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깊고 낮은 다소 '걸걸한' 목소리의 배우 원진아가 인사를 건넸다. 주목받는 신예로 120:1의 경쟁률을 뚫고 첫 주연을 맡았던 JTBC <그냥 사랑하는 사이>를 끝내고 난 다음이었다.

JTBC <그냥 사랑하는 사이>는 붕괴 사고 피해 생존자인 강두(준호 분)와 문수(원진아 분)가 참사 이후 다시 만나 사랑과 행복을 배워가는 드라마다. <유나의 거리> 이후로 JTBC가 월화드라마를 다시 신설해 신인 배우 원진아를 주연으로 기용, 호평을 받기도 했다. <그냥 사랑하는 사이>는 기획 의도에서부터 세월호 참사가 모티브가 됐다는 점을 보다 분명히 하는 드라마이기도 하다.

'두 해 전 팽목항에 걸린 펼침막을 기억합니다. 5.18 엄마가 4.16 엄마에게, '당신 원통함을 내가 아오. 힘내소. 쓰러지지 마시오.' 사는 게 지옥 같은 사람들을 살아내게 만드는 힘은 아픔을 함께 하고 힘껏 손을 내밀어줄 사람이 있다는 것. '괜찮다. 너는 혼자다 아니다'라고 말해주는 것. (JTBC <그냥 사랑하는 사이> 기획 의도 중)

지난 9일 오후 배우 원진아와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다소 늦은 데뷔의 이유' '스스로 평가하는 자기 자신의 연기' '참사 피해자를 생각하며 연기하는 법' 등을 묻고 들었다. 민감할 수 있는 질문임에도 원진아는 특유의 시원시원한 말투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했다. 조리있게 또 다정하게. 최대한 가감없이 그와 했던 대화를 싣는다.

'그냥 사랑하는 사이' 배우 원진아 JTBC월화드라마 <그냥 사랑하는 사이>의 배우 원진아가 9일 오후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그냥 사랑하는 사이' 배우 원진아 JTBC월화드라마 <그냥 사랑하는 사이>의 배우 원진아가 9일 오후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그냥 사랑하는 사이' 배우 원진아 JTBC월화드라마 <그냥 사랑하는 사이>의 배우 원진아가 9일 오후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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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시간 꿈만 꾸던 연기"

- 91년생. 연기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데뷔가 늦다고 할 수 있는 편이다. 한 인터뷰에서 연기를 꿈꿨지만 다른 걸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중학교 3학년 때 친구와 함께 처음 연기학원이라는 곳을 가봤다. 그런데 너무 재미있는 거다. 연극영화과 입시 준비를 잠시 했는데 잘 되지 않았다. 예술고등학교 출신도 많고 생각보다 오랜 준비가 필요하더라. 첫째 딸이기도 하고 동생들도 있으니 하고 싶은 걸 하겠다고 말하지 못 하겠더라. 그래서 포기하고 살았던 것 같다. 아르바이트도 하고 일반 회사에도 다니고 계속 그렇게 지내다가 어느 날 어머니께서 '좀 더 늦기 전에 하고 싶은 걸 해보지 않을래?'라고 해주셔서 천안에서 바로 서울로 왔다. 그게 지금으로부터 3~4년 전이다. 그 후로 독립영화나 단역 등으로 연기하면서 현장에서 많이 배웠다."

- 어머니께서 딸이 연기하고 싶어 하는 걸 알았나 보다.
"알고는 계셨다. 입시도 준비했고 열정적이던 때가 있었는데 계속 우울해 보이고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이야기도 잘 안 하고. 하고 싶은 게 있는데 못하니까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이것저것 건드리기만 했다. 맴도는 걸 보다가 제대로 하고 싶은 걸 해보라고 놓아주신 것 같다."

