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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0년 2월 22일 창간한 <오마이뉴스>가 올해로 18주년을 맞았습니다. 15주년도, 20주년도 아닌, 18주년에 얼마나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겠습니까만, 사람으로 치면 18살인데요. '소년도 청년도 아닌 경계선에서 혼란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꿈을 포기하지 않은 나이'라고 생각합니다. 18살 오마이뉴스가 18년째 무언가를 하고 있는 동갑내기 친구를 찾아가 질풍노도의 시절을 함께 공감하고 꿈과 희망에 관해서 얘기 나눴습니다. 이 인터뷰는 그 세번째입니다. [편집자말]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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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16대 총선 때 운동권 출신 386(나이 30대·1980년대 학번·60년대 출생)이 대거 국회 입성을 시도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DJ)의 '젊은 피 수혈' 차원이었다. 대표적인 인물이 1987년 민주화운동의 주역이었던 이인영(55.구로구 갑.3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다. 30대에 정치권에 들어와 18년이 흘렀고, 486을 거쳐 586이 됐다. 이젠 뭉뚱그려 '86정치인'으로 불린다. 흘러간 세월만큼이나 다양한 정치적 성과를 끌어냈고, 제도권 정치의 중심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인영 의원은 21일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우리(386 정치인)가 가진 가치를 집단화해서 세상을 바꾸는데 역동적인 힘을 만들어내는 것은 실패했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우리가 진보적 가치나 정치개혁의 가치는 더 실천했다"면서도 "미래의 문제, 핵심적으로 먹고사는 문제에 있어서 어떤 새로운 능력을 보여줬냐는 점에선 주눅이 든다"고 말했다.

"촛불혁명 이긴 사람들이 개헌에서도 주인공 돼야"

이 의원은 "최소한 30년 전 6월 항쟁 때보다 더 나쁜 헌법은 만들지 말아야 한다"며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 더불어민주당 쪽 간사를 자원해서 맡았다. 이 의원은 특히 "촛불혁명에서 이긴 사람들이 개헌에서도 주인공이 되도록 하고 싶다"며 "(지난 촛불혁명 때) 민주주의 역사에 등장한 신인류에게 맞는 더 좋은 헌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의원은 또 자유한국당 등 보수 야당과의 개헌 협상을 앞두고 "탄핵으로 폐족화 된 사람들이 의회에서 자신의 권력 기반을 유지하려고 구명보트를 만드는 것은 아닌가"라며 "국민의 열망을 무시하면 당장은 사는 것 같지만 다음 총선 때 (국민의 심판을 받고) 우수수 날아가지 않겠느냐"고 경고했다.

이 의원은 최근 언론에 대한 불신과 관련해 "눈에 보이는 패권은 주류 언론사가 가진 것 같지만, 실제 그것을 일거에 무력화시키고 창피하게 만드는 힘은 우리 사회에서 SNS로 존재한다"며 "주류 언론에 반기를 들고 등장했던 <오마이뉴스>나 새로운 언론들이 더 사회적 영향력을 확대해 나가기를 많은 사람이 응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음은 이 의원과의 일문일답 요지이다.

1987년 6월 항쟁 이기고도 하지 못한 세 가지

- 1987년 6월 항쟁 당시 직선제 개헌 운동을 주도하다 경찰에 구속된 적이 있다. 지금은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 더불어민주당 쪽 대표(간사)를 맡고 있다. 강산이 세 번 바뀌면서 본인의 위치도 크게 바뀌었는데.
"1987년 6월 항쟁에서 이겼어도 그때 하지 못한 게 제 개인적으로 세 가지가 있었다. 그 하나는 대통령 선거에서 못 이긴 것. 그것은 지난 촛불 시민혁명에서 이기고 지난해 정권을 교체하면서 해결됐다. 또 하나는 6월 항쟁에서 이긴 주인공들이 정작 헌법 개정에서 구경꾼이 됐다. 이번에는 촛불혁명에서 이긴 사람들이 개헌에서도 주인공이 되도록 하고 싶다. 세 번째는 6월 항쟁에서 이기고, 7·8·9월 노동자 대투쟁은 소외돼 버렸다. 그때 노학연대를 한다고 했지만 충분하지 못했고, 노동자 대투쟁은 외롭게 고립됐다. 이번 헌법 개정 과정에서 노동이 존중될 수 있는, 노동에 기초한 헌법을 만드는 정도는 내가 하고 싶다.

