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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 연휴. 서울 대형병원 간호사가 고층 아파트에서 투신했다는 뉴스를 봤다. 가슴이 쿵하고 내려앉았다. 간호사들의 '태움' 때문이란다. 재가 될 때까지 태운다는 태움. 여전히 이렇구나. 나 또한 이런 이유로 밤잠을 설치고 출근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머리가 하얘졌던 기억들이 떠오른다.

1990년대 초에 간호사가 되고 나서 대형병원 병동, 응급실, 수술실에서 내가 겪었던 일들. 어쩌면 내가 겪은 일은 진짜 태움에 비하면 '새 발의 피'일 수도 있다.

잊을 수 없는 그녀

이 병동에는 악명 높은 책임간호사가 있었다. 그녀의 말과 행동에 대처하는 매뉴얼이 떠다닐 정도였다
 이 병동에는 악명 높은 책임간호사가 있었다. 그녀의 말과 행동에 대처하는 매뉴얼이 떠다닐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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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 후, 처음 대형병원 산부인과 병동에서 일했다. 자연분만이나 제왕절개 같은 산모들과 자궁암 같은 여성 질환으로 입원한 환자들 대부분이다. 이 병동에는 악명 높은 책임간호사가 있었다. 그녀의 말과 행동에 대처하는 매뉴얼이 떠다닐 정도였다.

분만실에서 나온 산모의 혈압, 맥박, 호흡 등 바이탈을 체크하고 피 묻은 옷을 갈아입히고 있는데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그녀다. 하던 일을 멈추고 복도로 뛰어나가 보니 빨리 피검사 샘플을 검사실로 보내고 오란다.

병동은 2층이고 검사실은 지하 2층. 엘리베이터는 기다려야 하니 계단을 두세 개씩 건너뛰며 검사실을 뛰어갔다 오니 화가 단단히 난 얼굴이다.

"내가 환자 옷까지 갈아 입혀야 하냐?"

소리를 지른다. 검사실 심부름 시킨 건 안중에도 없다. 나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무조건 잘못했다고 싹싹 빌었다. 무조건 빌라는 매뉴얼대로.

모든 일은 아랫사람에게 다시키고 정작 본인은 병실을 돌며 흠잡을 거리를 찾아다닌다. 수간호사나 병원장의 비위를 맞추고 평간호사의 흠집을 찾는 게 그녀의 일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의 우위를 내세우는 일.

그 때만 해도 실리콘 바늘보다 일반 쇠로 된 바늘이나 나비모양 바늘이 일반적일 때이다. 다른 일하는 도중 환자가 몸을 움직여 주사 놓은 부위가 붓는 경우 일단 링거를 잠가 놓는다. 그때그때 바로 다시 놔주면 좋겠지만 시간대 별로 해야 할 일이 쌓여있다 보니 일단 잠가놓고 한꺼번에 한 바퀴 돌며 다시 주사를 놓는다.

그렇게 하라고 가르친 사람도 그녀다. 바쁘게 일하는 나를 부르더니 몇 호실, 몇 호실 주사가 부어있단다.

"네, 선생님 알고 있어요. 빨리 바이탈 측정 마저 끝내고 한꺼번에 다시 놓을게요."

그녀는 나를 똑바로 보지도 않고 옆 눈으로 흘겨보며 세상 참 좋아졌다고 한다. 자기가 신참일 때는 상상도 못했는데 말대꾸를 따박따박 한다고 한다. 이게 무슨 상황인지 감조차 오지 않는다. 그녀가 원하는 건 '일 잘하는 실력 있는 간호사'가 아니라 자기 말에 무조건 '복종하는 간호사'인가 보다.

나만의 생존법

나의 목소리를 없애고 선배들 일까지 해내기
 나의 목소리를 없애고 선배들 일까지 해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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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근무가 걸리는 날이면 수간호사, 책임간호사, 나 이렇게 셋이 일을 한다. 위로 두 간호사는 인계가 끝나면 간식과 커피로 아침을 시작한다. 내게 권하지도 않지만 나는 인계가 끝나기가 바쁘게 뛰어 다니며 약을 돌리고, 주사를 놓고, 바이탈을 측정하고 할 일이 태산이다.

점심시간이 되도 소화가 안 된다거나 배가 안 고프다거나 하는 핑계로 점심을 건너뛰었다. 원래 밥을 빨리 먹지 못하는 나는, 먹고 와서 늦게 왔다고 혼나는 게 두려워 병원에서 밥을 포기했다. 그랬더니 "재는 밥을 안 먹고도 일을 잘 해. 그래서 날씬한가?"하며 키득거린다. 둘이 느긋하게 밥을 먹고 걸어온다.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날까봐 물을 가득 한잔 마신다.

