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기록 수립한 차민규 '표정은 무덤덤' 19일 오후 강원 강릉스피드스케이팅경기장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500m 경기에서 차민규가 34초42로 올림픽 기록을 세우며 결승선을 통과한 뒤 손을 들어보이고 있다.

▲ 올림픽 기록 수립한 차민규 '표정은 무덤덤' 19일 오후 강원 강릉스피드스케이팅경기장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500m 경기에서 차민규가 34초42로 올림픽 기록을 세우며 결승선을 통과한 뒤 손을 들어보이고 있다. ⓒ 연합뉴스


한국 빙속이 8년 만에 올림픽 남녀 메달을 또 한번 석권했다. '빙속여제' 이상화(29·스포츠토토)의 은메달에 이어 '다크호스' 차민규(25·동두천시청)가 또 하나의 은메달을 추가하며 빙속 강국임을 알렸다.

차민규는 19일 강원도 강릉시 강릉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에서 열린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500m에서 34초42의 기록으로 2위에 올랐다. 차민규는 결승선을 통과한 직후 올림픽 신기록을 세웠지만, 16조에서 경기를 펼친 로렌첸(노르웨이)이 차민규의 기록을 0.01초차로 제치고 34초31의 새로운 올림픽 기록을 수립했다.

차민규, 신예선수 아니다

차민규가 이번에 깜짝 은메달을 획득하면서 신예선수인 것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 그는 몇 년전부터 국내에서 이미 기대주로 꼽혀왔던 인물이었다. 그가 2016년 삿포로 동계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국내 선발전에서 모태범(30·대한항공)을 꺾는 파란을 일으키며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모태범은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이 종목 금메달을 따낸 주인공이다.

차민규는 초등학교 시절 쇼트트랙 종목으로 스케이트 선수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러나 몸싸움을 싫어하던 그는 2011년 스피드스케이팅을 접한 후 전향을 결심해 새로운 도전을 이어갔다. 전향 후 첫 올림픽이었던 2014년 소치를 준비하던 도중 오른쪽 발목을 심하게 다치는 부상을 당해 TV로만 지켜봐야 했다. 이후 그는 착실하게 평창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차민규 힘찬 출발 19일 오후 강원 강릉스피드스케이팅경기장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500m 경기에서 대한민국 차민규가 힘차게 출발하고 있다.

▲ 차민규 힘찬 출발 19일 오후 강원 강릉스피드스케이팅경기장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500m 경기에서 대한민국 차민규가 힘차게 출발하고 있다. ⓒ 연합뉴스


국제대회 처음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던 2017년 알마티 동계 유니버사이드, 그는 이 대회에서 500m, 1000m 2관왕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그리고 곧바로 출전한 삿포로 동계 아시안게임에서는 500m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세계 빙속계에 차민규의 이름을 본격적으로 새겨 넣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그리고 올 시즌 태극마크를 단 후 월드컵 국제대회에 출전해 마지막 실전감각을 쌓았다. 깜짝 메달도 획득했다. 캐나다 캘거리에서 열린 2017-2018 국제빙상연맹(ISU) 스피드스케이팅 월드컵 3차 대회에서 동메달을 차지했다. 차민규보다 뒤에 레이스한 선수들이 두 차례나 레이스 도중 넘어지는 등 컨디션 난조로 기록이 처지면서 결국 먼저 경기를 마친 차민규가 동메달을 획득했다.

한 단계씩 차근차근 올라온 차민규는 결국 와신상담하며 준비했던 첫 올림픽에서 대형 사고를 쳤다. 차민규의 레이스 장점은 100m 구간보다 마지막 400m 구간 속도가 상당히 빠르다는 것이다. 차민규는 이날 레이스에서도 이 점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100m 기록은 9초63으로 5~6위권이었다. 그러나 직선주로를 빠져나와 곡선 코너에서 탄력을 받은 후 마지막 직선주로 속도가 상당히 빨랐고 결국 올림픽 신기록을 냈다.

8년만에 남녀 빙속 동반 메달 제패

전날 이상화가 부상 투혼 끝에 값진 은메달을 획득한 데 이어, 차민규도 남자 경기에서 은메달을 획득하면서 한국 빙속은 8년만에 올림픽 남녀 단거리 동반 메달을 다시 해냈다.

깜짝 은메달 차민규! 19일 오후 강원 강릉스피드스케이팅경기장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500m 경기에서 은메달을 딴 대한민국 차민규가 태극기를 들고 링크를 돌고 있다.

▲ 깜짝 은메달 차민규! 19일 오후 강원 강릉스피드스케이팅경기장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500m 경기에서 은메달을 딴 대한민국 차민규가 태극기를 들고 링크를 돌고 있다. ⓒ 연합뉴스


한국 빙속에서 2010년 밴쿠버 대회는 잊을 수 없는 대회였다. 사상 최초로 남녀 단거리를 동시에 제패했고, 장거리에서 이승훈(30·대한항공)이 금메달을 보태면서 무려 세 번이나 시상대 맨 윗자리를 점령했다. 장신의 유럽선수들이 지배하던 빙속 종목에 태극기를 새긴 그야말로 혁명과도 같았던 순간이었다.

이후에도 한국 빙속은 이상화와 이승훈을 중심으로 여자 단거리와 남자 팀추월, 매스스타트 등에서 꾸준히 최정상 자리를 지켜왔다. 그 사이 남자 단거리는 네덜란드 선수들이 독주 체제를 굳혔고 소치에서 금, 은, 동메달을 모두 휩쓸었다. 당시 모태범은 3위와 불과 0.15초 차로 밴쿠버 보다 더 빠른 기록을 냈음에도 4위에 그치고 말았다. 이후 남자 단거리는 매 월드컵마다 10위 이내에 있는 선수들이 모두 소수점 차 경쟁을 펼쳐 그야말로 '안개 속 경쟁'이 이어졌다.

차민규를 비롯해, 이번에 함께 경기에 나선 모태범과 김준호(23·한국체대)는 모두 베테랑이자 이 종목의 다크호스로 꼽혀왔다. 그렇기에 당장의 메달은 점치기 어렵더라도 가능성은 충분했다.

특히 차민규의 선전은 네덜란드의 강세를 뿌리치고 해낸 것이라 더욱 값졌다. 이번 대회에서 네덜란드는 남녀 500m 단거리를 제외한 전 종목에서 시상대 맨 위 자리를 차지했다. 오렌지 군단의 위력이 얼마나 위협적인지를 체감할 수 있었다. 이날 남자 500m에서도 네덜란드 선수들의 기세는 만만치 않았다. 로날드 뮬더를 비롯해 소치 금메달리스트 얀 스미켄스 등이 모두 출전했다. 그러나 차민규의 속도를 따라잡기는 역부족이었고 결국 한 명도 메달을 차지하지 못했다.

이제 차민규는 다크호스라는 꼬리표를 떼고 명실상부한 한국 빙속 단거리의 간판으로 거듭났다. 그는 어느 순간 떠오른 선수가 아닌, 부상을 딛고 한 단계씩 성장을 거듭해온 준비된 다크호스였다.


평창동계올림픽 차민규 스피드스케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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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계스포츠와 스포츠외교 분야를 취재하는 박영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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