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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총기 사고다. 이번엔 플로리다에 있는 한 고등학교. 일주일이 멀다하고 발생하는 총격 사건에 웬만해선 뉴스 한 꼭지도 인색한 나라이지만, 이 사건은 지금 미국 사회 가장 큰 헤드라인이다.

3000여 명이 공부하는 학교에서 32명의 학생과 교사가 죽거나 다쳤다. 분당 45발, 개조 시 800발까지 쏠 수 있는 가공할 무기인 AR-15 자동소총이 샌디훅 초등학교, 콜로라도 극장, 샌버너디노 마을회관, 라스베가스 콘서트장에 이어 다시 또 사용됐다. 전쟁터에서나 사용할 이 총을 "합법적"으로 구입해 난사한 이는 정신과 치료 경력이 있는 19살의 이 학교 퇴학생이었다.

"총기협회 돈 받은 정치인들, 부끄러운 줄 알라" 고교생들 분노

백악관 앞에서 '총기규제 강화' 시위 벌이는 학생들 (워싱턴 EPA=연합뉴스) 21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 앞에서 학생들이 총기규제 강화를 촉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17명의 목숨을 앗아간 플로리다 고교 총기 참사에 분노한 10대 학생들이 이날 미국 곳곳에서 한목소리로 총기규제 강화를 촉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 백악관 앞에서 '총기규제 강화' 시위 벌이는 학생들 (워싱턴 EPA=연합뉴스) 21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 앞에서 학생들이 총기규제 강화를 촉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17명의 목숨을 앗아간 플로리다 고교 총기 참사에 분노한 10대 학생들이 이날 미국 곳곳에서 한목소리로 총기규제 강화를 촉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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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이 이전 총격사고와 다른 건 직접 피해자인 고등학생들이 분노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10대입니다. 당신은 어른들이죠. 제발 행동해주세요, 이건 아니잖아요."
"총기 규제는 민주당과 공화당, 좌와 우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냥 기성세대와 우리들의 문제입니다."
"마르크 루비오 상원의원은 우리에게 대책을 묻네요. 우리 일은 배우러 학교에 가는 겁니다. 대책은 바로 당신 같은 정치인들이 내 놔야 하는 거 아닌가요?!"

수업을 듣던 무고한 학생들이 주 타깃이 된 이 사건 직후 다음 희생자가 바로 자신들일 수 있다는 공포가 10대들을 움직이게 했다. 그들이 기성세대에게 묻기 시작한 것이다. 왜 이런 일이 자꾸 반복 되냐고. 왜 어른들은 우리를 지켜주지 못하냐고. 정신적으로 불안한 이들도 왜 아무 문제없이 총기를 구입할 수 있냐고. 전쟁터에서나 쓸 자동 소총이 왜 아무곳에서나 버젓이 팔리냐고 말이다. 

미국시간 21일 밤, CNN이 주최한 총기규제 관련 타운홀 미팅에는 약 3000여 명의 인파가 몰렸다. 웬만한 전당대회 못지않은 관심이다. 여기에서 상원의원을 난감하게 한 질문을 한 이도 역시 17살 고등학생이었다. 

"루비오 상원의원님, 당신은 전미 총기협회(NRA)의 기부금을 거부할 수 있습니까? 지금 당장 답변해 주십시오."

관중들의 눈이 쏠린 이 질문에 지난 선거 기간 중 NRA에서 300만 불 기부받고 A+ 의원으로 평가 받고 있는 상원의원은 단호한 대답을 하지 못한다.

