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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0년 2월 22일 창간한 <오마이뉴스>가 올해로 18주년을 맞았습니다. 15주년도, 20주년도 아닌, 18주년에 얼마나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겠습니까만, 사람으로 치면 18살인데요. '소년도 청년도 아닌 경계선에서 혼란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꿈을 포기하지 않은 나이'라고 생각합니다. 18살 오마이뉴스가 18년째 무언가를 하고 있는 동갑내기 친구를 찾아가 질풍노도의 시절을 함께 공감하고 꿈과 희망에 관해서 얘기 나눴습니다. 이 인터뷰는 그 세번째입니다. [편집자말]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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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987년 6월 항쟁 직후 결성된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1기 의장을 지냈다. 지난 2000년 이인영 의원과 함께 정치권에 들어온 우상호(전대협 1기 부의장), 오영식(전대협 2기 의장), 임종석(전대협 3기 의장) 등을 '전대협 4인방'이라고 부른다. 이들이 정치권에 들어온 이유는 "김대중 정권 내부의 개혁을 강화하기 위한 민주화 운동의 연장선"이었다. 그렇다 보니 이들에겐 늘 정치·도덕적으로 엄격한 잣대가 따라다녔다.

이들은 정치권 진입 초기 당내 중심 세력으로 자리를 잡지 못하면서 집단화하기보다는 김근태계, 노무현계, 정세균계 등 당내 권력 구도에 따라 각자 노선을 걷기 시작한다. 공천 등의 현실 문제 속에서 젊은 정치인들이 힘을 모아 개혁을 하는 데 한계를 드러낸 셈이다. 이 의원은 "나름대로 다 가치가 있는 권력이었지만, 또 다른 의미에서 패권으로 투항했다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았다"며 "그러면서 기득권화됐다는 비난에 괴로웠다"고 토로했다.

2010년 '86정치인'의 시대가 펼쳐지는 듯했다. 민주당 10·3 전당대회에 출마한 이인영 의원이 4위를 기록해 당 지도부에 입성했다. 손학규·정동영·정세균 등 '빅3'와 맞붙어서 거둔 성적이었기에 의미가 더 컸다. 또한, 같은 해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송영길(인천시장), 안희정(충남도지사), 이광재(강원도지사) 등 86정치인들이 대거 지자체장으로 당선됐다.

86정치인들은 이 여세를 몰아 원내외 인사 44명이 참여하는 '진보행동'을 결성하면서 사실상 처음으로 조직화 작업에 나섰다. 그러나 2012년 대선에 패배하면서 이듬해 자진 해산했다. 2013년 3월 열린 평가토론회에서 "(486이) 당권파나 특정계로 분류되면서 내부 문제를 극복하려는 노력보다 주류 집단의 논리를 대변하거나 변호하는 역할을 맡게 됐다", "기존의 정치 문법을 배웠고 기존의 관행을 혁파하는 데 주저했다" 등의 반성이 쏟아졌다.

이들은 2015년 '더좋은미래'라는 단체를 결성했지만, 정치세력화를 목적으로 한 '진보행동'과 달리 연구모임 성격이 강했다. 20대 국회에서 역대 어느 국회보다 많은 86정치인들이 원내에 진입했지만, 조직화하기 보다는 '각자도생'의 길을 걷고 있다.

이 의원은 "이전의 전대협 가치를 고스란히 가지고 정치하는 사람은 이제 없다"며 "지금은 각자 자신을 한 번쯤 돌아보고, (새로운 시대에 맞게) 그 가치를 어떻게 내재화하고 재생하면서 새롭게 탄생시켜 진화할 것인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이인영 의원과의 일문일답 요지이다.

"우리가 (스스로) 비우는 것보다... 밀려서 쫓겨나는 게 더 행복"

- 서울시장 출마를 포기한 것이 강호의 의리 때문이라고 하던데.
"강호의 의리도 중요하고... 운동한 사람들에게는 도덕성과 순수성의 또 다른 표현 아니겠나. 피도 눈물도 없는 놈들이 되는 것보다는 예의와 가치의 질서를 서로 존중해주려는 것으로 이해해달라. 우상호 의원이 내가 출마하면 자기가 출마하지 않겠다고 했다더라. 우 의원과 제가 경선하기 어려운 관계인 것처럼 박원순 시장도 그렇다. 1987년에 내가 (시국 사건으로 경찰 조사받을 때) 담당 변호사였다. 몹시 어려운 시절에 고마웠던 사람이다."

- 20~30대 젊은 층에게 이인영, 또는 전대협이나 86세대라는 말이 생소할 수 있는데.
"생소하다는 것은 굉장히 점잖은 표현이고, 그들에게는 꼰대들의 얘기라고 할 수 있다."

