시간과 <딴짓>이라는 잡지가 주는 에너지로 좋아하는 일을 마음껏 해볼 수 있었다. 시골에서 살아보고 싶어 1년간 파주로 가서 지내기도 했고, 태국 북쪽의 작은 마을에서 한 달간 살아보기도 했다.

배우겠노라 말만 하던 기타와 승마를 배웠다. 70일간 남미를 여행했다. 되는대로 그림을 그리고 가구를 만들었다. 무엇보다 '다음 삶'을 모색하기 위해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을 찾아다녔다. 다행히 이번엔 <딴짓>이라는 좋은 명분이 있었다. 인터뷰를 구실삼아 내게 맞는 삶의 방식을 모색했다.

내게는 '성공하는 것'보다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딴짓 어살론(어떻게 살아야 하나 토론) 파티
 딴짓 어살론(어떻게 살아야 하나 토론) 파티
ⓒ 박초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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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짓>을 만들며 배운 점이 있다면 하고 싶은 걸 하는 데는 의외로 돈이 많이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학원을 다니지 않아도 그림을 그릴 수 있고 기타를 칠 수 있다. 얼마 전엔 칼 한 자루면 뚝딱 수저와 젓가락이 나오는 나무 공예에 반하기도 했다.

'출판'이나 '방송'처럼 무언가 대단한 것이 되어야만 할 수 있을 것 같은 일도 요즘엔 '1인 출판'이나 '팟캐스트'가 있어 일단 하면 그만이다.

허나, 퇴사 후 모든 순간이 그저 핑크빛이었노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연봉은 반 토막이 났다. 통장 잔고를 보면 불안하기도 했다. 남미 여행 역시 매 순간 낭만적이진 않았다. 긴 고단함 사이를 짧은 환희가 채우는 식이었다. 시골에서의 삶은 평화롭고 지루했다.

"이곳이 정답이야! 여기가 맞아!"라고 외칠 수 있다면 좋겠다. 그러나 다른 모든 이와 마찬가지로 나도 이번 생이 처음이라 감히 그런 말을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내 삶을 정당화하기위해 가지 않은 길을 폄하하고 싶지도, 걸어온 길을 포장하고 싶지도 않다.

내게는 '성공하는 것'보다 '하는 것'이 중요했다. '풍족한 삶'보다 '선택한 삶'이 중요했다. 그래서 독립잡지를 만들었다. 그래서 회사를 나와 프리랜서로 살았다. 그러나 모든 이가 그래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삶의 방식에도 관성이 있다면 나는 앞으로도 흥미롭고 고단한 일상을 살아갈 것 같다. 안정적인 직장을 때려친 사람으로서 누군가 내게 '회사 밖은 전쟁터'라고 말한다면 나는 고개를 끄덕일 것 같다. 그래도 한 마디 덧붙이지 않고는 못 배기지 않을까. 그렇지만 나는 지루한 천국보다 재밌는 지옥을 좋아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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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 밥 벌어 먹고 사는 프리랜서 작가 딴짓매거진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