- 실제로 우울했나?
"그렇다. 힘들었다. 하고 싶은 것이 있는데 내 것이 아닌 걸 하는 것 같고. 특히 연말을 보낼 때 제일 힘들었던 것 같다. 한 해 한 해 나이는 드는데 하고 싶은 걸 못 하고 그렇다고 딱히 이뤄놓은 것이 있는 것도 아니고. 미련만 갖고 있고 실행은 못 하고. 그 시기가 제일 힘들었다. 부모님께서 '네가 그렇게 힘들어하는 걸 알았다면 연기를 시켜줄 걸 너무 늦게 알아 미안하다'고 하신다. 그런데 힘들었고 그만큼 간절함이 있었기 때문에 '하고 싶은 걸 하라'고 했을 때 망설이지 않고 바로 실행할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냥 사랑하는 사이' 배우 원진아 JTBC월화드라마 <그냥 사랑하는 사이>의 배우 원진아가 9일 오후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그냥 사랑하는 사이' 배우 원진아 JTBC월화드라마 <그냥 사랑하는 사이>의 배우 원진아가 9일 오후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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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모님께서 TV에 나와 좋아하시겠다.
"(웃음) 엄-청 좋아하신다. 3~4년 정도 계속 언저리만 맴도는 동안 내가 부담되고 힘들어할까봐 내색도 안 하셨다. '잘 하고 있니? 네가 알아서 잘 하겠지'라고. 영화나 드라마 '합격' 소식을 들려드릴 때마다 부모님과 전화통 붙잡고 같이 울고 감격스러워 했다. 이번에도 굉장히 좋아하셨고."

- 잘 기억이 안 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왜 연기가 적성에 맞는 것 같다고 생각했나?
"기억하고 있다. 그 순간을 잊을 수 없다. 처음으로 연기학원에 가 대사를 외워 학생들 앞에 섰다. 처음에는 내가 연기를 잘 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됐는데 대사를 한 줄 읊는 순간 창피함이 사라졌다. '이게 뭐지? 이 이상한 기분은 뭐지?' 싶었다. 그 이상한 기분 때문에 그 뒤로도 연기가 하고 싶었다."

- 첫 주연작을 끝마쳤다. 굉장히 오랫동안 연기를 꿈꾸다가 한 작품을 마치니 어떻던가?
"우선 긴 호흡을 끌어가는 법을 조금 배운 것 같다. 선배님들과 호흡하는 것도 많이 배웠고. 뒤로 갈수록 감정이 조금씩 붙고 집중이 잘 된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좋은 것보다 부족해 아쉬운 게 더 많더라. 방송을 모니터할 때마다 '왜 저렇게 했지? 저때 왜 저랬지?' 싶었다. 첫 방송을 보고 다들 너무 잘 하시는데 나만 못 하고 부족한 것 같아 죄송하더라. '아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건가' 했다. 그래도 끝내고 내가 못 하고 있다는 걸 발견하는 것도 좋았다. 여태까지 뭘 잘못하고 있는지 모르고 하다 보니 헤매기도 하고 자신감도 없고 마냥 어렵기만 했는데 어디가 부족하고 뭘 잘못하고 있는지를 보게 되니까. 고칠 부분이 보여서 좋더라."

- 그래도 모니터는 열심히 한 것 아닌가.
"보면서도 괴롭고 힘들다. 내가 왜 저랬지? 하는 생각이 많이 드니까. 그래도 내 모습을 빨리 파악해야 하기 때문에 공부한다고 생각하고 꾹 참고 본다. 한숨을 몇 천번씩 쉬면서 무릎을 몇 천번씩 내려 찍으면서 (웃음) 고통을 참고 봤다."

- 어떤 부분이 그렇게 부족하게 느껴졌나.
"매 장면마다! '왜 저렇게 호흡을 줬지?' '저럴 때 좀 더 감정을 줬어도 되지 않나?' '내가 왜 저길 보고 이야기하지?' 온갖 것들이 레이더망에 잡히더라."

