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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례길 표지석과 신발
 순례길 표지석과 신발
ⓒ 차노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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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자들을 괴롭히는 것들

알베르게에 도착하면 밥은 굶어도 꼭 해야 할 일이 있다. 샤워와 빨래다. 배낭 무게 때문에 여벌옷을 여유 있게 챙길 수 없다. 걷기를 마치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땀범벅이 된다. 샤워를 하고나면 빨래는 필수다. 그렇지 않으면 다음날 냄새 나는 옷을 입고 걸어야 한다(고백컨대 완주하는 동안 두어 번 샤워와 빨래를 하지 않았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발을 말리는 일이다.

물집 때문이다. 명주실과 바늘, 밴드는 필수품이다. 준비하기는 했지만 '만약'을 위해서였다. 나는 물집이 잡히지 않을 줄 알았다. 이곳에 오기 전에 물집이 잡힐 만큼 잡혔다고 생각했다. 기타 코드를 짚는 손가락에 생기는 굳은살처럼 발가락도 물집 다음에 단단한 피부로 덮일 줄 알았다. 착오였다. 하이힐을 오랫동안 신어 발바닥에 잡힌 굳은살 아래로 물집이 잡혀 뜨거운 물에 토마토 껍질 벗겨지듯 피부가 벗겨지는 것을 순례길을 걸으면서 경험했다.

에스테야 알베르게에서 빨래를 야외 건조대에 널자마자 그곳 의자에 앉아서 발을 말렸다. 왼쪽 새끼발가락과 네 번째 발가락, 그 아래 발바닥에도 물집이 잡혔는데 터져버렸다. 나는 물집이 잡혔을 때에도 터졌을 때에도 준비해간 밴드를 붙이고 걸었다. 그게 잘못된 처치라는 것을 한참 후에나 알았다. 밴드 접착면이 문제였다. 매일 걷는 중에 접착면도 계속해서 마찰을 일으켜 물집이 더 커졌고 피부가 되레 잘 찢어졌다. 

샤워를 끝낸 니콜라가 다가와서 밥을 먹자고 했다. 나는 발을 가리키며 햇볕을 쬐어야 한다고 했다. 그랬더니 그도 신발을 벗고 발바닥을 보여줬다. 커다란 물집이 두 군데 잡혀 있었다. 그는 또 가까운 곳에서 해바라기 하고 있는 이탈리아 남자를 불렀다. 그에게 발을 보여달라고 했다. 그의 발은 양쪽 뒤꿈치가 다 벗겨져서 붉은 살이 드러나 있었다. 내가 놀라자 니콜라는 오른손 검지를 시계추처럼 흔들면서 물집 때문에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었다. 내가 느끼는 고통이 아무리 작을지라도 남이 대신해주는 것이 아닌, 온전한 내 것이었다. 그래서 컸다. 나는 내 통증에 충실한 순례자였다.

길을 걷다 보면 물집만큼이나 순례자들을 괴롭히는 것이 또 있다. 강한 햇볕이다. 그래서 아침 일찍 출발해서 점심시간 즈음에 다음 숙소에 도착할 수 있게 계획을 짠다. 정오를 넘기는 햇볕은 더 강렬해진다. 며칠 걷지 않았는데도 얼굴이 많이 탔다. 그런데도 선크림 바르는 것조차 귀찮아진다. 땀이 자꾸 흘러내리기 때문이다.

뫼르소와 스펜서

 에스테야 새벽
 에스테야 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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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이 되면 알베르게 휴게실과 주방은 부산하다. 떠날 채비를 하는 순례자들이 침대에서 나와 그곳에서 짐을 꾸린다. 아침 식사를 하는 사람도 있고 점심 식사를 간단하게 준비하는 이들도 있다. 나도 에스테야 알베르게 주방에서 오전 5시부터 준비를 했다. 다른 알베르게보다 사람들이 유난히 북적거렸다.

에스테야에서 10명가량의 순례자들이 오전 6시 전에 출발했다. 모두들 한낮의 태양을 피해서 점심 전에 다음 목적지에 도착할 계획이었다. 약간 술렁이는 기분으로 3km를 걸었을 때 순례자에게 와인을 공짜로 주는 '와인의 샘'에 도착했다. 와인을 마실 수 있는 시간은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까지였다. 우리가 그곳을 지나갈 때는 오전 7시 전이었다. 모두들 기념 사진만 찍고 길을 나섰다. 조금 걷자 두 갈래 길이 나왔다. 모든 순례자들이 발걸음을 멈췄다. 