최소한 30년 전 6월 항쟁 때보다 더 나쁜 헌법은 만들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니겠나. 그때보다 더 나쁜 헌법을 만드는 걸 방관한다면 내가 정치하는 이유가 없어지기 때문에, 그것은 최소한 내가 담당해서 막아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내가 (개헌특위 간사를) 하겠다고 자원했다."

- 영화 <1987>을 본 소감은?
"난 안 보려고 했지만 내 아내한테 강제로 끌려가서 봤다. 두렵고 무서웠다. 그런 영화는 아무리 잘 만들어져도 본전이다, 역사 앞에선. 그게 왜곡이 되어 있으면 슬프지 않나. 김근태 선배 얘기를 다룬 <남영동 1985>도 세 번에 걸쳐서 나눠 볼 정도였다. 나처럼 1987년에 학생운동 했던 사람들 마음엔 두 명이 있다. 박종철과 이한열.

이한열은 우리가 주도한 싸움에서 최루탄을 맞았지만, 그래도 우리가 이겨서 많은 사람들 속에서 보낼 수 있었다. 그런데 박종철은 정말 외롭게, 추워도 그렇게 추운 데서 보낼 수밖에 없었다. <1987> 영화에 보면, (박종철을) 화장하고 강에 뿌리려고 하는데 얼음에서 맴돌 때 '우리 종철이 왜 못가고 이렇게 맴돌고 있노'하는 아버지 대사가 나온다. 강물로 흘러가지 못하고... 그런 마음들이 우리 가슴팍에 딱 박혀 있는 것 아니겠나.

영화를 보면서 안 울려고 했지만, 결국 울었다. 울 수 있다. 그런데 운다고 마음이 털어지냔 말이다. 영화 보고 나오면서 털어지지 않았다. 내려가지 않았다. 많은 사람이 세계 제일의 민주주의를 실현한 촛불항쟁을 거치면서 카타르시스를 경험했고, 실제 나도 그랬다. 그런데도 뭔가 또 남더라. 여전히 노동이 배제된 것, 사회적 시민권을 획득하지 못한 것. 통일 문제가 엉켜있는 것, 통일이 아직 시작도 되지 않은 것 등등..."

- 2000년 16대 총선 때, 김대중 전 대통령(DJ)의 '젊은 피 수혈' 차원에서 80년대 운동권 출신 386이 대거 국회 입성을 시도했다. 하지만 86정치인들은 끊임없이 논란의 대상이 됐다. 뭔가 장기적인 로드맵 같은 게 없었던 것 같기도 하고.
"어설픈 수준의 로드맵은 있었다. 누군가 먼저 들어가서 자리를 잡고, 더 넓혀서 더 많은 사람이 들어와 세력을 만들고, 그 힘으로 세상을 바꾸겠다는 생각이 왜 없었겠나. 그런데 들어와서 그런 부분들을 잘 해내지 못한 것이다. 대체로 쟤들은 자기들끼리 친해, 그런 것은 있지만, 우리가 가진 가치를 집단화해서 세상을 바꾸는데 역동적인 힘을 만들어내는 것은 실패했다. 권력이 있는 분들에게 쏠렸고... 나름대로 다 가치가 있는 권력이었지만, 또 다른 의미에서 패권으로 투항했다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았다. 그러면서 기득권화됐다는 비난에 괴로웠다." 

