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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리실 산하 부마민주항쟁진상규명 및 관련자 명예회복심의위원회는 23일 오후 부산시의회 대회의실에서 "부마민주항쟁 진상조사결과 보고회"를 열었다.
 총리실 산하 부마민주항쟁진상규명 및 관련자 명예회복심의위원회는 23일 오후 부산시의회 대회의실에서 "부마민주항쟁 진상조사결과 보고회"를 열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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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정부 때 구성되었던 '총리실 산하 부마민주항쟁진상규명 및 관련자명예회복심의위원회'가 내놓은 <부마민주항쟁 진상조사결과 보고서(초안)>에 대해, 전문가와 관련자들이 비난을 쏟아냈다.

23일 오후 부산광역시의회 대회의실에서 열린 '보고회'에서 발제·토론자들은 "항쟁일지'가 빠져 있는 게 치명적이다"거나 "사실관계 누락과 오류가 많다", "역사에 대한 모독이다", "이 보고서는 글로서 국가폭력을 하는 것이다"고 지적했다.

먼저 위원회 구옥서 위원장은 인사말에서 "처음에 위원회 구성의 부적절성 논란이 있었다. 그래서 소외된 단체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했다. 이후에도 의견을 적극 접수하여 검토 보완할 것"이라 했다.

이동관 실무위원은 "불법으로 연행되어 조사를 받던 경찰의 기록이 육군 고등검찰로 이관되어, 모든 자료가 보존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그는 "부마민주항쟁은 게릴라식으로 여러 곳에서 동시다발로 일어났다. 시위 전체 양상을 가능한 객관적으로 기술하려고 노력했다. 많은 자료 확보를 위해 관계기관에 협조를 기해 군과 경찰의 자료를 최대한 수립하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이도선 실무위원은 "부산의 학생 시위가 도심까지 진출하고 민중봉기로 확산되었지만, 경찰이 항쟁까지 이를 것으로 미처 생각하지 못해 초반에 허둥댔다"고 했다.

그는 "비상계엄 선포는 임시국무회의에 상정되기도 전에 군대의 움직임이 있었다. 비상계엄은 절차도 정당성을 결여했다"며 "당시 정부는 부마항쟁을 용공사건으로 몰고 가려고 했고, 마산 위수령 발동 이전에 군 투입했던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천대윤 실무위원은 "그동안 자료 협조 등을 요구했지만 관련 단체는 거부했다", "40여년 동안 발견하지 못한 자료를 찾아내기도 했다", "보고서는 객관성과 실체적 진실을 갖고 했다", "누가 카더라'를 갖고 기술할 수 없고, 보고서는 법적 근거에 따른 것"이라 했다.

총리실 산하 부마민주항쟁진상규명 및 관련자 명예회복심의위원회 구옥서 위원장이 23일 오후 부산시의회 대회의실에서 "부마민주항쟁 진상조사결과 보고회"에서 인사말를 하고 있다.
 총리실 산하 부마민주항쟁진상규명 및 관련자 명예회복심의위원회 구옥서 위원장이 23일 오후 부산시의회 대회의실에서 "부마민주항쟁 진상조사결과 보고회"에서 인사말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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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서술, 각주 처리는 워낙 문제가 많다"

김선미 부산대 강사(사학)는 "자료가 대부분 토론자한테 주어지지 않았다. 보고서에 '항쟁일지'가 빠져 있는 게 치명적이고, 이런 보고서는 처음 본다"며 "자료 검토와 본문 서술, 각주 처리는 워낙 문제가 많다"고 했다.

그는 "보고서 초안을 보면, 경찰 쪽에서 나온 <범죄사실자료>나 '경찰일지', 보안사의 '학생소요사태 교훈'을 주로 활용하고, 항쟁 주체가 생산한 자료는 매우 제한적이다"고 했다.

그는 "보고서에는 항쟁주체를 신뢰하지 않아 민주선언문은 싣지도 않았고, 매우 중요한 <거역의 밤을 불사르다>는 한 차례만 인용되었다", "구술 자료도 거의 활용하지 않았다"고 했다.

김 강사는 "사실관계 누락과 오류가 많다", "그림의 출처 표시를 하지 않았고, 남의 그림을 쓰다 보니 본문과 맞지 않는 부분도 있다", "도심시위 서술도 너무 간단하다"고 했다.

