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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내가 동성애자임을 자각한 이후 겪게 된 어려움은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도무지 주변의 몇몇 사람을 제외하고 다른 성소수자의 존재를 알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물론 그 당시에도 성소수자들이 모이는 온라인 커뮤니티가 있긴 했지만, 오직 인터넷의 짧은 글 몇줄로만 그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한계가 있었다.

시간이 흘러 이제는 사정이 많이 나아진 편이다. 국내와 해외를 아울러 많은 수의 성소수자 유명인들이 커밍아웃을 했기 때문이다. 영화, 방송, 음악 그리고 정치에 이르기까지 조금만 관심을 기울인다면 이제는 나와 같은 '우리 존재들'을 만나기는 훨씬 수월해졌다. 하지만 여전히 예외인 분야는 있다. 바로 스포츠다.

물론 성소수자임을 커밍아웃한 스포츠 스타들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대표적으로 영국의 다이빙 선수 톰 데일리나 전설적인 피겨 스케이터 조니 위어 같은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광범위한 스포츠 영역에서 종목별로 가뭄에 콩 나듯 성소수자 선수들이 등장하니 애초에 관심이 있던 운동이 아니고서야 그렇게 크게 관심이 가진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직 한국에서 커밍아웃을 한 스포츠 스타가 한 명도 없기도 하다.

짐작이 가는 여러 이유가 있다. 어쩌면 유독 이 사회에서 성소수자들의 존재가 잘 드러나지 않고 커밍아웃을 했을 때 감수해야 하는 불이익이 크기에 그런 것은 아닐까. 어쨌든 적어도 동성애자로서 나에게 스포츠는 '남의 집 잔치'처럼 여겨질 때가 많았다. 완벽한 이성애자들의 경기장 말이다.

 12일 오후 강릉 시내 캐나다 올림픽 하우스에서 ’2018 프라이드하우스 평창’ 오프닝 리셉션이 열렸다.
 12일 오후 강릉 시내 캐나다 올림픽 하우스에서 ’2018 프라이드하우스 평창’ 오프닝 리셉션이 열렸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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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인 나에게 올림픽이 주는 의미

그래서일까. 처음 프라이드 하우스 평창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이후에 준비위원회에 함께하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을 때 반가움 보다는 의구심이 더 많이 들었다. 도대체 성소수자인 우리가 올림픽 현장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다는 것일까 싶었다.

잠시 설명하자면, 프라이드 하우스는 국제 스포츠 경기에 참가하는 성소수자 선수와 스텝, 관객들을 환영하기 위한 공간이다. 2010년 벤쿠버 동계올림픽에서 열린 것을 시작으로 다양한 스포츠 행사에서 개최되고 있다. 2020년 도쿄 올림픽을 비롯해 앞으로의 국제 스포츠 경기 개최지에서 프라이드 하우스는 열릴 예정이다.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 때는 러시아의 반(反)동성애 정책 때문에 열리지 못했기에, 바로 다음 동계올림픽인 평창에서 과연 프라이드 하우스는 개최될 수 있을지 국제적인 관심이 매우 높았다. 물론 쉽지만은 않은 일이었다.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는 2016년 이래로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프라이드 하우스를 열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거쳐왔다. 하지만 올림픽이 열리는 평창에서 독자적인 공간을 확보하고 프라이드 하우스를 개최하기에는 여건이 넉넉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는 것은 아니었다. 프라이드 하우스 평창 준비위원회는 각 나라의 상황에 맞추어 행사를 진행한다는 프라이드 하우스의 기치에 따라 지금 이곳에서 가능한 활동들을 계획하고 실천했다. 아시아 최초로 올림픽용 성소수자 미디어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배포하기도 했고, 올림픽 헌장에 따라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배제가 없는 행사가 치러지는지 지켜보고 제보를 받는 모니터링 활동을 진행했다. 또한 성소수자 선수들이 참여하는 경기를 함께 관람하고 응원을 보내는 뷰잉 파티(Viewing Party)를 열기도 했다.

 커밍아웃한 스포츠 스타 거스 캔워시(왼쪽 두 번째)와 에릭 래드퍼드(오른쪽 두 번째)가 평창 프라이드 하우스에서 관계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커밍아웃한 스포츠 스타 거스 캔워시(왼쪽 두 번째)와 에릭 래드퍼드(오른쪽 두 번째)가 평창 프라이드 하우스에서 관계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가장 오른쪽에 있는 이는 프라이드 하우스를 최초로 시작한 딘 넬슨. 이들의 대화는 팀 캐나다 페이스북 라이브 방송으로 공개됐다.
ⓒ 신필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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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이드 하우스 평창이 만들어낸 성과

프라이드 하우스 평창은 캐나다 올림픽위원회와 프라이드 하우스 인터내셔널의 지원을 받아 캐나다 올림픽 하우스 내부에 프라이드 하우스를 알리는 전시회와 오프닝 리셉션을 열기 위한 공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난 21일, 뜻깊은 일이 생겼다. 바로 평창 동계올림픽에 참가한 성소수자 선수들이 프라이드 하우스 평창을 공식적으로 방문한 것이다.