- 86정치인 스스로 기대와 대중의 기대가 불일치한 것은 아닌가? 언제부터인가 '운동권 출신 정치인'에게 부정적 이미지가 드리워지기도 했고. 한편으론 대중의 기대가 크다 보니, 실망도 컸던 것 같다.
"기계적으로 딱 구분되지는 않지만, 거의 전부는 우리 책임이다, 라고 받아들일 자세는 돼 있다. 그런데 다 내 책임이야, 그건 하나 마나 한 얘기 아닌가. 그럼 우리가 뭘 했지, 또 뭘 안 했지, 적시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적어도 복지, 통일, 경제민주화, 재벌개혁 등의 이슈가 있을 때는 대체로 우리가 있었고, 노동문제도 우리가 더 많이 얘기했다. 이런 것까지 부정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가 돈으로부터, 스캔들로부터 더 자유롭고, 더 도덕적으로 지내려고 노력했다는 자체도 부정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우리의 결정적인 문제는, 너희가 새로운 어떤 능력을 보여줬냐, 그래 너희가 재야운동을 했고, 그 연장선에서 진보적 가치나 정치개혁의 가치를 더 실천한 것은 인정할 수 있지만, 그걸로 미래가 만들어지는 거냐, 그건 너무 당연하고, 미래를 위해서 어떤 새로운 능력을, 핵심적으로 먹고사는 문제에 있어서 어떤 능력을 보여줬냐, 이런 것에서 우리가 주눅 든 게 있다.

또 하나는, 너희 너무 지겹다, 너무 오래 해 먹는 거 아니냐, 오래 하는 것치고는 이뤄놓은 것도 없고, 그런 얘기에 우리가 갇혀 버린 거다. 그 부분은 일리가 있다. 그러다 보면 86정치인도 기득권이니까 나가라, 너부터 희생해라, 우리도 정치에 배고프다, 하면서 30대 후배들이 들이받고 나오기도 한다. 너희는 DJ가 발탁해서 출세시켜줬는데, 왜 깔고 앉아서 우리 길을 막고 있냐, 왜 우리 사다리를 걷어차냐, 이런 얘기도 나온다."

- 정치 시작할 때의 시대정신은 무엇이었고, 지금 시대정신은 무엇인가?
"2000년에 정치 시작하고 2004년 국회의원 되면서 했던 얘기는 민족민주 정치였다. 변혁 운동의 연장선에 있었다. 2011년 최고위원 나왔을 때는 (시대정신을) 진보정치라고 했다. 지금은 다시 고민이 된다. 왜냐면, 진보정치를 하는 저보다 더 위대하고 역동적으로 정치를 바꿔버린 촛불시민이 있지 않나. 노선으로서의 진보가 아니라 상식과 삶으로서의 진보가 엄청난 힘을 보여줬다. 우리는 관념이나 의지적인 진보정치를 추구했는데, 지금은 그것을 넘어서 주권자로서의 시민, 민주주의의 신인류가 등장한 시대에서의 정치가 필요하다."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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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에 더 좋은 민주주의, 더 나은 시민의 삶 담겨야"

- 촛불광장에 모인 민주주의 신인류들의 요구가 다양했다. 그들에게 '앞으로 어떤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고 얘기할 수 있을까? 
"그게 이번 헌법 개정에 담겨 있다. 더 좋은 민주주의로 가는 길, 더 나은 시민의 삶으로 가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집단이 많이 모여서 바꾼 세상이 아니라 개인이 많이 모여서 바꾼 세상이다. 그런 점에서 1987년과 다르다. 그리고 그 개인 개인이 굉장히 성숙했다. 끝까지 평화로 인내하면서 새로운 질서를 세워내지 않았나. 그걸 기존 체제 밖에서 하면 갈등과 혁명인데, 지금의 질서 내에서 평화로 인내하면서 새로운 권력을 세우는 것은 헌법이다. 민주주의 역사에 등장한 신인류에게 맞는 더 좋은 헌법을 만들어야 한다."

