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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과연 어려운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시라고 반드시 어렵지는 않다. 물론 어려운 시도 많다. 시를 어렵게 생각하기 때문에 어렵다는 말에 동의하기 어려운 시가 많다. 나는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지만 4월이 왜 가장 잔인한 달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전공자에게도 여전히 T.S 엘리엇은 어렵다. 셰익스피어 소네트를 읽고 '아! 이래서 이 양반을 인도와도 바꾸지 않겠다고 말한 것이구나'라는 감탄도 나오지 않았다.

<집사부일체>에 출연한 윤여정도 말했다. 시집을 읽으라고. 최근에 나온 시집들.
 <집사부일체>에 출연한 윤여정도 말했다. 시집을 읽으라고. 최근에 나온 시집들.
ⓒ 최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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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찬가지도 서양인이 '관동별곡'을 읽고 그 뛰어난 문학성을 느끼기는 어렵다. 시는 시인이 느끼는 감정이나 메시지를 함축된 형식으로 표현한 장르라서 어쩌면 시를 어렵게 느끼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시라고 해서 반드시 어려운 것은 아니다. 또 다른 장르라고 시보다 더 이해하기 쉽다고 말할 수도 없다.

칸트가 쓴 <순수이성비판>, 제임스 조이스가 쓴 <율리시즈>를 굳이 거론하지 않더라도 당장 우리나라 소설가 박상률이 쓴 <죽음의 한 연구>를 한쪽만 읽어보아도 '시는' 어렵다는 생각이 시로서는 억울한 일이다.

어려운 시도 있지만, 누구나 이해하고 공감하고 울림을 얻을 수 있는 시도 많다. 굳이 시는 어려운 장르라고 생각하고 포기할 필요가 없다.

어떤 시집으로 시작할까?

처음 시집을 읽는 사람에게는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수록된 시부터 시작하기를 권한다. 기본적으로 청소년 눈높이에 맞는 시를 엄선했기 때문에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다. 물론 작품성도 보장된다.

어느 세월에 교과서를 뒤져가면서 시를 찾아 읽을까 고민할 필요는 없다. 친절하게도 교과서에 실린 시를 모아서 펴낸 책이 있다. 학교 다닐 때 이미 배웠고 시험도 거쳐서 지겹다고 생각하지 마시라. 우리의 자상한 교육부는 몇 년마다 교과서를 개정하고, 시대에 맞춰 새로운 시를 채택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10년이 넘은 사람이 교과서 시를 둘러보면 읽지 못한 시를 많이 발견하게 될 것이다.

시집 초보는 이념적이거나 실험적인 시보다는 서정시부터 읽기를 권한다. 아무래도 라임이 없고 난해한 시는 나중으로 미루는 것이 좋겠다. 우선 윤동주, 백석, 정지용 같은 시인이 좋겠다. 이 단계를 지나면 좀 더 현대 서정시로 넘어가서 유치환, 황동규를 읽고 동시대 서정시인 문태준, 안도현, 도종환 등으로 넘어가면 된다.

시를 처음 읽는 사람들은 작가 중심이 아닌 읽기 편안한 시 모음집이 좋겠다. 안도현의 <그 풍경을 나는 이제 사랑하려 하네>, 김용택의 <시가 내게로 왔다>,<어쩌면 별들이 너의 슬픔을 데려갈지도 몰라>, 류시화의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는 것처럼> 등을 추천한다.

시를 읽으면 얻는 것들

무엇보다 시는 경제적이다. 무슨 말인가 하면 이동이 잦은 현대인에게는 상대적으로 크기가 작은 시집이 읽기가 편한 측면이 있다.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꺼내서 읽기 쉽다. 장편소설과는 달리 반복해서 읽기가 편하다. 저렴한 가격도 빼놓을 수 없는 장점이다. 시집은 단지 물리적으로만 경제적인 것도 아니다. 백석의 연인 김영한은 1천억 원대의 재산을 기부하면서 "그까짓 것 백석의 시 한 줄보다 못해"라고 말했다.

좋은 시라고 해서 1천억 원대의 가치를 가졌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시 한 줄을 읽고서도 10권짜리 대하소설을 읽고 느낄 수 있는 공감과 감동을 할 수 있다. 얼마나 경이로운 장르란 말인가?

* 장편掌篇 2 - 김종삼
조선총독부가 있을 때
청계천변 십전 균일상床 밥집 문턱엔
거지소녀가 거지장님 어버이를
이끌고 와 서 있었다
주인 영감이 소리를 질렀으나
태연하였다
어린 소녀는 어버이의 생일이라고
십전짜리 두 개를 보였다.
* 묵화(墨畵) - 김종삼
물먹는 소 목덜미에
할머니 손이 얹혀졌다.
이 하루도
함께 지났다고,
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
서로 적막하다고,

김종삼이 쓴 이 짧은 시를 읽고서도 우리는 현대사를 논한 수백 쪽의 기록이나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감지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시를 읽으면 말솜씨가 좋아진다. 시는 일종의 노래다. 다른 장르와는 달리 시는 기본적으로 크게 소리 내서 읽도록 의도된 경우가 많다. 시가 가지고 있는 운율과 리듬을 느끼면서 낭독을 하다 보면 어디서 멈춰야 할지, 어디서 소리를 높여야 할지, 어디에서 속도를 늦추어야 할지를 알게 된다. 이 경험이 쌓이면 그 언어에 대한 이해가 높아지고 그 언어를 어떻게 구사해야만 다른 사람을 설득하고, 공감을 얻어낼지를 깨닫게 된다.

시를 읽는다는 것은 단지 문학적 경험을 누릴 뿐만 아니라 언어사용을 좀 더 원활하게 할 수 있는 기술을 터득하게도 해준다.

시를 읽으면 어휘력과 표현력이 향상된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적인 특성 중의 하나가 폭넓은 어휘력이다. 시인은 다른 장르에 비교해서 극히 한정된 숫자의 단어만 사용해야 하므로 단어 선택에 좀 더 신중히 처리해야 하고, 한 단어가 가지고 있는 다양한 의미를 될 수 있는 대로 더 많이 사용하려 한다.

시를 읽는 독자는 하나의 시어가 가지고 있는 다양한 의미를 생각하게 된다. 이런 경험이 쌓일수록 어휘력과 표현력이 좋아질 수밖에 없다. 소설이 영화로 재현되고 연결되듯이 시는 노래로 재현되고 연결된다. 시인 정지용의 <향수>는 가수 이동원의 노래 <향수>로 재탄생하고 새로운 즐거움과 감동을 준다. 시는 읽고 낭독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태그:#시,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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