- 평상시에도 만족을 잘 못 하는 편인가?
"그런 것 같다. (웃음) 잘 하고 싶은 분야이니 칭찬을 곧이곧대로 못 듣겠다. '잘한다' 하면 '못할까봐 잘한다고 해주시는 건가?' '주눅들까봐 잘한다고 해주시는 건가?' 이렇게 생각해서 잘한다고 해도 '왜요?' '뭘 잘했어요?' '뭘 잘 했다고 생각하세요?'라고 말한다. (웃음) 촬영 끝나고 집에 가기 전까지 항상 하는 행동이 있다. 집에 가시는 감독님 붙잡고 '감독님 오늘은 하실 말씀 없어요? 이거 진짜 맞아요?' (웃음) 이렇게 되물었던 것 같다."

- 피드백에 대한 진심 어린 갈구가 느껴진다. (웃음)
"그런 걸 들을 기회가 아직 없었기 때문이다. 작품 수가 많지 않으니까. 나에게 스승은 감독님이나 곁에 있는 스태프들이더라.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120:1의 경쟁률? 내가 잘 했다기 보다는"

'그냥 사랑하는 사이' 배우 원진아 JTBC월화드라마 <그냥 사랑하는 사이>의 배우 원진아가 9일 오후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그냥 사랑하는 사이' 배우 원진아 JTBC월화드라마 <그냥 사랑하는 사이>의 배우 원진아가 9일 오후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 120:1의 경쟁률을 뚫고 캐스팅 됐다는 말이 자자했다. 캐스팅된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했나?
"내가 연기를 뛰어나게 잘했다기 보다 인물과 얼마나 싱크로율이 높은지 얼마나 어울리는지가 더 중요한 것 같다. 미팅 때 감독님과 대화를 하는 과정에서 문수와 나의 비슷한 점을 찾아주신 것 같다. 120명을 제치고 내가 됐다기 보다는 120명 중에 감독님이 생각하는 문수와 내가 제일 가까웠다는 게 맞는 것 같다. 경쟁률로 표현하기에 애매한 부분이 있다."

- 문수랑 어떤 면에서 닮았다고 생각하나?
"문수랑 나는 첫째 딸이고 그래서 엄마와의 관계를 이해하기 좋았다. 엄마를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과 엄마의 모진 행동이 내가 싫어서가 아니라 엄마의 상처 때문이라는 걸 아는 아이라 화난 감정보다 서운한 감정을 표출해야 했다는 것? 그런 부분에서 닮아있지 않나 싶다. 문수랑 엄마의 관계가 너무 공감이 잘 되더라."

'그냥 사랑하는 사이' 배우 원진아 JTBC월화드라마 <그냥 사랑하는 사이>의 배우 원진아가 9일 오후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 <그냥 사랑하는 사이>는 원진아에게 어떤 의미인가?
"은인 같은 작품이다. 신인 입장에서 이렇게 감정선의 폭이 넓은 역할이 온다는 게. 나에 대해 빨리 파악을 할 수 있는 기회도 됐고 대본 자체도 너무 좋았다. 게다가 선배님들! 나문희 선배님을 이렇게 빨리 만나게 될 줄 몰랐다. 한 작품에서 많은 선배님들을 다 뵈니 영광스럽더라."

- <그냥 사랑하는 사이>가 세월호 참사에 대한 은유라는 이야기가 많이 나왔다. 대본을 받아 들고 특별하게 느낀 점이 있나?
"아무래도 세월호나 삼풍백화점 참사가 사회적으로 이슈가 됐던 거라 직접 연관을 지으시는 것 같다. 그런데 드라마는 지금도 곳곳에서 계속 벌어지는 크고 작은 이야기들을 말하고 있다고 봤다. 특정 사건을 지칭했다기보다 갑자기 당한 사고로 인해 얻은 슬픔과 이를 극복해나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주제가 무겁고 이 작품에 참여해도 될만큼 내가 관심이 있었던 사람일까? 생각했다. 그런데 그렇다고 유가족의 슬픔을 이해하려 한다는 것 자체가 어떻게 보면 조금 위험한 생각인 것 같더라. 노력해본들 내가 그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까. 조심스러운 마음이 생겼다. 그리고 유가족들이 많이 나오는데 반응이 각자 다 다르다. 참사를 받아들이는 태도랑 자세랑 감정이 모두 다르다. 나는 그냥 문수로서만 생각하면 됐다. 그렇게 준비했다."