- 복지국가만 해도 종류가 다양하고 어렵다. 국민들에게 더 좋은 민주주의, 더 나은 삶이라고 한다면 너무 추상적이지 않을까? 좀 더 구체적으로 쉽게, 광장에 모인 시민들의 눈높이에 맞는 설명이 필요할 것 같은데.
"1987년에는 직선제 개헌이라는 하나의 요구가 있었고, 그 배경에는 5·18 광주민중항쟁이 흘렀다. 그런데 이번 촛불광장에는 4·16 세월호 참사가 바닥에 흐르기는 했지만, 그것만 있는 게 아니었다. 세월호 참사에서 시작해, 나라다운 나라, 끝까지 국민을 책임지는 나라를 만들어 달라며 안전권·생명권에 대한 요구가 튀어나왔다. 백남기 농민의 죽음도 있었다. 이게 정말 집회와 시위가 자유로운 나라냐고 따져 물었다. 때려 막으니까 백남기 농민이 죽었는데, 풀어놓으니까 200만 명이 모여도 돌덩이 하나 드는 사람 없고, 유리창 한 장 깨는 사람 없고, 연행되는 사람 하나 없고, 돌아가면서 휴짓조각 하나 안 남기는 세상을 보여주지 않았나.

그다음에 최순실 국정농단, 편견에 가득 차 막말 경쟁하는 조·중·동과 종편, 검찰, 재벌 등에 대한 매서운 질타가 쏟아졌다. 심지어는 18살 선거연령 인하도 거기서 나왔고, 정규직·비정규직, 최저임금 1만 원도 거기서 나왔다. 그런 것들이 모여서 새로운 나라, 나라다운 나라를 얘기하는 것인데, 그런 요구를 무엇으로 모을 수 있을까? 단순히 추상적으로 모든 것은 헌법으로 집대성되어야 한다고 얘기하는 수준을 넘어서 매우 구체적으로 집대성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1987년에는 직선제라는 하나의 요구만 있었는데, 지금은 조금 버거워도 종합판, 완결판으로 집어넣어야 할 것 같다."

- 그런 헌법을 만들 수는 있는 것인가? '박근혜 퇴진' 촛불 건너편에는 태극기부대가 있었다. 국회에는 태극기부대를 기반으로 한 자유한국당 등 보수 야당이 버티고 있는데, 과연 헌법 개정이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을까? 그래서 개헌에 대한 회의적인 여론이 적지 않다.
"서로 가치는 달라도, 다소 호전적인 모습을 보이기는 했어도, 그래도 그게 우리 민주주의의 또 다른 희망이었다고 생각한다. (촛불시위와 태극기부대가) 불과 200~300미터 거리에서, 때로는 차 벽 하나를 두고도 폭력이 난무하는 싸움이 벌어지지 않았다. 해방 직후에 찬탁·반탁처럼, 빨갱이와 서북청년단의 싸움처럼 테러화 되지도 않았다. 총량으로서 우리 국민의 멋있는 모습이었고, 희망을 봤다.

정치권으로 돌아오면, 나는 제3자가 될 수 없지만 제3자 입장에서 얘기하면, 자유한국당과 우리나라 보수가 새로워져야 한다. 진보는 꼰대 진보를 탈피해야 하지만, 보수는 꼴통 진보, 먹통 진보를 탈피해야 한다. 남북관계에 대한 관점은 그대로면서 경제만 진보적인 게 새로운 보수가 아니라, 남북관계도 새롭게 접근해야 보수라고 생각한다. 노동과 평화를 새롭게 인정하고 마음을 열어야 신보수라고 생각한다. 진보도 나만이 옳다는 것을 내놔야 꼰대 진보를 탈피할 수 있다."

