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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에 행정심판을 제기한 이유 "김기춘 항소심 판결문 제공 불허"

국민은 누구나 '대한민국 법원 대국민서비스 판결서 사본 제공 신청'을 통해 판결문 제공을 신청할 수 있다. 신청을 접수받은 법원은 수수료 1천 원을 받은 뒤, 신청자에게 특정인의 개인정보 등을 가린 '비실명화 판결문'을 제공한다.

물론 모든 판결문을 제공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형사소송법 제59조의3은 ▲심리가 비공개로 진행된 사건 ▲소년 사건 ▲공범의 증거인멸 및 도주를 용이하게 할 우려가 있을 때 ▲관련 사건의 재판에 중대한 영향을 초래할 우려가 있을 때 ▲국가의 안전보장을 현저히 해할 우려가 명백하게 있을 때 ▲국가의 안전보장·선량한 풍속·공공의 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현저히 해할 우려가 있는 때 ▲사건관계인의 명예나 사생활의 비밀 또는 생명·신체의 안전이나 생활의 평온을 현저히 해할 우려가 있는 때에는 판결서의 제공을 제한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위 형사소송법 조항은 "판결이 확정된 사건"의 판결문 제공을 제한하는 규정이다. 판결이 확정되지 않은 사건의 판결문 제공을 제한할 수 있는 규정은 대법원 예규 '전자우편 등을 통한 판결문 제공에 관한 예규' 제2조 제3항에 있다.

해당 조항은 "진행 중인 재판에 관한 판결문"과 관련해 ▲공개될 경우 직무수행이 현저히 곤란할 때 ▲당사자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현저히 침해한다고 인정될 때에 판결문 제공을 제한한다.

최순실 씨의 제1심 판결문 제공을 신청한 뒤 온라인으로 통보받은 '공개제한' 처분
 최순실 씨의 제1심 판결문 제공을 신청한 뒤 온라인으로 통보받은 '공개제한' 처분
ⓒ 박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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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 출입기자단 가입은 꿈도 꿀 수 없는 작은 매체 소속인 기자로서는 항상 '대국민서비스 판결서 사본 제공 신청'을 통해 수수료를 결제한 뒤 비실명화 판결문을 받았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전에는 설령 법원이 '공개제한'을 통보해도 가급적 이해하려고 노력한 편이었고, 특히 민감한 사건일 때에는 더욱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서울중앙지방법원·서울고등법원은 "유독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제1심·항소심 재판과 관련해 엄격하게 예규를 적용하면서 판결서 제공을 제한한다"는 오해를 유발할 위험이 있을 정도로, 판결문 공개를 막는 사례가 다른 사건들에 비해 빈번하다.

기자가 현재까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재판과 관련해 비실명화 판결문을 제공받지 못한 사례와 이유는 다음과 같다.

① 이임순 순천향대 의대 교수의 국회증언감정법상 위증 사건 제1심(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 부장판사 김태업) - 피고인 이임순의 '열람복사제한' 신청

② 차은택 전 창조경제추진단장 등의 '포레카 지분 강탈 미수' 사건 제1심(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 부장판사 김세윤) - 공동피고인 김경태씨의 소송대리인 법무법인 화우의 '열람복사제한' 신청

③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의 뇌물공여 등 사건 제1심(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 부장판사 김진동) - 공동피고인 전원을 대리하는 소송대리인 법무법인 태평양의 '열람복사제한' 신청

④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 등의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 항소심(서울고법 형사3부: 부장판사 조영철) - 증인으로 출석한 적이 있는 강모씨의 '열람복사제한' 신청

⑤ 최순실 씨·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뇌물수수·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 사건 제1심(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 부장판사 김세윤) - 피고인 신동빈의 소송대리인 김유진 변호사의 '열람복사제한' 신청


①·② 사례까지는 썩 유쾌하지 않아도 가급적 이해하고 받아들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③을 겪으면서 문제의식을 느끼기 시작했고, ④에 이르러서는 치밀어 오르는 짜증을 견디지 못했다.

기자는 ④를 겪으면서 서울고등법원장을 상대로 '판결서 사본 제공 신청 불허 처분'에 대한 취소를 구하는 행정심판을 제기했다.

결과를 떠나서 "사법부에 미력하나마 항의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었다. ⑤에 대해서도 서울중앙지방법원장을 상대로 행정심판을 제기할 예정이다. 뿐만 아니라, 앞으로 제공을 불허하는 판결문에 대해서는 일일이 행정심판을 제기할 예정이다.

국민이 법원으로부터 판결문을 제공받을 수 있는 권리는 헌법상 보장된 권리다. 하지만 법원이 "진행 중인 사건"의 판결문 제공을 불허하는 근거는 예규였다. 헌법보다 무서운 행정규칙인 셈이다.

국민이 판결문을 읽는 이익 vs. 일부 피고인이 '비실명화 판결문' 차단으로 얻는 이익

"어떤 경우에 판결문이 공개되면 당사자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현저히 침해하느냐"거나 "어떤 경우에 판결문이 공개되면 사건관계인의 명예·사생활 등을 현저히 해하느냐"는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판단할 여지는 법원에 있다.

해석을 하더라도 영역의 한계는 지켜야 하고, 근본적으로는 당사자들의 이익과 공익적 의미를 모두 비교해 그 우월을 따져야 한다.

신동빈 측 소송대리인의 '판결문 비공개' 신청
 신동빈 측 소송대리인의 '판결문 비공개' 신청
ⓒ 대법원 나의사건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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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대통령이 헌정 사상 최초로 파면된 계기가 된 사건이었다. "이처럼 중대한 사건의 판결문을 볼 수 있는 권리"는 국민 누구에게나 보장돼야 할 권리다.

국민이 '대국민서비스 판결서사본 제공 신청'을 거쳐 수수료 1천 원을 지급한 뒤 받는 판결문은 피고인·증인 등 각종 관계자들의 신상정보가 모두 비실명화 처리돼 개인정보를 침해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

또한, 사건 자체의 중대함 때문에 수많은 언론들이 심리 과정 중 상당 부분을 보도했다. 과연 법원은 무슨 이유에서 "판결문 제공을 막음으로써 얻는 일부의 이익이 '국민 누구나 판결문을 제공받을 이익'보다 앞선다"고 판단한 것인지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특히 ④(김기춘 블랙리스트 사건)의 사례처럼 증인으로 출석한 사람의 '열람복사제한' 신청을 인용한 것은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비실명화 판결문이 왜 비실명화 판결문일까? 그의 이름과 개인정보도 익명화돼 제공될 것이기 때문에 비실명화 판결문이다. 참고로 그의 증인신문은 여타 언론에서 보도된 바 없기 때문에 더욱 납득하기 어려웠다.

법원은 "왜 유독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관련 사건에 대해 더욱 엄격하게 공개 여부를 판단하는지를 납득할 수 있게끔 설명할 필요가 있다"고 느끼면 과민한 일일까?

"중대한 정치적 변화까지 몰고 왔던 초대형 사건의 판결문을 읽지 못해 국민 전체가 침해당하는 이익"과 "일부 피고인이 비실명화 판결문 제공 차단으로써 얻는 이익", 과연 둘 중 뭐가 더 무거울까?

덧붙이는 글 | 저는 '샤브샤브뉴스' 기자입니다. 이 기사는 '샤브샤브뉴스'에도 게재됐습니다.



태그:#최순실, #판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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