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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격연수 <배움을 향한 핀라드 교육> 마지막 화면
 원격연수 <배움을 향한 핀라드 교육> 마지막 화면
ⓒ 장옥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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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의 자율성이 존중 되는 핀란드 교육의 모습

"핀란드의 선생님들은 교육적인 자치권을 누리고 있다. 선생님들은 교과서와 교육자료, 그리고 교수 방법에 대하여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

이것이 이 연수의 핵심 문장이다.

핀란드에서 가르치는 일은 매우 인기 있는 직업이며 높은 지위를 나타낸다. 선발되는 인원에 비해 지원자들이 매우 많은 편이고, 결과적으로 선생님들의 자질과 능력이 매우 높다. 선생님들은 많은 자율성을 가지고 있으며, 핀란드 교육시스템은 선생님들은 통제하기보다 믿음과 신뢰를 기반으로 돌아간다.

핀란드 선생님들은 자신의 교수법에 대한, 그리고 학교의 발전에 대해 자유롭게 연구할 수 있다. 선생님들은 가르치는 방법, 수업자료, 학생 평가방법에 대해서 스스로 선택할 수 있으며, 다른 선생님들과 협업으로 하는 수업도 종종 볼 수 있다. 선생님들은 의사결정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지역단위 교육과정 설계에 참여할 수 있다. 국가 단위의 교육과정 발전에도 선생님들이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선생님들은 기본적으로 교육개혁과 새로운 교육 시도에 있어 전문가로서 대우받고 있다.

핀란드 교육의 우수성은 우수한 교사를 선발하는 교육정책에서 시작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선발된 우수한 교사를 감시하거나 평가의 대상으로 삼지 않은 신뢰하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핀란드 교사에게 부여된 전문성과 신뢰를 바탕으로 학생들에게 자신이 선택한 교과서와 교육방법을 전개하는 기쁨이 충만하며, 평가 받지 않는 자율성과 전문성이 핀란드 교육의 수준을 높이고 있다고 생각되는 연수였다.

그리고 노동조합을 통하여 교사의 목소리가 국가정책에 반영되는 체제 또한 매우 바람직한 모습이다. 핀란드 교사들은 전문성 신장을 위해 근무 중에도 박사 학위에 도전할 정도로 학구적이니 교육의 수준이 높아지는 것은 당연하다. 공부하는 핀란드 선생님의 모습은 대한민국 교사들에게도 많은 귀감을 주리라 확신이 들었다.

핀란드 교사에게 주어진 자율성은 교사의 책임이 전제되어야 함을 깨달았다. 열심히 공부하고 학생들을 정성과 열정으로 기르는 교사들이 많아지도록 대한민국의 교육정책, 특히 교사들에 대한 신뢰와 자율성 보장을 깊이 생각한 이 연수 프로그램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새 날이 오고 있다

이른 아침 금성초에서 동이 트기 전 학교에서
▲ 이른 아침 금성초에서 동이 트기 전 학교에서
ⓒ 장옥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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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새 학기를 준비하는 이른 아침 학교에서

새해가 밝은 지 벌써 두 달이 지났다. 그런데도 학교는 3월이 되어야 새해 기분이 드는 특별한 곳이다. 필자에게는 교단에서 맞이하는 마지막 해이기에 느낌도 각별하다. 1980년 10월 25일, 공무원 3년 4개월을 마치고 그 다음 날 부임했던 전남 고흥 도화면 가화초등학교. 교사 자격증을 얻고 순위고사를 치렀으며 한 달간 현장실습을 마치고 부임했다. 공무원을 하면서 초, 중, 고 학생 40여 명 과외지도를 했기에 학생지도의 기술을 나름대로 익혔다. 과외금지령이 내리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규모가 큰 입시학원을 운영했을지도 모른다.

1980년대 과외금지령이 내리고 한 달간 많이 힘들었다. 3년 가까이 가르친 학생들이 보고 싶었다. 그들 중에는 제자 노릇을 한다며 필자의 결혼식에 단체로 찾아와 줄 정도로 우린 친했기 때문이다. 일요일까지 공부를 가르쳐주었고 우수 학생을 칭찬하는 선물도 제공하곤 했다. 단체로 지도했지만 개인과외처럼 개별지도에 힘썼던 열정 덕분에 입소문을 탔다. 그것도 정규과정 대신 검정고시를 치른 후광(?) 덕을 보았다.

