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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한 대형병원의 신규 간호사가 자살했다. 인터넷에는 여기저기 태움이라는 단어가 눈에 띈다. 태움...누가 처음 그렇게 부르기 시작한 건지 모르겠지만 이름 한 번 참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종류의 괴롭힘을 "태운다"라는 표현 외에 어떤 말이 대신할 수 있을지 잘 떠오르지 않는다.

어떤 물건이 탈 때 불이 닿은 쪽부터 서서히 사라진다. 병원에서의 태움이 딱 그렇다. 내 생각에 태움이 다른 괴롭힘과 구분되는 것은, 태움을 당할 때의 그 타들어 가는 듯한 고통뿐만 아니라 나를 서서히 잃어가는데 있다.

밝고 활발한 성격, 당당한 사람, 조금 엉뚱하고 호기심 많은 아이 등 이런 모든 개성이 '환자 죽이려고 작정했어?''만약 환자 잘못되면 니가 책임질 거야?''너 지금 뭐 하려고 한 거야?''누가 이렇게 가르쳤어?''너희 학교에선 이런 거 안 가르치니?''내 환자한테 손 대지마''저리가, 넌 그냥 아무것도 하지마' 등의 말에 파묻혀 사라진다. 태움 당하는 신규 간호사는 자신을 잃어버린다.

앞선 예시처럼 태움을 당한 간호사들이 들었다는 말들을 살펴보면 그렇게 심한 욕설이나 비속어 등도 없고, 선임이 자기를 꼬집거나 때렸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도 거의 없다.

태움의 본질은 환자를 매개로 해서 신규 간호사들의 불안감, 죄책감을 증폭시키며 정신적인 고문을 가하는 데에 있다. 심장이 조여드는 것 같은 압박감에 시달리며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줄어들고 자존감은 바닥까지 떨어진다.

내가 너무 느려서, 내가 일을 못 해서, 나 때문에 다들 힘들어 하는 것 같고, 나는 환영받지 못 하는 존재, 민폐, 짐덩어리, 모두가 나를 원치 않는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두려움은 어린 간호사를 집어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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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내가 이 많은 일들을 완벽하게 잘 해낼 수 있을까, 내 실수로 환자가 잘못되면 나는, 내 인생은 어떻게 되는 걸까 하는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이 두려움이 이제 대학을 갓 졸업한 어린 간호사들을 집어삼킨다.

그런데 신입간호사가 일이 서툴고 그래서 업무속도가 느릴 거라는 것이 전혀 예측 불가능한 변수였을까? 병원들은 정말 "다들 학부성적도 우수하고 면접 때 당찬 모습을 보니까 중환자실에서도 2달 만에 완벽하게 적응할 줄 알고 뽑았는데..."라고 생각하는 걸까?

당연히 아니다.

국내 빅5에 든다는 대형병원들을 비롯해 거의 모든 병원에서 간호사라는 직업이 사직률이 매우 높음은 말할 것도 없고, 그 사직하는 간호사들의 빈 자리를 메꾸기 위해 매년 수백 명씩 새로 뽑는다.

이런 현상이 한두 해의 일이 아닐 텐데, 울면서 너무 힘들다, 죽을 것 같다, 그만두고 싶다라고 관리자와 면담하는 게 한두 사람이 아닐 텐데 병원은 이 사실에 대해 정말 몰랐을까?

당연히 아니다.

그냥 이런 현상들을 방치하는 것이다. 간호사들은 늘 과도한 업무량에 버거워하며, 신규 간호사의 작은 실수를 용납할 여유조차 없이 화내고 비난한다. 심지어 재가 될 때까지 태우면서 사직을 종용해도 그냥 방치하는 것이다.

더욱이 문제는, 그것을 개선하기 위해 죽을 만큼 괴로워하는 간호사들을 위해 인력을 대폭 늘리는 데에 돈을 쓰기보다는 매년 새로 간호사를 뽑아서 교육한다.

만약 병원이 돈을 목적으로 한다면 으레 그렇게 하는게 맞다. 환자의 안전이나 사람의 생명보다 돈이 더 중요한 병원이라면 당연히 그렇게 해야한다. 병원이 땅파서 장사하는 것은 아니니까.

그러나 문제는 환자 대비 간호사수가 똑같다고 해서 업무량도 똑같은 게 아니라는 것이다. 시시각각 변하는 환자상태에 따라서도 업무부담이 가중되지만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의료기술이 발달하면서 자연적으로 업무가 가중되기도 한다.

8개 상급종합병원에서 2008년부터 2014년까지 중환자실 의료장비 사용일수를 비교한 결과, 병상 수는 12% 증가한 것에 반해 인공호흡기 사용일수는 무려 77%, 지속적 혈액투석기(CRRT) 사용은 105%, 체외막산소화장치(ECMO)는 320% 증가했다. 하지만 2008년부터 2017년인 오늘에 이르기까지 중환자실 간호사가 담당하는 환자수는 변함이 없다.

내가 중환자실에서 일했던 2011년에도 간호사가 환자를 2명씩 담당했고, 7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간호사 한사람이 2명씩 간호하고 있다.(간혹 3명, 신생아중환자실은 4~5명도 본다.)

설연휴에 자살한 그 간호사는 중환자실에서 3명의 환자를 담당했다고 한다. 2명씩 담당하는 우리 병원 내과중환자실보다 1.5배 더 많은 일을 한 것이다. 내가 2011년에 2명을 담당하면서도 죽을 것 같이 힘들었던 날들을 생각하면, 2018년에 3명을 담당하던 그 간호사는 대체 얼마나 힘들었을까? 감히 상상조차 할 수가 없다. 나보다 1.5배, 아니 2배쯤 힘들고, 나보다 2배쯤 더 많이 나쁜 생각들을 했겠지.

얼마 전 이대목동병원 신생아중환자실 신생아 사망 사건도 그렇고, 이번 간호사의 죽음도 결국 시간이 지나면서 곪은 상처들이 터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인건비 절감을 위해 최소한의 인력으로 굴리는 병원들 때문에 피해를 보는 것은 항상 환자와 노동자들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가중되는 업무량 때문에 이런 일이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이, 더 자주 생길지 모르겠다.

목숨을 끊은 간호사의 유족들은 고인의 빈소를 찾은 간호사 친구들 중에 병원생활이 그래도 할 만하다고 이야기하는 아이를 단 한 명도 보지 못했다고 한다.

하나같이 "저희도 그래요, 저희도 진짜 너무 힘들어요"라며 서럽게 우는 아이들에게 "힘들면 그만둬, 부모님 걱정하지마, 부모님은 너희가 살아있는 것만으로 충분히 행복해하실 분들이야, 힘들면 그냥 지금 당장 그만둬"라는 말만 되풀이하셨다고 한다. 

지금도 여전히 같은 환경에서 일하고 있을 신규 간호사들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불길한 상상들이 이따금 나를 괴롭힌다. 앞으로 힘들다고 나를 찾아오는 후배 간호사들에게 이제 어떤 조언을 해주어야 할지 판단이 서질 않는다.

그냥 무심코 드는 생각은 딱 하나.

'돈도 잘 버는 병원에서...간호사 좀 더 쓰지...'

덧붙이는 글 | 최원영 시민기자는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회원으로, 서울대병원 노동조합에서 일하는 간호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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