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전 국민을 '영미 열풍'으로 들뜨게 했던 '2018 평창 동계 올림픽'이 지난 주말에 막을 내렸습니다. 우리는 "영미"를 외치는 '컬링' 선수를 보며 함께 "영미"를 외치고, 아이스링크 위에 울리는 아리랑의 선율에 가슴 뭉클함을 느꼈습니다.

이름도 몰랐던 경기에서 국가대표로 최선을 다하는 선수들을 보며 열렬한 박수를 보내기도 했구요. 감명 깊은 영화를 보며 눈물 흘리듯 이상화 선수가 흘리는 눈물을 보며 함께 눈물을 흘렸습니다. 음악이, 문학이, 명화가 심장을 울리는 감동을 주듯 우리는 '올림픽 경기'라는 삶의 한 자락을 바라보며 강한 감동을 느꼈습니다.

시인이자 비평가인 김형수 작가는 그의 저서 <삶은 언제 예술이 되는가>를 통해 '삶을 글쓰기'에 비유했습니다. 삶이 곧 글쓰기의 시작이며 예술의 고갱이가 된다는 것입니다.

"문학이 시작되는 지점은 '살아 있는 실존의 현상'에 대해 어떠한 과학도, 또 어떠한 종교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문학이라는 것이 출현해서 발전을 해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문학의 가장 중요한 특성은 바로 인간문제를 다룬다는 것, 인간의 삶을 대상으로 한다는 거예요."

삶이 문학의 중심이라면, 예술의 모체가 된다면, 삶 또한 있는 모습 그대로 예술이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우리는 타인의 삶을 보며 종종 문학에서 누리는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게 되니까요. 김형수 작가는 또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문학은 삶에서 흘러나오는 것이요, 삶에 대한 그 어떤 표현도 삶을 망가뜨릴 만큼의 가치를 갖지는 못합니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는 말은 사람이 죽은 후에도 그 사람이 불렀던 노래가 여전히 살아 있다는 말이지 삶보다 노래가 더 중요하다는 말이 아닙니다."

삶이 예술이 되는 그 순간, 우리는 예술의 감동을 누린다고 생각하지만 결국 우리가 감동하는 것은 '삶'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림책<선>을 보면 '삶이 예술이 되는 순간'을 만날 수 있습니다. 작가 이수지는 이 그림책을 '어린 화가들에게' 바친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선> 이수지
 <선> 이수지
ⓒ 비룡소

관련사진보기


주인공이 은반 위의 스케이터인데 어린 화가들에게 이 책을 바친다니 의아해집니다. 하지만 이야기를 읽어내려 가다보면 이내 그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연필 선으로 자유롭게 그려진 선들은 빨간 모자 소녀가 스케이트 날로 그리는 선들입니다.

소녀의 움직임에 따라 선은 굵게도 가늘게도 표현되어 마음껏 얼음판을 누리는 소녀의 즐거움을 보여줍니다. 더불어 그림 그리기의 즐거움도 보여주고 있구요. 얼음판 위에서 소녀가 멋진 스핀을 보여주는 장면에 펼쳐진 시원한 연필선들은 마치 오선 위의 음표들처럼 음악을 떠오르게도 합니다.
<선> 이수지 , 내지 그림
 <선> 이수지 , 내지 그림
ⓒ 비룡소

관련사진보기


그런데 소녀는 얼음판 아니 백색의 그림책 공간에서 종횡무진 스케이트를 타고 누비다 시원하게 점프하며 트리플 악셀을 보여준 뒤 그만 엉덩방아를 찍고 맙니다. 그리고 소녀의 공간은 구깃구깃 구겨지고 말지요. 흩어진 지우개 가루와 함께요.

우리 삶도 때로는 이렇게 구겨진 종이처럼 엉망이 되곤 합니다. 구겨진 종이가 다시 펼쳐져도 똑같은 종이가 될 수는 없지요. 그래서 소녀도 엉덩방아를 찧은 채 홀로 멍하니 앉아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끝난다면 삶은 예술이 될 수 없겠지요. 구겨진 종이를 극복할 때 삶은 예술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소녀가 홀로 있던 공간으로 아이들이 밀려들어옵니다. 모두 엉덩방아를 찧으며 깔깔대며 미끄러져 들어오지요. 소녀는 더 이상 시무룩하지 않습니다. 혼자가 아니니까요. 친구들과 함께 노는 얼음판은 그 어느 순간보다 아름답습니다. 모두가 행복해하는 순간이니까요.

<선> 이수지, 내지 그림
 <선> 이수지, 내지 그림
ⓒ 비룡소

관련사진보기


멋진 피겨 공연도, 번쩍이는 금메달 수상도 관객 없이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환호하는 관중이 있기에 더 즐겁고 행복해집니다. 문학도 회화도 음악도 영화도 박수치고 함께 우는 사람들 속에서 그 가치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삶은 언제 예술이 될까요? 공감하고 함께 나눌 때 바로 예술이 됩니다.

'동계올림픽'의 많은 순간들에서 우리는 삶이 예술이 되는 경험을 맛보았습니다.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패럴림픽이 있거든요. 그리고 우리 모두의 삶, 그 순간순간에도 예술이 되는 순간이 만들어질 것입니다.


이수지 지음, 비룡소(2017)


태그:#이수지, #선, #비룡소, #그림책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그림책 속 보물들을 찾아 헤매는 의미 탐색자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