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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숙의 시에는 유독 빈 집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집을 비운 사이에 일어난 일들이 시인의 마음을 건드린 탓일 게다. 무언가 마음을 건드릴 때 시가 탄생한다. 그 마음 건드림은 빈 집의 이미지가 그렇듯이, 대개는 "가난하고 높고 외롭고 쓸쓸한" 것들이다. 그 부정의 자리에서 시가 만들어진다. 백석이 사랑한 것도 "바구지꽃,/그녀의 사랑이 머물다 간 자리/오래 비어 고요한 끝"이었으리라.  

김종숙 시인의 첫 시집 <동백꽃 편지> 표지
 김종숙 시인의 첫 시집 <동백꽃 편지> 표지
ⓒ 안준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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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왜 자주 집을 비워 그 사이 "콩꼬투리는/외로 돌아눕고/작두콩 일곱 알은/사방으로 뛰쳐나가"게 한 것일까? "봄이 두어 차례/다녀간 것을 잊고/흙으로 보내지 않았더니/물 흐르는 소리 제 귀로 알아듣고/봄 속으로 뛰쳐나가"게 한 것일까?

시 말미에서 시인은 "벼리어 깨친 이의 몸짓이 이러하다"고 말한다. 인생의 일이 그렇기도 하듯이, 집을 비운 것이 꼭 화로만 돌아오지는 않는 것이다. 생의 비밀이 거기에 있다. 그것은 시의 비밀이기도 하다. 김 시인의 시집 <동백꽃 편지>에 맨 먼저 수록된 "시, 일곱 편"이 만들어지는 과정도 그러하다.

이제 막
눈 맞춤을 시작한
수국 일곱 송이를 두고
집을 비워야 할 형편이라
한 송이씩 리본을 묶어 건넸더니
꽃을 받아 든 이들이
꽃이 되어
출렁거렸다

수국
일곱 송이가
건너가
일곱 편의 시(詩)로
다시 묶였다

―「시. 일곱 편」 전문

김 시인이 집을 자주 비운 이유는 남편과 자신의 직장 문제 때문이다. 그녀는 "주말 부부로/지나온 이십 년/서로 사무쳐/제 빈 가슴 그러안기도 하지만/포개 있고 싶은 날에는/전화기를 대고/서로를 부른다" 그러다보니 "늦은 밤/잠결에 듣는//나야,/잘 자나 해서"라는 안부에 "쿰쿰한 밤바다 냄새가 묻어 있"기도 한다. 시는 이렇게 갈무리된다.

절대고도
바다가 부르는 것만 같다는
무정의 끝에서
우리는
말끝을 돌려

잘 먹고
잘 자

―「나야」 부분

처연하다. 생활이 묻어 있는 시편들이 이리도 처연한 것은 원래 삶이란 것이 그러해서일까? 어쨌거나 결국 시인은 "퇴직하고/섬에 방 한 칸/얻어"든다. 거기서 "자고 난/이부자리 위로/아침 해가 해가 들고/느릿한 아침이 기지개를 켜는 방 한 칸/된장 뚝배기 하나에/단물이 고이는 방 한 칸/세상천지간에/우리 둘/단출한 방 한 칸"의 어찌 보면 낭만적으로 보이기도 하는 그림들이 그려지다가 시는 이렇게 끝난다.  

당신과 나를
싸들고 나오면

텅 빈
극빈의
방,



-「1.4평」 부분

시 제목 '1.4평'에는 "화가 이중섭이 아내 남덕과 기거했던 서귀포의 방 한 칸"이라는 주석이 달려 있다. 처연하다. 하지만 그 처연함이 가난하고 높고 외롭고 쓸쓸할지언정 궁색해보이지는 않는다.

앞에서도 언급한 빈 집의 이미지가 그렇듯이 말이다. 지금 시인도 남편과 함께 제주도에서 살고 있다. 그녀가 순천에 있는 집을 자주 비울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러다 보면 그 비움의 자리에서 이런 시가 탄생하기도 한다.

집 떠날 때 마디마디 맺혀 있던 꽃망울 달포 만에 와서 보
니 저 혼자 피었다 저 혼자 져 내린 것을 지나가던 바람이
해를 불러 다비장(茶毘場)을 치른다

저 혼자 피고 지는 일이 이러하다

―「예각」 부분

김종숙 시인은 한때 허리 디스크로 고생을 많이 했다. 나 또한 그런 전력이 있어서 김 시인이 허리앓이를 할 때 서로 전화 통화를 하곤 했었다. 김 시인은 첫 시집 출판기념회를 앞두고 나에게 전화를 해서 그때의 일을 상기시키면서 우린 '동지'가 아니냐고 했다.

나는 허리는 얼추 나았지만 다른 병을 얻어 그녀의 출판기념회에 참석하지 못했다. 몇 달 전부터 축가를 불러주겠노라 미리 약속했던 터라 꼭 가고 싶었지만 가지 못했다. 며칠 후 그녀가 나에게 시집을 보내주었고 몇 편의 시를 읽다가 그만 눈물이 글썽해졌다. 그녀가 병석에서 쓴 시다. 그때의 힘들었을 상황이 떠올라서 울컥했던 것은 아니다. 시가 좋아서다.

