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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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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엔 커피 전문점이 많아져서 그런지 거리에서 자판기를 보기가 힘들다. 평소 하루에 커피믹스를 기본 세 잔은 마신다. 자주 이용하던 도서관의 자판기에서 삼백 원을 넣고 커피를 뽑았는데 커피 색깔이 하얗다. 명절이 끼어 있어서 자판기 주인이 커피 재료가 다 떨어진 사실을 몰랐던 모양이다.

평소라면 그냥 넘어갔을 텐데, 이번이 벌써 세 번째였다. 매번 다른 자판기였지만. 이번엔 잘못 나온 하얀 커피를 손에 든 채 삼 분 정도 고민을 했다.

그  사이 다른 사내가 커피를 뽑았다. 위쪽 버튼은 이상이 없나 보다. 자판기 앞엔 '고장시 연락주세요'라는 문구가 자판기 주인의 휴대폰 번호와 함께 적혀 있었다. 자판기에 적힌 휴대폰 번호로 전화를 했다. 다섯 번 정도 벨이 울린 후 사내가 전화를 받았다.

"방금 커피를 뽑았는데 자판기에 커피재료가 떨어진 것 같은데요."
"어떤 걸 눌렀는데요?"
"설탕 커피요."

"어떤 커피요?"
"설탕 크림 커피요."

"커피가 어떻게 나오는데요?"
"커피는 없고 설탕이랑 프림만 나왔어요."

"그러니까 그게 설탕만 있는 거예요?"
"네."

"버튼 제대로 누른 거 맞아요?"

사내는 귀찮다는 듯이 말했다. 나는 조금 짜증이 밀려왔다.

"설탕이랑 크림만 있었다니까요."
"그러니까 자판기 어떤 버튼을 눌렀냐고요?"
"지금 오실 수 있나요? 없나요?"

통화를 하다가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높아졌다.

"지금은 못가요, 한 시간 후나 가능해요."
"자판기엔 고장시 연락 달라면서요."

"그래도 지금 당장은 못가요."
"그럼 됐어요."

나는 커피 한 잔 때문에 자판기 주인과 실랑이를 벌이는 게 싫어서 전화를 끊고 하얀 커피가 든 종이컵을 쓰레기통에 툭! 던져버리고 나왔다. 자판기 주인과 크게 실랑이를 한 건 아니었지만, 뒤쪽 테이블에 앉아 있던 사람들의 칼같은 시선이 등에 꽂혔다. 십 분쯤 후...

"여보세요?"
"아까 자판기 고장 났다고 전화 주신 분이죠?"

"네, 맞는데요. 오셨나요?"
"네, 지금 자판기 앞에 있어요?"
"제가 그쪽으로 올라갈게요."

자판기 앞엔 깡마른 체구의 사내가 노란 모자를 쓰고 막 자판기 문을 열고 있었다. 사내의 한쪽 손엔 하얀 커피가 담긴 종이컵이 들려 있었다.

"아까도 이렇게 나왔어요."
"이상하다. 이럴리가 없는데."

사내는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연거푸 같은 버튼을 눌러 설탕 크림 커피를 뽑았지만 자판기에선 계속 하얀 커피만 나왔다. 확인해보니 자판기 설정이 오류였다. 아래쪽 버튼 세 개가 모두 녹차라떼로 설정되어 있었다.

"죄송합니다. 번거롭게 해드려서."

사내는 자판기 위쪽 버튼에서 제대로 된 커피를 뽑더니 내게 건네며 미안하다고 말했다.

"저도 아깐 예민하게 말해서 죄송해요. 전화했을 땐 뭐 커피 한 잔으로 유난을 떠는가 생각하시는 것 같아서요."
"이상하네요. 다른 손님들도 계속 하얀 커피만 나왔을 텐데. 왜 전화를 하지 않았을까요?"

"그러게요. 삼백 원이라 그냥 버린 셈 쳤나 보네요. 커피랑 헷갈리지 않도록 자판기 설정을 고치시든가 아니면 스티커를 붙여 놓으시면 될 것 같아요."
"그래야겠네요."

사내는 자판기를 살펴보며 이해가 안 간다는 듯이 연신 고개를 갸웃했다. 살다 보면 뭐 자판기에 설탕 크림 커피 버튼을 눌렀는데 하얀 커피가 나오는 일들이 한두 번이었을까 싶지만, 그래도 꽤 많은 사람들이 자판기 옆 쓰레기통에 흘려버렸을 커피 한 잔, 동전 삼백 원의 가치는 과연 얼마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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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모이, #사는이야기, #커피, #가치, #자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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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 뉴스 시민기자입니다. 진보적 문학단체 리얼리스트100회원이며 제14회 전태일 문학상(소설) 수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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