- 촬영 이후 달리 보이는 사회문제가 있나?
"사고 후 대처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한 대처도 있지만 사고를 당한 후 살아가는 방향에 대해서도. 사고 이후에도 계속 고통을 갖고 살면 세상에 희망이라는 게 없지 않나. 그걸 극복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생각해봤고 극복하는 사람을 앞에 두고 위로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많이 생각했다. 내가 했던 대사 중에 '불행 중 다행이라는 건 없다. 불행은 그냥 불행한 거야'라는 대사가 있는데 '너라도 살아서 다행이다'라고 (극 중에서) 아빠가 그러신다. 정말 문수가 다행이라고 생각했을까? 그 말은 오히려 산 사람에게 죄책감을 들게 만드는 말이고 이 사람을 더 아프게 만드는 상처가 될 수 있는 말이더라. 그래서 함부로 남에게 위로를 건네서도 안 되고."

- 여러 피해자의 모습이 있다고 말했는데 사회가 요구하는 '바람직한 피해자상'이라는 게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피해자됨'을 강요하는. 이에 대해 문수는 어떻게 생각했을까?
"(참사 피해자를 다룬) <그냥 사랑하는 사이>가 어떤 일을 겪고나서 아주 긴 시간이 흐른 뒤에 그래도 '그냥 살아가는 모습'을 담았다는 게 좋다. 얼마든지 자극적이거나 신파처럼 쓸 수 있었음에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사람 일이 다 그런 것 같다. 큰 사고를 겪지 않아도 사람마다 사연은 있는 거고 마음의 상처를 갖고도 살아간다. 특별한 사고가 아니더라도 아프거나 불편한 사람일 수도 있다. 어떤 사람의 상처를 특별하게 보기 시작하면 그것이 또 다른 상처가 되는 것 같다. 한 사고를 겪은 사람인 거고 그럼에도 앞으로의 생활이 있기 때문에 보통의 사람들처럼 살아가는 거고. 나에게 물어봐도 '그런 일이 있었지만 난 살아가려는 의지가 있고 보통의 사람처럼 살아가고 있다'고 할 것 같다. '우리가 꼭 해야 할 일. 기억하는 것'이라는 내레이션이 있었다.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냥 사랑하는 사이' 배우 원진아 JTBC월화드라마 <그냥 사랑하는 사이>의 배우 원진아가 9일 오후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그냥 사랑하는 사이' 배우 원진아 JTBC월화드라마 <그냥 사랑하는 사이>의 배우 원진아가 9일 오후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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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우로서 앞으로 많은 날들이 남아있다. 개인적으로 어떤 작품을 앞으로 해보고 싶나?
"일단 안 해본 게 훨씬 많아서 선택의 폭이 넓은 것 같다. (웃음) 선택을 당하는 입장이긴 하지만 도전해보고 싶은 장르가 많다. 액션도 해보고 싶고 늦기 전에 학생 역할도 해보고 싶다. 그건 진짜 때를 놓치면 하기 힘들어지니까. 그리고 이번에 멜로의 매력을 알아버려 조금 더 색다른 느낌의 멜로도 한 번 도전해보고 싶다. 오래되고 다소 지친 사랑이라든가 혼자만 좋아하는 사랑이거나."

'그냥 사랑하는 사이' 배우 원진아 JTBC월화드라마 <그냥 사랑하는 사이>의 배우 원진아가 9일 오후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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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진아 그냥 사랑하는 사이 배우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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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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