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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수용소에서> 표지
 <죽음의 수용소에서> 표지
ⓒ 청아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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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수용소에서> 저자 빅터 프랭클은 제3의 심리학파라 불리는 '로고테라피'의 창시자다. 그는 히틀러 시대, 나치 강제 수용소에서 살아남아 그 경험을 토대로 '로고테라피'라는 학파를 창시한다.

이 책의 전반부는 자신이 수용소에서 겪은 일화들을 소개하고 있으며, 후반부는 로고테라피의 핵심 내용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이 책만으로 로고테라피 전체를 이해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로고테라피는 일반적인 정신분석과는 거리가 멀다. 로고테라피의 핵심은 '자기 스스로 삶의 의미를 찾아내는 것'이다.

보통 수용소, 그것도 히틀러 시대의 강제 수용소라면 죽음의 냄새가 가득하고 절망과 고통만이 존재할 것 같지만 프랭클 박사의 주장은 다르다. 수용소의 끔찍한 생활 속에서도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삶의 의미야말로 죽음의 수용소에서 살아남게 만든 원동력이었으니 말이다.

수용소에서의 삶은 내일이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의 삶은 과거-현재-미래가 있어야만 존재할 수 있다. 미래를 꿈꿀 수 없고 고통스러운 현재만이 가득하다면 그 삶은 결코 아름다울 수 없으며 아무런 가치도 지닐 수 없다. 알츠하이머가 끔찍한 이유는 내일을 꿈꿀 수 없기 때문이다. 내일이 없는 삶은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지니지 못한다. 그 삶은 결국 망가지고 만다.

로고테라피에 의하면 우리의 삶의 의미를 세 가지 방식으로 찾을 수 있다고 한다. ① 무언가를 창조하거나 어떤 일을 함으로써 ② 어떤 일을 경험하거나 어떤 사람을 만남으로써 ③ 피할 수 없는 시련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기로 결정함으로써 삶의 의미에 다가갈 수 있다.

인간은 끊임없이 목표를 갈구한다. 목표야말로 내일의 원동력이다. 인간에게 무언가 집중할 수 있는 것이나, 가치 있는 무언가를 생산해낼 수 있는 것이 없다면 그에게 다가오는 삶은 무미건조하며, 아무런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없다. 신현림 시인은 <나의 싸움>이란 시를 통해 이렇게 말한다.

"삶이란 자신을 망치는 것과 싸우는 일이다. 망가지지 않기 위해 일을 한다."

저자가 말하는 두 번째 방식은 사랑이다. 사랑이야말로 죽음조차 뛰어넘을 수 있을 만큼 강렬한 삶의 이유를 부여할 수 있다고 말이다. 세 번째는 시련이다.  

"살아남아야 할 이유를 아는 사람은 어떠한 상태에서도 견뎌낼 수 있다."

프리드리히 니체의 말이다. 이 말은 로고테라피의 핵심을 드러내는 상징적인 말이다. 그렇지만, 시련을 넘어섰다고 해서 반드시 성장하는 것은 아니다. 시련은 누구에게나 다르게 다가온다. 견딜 수 있는 시련도 있지만, 너무너무 고통스럽고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시련도 있다. 견딜 수 있는 시련을 넘어선다면 성장할 수 있지만, 너무나 버거운 시련들은 나를 성장시켜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삶을 망가뜨린다.

시련 앞에 의연해질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또 때론 아무것도 취하지 않고 밑바닥까지 떨어졌을 때에야 비로소 살아야 할 의미를 찾을 수도 있다. 때문에 로고테라피에서 말하는 세 가지 요소가 반드시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방식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저자가 말하는 핵심은 죽음 냄새가 가득한 극한의 절망 속에서도 삶의 의미를 찾아낼 수 있다는 긍정의 메시지다. 결국은 살아있어야만 삶의 의미도 찾을 수 있으며 삶의 기쁨도 누릴 수 있다. 저자는 그 어떤 절망 속에서도 살아야 할 이유를 찾아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죽음의 고비를 넘어서고 나면, 살아있다는 것 그 자체가 위대해 보이지만 그 효과는 지속되지 못한다. 인간이 느끼는 감정의 유효기간은 지나치게 짧다. 인간은 작은 상처에도 무너질 수 있고, 어마어마한 시련도 넘어설 수 있다. 어쩌면 내면의 나를 잘 다스리고 긍정의 힘을 갖는 것이야말로 저자가 말하는 로고테라피의 진정한 의미일지도 모른다.

삶의 의미는 무엇일까? 그러나 우리는 그 의미를 지나치게 남과 비교하거나 물질적인 것에 집착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지나치게 행복이란 단어에만 집착하고 그것만을 좇으려 하는 것은 아닐까? 그로 말미암아 지나치게 자신의 삶을 실패한 것으로 단정 짓고, 눈에 보이는 가치에만 삶의 의미를 두려 하고 있는지도 말이다.

각자에게 다가오는 삶의 의미는 모두 다르다. 진정한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서는 내면을 잘 다스려야 한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이상하게도 그것만큼 어려운 일은 없다.
"인생이란 치과의사 앞에 있는 것과 같다. 그 앞에 앉을 때마다 최악의 통증이 곧 찾아올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러다 보면 어느새 통증이 끝나 있는 것이다." - 131p

덧붙이는 글 | 개인 블로그에 중복 게재하였습니다.



죽음의 수용소에서 (양장) - 빅터 프랭클의

빅터 프랭클 지음, 이시형 옮김, 청아출판사(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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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상가 입니다. 블로그 "사소한 공상의 세계"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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