 이라체 와인 양조장에 있는 와인의 샘(수도꼭지를 틀면 와인이 나온다)
 이라체 와인 양조장에 있는 와인의 샘(수도꼭지를 틀면 와인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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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길은 650m 몬하르딘으로 올라가야 하지만 오른쪽 길로 가면 평탄한 우회길이었다. 누구 할 것 없이 오른쪽 우회도로로 가자고 했다. 나는 슬쩍,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 혼자만 지친 것이 아니었다. 순례자 모두 나와 그리 다르지 않았다.

우회 도로는 아름다웠다. 들판은 온통 황금빛이었고 황금 언덕에 그림 같은 집이 있었다. 그 한가운데로 자연스럽게 생긴 길을 걸어가면 됐다. 태양만 없었다면 그렇다는 말이다. 1시간 정도 걷자 토할 정도로 태양이 내리쬐었다. 타박타박 신발 밑창에 돌멩이 섞인 마른 흙길을 밟는 소리만 들렸다. 

"빛이 강철 위에서 반사하자, 길쭉한 칼날이 되어 번쩍하면서 나의 이마를 쑤시는 것 같았다. 그와 동시에, 눈썹에 맺혔던 땀이 한꺼번에 눈꺼풀 위로 흘러내려 미지근하고 두꺼운 막이 되어 눈두덩을 덮었다. 이 눈물과 소금의 장막에 가려서 나의 눈은 보이지 않았다. 다만 이마 위에 울리는 태양의 심벌즈 소리와, 단도로부터 여전히 내 앞으로 뻗어 나오는 눈부신 빛의 칼날만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을 뿐이었다. 그 타는 듯한 칼날은 속눈썹을 쑤시고 아픈 두 눈을 파헤치는 것이었다. 모든 것이 기우뚱한 것은 바로 그때였다." - 알베르 까뮈의 〈이방인〉, 민음사, p69


칼날과 같은 햇살. 태양의 심벌즈 소리. 속눈썹을 쑤시는 그것. 하늘이 활짝 열리면서 불을 쏟아 붓는 것처럼 태양이 쏟아졌다. 그 뜨거운 열기는 뫼르소의 모든 균형을 기우뚱하게 했다. 균형 감각을 잃은 그는 아랍인을 향해 권총 방아쇠를 당겼다.  탕! 탕! 탕!

 태양과 들판
 태양과 들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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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입에서 욕설이 터져 나왔다. "뫼르소를 이해하겠어. 살인도 저지를 것 같은 이 지랄 같은 태양!" 내 옆에서 걷고 있던 스펜서가 허허, 웃음을 터트렸다. 내가 중얼거리는 말을 그는 분위기로 알아듣는 것 같았다. 영어로 내뱉은 욕설이 아니었다.

"죽음 같은 태양이군, 그래. 그속에 생명도 공존하고 있다는 게 참 아이러니해. 왜 죽음과 생명은 공존하지?"

스펜서가 싱긋 웃으며 나를 돌아봤다. 나는 내게 묻는 질문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어깨만 으쓱했다.

"하와이 태양은 이보다 더 강렬해. 주광이 강해서 LCD 보고 사진 찍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야. 뷰파인더 보고 찍다가 나중에는 대충 감으로 찍지. 하지만 얼마나 아름다운지. 아침저녁으로 수평선에서 지고 떠오르는 태양을 볼 때마다 나는 감사해, 이런 자연이 있는 곳에 살게 해주신 것에 말이야." 

하와이의 고등학교에서 스페인어를 가르치는 교사 스펜서가 이날도 내 옆에서 걷고 있었다. 60리터 정도 되는 긴 배낭은 그의 목에서 엉덩이까지 내려왔다. 엉덩이 즈음에 버뮤다반바지 허리 고무가 걸려 있다. 붉은색 체크무늬 셔츠를 허리에 묶었다. 윗옷은 늘 같은 긴팔 아웃도어다. 소맷부리가 심하게 닳아있다. 야구 모자를 자주 썼다. 야구 모자를 벗으면 머리숱이 거의 없는 두상이 드러난다. 햇살 때문인지 오늘은 야구 모자 대신 벙거지 모자를 썼다. 배낭 안에는 일상적인 용품이 한두 개 정도 삐죽 올라와 있다. 양손에 스틱을 쥐고 긴 다리로 엇박자를 만들면서 걷곤 했다.