'재난 연기자?', '꼭두각시?' 도 넘는 마타도어

아이들의 목소리가 전국적인 호응을 얻기 시작하자 정치권도 분주해졌다. 사건 발생 1주일만에 트럼프 대통령은 생존자들과 희생자 가족들을 백악관에 불러 그들의 얘기를 경청했다. NRA 총회에서 연설이 예정돼 있던 플로리다 주지사가 연설 일정을 취소했다. 공화당의 총기 정책이 바뀌지 않으면 후원을 중단하겠다고 엄포한 고액 후원자도 나타났다. NRA 총회 유치를 위해 애썼던 달라스시는 행사를 다른 곳으로 옮겨줄 것을 요청하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그 뿐, 정확히 1년 전 정신이상자도 총기 구입이 용이하게 서명했던 대통령은 유족들의 "뭐라도 하라"는 요청에 "교사들에게 총기를 소지할 수 있게" 추진하겠다고 대답했다.  NRA의 숙원 사업을 이렇게 밀어붙인다. 이렇듯 아직은 대통령도 공화당도 NRA도 꿈쩍하지 않는다.

이에 반해 오는 3월 24일 대규모 시위를 준비하고 있는 고등학생들이 공격에 직면하고 있다.

"생존 학생들이 좌파 그룹에 이용당하고 있다."

조지아주 전 하원의원 잭 킹스턴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17살 아이들이 시위를 주도하고 있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했다. 주 의회에 항의하기 위해 이동한 버스 기름값은 누가 대는지 확인해야 한다며 그들의 배후엔 민주당이나 조지 소로스 같은 좌파들이 있을 거라고 주장했다.

다음 희생자는 자신이 될 수 있다며 울먹이는 학생들에게 "정치적으로 짜맞춘 슬픔"이라고 한 작가의 SNS가 파장을 일으키기도 했다. 플로리다의 한 지역 신문은 학생들이 연기 수업을 받은 것이라고 말한 주 의원 보좌관의 말을 실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큰 아들은 어린 학생들에 대한 '음모론' 기사에 '하트'를 누르기도 했다.

세월호 참사 때 친구와 형제를 잃은 학생들에 대한 마타도어나 미국산 쇠고기 반대 시위에서 촛불의 출처를 캐던 정부를 겪었던 우리에겐 익숙한 프레임이다. 어리고 만만한 '메신저'를 공격하는 것이다. 이는 역으로 지금 이 아이들의 분노가 총기사고에 둔감해진 미국인들의 가슴에 얼마나 큰 파문을 일으키고 있는지 보여준다. 

사건 발생 직후 플로리다 파크랜드에서 열린 총기 반대 집회에서 이번 참사 생존자 중 한 명인 엠마는 눈물을 닦으며 이렇게 외쳤다.

"학교엔 24시간 감시 헬기가 떠 있고 총을 맞지 않은 우리도 계속 심리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 문제의 원인이 정신질환이 아니라 총이라는 걸 압니다. 칼이라면 이랬을까요? 대통령이 다신 이런 비극이 없을 거라고 말한다면 나는 묻겠습니다. 당신은 NRA에서 얼마나 많은 돈을 받았나요? 나는 알고 있습니다. 3000만 달러! 총기 희생자들에 그 숫자를 나눈다면 한 사람당 5800달러네요, 희생자가 늘어날수록 그 금액은 점점 줄어들겠죠? 총기협회에서 돈 받은 정치인들, 모두 부끄러운 줄 아십시오!!" (아래는 최고의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는 총기사고 생존자 엠마 곤잘레스의 총기 규제 촉구 연설 유튜브 영상)


미국 고등학생들이 느끼는 공포와 슬픔, 기성세대에 대한 분노를 대변한 이 스피치는 21일 현재 160만 뷰를 기록하고 있다. 더불어 그녀의 피부색과 머리, 취향을 조롱하는 트윗도 여지없이 따라 붙고 있다.

특히 사고가 난 메저리 스톤맨 더글러스 고등학교 신문 편집장인 데이비드 호그(David Hogg)는 17살 어린이가 겪기 힘든 모욕을 받고 있다. 방송 인터뷰를 통해 책임지려 하지 않는 어른들의 행동을 비난한 그는 대통령을 비롯한 상·하원 정치인들이 학생들을 위해 지금 당장 무언가를 하라고 한 호소했다.