중심을 잃고 오래 누운 날은 사물들만 오래 곁을 지켰다
보행보조기와 전기침 시계와 달력 유리창의 먼지……
모든 원형질의 뿌리는 절박함이다
이때 우리는 바랑을 지고 탁발을 나서야 한다는 것을 안다
그렇지 않고서 어찌, 남겨진 배추김치 겉잎 한 장을 펼쳐
나무 그늘이라 찾아들고 병실로 포행 온 해 그림자에서 물결
을 만날 것이며 병상의 누워 태백의 황지연못을 돌고 돌 수
있단 말인가
어찌, 달력에 걸린 풍경 속을 걸어 들어 내가 풍경이 될 수
있단 말인가
어찌하여 수천 가닥의 침이 내리 꽂히는 날 백담계곡 영실
천 무극의 천탑을 내게 왔다 갔더란 말인가

지독한 바람 앞에서는 사물들도 마음을 보태 현(玄)의 시간
을 같이 건너주더라

―「사물들」 부분

그녀는 어떻게 "이때 우리는 바랑을 지고 탁발을 나서야 한다는 것을" 알았을까? "남겨진 배추김치 겉잎 한 장을 펼쳐 나무 그늘이라 찾아들고"라거나 "달력에 걸린 풍경 속을 걸어 들어 내가 풍경이 될 수 있단 말인가"라는 문장을 어떻게 얻을 수 있었을까? "지독한 바람 앞에서는 사물들도 마음을 보태 현(玄)의 시간을 같이 건너주더라"라니!

그녀는 나를 동지라고 불렀지만 동지라고 다 같은 동지는 아니었던 것이다. 그녀와 나와는 달리 "어떤 만남"이 있었던 던 게 분명했다. 문장(文章)을 만나기 위한 절차탁마(切磋琢磨)의 지고지순한 시간들이 아니었을까. 

동백이 붉어지던 날 그가 왔습니다
가끔 내 주위를 맴돈다고 느껴지는 시간이었습니다
때때로 안부를 물어 오기라도 하듯 뜻밖의 시간에 그가 문
밖에 서기도 하였습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부쩍 가까워지진 않았으나 빈 걸음이라
여겨지지도 않았습니다
아닌 듯, 아닌 듯 문 앞에 서는 그를 지나치거나 문안으로
들이는 일인데 그만, 외면할 수 없어 빗장을 풀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서로를 잘 몰라 겉돌 뿐, 그래서 띄엄띄엄
말을 건넵니다
어찌 나를 찾았느냐 물었다가, 나의 지지가 되어주겠느냐
물었다가, 혹여, 걱정은 아니냐 물었다가
우리는 서로를 잘 알아, 아직은 어쭙잖게 등 기대지 말자
가슴이 지었다 허물어놓은 말, 갈 곳 없는 말들
꼬깃꼬깃 휴지통에 밀어 넣었습니다

이렇게 다녀간 문장(文章)들이 있었습니다

―「어떤 만남」 전문

좋은 시는 섣불리 해설을 하기 보다는 그 전문을 보여주면 될 일이다. 그러고 싶은 시편들이 김종숙 시인의 첫 시집 <동백꽃 편지>에는 그득하다. 지면 관계상 몇 편을 골라 소개해주어야 하는데 그것이 난감하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짧은 시 한 편과 긴 시 한 편을 소개하는 것으로 이 부족한 글을 갈무리 할까 한다. 

교정의 과꽃이랑 수레국이 다 제 생각대로 피었다

책상 앞에 앉은 꽃, 꽃들이 다 제 빛깔로 피었다

빛이 들어 색(色)을 가졌다

―「꽃, 아이들」 전문

바닷가
청보리 언덕에
한바탕 소나기가 지나가자
비설거지를 마친 노인과 늙은 아내가
소달구지를 끌고
집으로 가기 바쁜데
황소는 잇꽃을 따라 남의 밭으로 들겠다
고집을 부린다

늙은 소는
달구지가 힘에 부치고
태산을 갈아엎던 노인은
황소가 힘에 부치는가
달구지를 세우고
먼 산
해를 본다

외길 건너
풍경을 바라보던 내가
오히려 다급해져
달구지 뒤축 슬쩍 들어주었더니
황소도 노인도 가던 길
쉬 간다

양철 지붕이 헛간을 둔 노인이
그제야 해를 풀어준다

―「전부(田父)」 전문


동백꽃 편지

김종숙 지음, 푸른사상(2017)


태그:#김종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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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교사이자 시인으로 제자들의 생일때마다 써준 시들을 모아 첫 시집 '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 만으로'를 출간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이후 '다시 졸고 있는 아이들에게' '세상 조촐한 것들이' '별에 쏘이다'를 펴냈고 교육에세이 '넌 아름다워, 누가 뭐라 말하든', '오늘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 '아들과 함께 하는 인생' 등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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