그는 말을 마치고는 연신 땀을 소맷부리로 닦았다. 그의 모습은 그가 했던 말처럼 긍정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전날 에스테야 알베르게에 도착하자마자 침대에 누워서 곧장 잤던 그였다. 그도 지쳐가고 있었다.

궁금증이 불쑥 일었다. 그는 왜 이 길을 걸을까. 800km를 목표로, 30일 이상 시간을 낸다는 것 자체가 평범한 일은 아니었다. 더군다나 스펜서처럼 적지 않은 나이에는 더욱 그렇게 보였다.

"스펜서, 이런 질문을 하고 싶지 않았는데, 당신은 왜 이 길을 걷나요?" 풍경이 바뀔 것 같지 않은 길 너머로 시선을 준 나는 무심하게 질문을 던졌다. 엇박자로 걷는 스펜서의 긴 다리가 아스팔트 도로로 길게 늘어졌다.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겪어본 적이 있니?" 그가 물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오랫동안 함께 살았던 반려견의 죽음을 떠올렸다. 그 녀석을 생각하면 늘 가슴이 싸해졌다. 지금도 그랬다. 

"슬픔을 극복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고 생각해. 슬픔을 일부러 모른 척 해서 살아가는 방법과 그것을 적극적으로 수용해서 애도하는 방법." 

나는 그가 말을 이을 때까지 기다렸다. 내 걸음은 느려졌고 태양은 이마에서 한참 동안 놀다가 정수리로 이동했다. 이마와 뒷목덜미에서 땀이 흘렀다. 아침에 선크림을 바르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허리 가방에서 선크림을 꺼내 손가는 대로 얼굴에 발랐다.

"형이 있었어. 작은 교회 목회자였지. 금욕적인 생활을 오랫동안 했지. 그래서 결혼도 늦게 했어. 조카 녀석이 한 명 있는데 고작 열두 살이 됐을 뿐이야. 작년 이맘 때 즈음일 거야. 형이 죽은 게."

잠시 침묵이 흘렀다. 스펜서는 이마의 땀을 닦고 이야기를 이었다.

"몇 년 간 암 투병 생활을 했어. 그것은 혼자만의 투병이었지. 형수님도 그 사실을 몰랐으니깐. 알려도 별 다른 방법이 없다고 생각한 듯했어. 경제적으로 풍족한 사람이 아니었을 뿐만 아니라 고집도 워낙 센 사람이었지. 담담히 자신의 병을 받아들이고 있었어. 죽어서야 형은 하와이에서 자유롭고 싶었나봐.

유언을 했지. 푸른 바다에 뿌려달라고. 그곳에 누워있으면 한뼘 즈음 가까운 태양이 자신의 배 위로 내려앉을 거라고. 그러면 신과 제일 가까운 자리에 자신의 영혼이 춤을 출 거라고 했지. 형수와 조카가 유골을 들고 하와이에 왔어. 지금껏 머물러 있지.

1년 동안 나는 형의 죽음을 외면했지. 아니 불평했어. 내 삶은 너무 단순했거든. 나는 아내와 두 아들이 있어. 형네 가족까지 책임져야 했지. 죽음을 슬퍼할 겨를도 없었어. 일상은 마비였어. 나는 무감각하게 체바퀴 돌 듯 살고 있었어. 은근히 형수님이 샌프란시스코로 돌아가기를 바랐지."

그늘 한 점 없는 길. 느슨한 바람마저도 멈춰 서 있었다. 스펜서는 걸음을 멈춰 배낭 옆 주머니에 꽂아놓은 물병을 꺼내달라고 했다. 나는 그에게 물병을 건네줬다. 그리고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로 고개를 들었다. 미루나무 아래 그늘이 있었다. 간이 매점도 보였다.

"오아시스?" 나는 방방 뛰면서 스펜서의 어깨를 쳤다. 내가 간이 매점 쪽을 가리키자 스펜서도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물을 다 마신 그가 한마디 뱉었다.

"죽으라는 법은 없군!"