커밍아웃을 하고 동계올림픽에 참가해 최초로 금메달을 따낸 캐나다의 피겨 스케이트 선수 에릭 래드퍼드와 역시나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드러내고 선수로 출전한 미국의 프리스타일 스키 선수 거스 캔워시가 함께했다. 이들은 커밍아웃한 성소수자 선수로서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이야기했고, 또한 프라이드 하우스 평창에 대한 지지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이 선수들을 직접 마주하는 것은 신기한 일이였지만 아주 낯선 기분이 들지는 않았다. 나는 중계 방송을 통해 그들의 경기를 관심있게 지켜봐왔기 때문이다. 사실 동계올림픽이 역사상 가장 많은 성소수자 선수들이 평창을 찾을 것이란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는 그렇게 큰 감흥이 들지 않았다.

하지만 막상 행사가 시작하고 나서는 다른 느낌이 들었다. 보통 올림픽과 같은 국가 대항 스포츠 행사를 관람할 때는 같은 국적의 참가자를 응원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한국 선수가 같은 종목에 출전할 때도 내심 다른 국가의 성소수자 선수들을 지지하고 응원하는 마음이 나도 모르게 샘솟았다. 정말로 그들이 경기를 잘 치르고 성과를 내기를 간절하게 희망했다.

 커밍아웃한 스포츠 스타 거스 캔워시가 평창 프라이드 하우스를 찾았다.
 커밍아웃한 스포츠 스타 거스 캔워시가 평창 프라이드 하우스를 찾았다.
ⓒ 신필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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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에게 평등한 경기장의 탄생

무엇보다 그 선수들은 성소수자들을 대표하는 얼굴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당당하게 자신을 드러내고 경기장에서 활약을 펼칠 때마다 나 또한 용기와 힘을 얻을 수 있었다. 국적과 인종을 넘어선 화합을 이끌어 내는 것이 올림픽의 목적이라면, 평창 동계올림픽에 참가한 성소수자 선수들은 바로 그 일을 해낸 셈이다.

사실 다시 생각해보면 이번 평창 동계올림픽은 무엇보다 성소수자들에게 있어 기념비적인 행사였다. 최초의 커밍아웃한 동계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탄생했고, 동계올림픽 사상 가장 많이 참가한 성소수자 선수들은 평등한 세상을 향한 주장을 가감 없이 쏟아냈다. 그리고 이 모든 성과를 갈무리하는 중심에 프라이드 하우스 평창이 있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성차별 없는 올림픽이 진행되는지 지켜보고, 성소수자 선수들을 지지하고 응원하며 더 나아가 이들이 한 데 어우러질 수 있는 장을 만드는 역할을 해냈으니 말이다.

성소수자 선수들이 프라이드 하우스 평창을 방문했을 때,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 일이 있었다. 토론토 스타의 한 기자가 나에게 인터뷰를 요청했고, 나는 그와 대화를 나누었다. 한국에서 성소수자로 산다는 것과 커밍아웃한 스포츠 선수들이 나에게 지니는 의미를 이야기 하는 와중에, 한편에서는 동성애자 스포츠 선수가 또 다른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또 프라이드 하우스 평창을 준비한 다른 성소수자 동료들은 그사이를 분주하게 움직였다.

나는 대형 무지개 깃발을 몸에 두르고 있었고 그렇게 나의 성적 지향을 드러내는데 전혀 불편함이 없었다. 그 공간은 성소수자를 어색하거나 이상하게 여기지 않고 존재가 당연하게 여겨지는 퀴어 친화적인 곳이었다. 그리고 그때서야, 나는 올림픽 행사를 치르는 가운데 프라이드 하우스가 존재하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새삼 깨달았던 것 같다.

 커밍아웃한 스포츠 스타 거스 캔워시(좌)와 에릭 래드퍼드(우) 선수가 프라이드 하우스 평창을 찾았다
 커밍아웃한 스포츠 스타 거스 캔워시(좌)와 에릭 래드퍼드(우) 선수가 프라이드 하우스 평창을 찾았다
ⓒ 신필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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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한 우리들의 공간, 나는 외롭지 않았다

기자는 나에게 '성소수자인 당신에게 프라이드 하우스 평창이 어떤 의미를 가지나요'라는 질문을 던졌다. 짧은 영어 때문에 횡설수설을 반복했다. 여기에는 나와 같은 성소수자들이 있고 그들과 어떻게 올림픽과 스포츠를 경험하는지 이야기할 수 있어서, 소통할 수 있어서 좋다고 답했다. 그러자 잠시 고민하던 기자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외롭지 않았다는 뜻이군요. 올림픽이 진행되는 와중에요."

그리고 그의 표현은 정확했다. 외롭지 않았다. 성소수자로서 나는 올림픽을 지켜보며 더 이상 외부인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이제 경기장은 모두가 스스로를 자유롭게 드러내고 평등하게 경쟁하는 공간으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유독 성적소수자들에게 불모지처럼 여겨졌던 스포츠 분야가, 그것도 한국에서 그런 변화를 겪고 있다고 생각하니 기쁜 마음이 들었다.

단지 스포츠뿐만이 아닐 것이다. 성소수자들이 배제되거나 은폐되었던 다른 분야도 앞으로 같은 길을 걷게 될 것이란 소망이 생겼다. 프라이드 하우스 평창과 함께한 것은 내가 그런 희망을 품을 수 있었던 소중한 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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