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빌어먹을 세상 따위>의 스틸컷. 제임스(알렉스 로더)는 자기가 사이코패스라고 확신하는 소년이다.

드라마 <빌어먹을 세상 따위>의 스틸컷. 제임스(알렉스 로더)는 자기가 사이코패스라고 확신하는 소년이다. ⓒ 넷플릭스


사람은 누구나 사춘기를 겪습니다. 몸은 급격하게 자라서 어른이 되었는데, 아직 경험도 부족하고 정신적으로 미성숙해서 시행착오를 많이 하게 되는 시기죠. 밑도 끝도 없이 허세를 부리기도 하고, 자신이 남다른 존재라는 생각에 근거 없는 우월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이런 심리 상태를 두고 흔히 '중2병'이란 조롱 섞인 꼬리표를 붙이곤 하지만, 인간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겪게 되는 일이기도 합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인 영국 드라마 <빌어먹을 세상 따위>의 주인공들도 마찬가지입니다. 17세 동갑내기 제임스와 앨리사는 앞서 이야기한 사춘기 청소년의 극단적인 전형이라, 쓴웃음이 절로 납니다.

10대 커플의 가출 이야기

먼저, 제임스(알렉스 로더)는 자신이 사이코패스임에 틀림없다고 확신합니다. 그가 생각하는 근거란 이렇습니다. 아버지와 단둘이 살고 있지만, 함께 웃거나 감정 표현을 한 적이 없습니다. 뭔가를 느껴볼 수 있을까 싶어서 끓는 기름에 손을 넣기도 했죠. 게다가 이웃집 고양이를 비롯한 작은 동물들을 아무런 죄책감 없이 죽일 수도 있습니다. 이제는 동물 죽이는 것에도 싫증 난 상태라 진짜 사람을 죽일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그의 타깃은 바로 새로 전학 온 앨리사입니다.

앨리사(제시카 바든)는 허세 섞인 과격한 말과 행동을 달고 사는 아이입니다. 아버지가 가출한 후 재혼한 어머니와 함께 살면서 불만이 많이 쌓였습니다. 가슴 속에 꽉 들어찬 분노는 시도 때도 없이 튀어나옵니다. 명백히 화가 나는 상황은 물론, 상냥하게 말하고 행동해야 할 때도 자기도 모르게 상스러운 욕설을 내뱉고 맙니다. '굳이 이렇게 안 해도 되는데'라며 약간 후회하는 마음이 들어도, 이미 엎질러진 물인데 어쩌겠나 싶어 그냥 더 막 나가기도 합니다. 앨리사도 학교에서 늘 혼자인 제임스를 눈여겨보고, 그에게서 기댈 데를 찾고 싶어합니다.

 드라마 <빌어먹을 세상 따위>의 스틸컷. 앨리사는 가슴 속에 쌓인 분노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소녀다.

드라마 <빌어먹을 세상 따위>의 스틸컷. 앨리사는 가슴 속에 쌓인 분노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소녀다. ⓒ 넷플릭스


서로 다른 목적으로 커플이 된 이들은 결국 제임스 아버지의 차를 훔쳐 타고 가출을 감행하고, 이 과정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시리즈 전체의 줄거리입니다. 제임스와 엘리사는 잔혹하고 냉담한 바깥세상을 경험하지만, 그 안에 여전히 남아 있는 인간의 온기도 조금은 느끼게 됩니다.

이 드라마는 그래픽 노블을 원작으로 했고, 1회 20분 내외의 분량으로 총 8부작으로 돼 있습니다. 그래서 전체를 한 번에 다 봐도 2시간 40분 정도여서, 조금 긴 영화 한 편 보는 시간을 투자하면 끝까지 다 볼 수 있습니다.

시리즈를 기획하고 1회부터 5회까지 직접 연출한 조너선 엔트위슬은 CF 감독 출신으로 주목받은 30대 중반의 젊은 감독입니다. 기존의 전형적인 10대 청소년 주인공 로맨스나 성장물의 공식을 슬쩍 비틀어 시종일관 쓴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코미디 감각이 돋보입니다. 감각적인 편집과 상황에 딱 들어맞는 음악 역시 시종일관 눈을 뗄 수 없게 합니다.