아침 7시가 오전 근무 교대 시간이지만 나는 6시도 되기 전에 출근해서 밤샌 간호사들의 일을 돕고 오후 3시에 일이 끝나도 다음 근무 간호사들의 일을 한두 시간 돕다가 눈치 봐서 퇴근한다. 학교 선배들이 직장에서 예쁨 받고 잘 적응하려면 이래야 한다고 알려준 팁이다.

그래서 이래야 하는 줄 알았다. 첫 1년 동안은 오프를 신청한 적이 없다. 남들 다 쉬고 싶은 날 쉬고, 남는 날이 내가 쉬는 날이다. 교육을 빙자한 태움을 극복하기 위한 내 나름의 생존전략이다. 나의 목소리를 없애고 선배들 일까지 해내기.

응급실로 옮겼다. 응급실은 전쟁터와 비슷하다. 피가 낭자하고 때로는 고성이 오가고 목숨이 촌각에 달려있으니 그 긴장감은 터지기 직전의 풍선 같다. 일의 강도로 보면 산부인과 병동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힘들다.

하지만 응급실 수간호사 선생님은 이전 수간호사와 전혀 다르다. 우선 가장 지저분한 일을 직접 한다. 환자의 토사물을 치우고 행려환자로 들어와 온몸에서 썩은 생선 냄새가 나는 환자의 몸을 뜨거운 물을 떠다 닦아준다. 내가 도울라치면

"문쌤은 다른 환자들 돌보세요. 여긴 내가 알아서 할게."

나의 간호사 생활 통틀어 가장 모범적이고 존경스러운 분이다.

일을 가르쳐 줄 때도 하나하나 세심하게 설명해주고 내가 이해했는지 꼼꼼하게 체크한다. 내가 제대로 작동 법을 읽히지 못한 기계가 있으면 설명에 앞서

"이 기계가 참 어려워, 나도 숙달되는데 오래 걸렸어. 그러니까 잘 모르겠으면 항상 물어봐도 괜찮아."

다른 선배들이 일을 가르칠 때도 말이 좀 심해진다 싶으면 어김없이 수간호사 선생님이 개입을 한다.

"처음부터 잘 하는 사람 없어. 너무 다그치면 잘 할 수 있는 것도 더 못하게 되니 천천히 가르쳐줘. 일을 늦게 배우는 사람이 나중에는 더 꼼꼼히 잘하는 사람도 많아."

이전 병동에서는 내가 혼날 때마다 비웃던 수선생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이런 자상함과 따뜻함이 아무리 일이 힘들어도 견디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모든 파트가 수간호사의 성품을 따라간다. 그 밑에는 그런 사람들이 있다. 그 위치에 있는 사람이 중요한 이유다.

그때 더 극렬하게 저항했다면

졸업 후, 일하는 친구들과 만나면 10명 중 10명이 하는 말이 똑같다. '일이 힘든 건 참겠는데 사람이 힘든 건 못 참겠다'이다. 이건 간호사뿐 아니라 어떤 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일도 힘들고 태움은 지옥 같고, 그래서 일을 그만두는 간호사가 내 주변에도 천지다.

그러니 또 인력난에 다시 일이 힘들어지고 또 태우고. 힘들게 대학가서 공부하고 면허증 땄지만 자부심을 갖고 일하기는커녕 이직을 희망하는 간호사가 전체 일하는 간호사의 70프로를 넘는다.

임신한 친구에게 '도대체 생각이 있냐'고 다그쳐 일을 그만 두고, 왕따를 당해 아무도 말을 붙이지 않아 일을 그만두고, 친절하단 이유로 사람들 홀리고 다닌다고 매도 당해 일을 그만두고, 성희롱에 일을 그만두고, 욕설에 못 이겨 그만두고, 맞아서 그만두고, 외모비하, 부모까지 욕보이는 사람들...

더 나빠져야 살아남는 이 몹쓸 관습. 내가 당했기 때문에 돌려주고 말겠다는 일종의 복수의식. 대대로 내려오다 보니 죄의식조차 없다는 게 문제다.

태움으로 생을 마감해버린 간호사가 처음이 아니다. 은폐하고 축소하고 개인의 문제로 치부해왔을 뿐이다. 진실이 드러나고 공론화되고 그리하여 개선의 바람이 제발 좀 불었으면 한다.

그 길을 지나 온 간호사로서 그 때 더 극렬하게 저항하지 못하고 비굴한 선택을 한 내 행동이 이후의 후배들에게 힘든 길을 더 공고히 하는 데 기여한 게 아닌지.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길 진심으로 바란다.


태그:#태움, #간호사, #이직, #자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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