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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첫 출산과 육아를 경험한 아내는 속초에 있는 동안, 장인, 장모님께 육체적으로나 정서적으로 큰 도움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친가나 외가의 도움 없이, 갓 태어난 아이를 오로지 둘이서만 돌보아야 하는 부부들은 얼마나 힘들지' 상상도 잘 안된다고 하더군요. 틀린 말은 아닐 겁니다. 야근에 회식이 일상화된 한국 사회에서 남편이 외벌이를 한다면, 아내는 말 그대로 산후우울증을 이겨내며 '독박 육아'를 할 수밖에 없을 테니까요.

작년 한 여성이 대구에서 생후 4개월된 아들을 창밖으로 던져 숨지게 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재작년에는 부산에서 한 여성이 6개월 된 딸과 함께 투신한 사건도 있었습니다. 두 사건 모두 산후우울증이 원인이었습니다. 산후우울증은 출산을 처음 경험한 산모가 신체적, 정신적 변화를 동시에 감당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거의 모든 산모들이 설문조사에서 신생아 수유로 인한 수면 부족, 육아로 인한 갈등, 남편의 늦은 귀가와 무관심을 산후우울증의 원인으로 꼽았다는 게 제게는 의미심장하게 다가왔습니다. 평소 집에 늦게 들어가는 일이 많았던 저로서는 속된 말로 조금 '찔려서'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전문가들은 남편이나 주변의 도움 없이 엄마 혼자 아이들을 돌보는 '독박 육아'가 산후우울증의 가장 큰 원인이라고 지적합니다. 며칠 간 독박 육아를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저는 육아휴직을 낸 이후에야, 독박 육아가 얼마나 힘든지, 그리고 산후‧육아 우울증에 걸리는 엄마들의 마음이 어떨지 조금은 이해가 가기 시작했습니다.

▲ 육아 초기에는 아이가 자야 저도 겨우 눈을 붙일 수 있었습니다.
▲ 낮잠 ▲ 육아 초기에는 아이가 자야 저도 겨우 눈을 붙일 수 있었습니다.
ⓒ 나승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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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짧았던 육아휴직 기간 동안, 아이 앞에서 여러 번 울고 싶은 순간들을 겪었습니다. 기저귀를 갈면서, 밥을 먹이면서, 옷을 갈아입히면서 말이죠. 말귀를 알아듣지도 못하는 20개월짜리 아이 앞에서 눈가를 그렁그렁 적시며 어른답지 못하게 짜증을 냈습니다. 그럴 때마다 아이는 분위기 파악도 못하고 더 크게 울어댔고, 그런 날에는 아내의 퇴근 시간이 너무도 기다려졌습니다.

"여보. 나 오늘 저녁에 회식 있어서 늦을 거 같아."
"어쩌지, 나 내일 출장 잡혔어."
"여보. 나 일 있어서 오늘 늦는다."


카카오톡에 회식, 야근, 출장 등을 알리는 아내의 메시지가 뜰 때마다, 저도 모르게 짜증이 났습니다. 특히 와이프가 집에 없는 날 몸이 조금이라도 피곤하면, 이러다 감기몸살이라도 걸리는 게 아닐까 조바심이 날 정도였습니다. 아이 엄마인데 장거리 출장은 다른 사람보고 가라 하면 안 되는 거냐고 집에 온 아내 앞에서 화를 내기도 했죠. 아내는 자기 업무인데, 출장을 누가 가겠느냐고 다시 저에게 짜증을 내면서 부부싸움을 하기도 했습니다.

"오늘은 일찍 들어와?"
"저녁은 집에서 먹을 거지?"


아내가 집에서 육아를 담당하고 제가 회사를 다닐 때, 아내는 늘 퇴근 시간에 맞춰 제게 전화를 하거나 문자를 보냈습니다. 집에 일찍 들어오는지, 밥은 먹고 들어오는지를 물은 후, 꼭 빨리 오라는 말을 덧붙였죠. 반대로 아내가 회사에 다니고 제가 육아를 담당하는 동안에는, 제가 아내가 했던 행동을 따라하고 있었습니다. 육아휴직 동안 아내와 저의 입장이 완전히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아이가 젖먹이였을 때 홀로 육아를 전담하다시피 한 아내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문득 미안한 마음과 고마운 마음이 뒤섞여 일어났습니다.