- 보수가 변해야 하지만, 쉽지 않은 문제다. 변할 때까지 기다릴 수만은 없지 않나. 게다가 6월 지방선거 때 개헌을 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촉박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권력에 눈이 멀어 있는 것을 털어낼 수 있어야 하는데, 그건 정치인에게 가혹한 요구일 수 있다. 권력 못지않게 사회적 민주화가 중요한데, 본질은 권력이라고 한다. 정치·경제학적인 측면에선 맞을 수도 있지만, 그 안에는 무서운 게 숨어있다. 권력이 중요하다고 하면서 정치인 개인의 이익이 들어간 것은 아닌가? 탄핵으로 폐족화 된 사람들이 의회에서 자신의 권력 기반을 유지하려고 구명보트를 만드는 것은 아닌가. 정권교체의 희망이 없는 세력이 의회에서 자신의 권력을 바탕으로 권력의 일부라도 가지려는 것 아닌가. 이런 욕망으로서의 요소가 있다.

또 하나는 정치권력을 둘러싼 싸움이 워낙 치열하니까 여기서 합의가 되지 않으면 개헌이 쉽지 않은 정쟁으로서의 요소도 개입이 됐다. 그러나 개헌은 애초부터 거기서 시작된 것은 아니다. 우리 민주주의가 더 좋은 민주주의가 되고, 더 나은 삶이 됐으면 좋겠다는 열망과 바람에서 시작됐다. 광장에서 수많은 얘기가 나왔고, 그것을 위해 눈을 부릅뜨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개헌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 시점에 여론이 어떻게 되느냐가 중요하다. 국민의 열망을 개헌으로 수렴해야 산다고 생각하면 (개헌이) 가능할 것이고, 그걸 무시해도 되겠다고 하면 당장은 사는 것 같지만 다음 총선 때 (국민의 심판을 받고) 우수수 날아가지 않겠나."

"주류 언론에 반기 든 언론, 사회적 영향력 더 확대해 나가야"

- 정치인은 언론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기레기(기자+쓰레기 합성어)로 불리며 불신을 받는 언론의 위기가 심화하고 있는데.
"언론에 대한 불신이 있다고 해서 언론을 없앨 수는 없다. 개인과 개인, 다자로서의 집단 간에 소통으로써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언론이 새로워지면 되는 것이다. 독재에서 민주화로 오는 과정에서 언론이 가장 큰 혜택을 받았다. 언론의 자유가 많이 존중됐다. 그런 언론이 또 다른 권력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특정한 언론사를 가지고 있는 것이 사유 권력인 것처럼 착각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특정 언론사에 광고로 돈을 대주는 기업이 세상을 내 마음대로 움직이는 수단이나 통로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런 점에서 새로운 언론의 선도 기능이 중요할 것 같다. 오마이뉴스가 그랬고, 그 이후에도 많은 신생 언론이 등장하면서 조·중·동 등 기성 언론과 충돌했고, 건강한 충격을 던진 게 사실이다. 눈에 보이는 패권은 주류 언론사가 가진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것을 일거에 무력화시키고 창피하게 만드는 힘은 우리 사회에서 SNS로 존재한다. 잘못하면 한 방에 훅 간다. 안 봐준다. 기성 주류 언론이 그런 것을 무섭게 생각해야 한다. 그런 주류 언론에 반기를 들고 등장했던 오마이뉴스나 몇몇 새로운 언론들이 더 자기 역할을 높이고, 사회적 영향력을 더 확대해 나가기를 많은 사람이 응원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가 올해 18살이 됐다.  
"오마이뉴스 세대가 지나가고 있는 것 같다. 예전에는 20살에 성년이라는 의미를 부여했지만, 지금은 사회적으로 18살로 낮춰졌다. 오마이뉴스가 탄생해서 지금까지 온 역사를 보면, 오마이뉴스는 1세대에 가깝고 이후로 2세대, 3세대가 등장한 것 아닌가. 인터넷신문에서 시작돼 지금은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시대로 확 와버렸다. 오마이뉴스가 SNS에 파묻힌 것인지, 오마이뉴스가 SNS로 확장된 것인지, 그 논란은 있을 수 있지만, 굉장히 빠르게 진행됐다."