끔찍한 사건의 목격자지만 흥분하지 않고 논리정연하게 현 미국의 총기 문제를 지적하는 그에게 극우 언론이 붙여준 딱지는 "재난 연기자" "좌파의 꼭두각시"이다. 전 FBI 직원이었던 소년의 아버지를 거론하며 트럼프 대통령을 공격하는 러시아 스캔들 수사에 몰두하느라 살인자를 놓친 FBI의 여론 호도용 음모라는 신박한 논리다.  그러나 17살 학생은 그런 어른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는 배우가 아닙니다. 친구와 선생님이 죽은 끔직한 총격 현장의 생존자 일 뿐입니다. 그런 나에게 음모론 운운하는 것은 미국의 미래를 지키려는 자를 파괴하려는 무례하고 비인간적인 행동입니다." 

술 사기보다, 운전보다 쉬운 '총기 구입'

학생들은 계속되는 학교 총기 사고의 본질은 미국에서도 가장 강력한 압력단체인 전미 총기협회(NRA)의 로비력이라고 입을 모은다. 트럼프 대통령을 비롯한 상·하의원들에게 엄청난 로비를 한 결과라고. 술 한 병을 사려해도 21살이 넘었는지 꼼꼼하게 확인하는 시스템이 대량살상을 유발하는 총기에는 왜 그토록 허술한지를 묻고 또 묻는다. 그 배경에는 트럼프 대통령에겐 3000만 달러를, 플로리다 루비오 상원의원에겐 300만 달러를 지원하며 정치인들을 조종하고 있는 NRA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들은 후원금을 받고 쩔쩔매는 정치인들에게 묻고 있다. 미국의 미래인 우리냐 아니면 총이냐고.

총기 희생자의 가족과 생존자를 백악관에 초대해 대통령이 직접 얘기를 들었던 지난 수요일, 플로리다 고등학교 학생들은 수업을 거부했다. 안전에 대한 조치가 없는 상태에서 그 어느 곳보다 위험하고 불안한 학교에 가지 않겠다는 저항의 표시였다. "총기 난동자는 악마고 악마를 어떻게 막냐"는 대통령의 대답에 실망한 까닭이다. 이런 말에 언론인 메건 켈리는 이렇게 말한다.

"정신질환자라고 다 총격 살인을 저지르는 건 아니다. 미국의 총기협회는 너무 강하고 그들에게 후원금을 받는 정치인들은 너무 약하다."

지난 19일, 미 일간지 <USA 투데이>는 총 없이 유지되는 평창 올림픽의 안전함에 대한 기사를 내보냈다. 다시 또 대규모 총격 사건을 겪은 나라에서 총 없는 한국의 평화로운 일상이 신기할 수 있었던 것이다. 신문이 내린 안전함의 결론은 단순했다. 바로 '한국의 강력한 총기 규제법'.

올림픽 때문에 한국을 찾은 이들이 느끼는 평화로움이 생소한 미국인들에게 메저리 스톤 맨 더글러스 고등학생의 이 말을 들려주고 싶다. 역시 이번 고등학교 총기 사건 생존자인 1학년 학생이 뉴욕 타임즈에 보낸 기고문이다.

"... 제 친구 지나가 숨진 날 아침에 저는 지나와 같이 미술 수업을 들었습니다... 차를 운전하거나 술을 마실 수 없는 미성년자도 수많은 사람을 한꺼번에 살해할 수 있는, 전장에서나 쓰일 법한 무기를 아무런 제재 없이 구매할 수 있는 지금의 상황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습니다... 제가 겪고 있는 고통을 다른 어린이들이 겪지 않게 해주세요. 악순환의 고리를 부디 끊어주세요... 총기로 인한 사망자는 다음 희생자는 당신의 가족, 친구 아니 어쩌면, 당신이 될 수도 있습니다."

미국의 정치인들이 총이 아닌 아이들을 택하길 간절히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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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부터 시민 기자. 현 오마이뉴스 북미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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