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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주 청정지역'이라는 단어로 사람들에게 '음주하면 안 된다'는 이미지를 의도적으로 심어 놓은 것 아니냐."

경의선 숲길 근처 길거리음식 영업점 매니저 이아무개씨가 '음주청정지역' 규정에 대해 억울한 표정과 함께 한 말이다. 그는 "영업하는 입장에서 정말 걱정스럽다"라며 "우리 가게야 음식도 팔지만, 공원 근처 맥주 전문 판매점들 같은 경우, 가게 자체가 존재할 이유가 없어지는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Beer to go'라는 맥주 전문 판매점 매니저 김명수(27)씨도 규정에 대해 당황스러워했다. 그는 "규정 때문에 상권이 많이 죽을 것으로 예상된다"라며 "맥주만 파는 저희 입장에선 타격이 있다"라고 말했다.

이름부터 내용까지 애매한 규정

경의선숲길 입구에 걸려 있는 음주청정지역 관련 배너. 술에 금지 표시된 픽토그램이 눈에 띄게 그려져 있다.
 경의선숲길 입구에 걸려 있는 음주청정지역 관련 배너. 술에 금지 표시된 픽토그램이 눈에 띄게 그려져 있다.
ⓒ 홍문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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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는 올해 1월 1일부터 서울숲, 남산공원 등 서울시 직영공원 22곳을 '음주 청정지역'으로 지정∙운영한다고 밝혔다. 이들 지역에서 음주로 인한 소음이나 악취 등의 행위를 할 때 10만 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문제는 '음주 청정지역'이라는 이름과 실제 규정 내용 사이의 괴리감이다. 해당 단어는 음주를 아예 금기시하는 인상을 주지만 실질적으로 규제되는 행위는 음주 자체가 아니다. 또한, 해당 규제가 실효성이 없다는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기자는 지난 1월 초부터 '음주 청정지역'으로 지정된 공원들 중 길거리 음주로 사람이 붐비던 경의선 숲길을 찾아가 봤다.

일명 '연트럴파크'로 불리는 경의선 숲길 입구에는 해당 공원이 2018년 1월 1일부터 '음주 청정지역'으로 지정 운영된다는 내용이 큰 글씨체로 쓰인 현수막이 걸려있다. 해당 내용 옆에는 주류를 나타내는 소주병에 금지 사인이 붙어있다.

현수막 하단에는 보다 작은 글씨체로 음주 청정지역에 대한 규정 내용이 쓰여 있다. '음주 청정지역에서는 음주하여 심한 소음 또는 악취가 나게 하는 등 다른 사람에게 혐오감을 주는 행위를 한 자에게 10만 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라는 것이 그 내용이다. 이 규정에 대한 설명은 오해의 소지가 있다. 우선, 음주 자체가 규제 대상인지, 그로 인한 소음과 악취 등의 행위가 규제 대상인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두 번째로 심한 소음이나 악취의 기준이 불명확하다.

연남동 주민들은 규정을 어떻게 이해했을까

취재진은 연남동 주민들에게 규정에 대해 어떻게 이해를 했는지 그들의 생각을 들어봤다.

연남동 주민 박운상(23)씨는 "공원에서 술 자체를 아예 마시면 안 된다는 규정 같다"라며 "'음주 청정지역'이라는 이름 자체가 그런 것 같은데..."라고 말끝을 흐렸다. 도리어 취재진에게 "그런 거 아니냐"라고 되묻기도 했다.

지나가던 다른 연남동 주민 김세민(18)씨는 "공원에서 술을 마시면 과태료를 물어야 한다는 규정인 것 같다"라며 '음주 청정지역'이라는 이름에 대해서 "술이 없는 지역을 뜻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옆에 있던 손은빈(18)씨는 "술주정하는 사람들을 규제하는 것 같다"라며 "술에 취한 사람들한테 사고가 자주 일어나니까 음주 시 일어나는 사고를 방지하겠다는 의도처럼 보인다"라고 말했다. "'음주 청정지역'이 뭘 의미하는지는 생각해봐도 잘 모르겠다"라고 덧붙였다.

경의선숲길에서 산책을 하던 서봉준(70)씨는 '음주청정지역'에 대해 "(사람들이) 술을 마시지 않는 지역을 의미한다"라고 확신 있게 답했다.

여행객들도 헷갈리게 만드는 규정

연남동으로 여행 온 여행객이나 유학생들 생각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핀란드에서 온 피아(25)씨는 "여기서 사람들이 술을 마시면 안 된다는 것 아니냐"고 규정에 대해 말했다. 취재진이 이를 정정하고 규정에 대해 정확하게 설명을 해주자, 그는 "저런 규정이 있는 것 자체가 이상하다"며 "단순히 음주 때문이 아니라 사람은 어떤 이유에서든 어느 순간 소음을 낼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답했다.

프랑스에서 온 세라(20)씨 역시 "이 공원에서 음주하면 안 된다는 것이 분명하다"라고 답했다. "프랑스에선 공공지역에서 음주하는 것에 대해 벌금을 물리진 않는다"며 "음주한 사람에 의해 피해가 발생하면 피해를 입은 사람이 그때 경찰을 부른다"고 덧붙였다.

단순한 계도 목적?

서울시 건강관리과 담당자는 "소음이나 악취 측정을 위한 명확한 방법이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은 계도 목적일 뿐이다"라며 규정에 대해 설명했다.

서울의 한 변호사 오아무개(55)씨는 이 규정에 대해 "미국의 경우 단순히 '음주 금지 지역'으로 표시하고 있으며 규정에 '심한 소음'이나 '혐오감' 등의 주관적 표현을 사용하고 있지 않다"라며 "이 규정이 실효성을 가지려면 단속 공무원이 배치돼 음주를 금지시켜야 하는데 여건이 안될 가능성이 높다"라고 말했다. 

맥주 전문 판매점 'Beer to go' 매니저 김명수(27)씨는 "연남동이 유명해진 이유도 '연트럴파크'에서의 노상 문화 덕인데, 이제 와서 그걸 규제한다니 이해가 되지 않는다"라며 고개를 저었다.

근처 길거리음식점 매니저 이아무개씨는 "계도를 위함인지, 제재를 위함인지 목적이 분명하지 않고 졸속으로 지정된 규정"이라며 규정에 대한 문제점을 짚었다.


태그:#음주청정지역, #연트럴파크, #경의선숲길, #월드컵공원, #음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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