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토크쇼 형태로 진행된 최루미씨 출판 기념회. 최루미씨는 왼쪽에서 4번째 자리에 앉아 있다.
 토크쇼 형태로 진행된 최루미씨 출판 기념회. 최루미씨는 왼쪽에서 4번째 자리에 앉아 있다.
ⓒ 이재환

관련사진보기


굳이 무언가를 쓰려고 하지 않아도 가슴 깊은 곳에서 글이 솟아날 때가 있다. 어느 순간 '글이 내려왔다'는 표현이 좀 더 정확할지도 모른다.  

어린이집 교사 최루미(56)씨의 이야기이다. 최씨는 1980년대 후반, 이화여대를 졸업하고 무작정 시골로 내려왔다. 그가 아무런 연고도 없던 시골에 내려와 온몸으로 부딪치며 느끼고 겪은 이야기가 한 권의 책으로 엮여 나왔다.

책은 지난 1986년부터 1993년 2월까지의 홍동 갓골어린집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갓골어린이집은 지난 1981년 충남 홍성군 홍동면 갓골에 설립됐다. 국가 지원이 아닌 순수 민간 자본으로 설립된 어린이집이다.  

이에 대해 이번영 전 홍성신문 편집국장은 "갓골어린이집은 관에서 주도해 만든 것이 아니다. 홍동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돈을 모았다. 마을 주민들이 추진위를 구성하고 어린이집을 세웠다"고 전했다. 

지난 27일 홍동면 갓골어린이집에서는 작은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책 <우리 삶에 빛나던 날을 기억합니다>(최루미)에는 1981년 설립된 갓골어린이집과 그곳에 살았던 교사와 아이들의 이야기가 담겼다. 

갓골어린이집 2층에서 열린 이날 출판 기념회는 동네 사랑방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격의 없는 담소가 오갔고 참석자들은 연신 '꽃은 다 예쁘다'라는 노래를 불렀다. 이날 출판기념회에는 80년대 갓골어린이집 교사였던 이영숙, 조진숙, 최경이씨 등이 참석했다. 

사회를 맡은 이윤경(보육교사)씨는 "책에는 최루미씨 자신의 이야기보다는 그가 만났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훨씬 더 많다"며 "갓골 어린이집의 힘은 다양한 어린이집에 모였던 사람들이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최씨는 지난해 3월, 30년 동안 이어온 어린이집 교사 생활을 정리했다. 그의 표현을 빌리면 '집에서 뒹굴고 놀다'가 문득 80년대의 추억이 떠올랐다고 했다. 서울과 홍동을 오가며 80년대 그와 함께 '갓골'에서 일했던 교사들을 만났다. 그가 발로 뛰어 풀어낸 교사들과의 인터뷰는 그렇게 책의 한 편을 차지했다.

최씨는 보육이란 말이 존재하지도 않았던 지난 1986년 갓골어린이집의 교사로 부임했다. 부임 2년차인 이듬해 87항쟁을 겪었다. 이날 출판 기념회에서도 87항쟁과 관련한 에피소드가 나왔다. 

최씨는 "87항쟁 때 시위를 하기 위해 홍성에서 기차를 타고 천안역까지 갔다. 천악역에 함께 갔던 최경이 선생님은 경찰에 잡혀 유치장에 갇혔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최경이 전 교사는 "87년도에는 많은 사람들이 대도시에 나가서 시위를 했다"며 "그때 최루미 선생이 고생이 많았다. 그래도 즐겁게 살았던 시절"이라고 회상했다. 

최루미씨는 "홍동에 와서 얻은 것이 있다면 '용기'인 것 같다. 사실 홍동에 온 이유는 시민운동이나 봉사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두려워서였다. 하지만 내게 용기를 준 것은 홍순명 선생님과 같은 좋은 어른들이었다"고 말했다. 홍순명 선생은 '더불어 사는 평민'이라는 교훈으로 잘 알려진 홍동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풀무고)의 교장을 역임한 바 있다. 

지난 86년 갓골어린이집에서 일했던 최루미씨의 첫 제자들은 어느덧 40줄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다. 책의 표지는 이제 서른 중반이 된 갓골어린이집 졸업생 이윤미씨가 그렸다. 스승이 글을 쓰고 제자는 그림을 그린 것이다.

어쨌든 최루미씨는 2018년 그가 가장 빛났던 시기라고 여기는 1980년대를 소환했다. 그렇게 소환된 1980년대 후반의 기억은 활자로 거듭나며 또 다른 생명을 얻게 된 것이다. 최씨는 갓골어린이집에서의 빛나던 시절에 대해 "무모한 트리플악셀로 상흔은 남았지만, 진정한 어른이 된 시간이었다"고 회상했다. 그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 보자.

"돌아보면 헛웃음도 나고 부끄럽기도 하지만 아직도 내 가치를 가늠하는 말은 '갓골어린이집 최루미 선생님'임을 부인할 수 없다. 삶에 여백이 생긴 지난 2017년 기억의 서랍이 열렸다. 내 삶에서 가장 강렬했던 1987년부터 93년까지의 시간이 담긴 서랍이다. 나이가 더 들기 전에 서랍도 정리하고 그 시간을 함께 지나온 우리들의 땀도 닦아 주고 싶었다."

최루미씨는 지난 1986년 이화여대 유아교육학과를 졸업했다. 같은 해 갓골어린이집에 입사했다. 이후 28년 동안 보육현장에서 일했다. 그는 출판 기념회를 통해 "글을 잘 쓴다는 소리를 듣고 싶다"며 글쟁이로서의 욕심을 내비치기도 했다.


우리 삶에 빛나던 날을 기억합니다 - 갓골어린이집과 함께 자란 시간들

최루미 지음, 글을읽다(2018)


태그:#갓골어린이집, #최루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자유주의자. 개인주의자. 이성애자. 윤회론자. 사색가. 타고난 반골. 충남 예산, 홍성, 당진, 아산, 보령 등을 주로 취재하고 있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