 미루나루가 있는 간이 매점
 미루나루가 있는 간이 매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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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판 한구석에 커다란 미루나무가 있었다. 나무를 지지대 삼아 차양을 내고 그 아래에 탁자와 의자를 놓았다. 푸드트럭이 그 입구에 있었다. 그곳에서 부부인 듯한 중년 남녀가 음료수 등을 팔았다. 스펜서와 내가 간이 매점에 도착했을 때 앞서간 일행 몇이 앉아서 음료수를 마시고 있었다. 작렬하는 태양 아래 한줌의 그늘. 사막의 오아시스였다.

하지만 오아시스지만 갈증을 해소해주지는 않았다. 푸드트럭 중년 부부는 주문하지 않고 그곳에 잠깐이라도 앉아있는, 사람들의 여유를 배려하지 않았다. 간이 의자에 앉아서 땀이 찬 신발 끈을 푼다든지 배낭을 내려놓고 뭔가를 꺼내느라 늑장을 부리면 중년 남자가 계속해서 그 사람을 향해서 '올레!(스페인어로 '안녕'이라는 뜻)'라고 인사를 했다. 어서 주문을 하라는 눈치 인사였다.

하도 눈치가 노골적으로 빈번해서 그만 반가운 마음이 싹 가셔버렸다. 나는 오렌지주스를 2.5유로를 주고 사서 자릿값을 했다. 스펜서는 작은 바나나 하나를 사가지고 오면서 다른 데보다 두 배는 비싸다고 투덜거렸다.

 길 위의 순례자들(맥스와 스펜서)
 길 위의 순례자들(맥스와 스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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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스 아르코스를 지나며
 로스 아르코스를 지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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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태양을 정수리에 이고 한 시간 즈음 갔을 때에야 목표했던 로스 아르코스에 도착했다. 도착 시간은 오전 11시 10분이었다. 저렴한 공립 알베르게와 큰 슈퍼가 있었다. 하지만 나는 결정해야 했다. 여기서 멈추느냐, 조금 더 가느냐.

멈춘다는 것은 같이 걸었던 일행과 계속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고 조금 더 간다는 것은 일종의 독립이었다. 스펜서와 헤어지는 것은 물론 니콜라와도, 한국인 소리와도 더 이상 만나지 못한다는 거였다. 소리는 걱정할 것이 없었다. 잘 자고 잘 먹었다. 순례길에서 이 두 가지만 '잘'하면 '잘' 견딘다는 거였다. 늦잠을 자도 늦게 다음 목적지에 도착하면 되었다.

10년 된 등산화를 신고 와서 신발 밑창이 조금씩 뜯어지고 있다는 연석은 앞서갔지만 그는 단단한 돌멩이 같아서 혼자라도 26일 완주를 해내고 말 순례자였다. 나만 건강하게 잘 가면 됐다. 다행히 아침 컨디션이 좋았다. 예전 기운을 되찾고 있었다. 7, 8km를 더 가도 끄덕없을 것 같았다. 2시 전에는 다음 목적지까지 도착할 거였다.

스펜서가 묵기로 한 로스 아르코스 공립 알베르게 앞에서 나는 멈췄다. 나는 좀 더 걷겠다고 했다. 얼굴이 상기되고 이미 지칠 대로 지친 스펜서는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서 있더니 나를 안아줬다. 나는 건강하게 완주하라면서 다음에 볼 기회가 있을 거라고 했다(의도적이지 않는 한, 직선 길 위의 인생이라 만날 확률이 적다, 하지만 그를 두 번 더 보게 된다).

태양을 동행자 삼아

토레스 델 리오로 향하는 길은 마른 흙길이었다. 길 양쪽에 먼지를 잔뜩 뒤집어 쓴 이름모를 풀이 엎드려 있었다. 건물 하나 보이지 않은 황량한 길만 길게 뻗어있었다. 길 옆으로는 들판이 펼쳐졌다. 밀도 강한 공기가 느릿느릿 움직이는 것이 물결처럼 보였다.

손바닥만한 그늘 한 점 없었다. 앞서 가는 사람이 점처럼 작아졌다. 남자가 저마치 뒤에서 따라오고 있었다. 남자는 큰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나는 뒤돌아봤다. 남자 뒤로 조금 전에 지나쳤던 마을이 보였다. 거의 모든 사람이 왜 로스 아르코스에서 멈추는지 알 것 같았다. 이 지독한 태양의 심술을 알고 있어서였다.   