그는 "시위를 역동성 있게 표현을 해야 하는데, 참여자의 관점이 아니라 진압자의 관점으로 쓰여지다 보니 문제다", "구속자가 아닌데도 구속자에 들어간 사례가 있다", "검토하다 보니 '빨간펜 선생님'이 되었다"고 했다.

박영주 경남대박물관 연구원은 "서술자의 관점이 혼선이다. 어떤 부분은 항쟁 주체 입장에서, 어떤 부분은 공안 기관의 입장에서 기술해 놓았다. 자료를 인용할 때 모자이크식으로 하다 보니 서술도 그것에 따른 것 같아 전체적으로 일관성이 부족하다"고 했다.

그는 "부마항쟁은 박정희 유신독재에 대한 항거다. 시위대가 파출소를 공격해서 박정희 사진액자를 떼어 나와 부수고 불태우고 했고, 이 부분도 중요하게 평가하고 서술해야 하는데, 경찰의 입장에서 시위대가 삽을 들고 난입해서 기물을 파손했다는 식으로 기술해 놓았다"며 "시위 참가자들의 정치적 뜻을 폄하하고 무시한 것이라서 아쉽다"고 했다.

"보고서가 채택되면 안된다. 역사에 대한 모독"

차성환 민주주의사회연구소 소장은 "자료가 부실하고, 조사가 부족했다", "당시 부산에 '삐라'가 나돌고 시위가 있었다고 했는데 이에 대한 조사가 제대로 해야 하지만 빠졌다"고 했다.

그는 "부마항쟁으로 인해 10·26정변이라는 엄청난 사건이 일어나고, 80년 5·18항쟁에 이르는 엄청난 격변이 있었다. 일련의 과정까지 이르는 거대한 격변의 방아쇠가 부마항쟁인데 이런 부분에 대한 서술이 빠져 있다"고 지적했다.

차 소장은 "보고서에는 새로운 정보가 많지만, 그 자료에 대해 제대로 조사를 해야 하는데 하지 않았다", "계엄과 위수령 하에서 부산시민과 마산시민이 어떻게 생활했는지에 대한 기록을 남겨야 한다"고 했다.

23일 오후 부산시의회 대회의실에서 열린 "부마민주항쟁 진상조사결과 보고회"에서 차성환 민주주의사회연구소 소장, 이도선 조사위원, 정광민 10.16부마항쟁연구소 이사장이 발제하고 있다.
 23일 오후 부산시의회 대회의실에서 열린 "부마민주항쟁 진상조사결과 보고회"에서 차성환 민주주의사회연구소 소장, 이도선 조사위원, 정광민 10.16부마항쟁연구소 이사장이 발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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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광민 10·16부마항쟁연구소 이사장은 "보고서를 보고 모두 경악과 분노를 금치 못했다", "솔직한 심정은 똥냄새 나는 보고서라는 생각을 했다", "이 보고서가 채택되면 안된다. 역사에 대한 모독이다"고 했다.

정 이사장은 "보고서는 군사적 진압작전에 있어서 전두환의 역할과 관련하여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지 못하고 있다는 데에 중대한 결함이 있다", "공수부대에 의한 가혹한 진압 실태가 충분히 밝혀지지 못했다"고 했다.

또 그는 "군사적 진압에 있어서 10·16과 5·18의 관련성과 연속성 문제에 대한 규명이 전무하다는 데 중대한 결함이 있다", "중앙정보부의 '부마사태 수사체계도'(일명 부마사태 시나리오)의 진상이 밝혀지지 않았다는 데 문제점이 있다"고 했다.

정 이사장은 "보고서를 누가 작성했는지 아느냐. 사무관 한 사람이 작성했다. 그 사무관은 '탈북자' 관련한 석사 학위를 갖고 있다. 법에 보면 '부마항쟁에 대한 학식이 풍부한 사람을 임기제 공무원으로 채용해서 할 수 있다'고 했는데 그렇게 되지 않았다"며 "보고서는 1인 집필 체제였다. 비전공자가 썼다는 것에서 이런 참사가 일어난 것"이라 했다.