부끄럽지만, 저는 육아를 전담하기 전까지 아내가 얼마나 육아 때문에 힘들었을지 제대로 모르고 있었습니다. 육아는 아내 혼자만이 아니라, 부부가 함께 담당해야 하는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게 잘 안되더군요. 그 전까지는 똥 기저귀를 갈고, 옷을 입히고, 이유식을 만드는 일이 거의 아내의 몫이었으니까요. 아내를 이해하기 위해, 제겐 진정으로 주부의 삶이 필요했나 봅니다.

아내에게 한동안 육아 노동을 떠넘겼던 입장에서 온통 미안한 마음뿐이지만, 지금은 야근을 한 아내가 집에 늦게 들어오는 날도 저는 무척 좋습니다. 몸이 피곤하면 피곤한 만큼, 아내가 설거지나, 빨래를 개는 등의 소소한 집안일도 열심히 도와주니까요. 하지만, 저와는 달리 나머지 배우자가 육아나 가사 일을 조금도 도와주기 힘든 가정이 있다면, 육아를 전담하는 배우자는 얼마나 힘들까요?

괜한 오지랖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첫 기사에서 언급한 제 친구의 아내가 산후우울증을 겪진 않을지 걱정이 됐습니다. 제 친구는 하루 300~400Km 정도 장거리 운전을 하며 물품을 납품하는 일을 합니다. 제 친구는 평일 저녁에 잠깐 저를 만날 때에도 늘 피곤에 지쳐있었고, 밤 10시에는 잠을 자야한다며 일찍 집에 들어가곤 했죠. 평일 야근과 매주 토요일 근무가 기본인 터라 휴일인 일요일에는 늘 늦잠을 잤고, 오후에는 자기계발이나 가사 일을 해야 한다며 시간을 내기 힘들어했던 친구입니다.

"내가 미쳤냐."

딸을 낳은 친구에게 둘째 계획은 없냐고 묻자 농담처럼 들려온 대답입니다. 지금도 아내의 육아를 옆에서 많이 도와주지 못해 늘 미안한데, 어떻게 둘째를 생각하겠냐고 반문했습니다. 제 친구는 회사에서 지급하는 개인 연차 15일 중 11일은 명절 등 휴일에 연차를 쓰게 하는 터라, 몇 개 안 남은 연차 때문에 평일에는 거의 쉴 수가 없다더군요. 평일에 일이 끝나면 집에서는 씻고 저녁을 먹은 후 바로 자야 할 정도로 늘 피곤한데, 무슨 회식이 그렇게 많은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답니다. 이런 환경 속에서, 제 친구는 아이가 크면 자주 놀아주지 못할 것을 미리부터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아이가 크면, 학교 입학식에도 못 가는 못난 아빠가 될 게 너무도 분명하다면서요.

조금 부끄럽지만, 우리 부부의 경우에는 아이가 부모의 손을 많이 필요로 하는 젖먹이였을 때 특히 부부싸움이 잦았습니다. 하루 종일 바빴던 아내는 제가 육아에 무관심하고 실질적으로 별로 도움이 되어주지 못한다며 늘 섭섭해 했고, 저는 반대로 육아에 나름 신경 쓰고 있는데 아내가 이를 몰라준다며 섭섭해 했습니다. 육아휴직을 쓴 후, 아내의 육아를 열심히 도와주었다고 생각한 게 모두 착각이었음을 깨달았죠.

아내는 초창기 육아 스트레스가 극에 달한 상황에서, 제가 큰 도움이 되어주지 못하자 더욱 우울했다고 말합니다. 아내 말을 듣고, 저는 친구 아내의 산후‧육아 우울증뿐만 아니라, 제 친구가 받을 육아 스트레스도 괜히 걱정되기 시작했습니다. 저희 부부가 그러했듯, 대한민국에서 처음 아이를 가진 대다수의 새내기 부부들 또한 이러한 스트레스에서 자유로울 순 없을 테니까요.

저녁을 송두리째 앗아가는 강제 야근에 폭탄 회식이 일상화된 사회에서, 아내들은 말 그대로 산후우울증을 이겨내며 어딘가에서 '독박 육아'로 눈물 흘리고 있진 않을까요? 독박 육아에 눈물 흘리는 아내들은 오늘도 남편보다 더 회식이 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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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산후우울증, #육아우울증, #육아스트레스, #독박육아, #연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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