주연을 맡은 제시카 바든과 알렉스 로더의 연기도 좋습니다. 두 사람은 각각 25세, 22세로 실제 나이보다 어린 역할을 연기했는데, 청소년 시절부터 연기를 시작해서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하는 젊은 배우들입니다. 미국 드라마 <왕좌의 게임> 시리즈의 야라 그레이조이 역할로 국내 팬들에게도 익숙한 젬마 웰런은 두 사람의 행적을 뒤쫓는 형사 유니스 역할로 시리즈 후반부를 장식합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10대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


 드라마 <빌어먹을 세상 따위>의 스틸컷. 제임스와 앨리사는 무작정 떠난 가출 여행에서 가혹하고 냉담한 세상과 맞닥뜨린다.

드라마 <빌어먹을 세상 따위>의 스틸컷. 제임스와 앨리사는 무작정 떠난 가출 여행에서 가혹하고 냉담한 세상과 맞닥뜨린다. ⓒ 넷플릭스


범죄와 비행을 저지르는 청소년들에 관한 뉴스를 보면서도, 사람들은 '요즘 애들 참 무섭다'라거나 '자라서 뭐가 되려고 저러나'라는 식으로만 이야기하고 넘어가기 일쑤입니다. 저 역시 그랬습니다. 겉으로 드러난 행동을 놓고 비난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일이니까요. 사람들은 사태 이면에 있는 이유까지 생각해보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 드라마에서, 두 주인공의 범죄 행각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 또한 그랬습니다. 그들이 저지른 일들의 결과만 놓고 보면, 그것이 범죄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여정을 함께 한 시청자들은 그게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대부분의 청소년 문제가 그렇듯 부모와의 관계가 근본적인 원인이었고, 보호가 필요한 청소년을 착취하는 사회 환경이 불을 붙였다는 걸 쭉 봐 왔으니까요.

자녀들의 문제 행동을 겪고 '애가 왜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다'며 한탄하거나, '다 저러면서 크는 거'라며 내버려 두는 부모들을 자주 봅니다. 이런 사람들의 공통점은 '자기들은 나름대로 열심히 잘 하고 있다'고 믿는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그런 상황에 부닥친 부모일수록 다시 한번 자신과 아이의 관계를 진지하게 되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영화나 드라마가 아닌 현실 세계에는 정상 참작의 여지가 없는 흉악한 청소년 범죄들도 수두룩합니다. 당연히 그들은 자기들이 한 짓에 걸맞은 처벌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범죄 행위 자체만을 선정적으로 부각하면서, 그들을 그렇게 만든 부모와 사회의 책임을 희석하거나 거론조차 하지 않는 태도는 잘못입니다. 문제의 본질을 직시하지 않고 겉으로 드러난 썩은 부분만 도려내는 식으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을 테니까요.

특이한 10대 커플의 좌충우돌 여행기인 <빌어먹을 세상 따위>는 독특한 캐릭터와 과감한 묘사로 눈을 뗄 수 없게 하지만, 다 보고 나면 안쓰럽고 미안한 감정이 더 크게 남습니다. 우리 기성세대가 먼저 다 겪어본 일이라는 이유로, 자라나는 청소년들을 너무 냉소적으로 대한 것은 아닐까, 훈계만 한 것은 아닐까 싶어서요. 진정으로 그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면, 우리가 겪은 부당하고 섭섭했던 일들을 조금이라도 덜 물려주려는 의지와 노력을 발휘해야 할 것 같습니다.

 드라마 <빌어먹을 세상 따위>의 포스터.

드라마 <빌어먹을 세상 따위>의 포스터. ⓒ 넷플릭스



덧붙이는 글 권오윤 시민기자의 블로그(cinekwon.com)에도 게재된 글입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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