홍순권 동아대 교수는 "보고서의 중요한 목적은 부마민주항쟁이 과소평가되었다는 것인데, 왜 무엇이 과소평가 되었는지에 대한 기술을 찾아보기 힘들다"고 했다.

홍 교수는 "자료를 어느 기관에 요구했지만 거부했다면 그 부분에 대한 자세한 이유와 설명이 있어야 한다"며 "국가 예산을 통해 조사를 하는데, 해외 자료 조사도 하지 않았다는 것은 납득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참으로 개탄스러워할 우리 사회의 맨얼굴"

부마항쟁 당시 경남대 학생이었던 정성기 경남대 교수는 "수십년 동안 진상조사를 하라 했고, 그때 청년이 지금은 환갑이 됐다. 총체적으로 한국 사회가 전반적으로 부실한 것인지를, 참으로 개탄스러워할 우리 사회의 맨얼굴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다"고 했다.

정 교수는 "보수·진보 할 것 없이 아이·어른 할 것 없이 지나간 과거에 대해 명백히 밝히고 엄중한 교훈을 얻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유감스럽게 대단히 정략적으로, 수구적으로 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고 했다.

그는 "이미 내부에서 위원회 구성에 대해 항의를 하고 사퇴하고, 실무위원들도 사퇴를 했으며, 사망자와 관련해 유족들이 신청했다가 철회를 했는데 그런 부분들이 보고서에 담겨야 한다"고 했다.

정 교수는 "부마항쟁의 결과와 후폭풍이 있어야 하는데 무더기로 빠져 있다", "이 보고서는 글로서 국가폭력을 하는 것이다. 이런 보고서는 혈세를 들여 국민주권에 도전하는 것이고 유족에 대한 죄를 짓는 것이다"고 했다.

그는 "보고서는 절대 채택되어서는 안된다. 오늘 제기된 문제를 보강해서 다시 재작성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다"고 했다.

또 그는 "부마사태를 부마민주항쟁이라고 부른 이유를 알아야 한다", "유신체제에서도 국가 주권자는 국민이었다", "왜 아직도 국민 저항권이 안 되는 것이냐. 위정자들이 폭정을 할 때 국민들이 저항할 권리가 있어야 하고, 저항할 권리를 헌법에 명시하라고 해야 한다"고 했다.

실무위원 "보완하겠다" ... 참가자들 '항의'하기도

마지막에 이동관 실무위원은 "지적한 여러 부분들에 대해서는 논의를 해서 보완하도록 하겠다"고 했다.

이도선 실무위원은 "관련법이 강제적으로 조사할 수 없다 보니 어려움이 있었다. 가령 권정달씨의 경우 진술을 듣기가 어려웠다"고 했다. 이 위원은 "구술에 대해 상반되거나 신뢰할 수 없는 부분이 있어 뺐다"고 했다.

참가자들은 항의하기도 하면서 "관련자들의 구술이 상반되면 내용을 그대로 담아서 평가를 하도록 해야 한다"거나 "당사자한테 이야기도 듣지 않고 하는 것이냐", "관련 단체에서는 협조를 했다", "구술은 듣고 싶은 사람들의 이야기만 담은 거 아니냐", "부마민주항쟁의 정신과 의의도 없는 보고서다"며 따지기도 했다.

부마민주항쟁은 1979년 10월 16~20일 사이 부산과 마산, 창원에서 박정희 유신체제에 대항해서 일어난 항쟁이다. '부마민주항쟁진상규명및관련자명예회복심의위원회'는 '부마항쟁보상법'에 따라 2014년 10월 출범했고, 활동 기간은 오는 4월 12일까지다.

총리실 산하 부마민주항쟁진상규명 및 관련자 명예회복심의위원회는 23일 오후 부산시의회 대회의실에서 "부마민주항쟁 진상조사결과 보고회"를 열었고, 김선미 부산대 강사와 이동관 조사위원, 박영주 경남대박물관 연구원이 발제하고 있다.
 총리실 산하 부마민주항쟁진상규명 및 관련자 명예회복심의위원회는 23일 오후 부산시의회 대회의실에서 "부마민주항쟁 진상조사결과 보고회"를 열었고, 김선미 부산대 강사와 이동관 조사위원, 박영주 경남대박물관 연구원이 발제하고 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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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부마민주항쟁, #박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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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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