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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디로 '진상 은폐 보고서'다. 부결 사유로는 너무나 허술하고 철저히 진실을 왜곡하여 앞뒤 정황조차도 맞지 않는 거짓 허위 보고서로서 유족은 절대 수용할 수 없다."

박정희 유신정권의 종말을 가져온 부마민주항쟁(1979년 10월 16~20일) 때 사망했던 고 유치준(1928~1979, 당시 51세)씨의 아들 유성국(59)씨가 한 말이다.

유성국씨는 27일 오후 경남도청에서 열린 부마민주항쟁기념사업회의 기자회견에 참석해 발언했다. 유씨는 지난 23일 부산시의회 대회의실에서 열린 '부마민주항쟁 진상조사결과 보고회'에서 문제점을 지적한 데 이어, 이날 재차 강조했다.

박근혜정부 때인 2014년 10월에 구성됐던 '부마민주항쟁 진상규명과 관련자명예회복심의위원회(아래 위원회)'는 3년반만에 <보고서 초안>을 내놓았다. 위원회는 오는 4월 12일 보고서 채택 여부를 결정한다.

위원회는 '부마민주항쟁 관련 사망자설'에서 유치준씨의 사망을 인정하지 않았다. 위원회는 "유족의 부장대로 경찰 진압에 의한 사망이라고 인정할 수 있는 진술이나 객관적 자료가 없었다"며 "유치준을 부마항쟁 사망자로 판단할 수는 없었다"고 했다.

유족들은 위원회 출범 뒤인 2014년 부마항쟁 피해자로 신청했다가 2016년 8월 18일 철회했다. 위원회 내부 논의에서 '사망자 부결'을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공정한 심의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해 신청 철회했던 것이다.

그런데 유족들이 신청 철회했음에도 위원회가 보고서 초안에 언급하면서 '유치준씨의 부마민주항쟁 관련 사망'을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유성국씨는 "사퇴한 진상조사실무위원들의 증언에 의하면, 처음부터 '부결'로 결론 지어 놓고 절차도 무시한 채 심의위원회에 넘겼고, 사실 확인을 위한 최소한의 조사조차 해 보지 않았으며, 조사보고서는 은폐를 위한, 언급할 가치조차 없는 최악의 보고서"라 했다.

처음에 조사실무위원으로 참여했던 남부희 위원(당시 경남매일 기자)은 위원회가 유치준씨의 사망에 대해 '부결'로 판단하자 위원직을 사퇴하기도 했다.

유씨는 "당시 부친의 얼굴엔 구타와 폭력 흔적은 후두부가 깨져 있었고, 눈에는 멍이 들고 퉁퉁 부어 있었으며, 코와 입에는 피를 흘리고 있었다는 경찰의 1차 보고서는 (보고서 초안에서) 완전 무시됐다"고 했다.

그는 "(보고서 초안에는) 아버지를 질병으로 사망한 행려자로 규정해 놓았고, 엄연히 가족이 있는 것을 알면서도 거처없이 거리를 떠도는 거지로 특정하여 정상적으로 매장 절차를 거쳤다고 하는 그 어떤 증거나 근거조차 없이, 정말 억장이 무너지는 허위사실에 분노를 넘어 부친과 유족을 두 번이나 죽이는 행위에 우리는 참을 수가 없다"고 했다.

 부마민주항쟁 진상규명 및 관련자 명예회복심의위원회가 낸 <부마민주항쟁 진상조사 보고서안>의 163쪽에 실린 내용이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사상자가 발생할 경우는 이유여하를 말론하고 대외비로 하라"고 지시했다는 내용이 실려 있다.
 부마민주항쟁 진상규명 및 관련자 명예회복심의위원회가 낸 <부마민주항쟁 진상조사 보고서안>의 163쪽에 실린 내용이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사상자가 발생할 경우는 이유여하를 말론하고 대외비로 하라"고 지시했다는 내용이 실려 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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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번 보고서 초안에는 새로운 사실이 밝혀졌다. 보고서 초안에서는 '계엄사령부 편성'(163쪽)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해 놓았다.

"김용휴 국방부 차관은 간담회(10월 19일)에서 '각하께서 합동수사단과 홍보정책에 관하여 지대한 관심을 갖고 계신다', '국무회의시 주요 토론 사항을 보면 계엄 업무 수행시 사상자가 발생할 경우는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대외비로 하며, 유언비어를 막을 수 있는 대책을 세우고 발설자는 체포하라'고 했다."

이와 관련해, 유성국씨는 "위원회는 고맙게도 스스로 중대한 사실을 밝혔다. 진실은폐의 치밀한 대책 자료가 처음으로 밝혀진 것"이라며 "그런데 실제 말처럼 그대로 사건이 발생했고, 실제 사망자가 발생하여 신속히 비밀리에 처리되었으며, 부산과 마산에서 사람이 죽었다는 소문을 냈다가 유언비어로 구속되는 일이 실제 발생했다"고 했다.

유씨는 "당시 국무회의에서 대통령의 모든 지시사항이 내려왔고, 사망자가 은폐될 수밖에 없었다. 퍼즐이 맞춰져 있었던 것이다"며 "위원회는 진상조사를 한다고 하면서 '행려자'만 있었지 '유치준'은 없다는 것이다"고 했다.

그는 "저는 아버지가 죽고 난 뒤, 사망 장소를 다시 찾아갔고, 당시 그 옆에 이발관이 있어 이발사한테 이야기를 들었다. 이발사는 당시 아버지가 구토를 했다고 진술했다. 30년 지나서 다른 사람들이 찾아가 물으니 기억이 안 난다고 한 것이다"며 "그런데 위원회는 이발사의 기억이 오락가락하기에 인정할 수 없다고 보고서 초안에 썼다"고 했다.

그는 "지금까지 조사했던 위원회의 조사보고 자료와 회의록을 공개하고, 이 은폐된 부친 관련 허위보고서를 즉각 폐기함과 동시에 참여한 위원장과 위원들의 즉각 사퇴를 촉구한다"고 했다.

그는 "위원회는 경찰의 1차 보고서에 기록된 '피살체가 분명하다고 하는 사망사고' 자체를 부인하고 길가에 떠도는 행려자의 사망으로 단정하여 절차에 따라 매장 했다면, 이것에 대한 아주 작은 사소한 근거라도 내어 놓아야 한다"고 했다.

이어 "(보고서 초안은) 경찰에 의해 수습되어 사망신고까지 마친 제적등본의 기록마저 부정하고 있다"며 "지금까지 이 억울한 넋을 기리기 위한 부친의 산소까지 인정치 않는 이 천인공노할 보고서다"고 했다.

유성국씨는 위원회의 보고서에 아버지에 대한 언급을 단 한 줄도 하지 말라고 했다.

 부마민주항쟁 당시 사망자인 고 유치준씨의 아들 유성국(59)씨가 27일 오후 경남도청에서 열린 부마민주항쟁기념사업회 기자회견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부마민주항쟁 당시 사망자인 고 유치준씨의 아들 유성국(59)씨가 27일 오후 경남도청에서 열린 부마민주항쟁기념사업회 기자회견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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