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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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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코인은 화폐일까, 재화일까. 아니면 둘 다 아닌 색다른 무언가일까. 이 물음은 암호화폐(Cryptocurrency)를 긍정하는 측과 부정하는 측 어느 집단에 물어도 일치된 답변이 나오지 않는 주제이다. 비트코인이 단순히 소수의 장난감에 불과했던 십여 년 전에 이는 별 의미없는 궁금증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채 10년이 되지 않아 암호화폐는 약 450조 원(2월 말 기준)에 달하는 시장규모를 형성하고 국내에서만 300만 명 이상의 투자자를 확보하였다. 수차례 규제가 가해졌음에도 중국, 일본, 그리고 미국 등지를 비롯해 전세계적으로 암호화폐에 자금을 투자하는 개인과 기관들은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게다가 근래 터키, 베네수엘라와 같은 국가들은 직접 시장에 참여해 암호화폐 생산의 주체가 될 것임을 선언하고 있다.

이런 급속한 팽창의 흐름 속에서, 비트코인을 위시한 암호화폐들이 과연 공식적으로 어떤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지 정의내리는 것은 매우 시급한 과제가 되었다. 법적 정의가 부재한 상황에서는 어떠한 규제도 개입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가령 지난 12월과 1월, 한국 정부는 국제 시세에 비해 과도하게 높은 가격에 거래되는 한국 암호화폐들의 '김치 프리미엄' 현상을 문제시하며 강경한 대처를 천명하였다.

이에 따라 거래소 폐쇄 방안과 높은 세율 부과 등이 의논되었지만, 꽤 시간이 흐른 지금 모두 진척이 없는 상황이다. 이는 해당 방안들을 제도화하고 집행하기 위해 가장 기초적인 물음인 '그래서 암호화폐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법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비트코인의 시세 흐름(달러 기준)
 비트코인의 시세 흐름(달러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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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없는 화폐'를 꿈꾸지만

암호화폐의 시초인 비트코인은 '화폐'가 되고자 하는 목적을 가지고 탄생하였다. 화폐는 중앙은행에 의해 발행과 유통이 통제 및 관리된다. 이 때 화폐 소유자가 마주하는 리스크 중 하나가 과도한 화폐 발행에 의한 가치 희석이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 미 연준은 무제한 양적완화를 실시하였고 이에 따라 화폐 소유자들은 실질적으로 상당한 손해를 보았다. 이에 대한 대안 화폐로서 설계된 것이 애초에 정해진 수량(최대 2100만 개)까지만 발행될 수 있는 '디플레 화폐'인 비트코인이었다.

영국의 경우 2014년도에 비트코인을 '디지털 화폐'로서 규정하였는데, 국가가 나서 비트코인에 화폐적 지위를 인정한 최초의 사례였다. 차후 도래할지 모를 디지털 화폐의 시대에서 유리한 지위를 차지하기 위한 포석이었다.

자연스레 결제수단 등에 대한 지원도 이루어졌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비트코인의 존재나 가치가 상승하여도 이를 화폐수단으로 실제 사용하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실제 사람들 사이에 화폐의 개념으로 통용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결제를 원해도 방법이 마땅찮았다. 자연스레 다른 각도에서 암호화폐를 바라보는 이들이 생겨났다.

암호화폐를 금과 같은 재화로 취급하는 이들이 생겨난 것이다. 과도한 변동성과 제한된 실사용 방법 등으로 인해 화폐로 인정할 수는 없으나, 투자의 대상이라는 측면에서 재화로 취급하자는 것이다. 같은 2014년도 영국과 달리 비트코인에 '자산'의 지위를 인정한 일본이 대표적인 국가이다.

정부의 허락을 받은 거래소들만 암호화폐를 다룰 수 있게 하는 입법이 이루어졌고, 회계규칙 역시 개편했다. 그 이후로도 꾸준한 개칙들이 이루어졌고 근래에는 투자 이익에 대한 과세안까지 구체적으로 마련되어 가고 있다. 자연스레 일본인들의 비트코인 투자 및 보유 규모는 세계 최상위급이다. 

미국 정부의 입장은 '유가증권'

암호화폐 시장에서 중요한 위치에 놓여있는 미국은 지난 2월 6일(현지시간) 증권거래위원회(SEC)와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 등이 참석한 암호화폐 청문회를 개최하였다. 그리고 이곳에서 암호화폐는 사실상 '유가증권'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유가증권이란 재산상의 원활한 유통을 위하여 발행된 증서로서 일정한 재산에 대한 권리를 유동화한 것이다. 대표적으로 '주식'이나 '채권'이 여기에 포함된다.

그렇다면 암호화폐가 유가증권이라는 해석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여타 유가증권과 마찬가지로 제도권 내의 투자상품으로서 존재할 수 있는 법적 가능성을 열어준 것이다. 동시에 허술한 법망을 이용해 자유로운 이익 행위를 벌여온 거래소에 대한 경고 메시지를 던진 것이기도 하다.

그간 암호화폐는 '화폐'라는 통념 때문에 거래소 업체들은 유가증권만을 통제하는 SEC의 규제를 자유롭게 회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암호화폐가 유가증권으로 해석될 경우 법망 밖에 놓여있던 그들에 대한 감시가 가능해 지는 것이다. 비단 거래소 뿐 아니라 자유롭게 자본금을 모집해온 여러 ICO(암호화폐 발행을 위한 모금 절차, IPO와 유사) 등도 법적 규제의 대상으로 볼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이러한 방향의 해석을 받아들일 경우 금융감독원 등이 직접 암호화폐 시장에 대해 구체적인 관리 절차에 들어설 수 있을 것이다. 그간 가장 기초적인 법적 정의 절차가 마련되지 않은 상태였기에 금융감독원장이 할 수 있는 구체적 행위는 구두경고 뿐이었다. 그러나 암호화폐가 유가증권이라는 형태의 투자자산으로 인정될 경우 상황은 달라진다.

동시에 금융기관들의 공식적 참여가 열릴 가능성도 커질 것이다. 이미 미국에서는 골드만삭스나 JP모건 등이 암호화폐 시장에 직간접적으로 투자할 것임을 천명하였다. 이미 한 차례 실패하였으나 비트코인을 소재로 하는 ETF 상품의 개발 역시 계속 추진되고 있다. 확실한 투자자 보호 및 관리 주체들만 있다면 시장은 점차 안정적인 기존 투자시장처럼 변화할 것이다.      

3월의 G20 회담에서 암호화폐 역시 하나의 논제로 다루어질 예정이다. 현 정부 역시 과세안 마련을 위해 법적 절차에 들어갔다는 소식이 연이어 들려오고 있다. 국내외 모두에서 암호화폐를 규정하기 위한 노력들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없어지지 않고 갈수록 많은 이들을 끌어들이고 있는 존재라면, 그것이 무엇인지 명확히 밝히는 것도 공동체와 법의 주된 역할일 것이다. 어떤 결론이 나오게 될지 주시해보자. 


태그:#블록체인, #법, #경제, #사회, #암호화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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