- '이인영은 전대협 초대 의장을 지낸 학생운동가 출신 대한민국 정치인이다.' 위키트리에 소개된 이 의원 설명 첫 문장이다. 마음에 드나?
"그건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자부심이자 굴레다. 동전의 양면인데, 6월 항쟁에서 이긴 건 자부심이고, 그해 대선에서 패배한 건 굴레가 됐다. 전대협도 마찬가지다. 전대협이 역사에 남긴 기록은 자부심이지만, 전대협에만 계속 머물 수는 없는 것 아닌가. 한편으로는 내가 종갓집 제사장 같은 기분도 든다. 왜 다른 동생, 조카, 친척들처럼 도회지 나가서 돈 벌고, 멋있는 양복 입고, 삐까뻔적한 차 타고 싶지 않겠나. 하지만 종갓집 장손은 제사장이 되어서 묵묵히 전통의 가치를 끝까지 지켜가야 한다. 마치 그런 느낌이 들 때는 저도 그게 막 짐처럼 생각되기도 했다.

지난해 6월 항쟁 30주년 행사를 1년 내내 했는데, 그거 끝나면 진짜 (전대협을) 졸업하겠다고 마음먹었다. 다행히 제2의 6월 항쟁이자, 6월 항쟁을 넘어서는 촛불 시민혁명이 있었기 때문에 마음 편하게, 홀가분하게 졸업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전대협 만든 날인 8월 15일 전대협동우회가 모였는데, 해체하면 안 되겠다는, 전대협동우회만큼은 졸업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그날 갑자기 들더라. 패권으로써 전대협이 지속하는 것은 나부터 앞장서서 깰 텐데, 가치로서의 전대협은 (남북이) 통일될 때까지는 남아야 하겠구나 생각했다."

- 전대협의 시대적 가치를 유지하는 것과 별개로, 지역구에서 또는 20~30대 젊은 층에게 본인을 소개할 때는 뭐라고 하나. 그들에게도 '전대협 1기 의장 이인영입니다' 하지는 않을 것 아닌가.
"지역구에서 고등학생들 만날 때는 '국회의원 아저씨 이인영입니다'라고 얘기한다. 그 말이 어떤 가치를 설명하지는 못한다. 요즘 초등학생에게 국회의원이 선망의 대상이라도 될까? 국회의원이 꿈인 학생이 몇 명이나 될까? 지역 주민들에게 '국회의원 이인영입니다'라고 하면 반절은 지역구 발전시키라고 하고, 나머지 반절은 좋은 정치인이냐 아니냐 판단할 텐데...

사실 그런 측면에서 우리 동네 국회의원이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니야, 정도는 충족시킬지 모르겠다. 또 지역구 발전에도 어느 정도 성실히 했어, 정도의 평가는 받겠지. 쟤 운동권 출신이었지만 겸손하고 그런 티 안 내고 좀 괜찮아, 그런 평가는 받는 정도다. 그런데 지역구를 벗어난 전체에서는 '저 사람은 386의 대표고, 전대협 1기 의장 출신이고...' 이런 게 그냥 딱 나를 규정해 버린다."

- 재야운동 하다가 정치를 시작한 이유는?
"큰 틀에서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구상이고 제안이었지만, 저는 재야운동 선배들의 요청을 받았다. 정권은 바뀌었지만, 정권 내부의 개혁 세력이 약한 것 아닌가. 게다가 DJP 공동정권이었고. 밖에서 시민운동을 통해 개혁성을 강화하는 것 못지않게 권력 안에서 개혁성을 높이는 게 필요했다. 어쨌든 그랬던 내가 정치권에 들어온 것은 민주화 운동의 연장선이었다."

- 그런 외부적인 요인 말고, 개인 이인영에게 정치인이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였나?
"정치가 꼭 하고 싶었던 일은 아니다. 안 할 수 있으면 안 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지금도 한다. 멋있어 보이려고 하는 얘기가 아니라, 정말 상식적인, 일상적인 정치의 시대로 들어가면 정치를 잘 할 사람들은 또 따로 있을 것 같다."