그래, 니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볼까? 나는 태양에 도전장을 던지고 발걸음을 떼었다. 스펜서가 좀 전에 했던 말도 내 귀에 뱅뱅 돌았다. 그는 어제처럼 숙소에서 곧장 잠들 것이다. 한두어 시간 자고난 뒤 원기를 회복하고서야 샤워하고 빨래를 할 것이다. 그는 온전히 전해오는 힘듦이 좋다고 했다.

 토레스 델 리오 가는 길
 토레스 델 리오 가는 길
ⓒ 차노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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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휘, 생각해 봐. 일상의 무감각. 그것 정말 끔찍한 거야. 즐거움도 슬픔도 느낄 수 없다는 것은 내가 이 세상의 이방인이라는 말과 무엇 다르겠니? 기계라고 해도 좋아. 어느날 무지 배가 아팠어. 나는 불안했어. 형처럼 췌장암이 아닐까 하고. 죽음을 생각하니 내 삶이 갑자기 역동적으로 변하는 거야. 이 시간이 아까운 거야. 뭔가 해야할 것만 같았지. 다행하게도  장염이었어. 며칠 고생하고 났을 때에야 형이 죽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였어.

장례식장에서도 눈물을 보이지 않던 내가 울고 있었어. 나를 마비시켰던, 일상이라는 장막이 한꺼풀 벗겨졌어. 고통도 직접적으로 왔지. 하지만 행복했어. 쌩쌩한 느낌이었으니깐. 그리고 방학이 됐을 때, 생전 형이 가고 싶었던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와야겠다고 생각했어."  

땀이 눈처럼 흘러내렸다.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약간 아래를 내려다보며 걸었다. 30분 즈음 걸었을까. 앞서 가는 사람의 발걸음이 느려졌다. 열 걸음 정도 거리를 뒀을 때 그녀가 방향을 틀었다. 나도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 넝쿨 그늘이 있었다.

그래, 죽으라는 법은 없다! 나도 여자를 뒤따랐다. 둘이 앉으니 좁은 공간이 꽉 들어찼다. 둘은 금방 친해져서 수다를 떨었다. 좀 있으려니 뒤따라오던 남자가 지나갔다. 그는 여전히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콜롬비아 출신이라는 여자가 오른손 검지를 머리에 대고 빙빙 돌리면서 노래부르는 남자를 힐끔거렸다. 둘은 갑자기 목이 터져라 웃어젖혔다. 

웃음 소리가 밀도 강한 공기 속으로 퍼졌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듯도 했다. 이마의 땀이 말랐고 갈증도 가셨다. 분명 사막의 오아시스였다. 간이 매점처럼 바가지 요금도 눈치도 주지 않았다. 웃음은 어느 청량 음료 보다 더 효과가 있었다.

나는 일어섰다. 아직, 내 힘듦이 남아있었고 그것을 마저 즐기고 싶었다. 목적지에 도착해서 저 지독한 태양에 내 피곤한 발을 말리면서 웃고 싶었다. 쌩쌩한 삶을 누구에게도 양보하고 싶지 않았다. 비록 고통일지라도. 나는 '나'였다.

 태양의 언덕이라고 하는 토레스 델 리오
 태양의 언덕이라고 하는 토레스 델 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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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산티아고 순례길 프랑스길’은 2017년 6월 13일에 걷기 시작해서 7월 12일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도착했습니다. 30일만의 완주였습니다. 그 다음 날, ‘세상의 끝’이라는 피니스테레와 묵시아까지(100km)까지 내처 걸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34일 동안 900km 여정을 마쳤습니다. 몇 십 년 인생이라는 길 위에서, 34일의 여정은 짧을 수 있으나 걸으면서 느꼈던 것들은 제게 인생의 축소판처럼 다가왔습니다. 움츠린 어깨를 펴게 하고 긍정적인 미래를 내다보게 했습니다. 이곳에서 34일 간의 힘들었지만 행복했던 시간들을 도란도란 풀어놓으면서 함께 공유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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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차노휘는 소설가이자 광주대 초빙교수이다. 2016년부터 걷기 시작하여 도보 여행을 하면서 ‘길 위의 인생’을 실천하고 있다. 2009년 광주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얼굴을 보다〉가 당선되었고 저서로는 소설집 《기차가 달린다》와 소설 창작론 《소설창작 방법론과 실제》, 여행 에세이집으로는 《쉼표가 있는 두 도시 이야기》가 있다.

오마이뉴스 정치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