그 당시의 공무원 사회는 철저한 상명하복 시대였다. 필자는 그걸 견딜 수 없었다. 기획이나 프로젝트는 고사하고 뭐든 시키는 대로, 때로는 매뉴얼을 넘어선 일도 상사의 명령이라면 무조건 따라야 하는 현실이 너무 힘들었다. 승진을 하려면 고분고분 일해야 하는 것은 당연했고, 시간 외 근무는 필수였으며 원치 않는 일도 감당해야 했다.

내가 원하는 직장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러던 차에 교사 자격증이 주어지는 한국방송통신대학 초등교육과에 합격했고 졸업했다. 동기들 중에는 고위직 공무원이 된 친구도 있지만 교직을 선택하여 무명교사로 지내온 시간을 후회하지 않았다. 군 단위 기관장 정도는 기본인 동기들은 이미 퇴직했다. 교사가 부족했던 시절이라 임용도 빨랐다.

그로부터 38년 동안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담임을 맡았다. 교단 경력의 절반은 고학년을 맡았다. 옮겨가는 학교마다 해마다 6학년을 가르쳤다. 고학년 전문이라는 별칭이 따라붙었고 묻지도 않고 6학년을 맡겼다. 수학경시대회 지도를 10여 년, 합창 지도를 몇 년, 문예반 지도는 해마다 나의 몫이었다. 때로는 경리업무까지 맡아 속앓이를 하며 관리자에 대한, 교육계에 대한 회의로 힘들었다. 6학년을 많이 한 덕분에 장성한 제자들이 많다. 때로는 그들의 결혼식 주례를 서는 일도 잦았다. 이제는 나처럼 희끗한 머리를 자랑하며 함께 늙어가는 제자들을 보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며 젊음을 바친 교단의 시계가 유난히 빠르다. 마지막 해의 열매를 잘 거두는 밑거름을 위해 다시 연수를 시작했다. <배움을 향한 핀란드 교육> 원격 연수는 그런 내 마음에 불을 댕기기에 충분할 만큼 신선한 감동을 안겨주었다. 책으로 만났던 핀란드 교육보다, 학습연구년 북유럽 연수로 짧은 기간 접했던 현장연수보다 훨씬 깊고 풍부했다.

교직은 평생 배우는 자리여서 다시 한 번 감사하는 직업이다. 핀란드 교육의 힘이 어디서 나오는가? 교사에게서 나온다. 그들의 높은 학력과 학구열, 그리고 고도의 전문성에서 나오는 것은 당연한 결론임을 확인했다. 자율성은 전문성과 책임감의 다른 표현이라는 것을!

정년퇴직을 앞둔 교사이니 담임을 맡지 않거나 분장 사무를 줄여주는 것도 원치 않는다. 예년과 똑같이 담임을 하고 일도 더 열심히 할 것이다. 인생은 과정도 중요하지만 끝은 더 중요하다. 인생의 선배, 교단의 선배로서 후배들의 짐을 덜어주지는 못할망정 그들을 힘들게 하는 선배는 결코 되고 싶지 않다. 아니, 더 베풀고 덜어줄 수 있는 짐은 없는지 살필 것이다.

때로는 상담자로 조언자로 후배들의 아픔을 다독이며, 관리자의 애로사항을 도우리라. 할 수만 있다면 더 일찍 출근하여 일찍 온 학생들을 돌볼 것이다. 누군가가 말한 것처럼 직장인은 자기 봉급의 3배를 일해야 한다고 했던가. 나를 위해서, 학생이라는 소비자를 위해서, 채용한 국가를 위해서 일하므로 3배라는 뜻일 것이다. 그것은 공자가 말한 정명(正名)이기도 하다. 이름값을 하는 일이다.

벌써부터 설렌다. 새 학기를 맞이하는 설렘이 없다면, 학교에 미안한 일이다. 내 반 아이들에게 죄를 짓는 일이다. 내일은 교실에 가서 제자들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겠다. 아이들이 사용할 사물함 정리도 해놓고 아이들 이름도 붙여 놓아야겠다. 청소도 해두고 화분들도 살펴야겠다. 내 어린 고객들을 위하여, 해맑은 웃음으로 3월 첫날의 만남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도록 밝고 산뜻한 정장을 만지작거리는 손길도 행복하다. 새 날이 오고 있다. 내 마음엔 벌써 봄이 와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전남교육소식과 한교닷컴에 송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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