- '포스트 386'에게는 새로운 도전이 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렇다면 너희 보기 싫으니까 물러나, 하는 것보다는 새로운 시대적 가치를 들고나와야 한다. 꼰대의 한계적인 표현이지만, 분단의 동토에서 통일과 평화의 햇볕을 만들려고 했던 그런 류의 가치를 들이받으면서 나오면 더 행복하게 쫓겨날 준비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나 먹고 살기 힘들어, 너라도 비켜, 하는 것보다는, 모든 젊은이의 아우성을 세력화해서 그것을 집단으로 들고나오는 것에 몰려서 쫓겨나가면, 그런 것도 행복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스스로) 비우는 것보다는 후배들이 밀어내는 게 좋을 것 같다. 우리가 비울 수 있는 것은 많아 봐야 한두 개다. 어떤 흐름이나 세대로 만들어내면 많이 만들 수 있지만, 한 명 두 명이 나가면 적게 만드는 것 아니겠나. 더 크게 만들어야 한다. 예를 들어, 내 자리를 비워서 아들의 일자리를 만들 수 있겠지만, 일자리 구조를 전부 바꾸면 모두의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

그런 치열한 과정을 거치는 동시에 우리가 후배세대들과 공유할 가치를 통해서 서로 연대해서 공동으로 밀고나갈 부분도 있다. 솔직히 그게 더 많을 수 있다. 만약 우리의 가치가 다르다면 그 후배들은 다른 정당에 가서 나에게 도전해오면 되지, 우리 안에서 나보고 비우라고 할 문제는 아니다."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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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정치의 중심? 문재인 대통령이 발탁한 것"

- 86정치인이 지난 18년간 이룩한 성과도 분명히 있지 않은가?
"그게 막 깔때기를 안 대서 그런 거지, 왜 없겠나. 각자의 삶 속에서 다 있을 것이다. 그런데 결국은 너희들이 너희들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권력을 쥐었느냐, 이렇게 단순 잣대로 들이대면, 아직 미완이다. 그 이전에, 배고프고 굶주리고 열망에 가득 찬 사람들의 영혼을 가지고 정치하고 있느냐고 한다면, 그러지 못한 것이 문제다. 이재명의 사이다 발언을 전대협 의장까지 했던 네가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하면, 사실 할 말이 없다. 민주노총 털리는데 너희들이 그 현장에 있었어야 하는 것 아냐, 그럼 할 말 없는 거다.

사립학교법 개혁해야 하는데 왜 가만히 있었어? 가만히 있지 않았다. 난생처음 총대 메고 몸싸움도 해봤다. 국가보안법도, 너희들이 목숨 걸고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하면, 맞는 말이다. 하지만 공사현장 타워크레인에 올라간 (노동계) 후배들 만나러 올라간 것은 바로 우리들이다. 왜 한 일이 없었겠나."

- 이제 86정치인은 없다고 봐야 하나?
"관계로서는 있는데, 가치로서는 어느 정도 있느냐, 겸손하게 돌아봐야 한다. 우리가 아직도 그런 가치와 일치된 관계가 있다고 얘기하기에는 자신 없다."

- 현상적으로만 보자면 최근 86정치인들이 제도권 정치의 중심으로 부상하지 않았나. 임종석 전 의원은 청와대 비서실장, 김영춘 의원은 해수부장관, 우상호 의원은 서울시장 도전, 이인영 의원 본인도 집권당 개헌 추진 책임자인데.
"그게 우리가 만든 것인가? 남이 만든 것에 발탁된 것이다. 냉정하게 얘기하면 문재인 대통령에 의해 발탁된 것이지, 우리가 만들었다고 얘기하기에는, 글쎄. 임종석 전 의원이 문재인 대통령의 비서실장이긴 하지만, 문 대통령을 만든 사람이라고 하면 양정철, 이호철, 전해철이 떠오르지 않나. 우리가 우리의 가치를 가지고 통으로 우리 권력을 만들었냐고 하면, 아직 아니다. 권력 가까이 접근했다는 것만 가지고 얘기하는 것은 안 된다."

- 그럼 이후에는?
"그래서 이후에는 정말 잘 해야 한다. 시간도 얼마 안 남은 것 아닌가. 이전의 전대협 가치를 고스란히 가지고 정치하는 사람은 이제 없다. 지금은 각자 자신을 한 번쯤 돌아보고, (새로운 시대에 맞게) 그 가치를 어떻게 내재화하고 재생하면서 새롭게 탄생시켜 진화할 것인가, 고민해야 한다. 전대협 출신이다, 학생운동권 출신이다, 이런 것으로 정치하는 것은 그만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당장 너부터 그만둬라, 할 것이다."

[창간 기획 - 18세 오마이뉴스가 18세 동갑내기에 묻다]
③-1 이인영의 정치 18년 "민주주의 신인류에 맞는 헌법 만들어야"
② 시민운동 18년 차 활동가 참여연대 최인숙 "촛불정권... 언제까지 이 말 가능할까요?"
① 18년째 사막 달리는 '1호 오지레이서' 유지성 "영웅은 없다"


태그:#이인영, #개헌, #전대협, #오마이뉴스,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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