- <오마이뉴스>의 시민기자제, 시민참여저널리즘은 언론 일방이 아니라 독자가 자기 목소리를 내는 주체로 나설 수 있도록 기여했고, 그런 기류와 문화가 현재 SNS 활성화의 토대가 됐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공통점으로 놔야 할 것 같다. 예를 들어, 2000년에 시작된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모임) 열풍이 (민주당 대통령선거) 국민경선을 이기고 나중에 (대통령) 탄핵 반대 촛불을 만들었다. 그다음 광우병 촛불,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때 조문 궐기, 최근 촛불혁명까지, 쭉 이어지는 공통점이 있다. 거슬러 올라가면 6월 항쟁이 있었고, 4·19혁명이 있었지만.

오마이뉴스는 처음 시작할 때의 가치, 시민과 독자를 주인으로 내세우는 정신이 있었다. 그 정신이 없었으면 문명의 큰 변화 속에서 그냥 떠내려갔을 텐데, 그 정신이 있었기 때문에 시민이 주주인 언론사로 존재하는 것 아니겠나. (오마이뉴스의 창간은) 한겨레신문과 또 다른 의미가 있었다. 오마이뉴스가 가지고 있는 초심이 일관되게 유지됐기 때문에 인터넷에서 스마트폰, SNS까지 오는 동안 살 수 있었던 것이지, 아니면 이미 그 과정에서 죽었을 것이다.

우리(86정치인들)도 마찬가지다. 정치로 온 사람들이 그 초심을 가지고 있으면 그 연장선에서 생명력을 가지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그냥 대중스타처럼 바뀌거나 출세 지향적으로, 명예와 권력, 욕망의 정치로 속이 바뀌었을 것이다."

- 18년을 맞는 <오마이뉴스>로서 그런 역할을 하기 위해 많은 고민을 하고 있지만, 쉽지는 않다. 특히 독자층 연령이 높아진 반면, 20~30대 젊은 층은 줄고 있다.
"오마이뉴스는 '터미네이터 1'이다. 하하. 오마이뉴스가 오마이TV를 만들고 팟캐스트 등 새로운 장치를 붙인다고 해서 그런 문제가 해결될지, 민주주의 신인류가 등장했으니 그들에 맞게 오마이뉴스가 확 가버려야 하는지, 생각해봐야 할 때다. 터미네이터 시리즈가 1편에 이어 2편, 3편까지 다 나왔는데, 이제 오마이뉴스는 뭘 할 수 있을까? 그것은 꼰대 정치인이 되지 않고, 20대들과 같이 호흡하고 친구가 되려는 나의 과제와 동일한 것 같다.

나는 내 아들에게 가르치는 게 많은 아버지였다. 그런데 촛불집회에 나온 내 아들을 보면서 가르치려고 하지 말아야겠다, 존중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내가 그 나이 때 6월 항쟁을 한 것 아닌가. 그래서 핏줄로서의 아들에 대한 존중이 아니라 독립된 시민으로서의 아들을 실제로 인정하고 존중하게 됐다. 그런 마음이 시작 아닐까 싶다. 그런데 애 엄마는 그게 잘 안 되는가 보더라. 하하."

[창간 기획 - 18세 오마이뉴스가 18세 동갑내기에 묻다]
③-2 '86 정치인' 이인영의 정치 18년 "이재명의 사이다 발언, 나는 왜 못하냐고?"
② 시민운동 18년 차 활동가 참여연대 최인숙 "촛불정권... 언제까지 이 말 가능할까요?"
① 18년째 사막 달리는 '1호 오지레이서' 유지성 "영웅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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