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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윤택, "법적 책임 지겠다" 이윤택 전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이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30스튜디오에서 열린 성추행 사실에 대한 사과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며 입술을 앙다물고 있다.
ⓒ 이정민	관련사진보기

19일, 이윤택 전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이 카메라 앞에 섰다. 최근 불거진 상습 성추행 논란에 대해 공개 사과를 하겠다고 나선 것.

"그동안 저에게 피해를 입은 당사자들에게 진심으로 사죄를 드린다. (중략) 저 때문에 연극계 전체가 매도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다시 한 번 피해 당사자 분들에게 사죄드린다. 피해 당사자들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다면 어떤 벌도 달게 받겠다. 사죄합니다." 

이 사과, 받아들일 수 있는걸까. 특히 피해자들이 이 사과를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성실한 사과였을까.

사과 아닌 사과를 한 이윤택 

이씨가 기자와의 일문일답에서 한 말을 살펴보면 큰 문제가 나타난다.

- 성폭행이 아닌데 사과를 왜 하나. 
"제가 폭력적이고 물리적인 방법으로 성폭행은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과연 '폭력적이고 물리적인 방법'이란 무엇을 뜻하는가. 말그대로 몽둥이로 때리거나 목을 조르고 옷을 찢는 등의 행위가 있어야만 폭력적인 방법일까? 아니다. 상대방의 동의 없이 행위가 이뤄졌다면, 그것은 분명히 '폭력'이라고 명명할 수 있다. 그런데 이윤택은 이를 부정했다. 그의 기자회견이 '사과 아닌 사과'였다는 비판이 나오는 가장 큰 이유다.

이어 이윤택은 자신이 저질러온 일을 '18년 가까이 관습적으로 일어난 아주 나쁜 행태'라고 설명한다. 자신과 연희단거리패가 연극계에서 가지고 있는 권위를 생각하면, 이윤택이 부정한 그 '폭력적이고 물리적인, 나쁜 행태'는 공동체 내부에서 '강제성은 없었다'는 암묵적인 합의를 얻은 채 이어져왔는지도 모르겠다. 

성폭력은 권력의 문제다. 이를 고려한다면, 권력을 가진 가해자 쪽이 '강제성은 없었다'고 주장한다고 해서 그 행위가 합의 하에 이뤄진 것이라고 할 수 없다. 또 이러한 말은 결과적으로 피해자들에게 책임을 떠넘긴다는 점에서 문제적이기도 하다. 성폭력에서 중요한 것은 피해자의 항거 여부가 아니라 동의 여부다. 피해자가 얼마나 거세게 저항했는지에 집중하거나, 피해자와 가해자가 얼마나 친밀한 관계였는지 따지다 종국에 피해자를 '거짓말쟁이'로 몰아가는 행태를 우린 그동안 수없이 목격했다.


- 법적 절차를 말하지만 공소시효가 지났는데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가.
"공소시효가 지났다면 다른 어떤 방법을 통해서라도 사죄하겠다."

법적 책임은 이윤택 본인이 말한 것이다. 그런데 기자의 질문에서처럼, 공소시효가 지나버린 경우 어떻게 책임지겠다는 건지 불분명하다. 강제성 여부를 본인이 판단해놓고, '강제적인 관계'가 아니었던 이들에게는 사과를 하지 않겠다는 건가.

"제 자리의 사과는 특정인에 대한 사과가 아니라 모두에 대한 사과 연극계에 대한 사과다. (중략) 안마에 대해선 지금은 제 잘못을 통감하나 예전에는 남자건 여자건 제가... 제 잘못이다. 제 탓이다." 

사과는 모두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 피해 당사자에게 하는 것이다. 대상을 뭉뚱그리는 순간 '그냥 다 미안하다 내가 나쁜놈이다'라고 끝내버리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많은 피해자의 증언에서 나온 안마 문제에 대해서도 본질을 흐리는 모양새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명확히 밝히는 것이 사과의 시작이다. '남자건 여자건 (다 그랬다)'이라는 사족을 다는 것은 이상하다.

서지현 검사가 왜 8년만에 폭로했는지 생각해보길

서지현 검사가 자신의 피해사실을 공개적으로 폭로하는 데 8년이나 걸렸던 이유는 무엇일까. 간단하다. 조직 안에서 사건이 은폐되었기 때문이다. 당시 검찰국장이었던 최교일씨가 이 사건을 은폐하는 데 가담했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성폭력 사건은 권력관계에 의해 일어나고, 권력관계에 의해 문제가 덮인다. 피해자가 목소리 내기 힘든 분위기가 조성된다. 서지현 검사의 경우가 아니더라도, 많은 조직이 피해자를 이런 식으로 침묵시킨다.
　
앞서 말했지만 강제성이 없다는 건 이윤택 본인의 일방적인 생각이다. 공소시효가 지날 정도로 피해자들이 침묵했던건 그와 연희단거리패가 가지고 있는 위상과 권위 때문이었다. 사과 아닌 사과를 한 이씨는 검찰 내 성폭력이 은폐되고 침묵을 강요받은 케이스를 고려해봤으면 좋겠다. 과연 그의 사과가 진정으로 피해자를 향한 것이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