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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도 기자의 사진 근현대사' 22회와 23회는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 소장 한국전쟁 사진 가운데 '피란'이라는 주제로 골라 게재한다. 여기에 한국 전쟁문학의 대가 김원일 선생이 그 당시 누나와 함께 서울에서 고향 진영으로 피란 간 이야기를 (저자 승낙 하에) 싣는다. - 기자 말

 1951. 4. 춘천, 한 가족의 고단한 피란 길
 1951. 4. 춘천, 한 가족의 고단한 피란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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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었던 굴속의 매연

(* 이전 기사 <피란길 오른 평양 어린이, 누가 이렇게 만들었나>에 이어)

가장 고통스럽기는 기차가 굴속에 들어갈 때였다. 석탄의 힘으로 가는 증기기관차가 뿜어내는 매연의 탓이었다. 기차가 속력이 늦은 데다가 아무리 코를 막아도 스며드는 석탄 매연을 참을 수 없어 모두 기침을 쏟아내며 어질머리를 앓았다.

굴이 길 때는 그 매연에 질식하고 마는 갓난애와 병약한 노인도 있었다. 석탄 껌정을 얼굴에 덮어써서 사람들은 모두 깜둥이가 됐으나 먹을 물도 귀한 판에 세수할 물이 따로 있을 리 없었다.

싸가지고 온 주먹밥은 하루를 넘겨 떨어졌는데 기차는 겨우 대전 부근을 통과하고 있었다. 부산이 종착역이었으나 누나와 나는 삼랑진에서 하차해 진주선으로 갈아타야 했다. 삼랑진에서 낙동강을 건너면 낙동역, 한림정역을 지나면 고향 진영역이었다.

 1951. 1. 1.4 후퇴 피란민 행렬로 고갯길에서 사람과 소달구지가 뒤섞인 채 아수라장이 되었다.
 1951. 1. 1.4 후퇴 피란민 행렬로 고갯길에서 사람과 소달구지가 뒤섞인 채 아수라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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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픔은 참을 수 없었다. 기차가 멈추면 뛰어내려 물부터 찾았고, 먹을 풀이든 뭐든 뜯어서 씹었다. 나흘째 맞은 아침에야 기차가 밀양 굴속에서 멈춰 버렸다. 사람들은 켁켁거리다 도저히 매연을 참아낼 수 없어 모두 기차에서 내렸다. 깜깜한 어둠 속에서 앞만 보고 뛰었다.

겨우 굴에서 나온 사람들은 기진해 쓰러진 채 기차가 굴을 빠져 나오기를 기다렸으나 누나와 나는 삼랑진까지 걷기로 했다. 40리쯤 걸어 삼랑진역에 도착할 동안 배추 뿌리도 캐어 먹고 민가로 찾아들어 구걸도 했다.

삼랑진역에 도착하니 철교를 미군이 지키고 있어 민간이 통행이 일체 허락되지 않았다. 하류로 내려가 강가 민가에서 겨우 밥을 얻어먹고 하룻밤을 났다. 작은 거룻배를 가진 분이 우리 남매를 불쌍히 여겨 낙동강을 건너게 해줬다. 거기서부터 진영까지는 30리가 넘었다.

누나와 나는 철길 따라 하루 낮을 걸어 저녁에야 진영 장터거리 친척집에 허기로 지쳐 쓰러지기 전에 가까스로 도착할 수 있었다. 서울에서 내려오며 그때 굶주린 기억은 그 후 오랫동안 잊히지 않았다.

- 박도 엮음, 눈빛출판사 발간, <나를 울린 한국전쟁 100장면>, 42~43쪽

 1950. 8. 23. 경남 함안, 가재도구를 등짐에 진 피란민 행렬.
 1950. 8. 23. 경남 함안, 가재도구를 등짐에 진 피란민 행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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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0. 8. 20. 대구 근교, 아이를 업고 가재도구를 머리에 인 피란민.
 1950. 8. 20. 대구 근교, 아이를 업고 가재도구를 머리에 인 피란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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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0. 8. 23. 경남 함안, 가재도구를 이고 진 피란민들이 열차표를 사려고 몰려들자 든 미 헌병이 이들을 통제하고 있다.
 1950. 8. 23. 경남 함안, 가재도구를 이고 진 피란민들이 열차표를 사려고 몰려들자 든 미 헌병이 이들을 통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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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0. 8. 24. 낙동강 유역. 가재도구를 머리에 이고 등에 진 피란민 행렬.
 1950. 8. 24. 낙동강 유역. 가재도구를 머리에 이고 등에 진 피란민 행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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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0. 8. 24.  한미 헌병이 피란민을 통제하고 있다.
 1950. 8. 24. 한미 헌병이 피란민을 통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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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0. 8. 24. 낙동강 유역. 유엔군의 통제 속에 가재도구를 머리에 이고 진 피란민들의 행렬.
 1950. 8. 24. 낙동강 유역. 유엔군의 통제 속에 가재도구를 머리에 이고 진 피란민들의 행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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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0. 8. 24. 낙동강 유역의 피란민 행렬.
 1950. 8. 24. 낙동강 유역의 피란민 행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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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0. 9. 마산, 피란민들이 섬으로 가고자 미 해군 상륙함(LST)에 오르고 있다.
 1950. 9. 마산, 피란민들이 섬으로 가고자 미 해군 상륙함(LST)에 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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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0. 12. 14. 서울, 남행 열차에 피란민들이 몰려들고 있다.
 1950. 12. 14. 서울, 남행 열차에 피란민들이 몰려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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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1. 1. 3. 인천, 인천시민들이 플랫폼을 가득 메운 채 피란열차를 기다리고 있다. 선로 위 무개화차에도 피란민들로 가득 찼다.
 1951. 1. 3. 인천, 인천시민들이 플랫폼을 가득 메운 채 피란열차를 기다리고 있다. 선로 위 무개화차에도 피란민들로 가득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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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1. 9. 유엔군의 통제 아래 피란민들이 열차를 기다리고 있다.
 1951. 9. 유엔군의 통제 아래 피란민들이 열차를 기다리고 있다.
ⓒ N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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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1. 서울, 필리핀과 태국에서 긴급 구호양곡으로 수입한 쌀이 한강 나루터에 도착하자 몰려든 서울 시민들.
 1951. 서울, 필리핀과 태국에서 긴급 구호양곡으로 수입한 쌀이 한강 나루터에 도착하자 몰려든 서울 시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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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천, 한 유엔군이 아이를 안아 피란길을 도와주고 있다.
 화천, 한 유엔군이 아이를 안아 피란길을 도와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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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여기에 수록된 사진 이미지들은 눈빛출판사에서 발간한 박도 엮음 <한국전쟁 ‧ Ⅱ>에 수록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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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년 교단생활 후 원주에서 지내고 있다. 장편소설 <허형식 장군> <약속>, 역사다큐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사진집<지울수 없는 이미지> <한국전쟁 Ⅱ> <일제강점기> <개화기와 대한제국> <미군정 3년사> 등.

오마이뉴스 정치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